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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학기 속도를 늦추는 클래식 플레이리스트 4

새 학기가 시작되는 봄, 빠르게 흘러가는 일상 속 호흡을 고르게 해줄 클래식을 소개합니다.

프로필 by ESQUIRE CLUB MEMBER 2026.03.25
클래식과 함께하는 새 학기: 네 개의 음악적 장면
  • 1. 등굣길: 바이젠베르크, 4월의 파리에서 (1953)
  • 2. 점심시간: 사티, 당신을 원해요 (1893)
  • 3. 하굣길: 시벨리우스, 바이올린 협주곡 라단조, 작품번호 47 (1905)
  • 4. 늦은 밤: 퐁세, 작은 별 (1912)

3월, 새 학기가 시작되었다.

첫 개강을 맞이한 대학생 새내기부터 학업에 대한 꿈을 안고 학교로 돌아온 대학원생, 새로운 출발선에 선 직장인에게도 3월은 시작하는 달이다. 시작은 설렘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많은 것이 한꺼번에 움직이기에, 봄은 속도가 빠른 계절이다.

봄을 맞이한 새싹 / 이미지 출처: 언스플래쉬

봄을 맞이한 새싹 / 이미지 출처: 언스플래쉬

과연 교수와 학생 중, 새 학기에 더 피곤한 사람은 누구일까? 가르치는 자리에서 가르침을 받는 자리로 돌아와 생각해 보아도 학생의 편을 들고 싶다. 물론 강의실에 감도는 긴장감을 먼저 깨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 부담감은 적다. 교수님께서 어떤 방식으로 수업을 여시는지 그저 자리에 앉아 지켜볼 수 있으며, 나였다면 어떻게 했을지 생각해 볼 여유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떤 수업으로 수강을 확정할지, 어떻게 발표가 맞물리지 않도록 조정할지, 다음 강의실은 어디로 가야 할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머릿속은 바삐 움직이고 있다.


물론 빠르게 흘러가는 일상에서 클래식은 시간을 멈추게 하지는 못한다. 다만 그 안에 머물 수 있는 순간을 만들어 준다. 무심히 지나가던 장면을 붙잡아 두고, 다시 바라보게 하는 것. 바로 클래식이 봄의 속도를 늦추는 방식이다.



1. 등굣길

♬ 바이젠베르크, 4월의 파리에서

Alexis Weissenberg, En Avril, à Paris (1953)

마르크-앙드레 아믈랭 앨범 / 이미지 출처: 벅스

마르크-앙드레 아믈랭 앨범 / 이미지 출처: 벅스

봄이 가진 낭만적인 분위기가 제목에서부터 느껴진다. 프랑스의 샹송 가수 샤를 트레네(Charles Trenet)의 곡을 불가리아 피아니스트 알렉시스 바이젠베르크가 피아노 솔로로 편곡했다. 특히 마르크-앙드레 아믈랭(Marc-Andre Hamelin)이 연주하는 버전은 초록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눈부신 아침 햇살을 느낄 수 있다. 몸의 감각들을 깨워주고 펼쳐질 오늘에 대한 기대감이 담겨있는 곡과 함께 산뜻하게 집을 나서보는 것은 어떨까.



2. 점심시간

♬ 사티, 당신을 원해요

Eric Satie, Je te veux (1893)

파스칼 로제의 에릭 사티 앨범 / 이미지 출처: 샤잠

파스칼 로제의 에릭 사티 앨범 / 이미지 출처: 샤잠

점심을 먹고 난 뒤, 커피 한 잔을 들고 거닐 공원이 있다면 프랑스 작곡가 에릭 사티의 피아노 독주곡을 추천하고 싶다. 나른한 오후의 정취를 더해줄 사티의 작품은 기꺼이 봄의 풍경으로 녹아들 것이다. 마치 늘 같은 자리에 눈에 띄지 않게 존재하는 가구처럼 잔잔하게 말이다. 프랑스의 피아니스트 파스칼 로제(Pascal Roge)가 녹음한 이 앨범에는 대중적으로 익숙한 <3개의 짐노페디>도 수록되어 있어, 플레이리스트에 함께 넣기 좋다.



3. 하굣길

♬ 시벨리우스, 바이올린 협주곡 라단조, 작품번호 47

Jean Sibelius, Violin Concerto in D minor, Op. 47 (1905)

바이올리니스트 양인모 / 이미지 출처: 장 시벨리우스 국제 바이올린 콩쿠르 홈페이지

바이올리니스트 양인모 / 이미지 출처: 장 시벨리우스 국제 바이올린 콩쿠르 홈페이지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하루의 피로가 가장 크게 와 닿는 시간이다. 이 순간 우리 모두의 목표는 집에 빨리 가는 것. 물리적인 시간은 정해져 있으니, 몰입을 통해 체감 시간이라도 줄여보자. 핀란드의 국민 작곡가 장 시벨리우스의 유일한 바이올린 협주곡인 이 곡은 북유럽의 정서를 여실히 보여주며 시리고도 찬란한 음향으로 우리의 청각을 사로잡는다. 아직 겨울이 가시지 않은 듯 꽃샘추위에서 느껴지는 봄의 오묘한 분위기가 곡의 청명함과 닮아있다. 특히 2022 시벨리우스 국제 바이올린 콩쿠르에서 우승한 양인모의 연주는 다른 연주를 듣다가도 자꾸 돌아오게 되는 매력이 있다.



4. 늦은 밤

♬ 퐁세, 작은 별

Manuel Ponce, Estrellita (1912)

작은 별 / 이미지 출처: 언스플래쉬

작은 별 / 이미지 출처: 언스플래쉬

하루를 마무리하는 밤에는 긴장된 몸과 마음을 부드럽게 감싸는 시간이 필요하다. 마누엘 퐁세의 작은 별은 단순하고도 서정적인 멜로디로, 남아 있던 오늘의 감정을 조용히 가라앉힌다. 미국의 바이올리니스트 야샤 하이페츠(Jascha Heifetz)의 편곡 버전으로 널리 연주되며, 하루의 끝을 따뜻하게 정리해 준다.

월든 호수, 매사추세츠 / 이미지 출처: 위키미디어

월든 호수, 매사추세츠 / 이미지 출처: 위키미디어

소로 「월든」 / 이미지 출처: 네이버 도서

소로 「월든」 / 이미지 출처: 네이버 도서


3월의 끝자락에서

미국의 철학자이자 시인 헨리 데이비드 소로(Henry David Thoreau)“건강은 아침과 봄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가늠해 볼 수 있다.”고 했다. 모든 것이 새로웠던 3월의 시작을 지나, 누적된 피로가 천천히 스며드는 마지막 주다. 빠르게 흘러가는 봄, 클래식이 머무르게 하는 순간 속에서 스스로에게 조금은 다정해질 수 있기를 바란다. 겨우내 품었던 꿈과 희망의 새싹이 꽃으로 피어날 때까지, 자신만의 리듬을 지키며 흐르는 새 학기가 되기를 응원한다.

MEMBER WRITER
박선재
클래식 해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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