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R&TECH

데이비드 서 디자이너가 말하는 '라이카에서 디자이너로 일한다는 것'

라이카의 수석 디자이너 데이비드 서를 만났다. SL3와 소포트2를 디자인한 그는 그것들이 유산과 새로움, 미감과 사용성 사이의 끝없는 고민에서 나온 결과물이라고 했다.

프로필 by 오성윤 2024.05.29
라이카는 세계적인 브랜드이면서 지극히 독일적인 브랜드라는 이미지가 있어요. 라이카의 직원이자 디자이너로서 어떤 부분을 더 크게 느끼나요?
좋은 질문이네요. 우선 라이카 본사는 독일 베츨라어(Wetzlar)에 자리하고 있어요. 디자인팀을 제외한 모든 부서가 그곳에 있다고 보면 되죠. 본사에서 추구하는 건 라이카가 독일 회사고, 역사가 아주 오래된 브랜드이며, 그 사실들을 계속 잘 지켜나가야 한다는 부분이에요. 이번에 출시된 SL3의 캠페인 역시 ‘Made in Germany’를 강조하고 있죠. 하지만 동시에 디자인과 마케팅 관점에서는 열린 자세를 갖고 있기도 해요. 일단 디자인 오피스는 뮌헨에 있고, 구성원들의 면면을 봐도 굉장히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갖고 있거든요. 호주, 오스트리아, 영국, 미국, 독일… 국적부터 다 다르죠. 한국계 캐나다인인 저를 포함해서요.(데이비드 서는 중학생 때까지 한국에서 살다 캐나다로 이민을 갔으며, 이후 대만, 미국, 독일 등지에서 이력을 쌓았다).
‘라이카스럽다’는 특유의 느낌을 유지하면서도 또 한 번씩 과감함으로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라이카 카메라의 디자인은 그런 구조에서 나온 거군요.
일단 라이카 제품을 디자인한다면 라이카가 지금껏 계승해온 가치들을 무시할 수 없죠. 저희도 그게 중요하다고 생각하고요. 하지만 한편으로는 제품 회사로서 시대에 부합하는 물건을 내야 한다는 숙제도 있는 거예요. 그래서 헤리티지와 새로움의 밸런스를 맞추려고 늘 노력하고 있습니다. 사용자의 입장에서도 너무 많은 게 바뀌면 이질감이 들 테고, 변화가 너무 적으면 새로운 세대라는 가치가 저하될 테니까요.
카메라는 기술적 측면과 디자인을 분리해 생각하기 어려운 첨단 기계 분야잖아요. 라이카에서는 엔지니어링 부서와 디자인 부서가 어떻게 소통하는지도 궁금합니다.
각 프로젝트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전체적으로 ‘동시다발적’인 양상을 띠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디자이너들이 제시하는 방향성, 엔지니어들이 주목하는 포인트, 회사가 생각하는 비전이 다 있기 때문에 다양한 방향으로 전개될 수 있죠. 예를 들어 SL3 경우도 굉장히 복합적인 제품이에요. 엔지니어링팀의 생각을 최우선으로 해서 풀어갈 수도 있었겠지만, 디자인팀에서도 주도적으로 생각해보는 거예요. SL 시리즈의 새로운 라인업이 가져다줄 수 있는 감정적 이미지, 메시지, 캐릭터 같은 측면을. 그렇게 모두의 관점이 융합될 때 최선의 제품이 탄생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최근 출시된 SL3의 디자인을 총괄하셨죠. 주안점으로 생각했던 부분은 뭘까요?
‘진화’를 핵심 키워드로 생각했습니다. 물론 진화의 양상이 중요한 건 어떤 제품이든 마찬가지겠지만, SL 시리즈(라이카의 렌즈교환식 풀프레임 미러리스 라인)는 M(풀프레임 레인지 파인더 라인), Q(풀프레임 P&S 라인)와 함께 라이카의 큰 축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잖아요. SL부터 시작해 이제 선보이게 될 SL3까지 어떤 변화를 보여줘야 하는가를 많이 고민했죠. 너무 낯설게 바뀌어서도 안 되지만 또 한편으로는 자연스럽게 변화한 부분들이 정서적 애착을 이끌어내길 바랐어요. 손으로 만졌을 때, 실제로 사용해봤을 때 스마트하게 느껴지는 부분은 물론이고 오브제로 그냥 바라봤을 때도요. 틸트 디스플레이, 원 핸드 오퍼레이션, 소재, 마감, 파트와 파트가 만날 때 만들어지는 라인, 에지의 둥근 정도… 모든 요소가 그런 관점에서 재고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오브제’라는 표현이 흥미롭네요. 라이카 제품을 실제로 사용하기보다 소장하고 감상하기 위해 구매하는 사람도 있을 거라는 걸 라이카에서도 염두에 두나요?
염두에 둔다기보다 알고는 있죠. 그게 사실이니까요. 하지만 그런 현상에 대한 반감은 전혀 없습니다. 카메라처럼 실용적인 물건이 그렇게 ‘셸프 피스’, 감상의 대상으로서 가치를 줄 수 있다는 게 사실 쉽지 않은 일이잖아요. 저희가 추구하는 진화의 중요한 결 중 하나가 ‘타임리스’이고, 몇십 년이 흐른 뒤에도 여전히 아름답고 견고한 제품을 만들기 위해서 0.1mm, 소숫점 단위까지 디테일하게 고민하고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저희 제품을 컬렉팅하거나 감상의 대상으로 바라봐주시는 게 오히려 감사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데이비드 서 디자이너가 총괄 디자인을 맡았던 라이카 소포트2와 SL3.

데이비드 서 디자이너가 총괄 디자인을 맡았던 라이카 소포트2와 SL3.

즉석 현상 카메라인 소포트2의 총괄 디자인도 맡으셨죠. 라이카의 가장 하이테크적인 제품과 가장 로테크적인 제품을 모두 디자인하셨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디자인 과정에서도 차이가 있었을까요?
과정은 비슷합니다. 다만 접근 방향이 많이 달랐죠. 앞서 얘기했다시피 SL3는 라이카의 커다란 축 중 하나이고 구매자도 대부분 프로페셔널 포토그래퍼잖아요. ‘이것이 새로운 SL로서 어떻게 받아들여질 것인가’ 하는 무게감 있는 고민을 많이 했죠. 반면에 소포트2는 좀 더 폭넓은 사람들이 쓰는 제품이잖아요. 그래서 ‘라이카 DNA’가 기반이 되긴 하지만 좀 더 플레이풀(playful)한 접근을 염두에 뒀죠. 물론 고민의 심도 측면에서 차이가 있었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오히려 소포트2는 어떻게 보면 기존 유저를 벗어나 좀 더 많은 사람들이 라이카를 경험해볼 수 있는 단초가 되는 제품이기 때문에, 그런 지점에서 개인적으로 어떤 흥분, 기쁨을 느끼면서 작업하기도 했습니다.
다른 라인업들과 비교하면 소포트2는 전작과의 변화가 좀 더 선명하게 보이는 제품 같기도 해요.
일단 제품의 속성이 달라졌으니까요. 소포트1과 즉석 현상 카메라라는 공통점이 있긴 하지만 소포트2는 ‘하이브리드 인스턴트 카메라’거든요. 촬영 결과물을 확인하고 그걸 출력할지 말지 결정할 수 있죠. 휴대폰으로 촬영한 사진을 전송해 출력할 수도 있고요. 그런 요소의 장단점이 있겠지만 어쨌든 저는 좀 더 진화한 경험을 안겨주는 제품이라고 봤어요. 그럼 그 특성에 기반해 더 적합한 기능들을 넣고, 그 기능들에서 디자인의 방향성이 나오는 거죠. 거기에 휴대성과 컬러 부분에 대한 고민이 더해져 이런 결과물이 된 거고요. 개인적으로는 소포트2 역시 ‘라이카스러움’이라는 틀 안에서 소포트1에서 자연스러운 진화를 했다고 생각해요. 다만 라이카스러우면서도 ‘가장 컨템퍼러리하고 가장 슬릭(sleek)한 라이카’가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담긴 했죠.
솔직히 ‘라이카스러움’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는 그게 디자인 프로세스에 일종의 제약처럼 작용하지 않을까 싶었어요. 하지만 이제는 그 표현이 강한 자부심이라는 걸 알 것 같네요.
라이카의 제품을 만들면서 그런 부분을 고민하는 건 (회사의 방침이라기보다) 아주 자연스러운 일인 것 같아요. 라이카잖아요. 1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카메라를 만들어온 브랜드고, 저희는 그 100년의 제품들을 보면서 ‘이것이 오늘날에는 어떤 형태로 나와야 하는가’ 고민을 하는 거예요. 제가 처음 라이카에 왔을 때 포스터 한 장을 본 적이 있는데요. ‘100 Years of Leica’라고, 그간 라이카에서 나온 핵심 제품들을 쭉 정렬한 포스터였죠. 사실 그때 그걸 보면서 ‘내가 디자인한 제품이 저기에 들어갈 수만 있다면 정말 행복하겠다’는 개인적인 바람을 품기도 했거든요.(웃음) 그 바람이 잘 이루어져 기쁘기도 하지만, 이제는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의견을 공유하면서 새로운 제품을 만들고 발표하는 것에 가장 큰 매력을 느끼고 있어요. 때로 다른 견해가 나오더라도 모두들 ‘라이카 DNA’에 대해 생각하고 있으니까요. 저희는 이미 또 새로운 제품 프로젝트에 착수했기 때문에, 앞으로도 라이카에서 어떤 새로운 제품이 나올지 기대해주시면 좋겠습니다.

Credit

  • PHOTOGRAPHER 박기훈
  • ASSISTANT 신동주
  • ART DESIGNER 박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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