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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국내에 상륙한 '모저앤씨' CEO와 나눈 대화

서울에 전 세계 다섯 번째 단독 부티크를오픈한 모저앤씨(H.Moser&Cie)의 CEO 에두아르메일란(EdouardMeylan)을 만났다.

프로필 by 윤웅희 2025.07.04

모저앤씨의 시계는 전통성과 현대적 미학 사이에서 독특한 균형을 보여준다. 예를 들어 무브먼트나 특정 디테일은 매우 고전적인 반면, 전체적인 디자인이나 콘셉트는 꽤 실험적이기까지 하다.

모저앤씨는 거의 200년에 가까운 역사를 지닌 브랜드다. 그만큼 유산과 전통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는다. 그래서 우리는 무브먼트나 디테일 마감에서 최대한 클래식한 방식을 고수한다. 하지만 동시에 현대성과 동시대적 디자인을 과감히 받아들이고자 하는 의지도 있다. 이 두 가지 방향성을 결합시킨 결과가 바로 현재 모저앤씨의 정체성, 그러니까 현대적 디자인을 전통 기법으로 구현하는 것이다. 물론 모저앤씨가 이런 지향점을 갖게 된 데는 나의 개인적인 배경도 한몫했을 거다. 나는 어릴 적부터 오데마 피게, 예거 르쿨트르, 브레게, 블랑팡 같은 전통 워치 브랜드를 가까이서 접하며 자랐기 때문에 워치메이킹 역사와 전통은 내게 혈관에 흐르는 피처럼 당연한 것이었다. 성인이 되고 나선 독립 시계 브랜드에서 경험을 쌓았고 자연스레 전통에 뿌리를 둔 독립 브랜드들에 매력을 느꼈다. 시계업계에서 내가 이루고 싶은 목표는 전통과 혁신이라는 두 세계를 잇는 다리를 만드는 것이다. 이런 방향이 모저앤씨에도 고스란히 투영되어 있다.

모저앤씨의 슬로건은 ‘Very Rare’다. 이에 대한 조금 더 자세한 설명을 듣고 싶다.

많은 사람이 ‘Very Rare’를 단순히 생산량에 대한 얘기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우리가 연간 제작하는 시계는 4000개가 채 되지 않으니까. 하지만 그것이 또 전부는 아니다. ‘Very Rare’를 내세우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 모저앤씨는 가족 소유이자 가족 운영 기업이다. 오늘날 스위스 시계 브랜드 중 역사적 전통을 가진 가문이 직접 브랜드를 경영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둘째, 우리는 완전한 수직 통합 생산 체계를 갖춘 소규모 제조사다. 일부 대형 그룹도 유사한 생산 능력을 갖추고 있지만, 그들은 여러 계열사로 나눠 분산 작업을 한다. 반면 우리는 모든 역량이 한 곳에 집중되어 있다. 120여 명의 직원이 한 지붕 아래에서 모든 공정을 직접 진행하는데, 무브먼트는 물론 헤어스프링 같은 부품까지 자체 제작하는 곳은 사실상 거의 없다. 이것이 모저앤씨의 강점이라고 할 수 있다. 셋째, 디자인 철학이다. 우리는 미니멀리즘을 기반으로 전통과 현대성을 조화시킨 디자인을 추구한다. 다이얼에 브랜드 로고조차 넣지 않는 과감함은 브랜드 아이덴티티에 대한 자신감을 드러낸다.

두 번째 요소로 돌아가보자. 일단 모저앤씨는 밸런스 휠과 헤어스프링까지 자체 제작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런데 브랜드 운영 측면에서 독립성을 유지하는 것이 왜 중요한가?

독립성을 유지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일단 창의성과 혁신 가능성 때문이다. 핵심 부품을 직접 통제하면 다양한 실험과 개발이 가능하다. 우리는 대량생산보다는 높은 품질과 의미 있는 혁신을 추구한다. 대표 기술인 더블 헤어스프링, 실린드리컬 헤어스프링 등이 그런 혁신의 결과라고 볼 수 있다. 또 다른 이유는 외부 영향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하기 때문이다. 특정 브랜드가 시장에서 주목받으면 어쩔 수 없이 견제하려는 시도가 생긴다. 이때 흔히 공급망 제약이 견제 수단으로 사용되는데, 우리는 주요 부품을 자체 생산해 외부 견제와 간섭에서 비교적 자유롭다. 이러한 독립성은 자신만의 속도와 방식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이 된다. 누구에게 의존하지 않고 눈치도 보지 않는 구조. 이것이 모저앤씨가 독립성과 자율성을 지키려는 가장 큰 이유다.

이제 무브먼트 얘기를 해보자. 모저앤씨를 대표하는 컴플리케이션은 단연 퍼페추얼 캘린더다. 다른 퍼페추얼 캘린더와 모저앤씨의 퍼페추얼 캘린더는 무엇이 어떻게 다른가?

모저앤씨의 퍼페추얼 캘린더는 시계업계에서 가장 놀라운 무브먼트 중 하나라고 자부한다. 우리가 모저앤씨를 인수한 주요 이유 중 하나도 바로 이 컴플리케이션이었고, 지난 10여 년간 전면 재설계를 통해 완성도도 한층 더 끌어올렸다. 이 무브먼트의 특별함은 사용자 중심 철학에 있다. 겉보기엔 단순한 3-핸즈 시계처럼 보이지만 퍼페추얼 캘린더 기능이 완전히 통합되어 있어 극도로 미니멀하고 사용성이 뛰어나다. 특히 인덱스의 12개 숫자가 12개월을 가리키고, 윤년 표시를 케이스 뒷면에 배치한 방식은 매우 직관적이다. 게다가 일반 퍼페추얼 캘린더와 달리 조작 실수로 고장 날 위험도 거의 없다. 이 구조는 모저앤씨의 디자인과 기능 철학을 정의하는 결정적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우리는 컴플리케이션을 설계할 때 항상 이 퍼페추얼 캘린더를 기준으로 삼는다. ‘기능에서 꼭 필요한 본질은 무엇인가?’를 자문하며 불필요한 요소는 과감히 제거하고 핵심만 남긴다. 나는 모저앤씨의 시계가 간결하고 절제되어 보이길 바란다. 이것이 우리가 추구하는 궁극적 아름다움이자 기술의 미덕이다.

한편 모저앤씨는 다이얼 개발에서도 매우 실험적이고 독창적인 접근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팝한 컬러를 과감하게 사용하는 점이 눈에 띈다.

처음 모저앤씨에 합류했을 때, 다이얼은 대부분 회색이나 검은색이었다. 클래식하고 우아했지만 특별함은 부족했다. 이후 블루 다이얼을 시도했고 반응도 꽤 좋았다. 하지만 또 어느 순간 블루가 너무 많아지면서 새로운 컬러를 실험하기 시작했다. 그중엔 파격적인 컬러도 있었다. 나는 색깔이 순간의 분위기나 시간, 감정 상태를 반영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각 컬러에 별명을 붙이는 것도 좋아한다. 이를테면 스위스 매드 레드(Swiss Mad Red)나 퍼플 헤이즈(Purple Haze) 같은. 컬러가 단순한 색 이상의 아이덴티티가 되길 바라기 때문이다.

1 인데버 퍼페추얼 캘린더 탄탈륨 블루 애나멜. 2 파이오니어 실린드리컬 투르비용. 3 스트림라이너 플라이백 크로노그래프.

1 인데버 퍼페추얼 캘린더 탄탈륨 블루 애나멜. 2 파이오니어 실린드리컬 투르비용. 3 스트림라이너 플라이백 크로노그래프.

퓌메(Fumé) 다이얼도 모저앤씨의 아이콘 중 하나다. 최근엔 질감과 색상도 다양해졌다.

많은 브랜드가 우리의 퓌메 다이얼을 모방한다. 그래서 항상 한발 앞서 있어야 한다는 강박이 있다. 돌이켜보면 모저앤씨의 퓌메 다이얼은 진화에 진화를 거듭해왔다. 에나멜 기술도 그중 하나인데, 생산 과정이 까다롭고 제조 단가가 높아도 독창성과 희소성을 확보할 수 있어 이 방식을 선택했다. 우리는 수많은 프로토타입을 만들고 다양한 색상을 시도한 뒤 케이스와 조화를 이루는 다이얼을 선별한다. 때론 내가 직접 특정 색상을 제안하기도 한다. 물론 ‘이런 느낌의 베이스 컬러를 원한다’고 말해도 그런 색깔이 나오지 않을 때가 많다. 전통 공법으로 제작할 경우 염료 반응과 공정의 미세한 차이로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오기도 하니까. 하지만 때론 그 예측 불가능성 속에서 놀라운 결과물이 탄생하기도 한다. 그런 우연한 발견이 우리의 컬러 다이얼을 더욱 풍부하게 한다.

지금까지 선보인 시계들 중에 특히 애착이 가는 모델이 있나?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인데버 퍼페추얼 캘린더다. 기술적 완성도가 뛰어날 뿐 아니라 디자인도 간결하고 우아하기 때문이다. 단순함 속에 숨겨진 복잡한 메커니즘이 이 시계의 진정한 미학이다. 파이오니어 실린드리컬 투르비용도 개인적으로 애착이 가는 시계다. 기술적 완성도와 조형미 모두 뛰어나지만 무엇보다 모저앤씨 디자인의 새로운 영역을 열어준 모델이다. 스켈레톤 구조를 도입해 3차원적인 깊이감을 표현했는데, 이는 우리에게 완전히 새로운 시도였다. 스트림라이너 크로노그래프도 빼놓을 수 없다. 이 모델은 자랑스러운 아젠그래프(Agengraphe) 무브먼트를 탑재해 스트림라이너 컬렉션의 출발을 알렸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향후 새로운 소재를 사용할 계획도 있나?

물론이다. 요즘은 세라믹과 새로운 복합 소재를 활발히 연구하고 있다. 특히 F1 팀 알핀(Alpine)과 협업하면서 차세대 소재 개발 가능성을 함께 모색 중이다.

이번에 오픈한 한국 부티크는 전 세계 다섯 번째 단독 스토어다. 왜 한국이었나?

글로벌 기준, 한국은 10위권의 큰 시계 시장이다. 사실 한 차례 한국 시장에 들어온 적이 있었는데 너무 이른 시점이라 기대한 만큼의 성과를 거두진 못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데이터와 시장 분석을 통해 우리의 팬층이 탄탄하게 형성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우리의 전략은 명확하다. 생산량이 제한된 만큼 많은 지역에 진출하기보다는, 선별된 핵심 지역에 집중해야 한다. 한국을 다섯 번째 독립 매장으로 선택한 것은 브랜드의 글로벌 전략에서 아주 의미 있는 한 걸음이라고 생각한다. →

Credit

  • PHOTO 모저앤씨
  • ART DESIGNER 최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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