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R&TECH

LA에서 만난 볼보 EX90

라이다는 혁명이다.

프로필 by 박호준 2024.11.01
2년 만이다. EX90을 다시 마주하는 것 말이다. 2022년 11월, 스웨덴 스톡홀름의 EX90 공개 행사에서 차를 처음 봤을 땐 무척 놀랐다. 앞 유리 위에 라이다(LiDAR: Light Detection and Ranging)를 탑재하는 파격적인 디자인 때문이었다. 기존 타 브랜드에도 라이다를 장착한 차량은 있지만, 눈에 잘 보이지 않게 앞 범퍼 속에 위치한다. 생경한 외관을 두고 자동차 전문 기자들의 반응은 엇갈렸다. 어느 기자가 ‘뿔처럼 튀어나온 모습이 어색하다’고 평하면 다른 기자가 ‘역시 안전을 중시하는 볼보답다’고 받아치는 식이었다.
재미있는 건 볼보자동차 CEO 짐 로완의 반응이다. 그는 이런 반응을 예상했다는 듯 태연하게 설명을 이어나갔다. “눈(라이다)은 무릎이 아니라 얼굴에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더 정확하고 멀리 볼 수 있어요.” 이어서 그는 “조사 결과 심각한 교통사고의 대부분은 밤에 일어납니다. 운전자의 집중력이 떨어지고 시야가 제한되기 때문이죠. 라이다는 볼보가 추구하는 안전을 더욱 공고하게 하는 중요한 장치입니다”라고 덧붙였다.
라이다란 적외선을 이용해 사물을 분간하는 기술이다. 기기에서 발사된 적외선이 사물에 맞고 되돌아오는 시간을 이용해 거리와 형태를 파악한다. 라이다를 이용하면 최대 250m 전방의 보행자를 탐지할 수 있으며 깜깜한 밤에도 120m 앞 도로에 놓인 검은 타이어를 발견 가능하다. 볼보자동차의 자체 연구 결과에 따르면 라이다는 중대 사고 발생 위험을 20% 가까이 줄인다. 여기에 5개의 레이더, 8개의 카메라, 16개의 초음파 센서가 더해져 차 주변을 360도 모니터링한다.
미국 LA에서 EX90 운전석에 오르자마자 주행 보조 시스템 ‘파일럿 어시스트’를 작동시킨 이유다. 결론부터 말하면, EX90의 운전 실력은 그동안 경험했던 모든 차를 통틀어 가장 능숙하다. 코너에서 차선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건 기본이고 설정한 속도에 따라 차를 부드럽게 밀어내고 멈춰 세운다. 옆 차선의 차가 급하게 끼어들었을 때 EX90이 보이는 반응이 특히 인상적이다. 마치 베테랑 운전기사가 조작하는 것처럼 능숙하게 속도를 줄인다. 파일럿 어시스트를 이용해 캘리포니아의 고속도로와 해안도로를 약 200km 달리면서 단 한 번도 ‘어, 이러다가 부딪히는 거 아니야?’라는 걱정이 들지 않았다.
시승차는 EX90 트윈 모터 퍼포먼스 모델이었다. 최고 출력 517마력, 최대 토크 92.7kg·m, 제로백 4.9초라는 말에 괜히 식은땀이 났지만, 기우였다. EX90은 가속페달을 깊게 밟아도 스포츠카처럼 과격하게 움직이지 않는다. 순간적으로 토크를 왈칵 쏟아내 역동적인 느낌을 주는 대신 점진적으로 속도를 쌓아 올리는 식이다. 그래서 가속 초반부엔 별로 빠르지 않게 느껴지다가 정신을 차리고 보면 어느새 시속 100km가 훌쩍 넘는 빠른 속도로 달리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된다.
승차감은 편안하다. XC90이 원 체임버 에어 서스펜션이었던 것과 달리 EX90에는 듀얼 체임버 에어 서스펜션이 쓰였다. 쉽게 말해, 사용하는 공기 주머니가 1개에서 2개로 늘어나면서 차가 대응 가능한 경우의 수가 늘어난 셈이다. 여기에 초당 500번 노면 상황을 감지해 감쇠력을 조절하는 전자식 가변 댐퍼까지 더해져 차체 길이가 5m가 넘고 공차중량이 2.8톤에 육박하는데도 핸들링이 경쾌하다.
“볼보가 선보인 모델 중 가장 조용한 실내를 구현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EX90 프로덕트 매니저 한데 에르기튀르크(Hande Ergiturk)의 말이다. 1열과 2열 창문은 물론 파노라마 선루프까지 이중 접합 유리를 사용했고 흡음재를 문과 휠하우스 안쪽에 빈틈없이 사용한 덕이다. 녹음실 방음문 수준까진 아니지만 EX90의 뛰어난 차음 성능은 차 안팎을 확실히 구분한다. 속도를 높여 시속 100km 이상으로 달릴 때도 조용하긴 마찬가지다. 시승 행사를 함께한 노홍철은 “UFO를 운전하면 이런 기분이지 않을까요? 도로 위를 미끄러지듯 달리는 기분이 낯설면서도 즐겁네요. 제가 평소에 타는 내연기관 차랑은 완전 다른 느낌이에요”라며 EX90의 정숙성에 엄지를 치켜 세웠다.
조용한 실내의 장점은 하나 더 있다. 볼보가 자랑하는 바워스 앤 윌킨스(B&W)의 카오디오를 만끽할 수 있다는 점이다. 25개의 스피커가 최대 1610W의 출력으로 사운드를 뿜어낸다. 참고로 EX90은 볼보 라인업 중 최초로 헤드레스트에 스피커를 단 모델이다. 헤드레스트 스피커는 풍부한 서라운드 사운드를 구현할 뿐만 아니라 주행 중 발생하는 여러 경고음을 운전자에게만 속삭이듯 전달하는 역할도 한다. 게다가 EX90은 비틀스의 녹음실로 유명한 런던의 ‘애비 로드 스튜디오’와 협업해 음장 효과를 더욱 정교하게 튜닝했다.
볼보는 사고가 발생했을 때 안전한 수준을 넘어 아예 사고가 발생하지 않는 경지로 나아가기 위해 노력 중이다. 라이다를 앞 유리에 장착한 것을 시작으로 운전자 상태를 파악하는 ‘운전자 이해 시스템’과 차 안에 남겨진 아이의 안전까지 생각한 ‘실내 레이더 시스템’을 EX90에 적용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사실 볼보가 2022년 EX90을 선보였지만 2년 넘도록 출시하지 않은 건 라이다를 이용한 주행 보조 시스템을 완벽하게 가다듬기 위해서다. 안전에 있어선 아주 사소한 오류조차 용납할 수 없다는 신념이 엿보인다. →
VOLVO EX90 TWIN MOTOR PERFORMANCE
파워트레인 전기모터 2개, 1단 자동
최고 출력 517마력
최대 토크 92.7kg·m
가속력(0→100km/h) 4.9초
가격(VAT 포함) N/A

Credit

  • PHOTO 볼보자동차
  • ART DESIGNER 최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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