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터쉬퍼가 자신 있게 확장 이전을 할 수 있었던 이유
서울 진출 4년 차, 글로벌 불경기에도 아랑곳없이 한남동으로 확장 이전한 ‘에스터쉬퍼 서울’의 대표 김선일은 흔들리지 않을 자신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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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이태원 경리단길에 문을 연 글로벌 갤러리 에스터쉬퍼의 서울 지점이 3년 만에 한남동으로 확장해 옮겼습니다. 꽤 큰 투자지요?
굉장히 큰 투자이긴 하죠. 다만, 저희 갤러리의 창립자인 에스터 쉬퍼 대표의 성향을 좀 이해하면 이미 큰 그림에 포함되어 있는 과정일 뿐이에요. 쉬퍼 대표는 트렌드에 민감하지도, 시장에 빠르게 대응하는 편도 아녜요. 마라토너랄까요? 대표님만의 페이스가 있어요. 실은 2022년에 물리적인 갤러리의 지점을 내기 전부터 에스터쉬퍼에는 한국 디렉터가 계속 있었고, 긴밀하게 한국의 미술계와 소통하고 있었어요. 다만 그분들은 한국에 거주하지는 않고 베를린을 근거지로 오가며 활동했지요. 그러다가 한국에 있는 저를 고용하고 지점을 내야겠다고 판단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어요. 처음 함께 일을 시작했을 때도 정말 차근차근 에스터 쉬퍼의 페이스를 익혀야 했어요. 우리가 얼마큼 소화할 수 있는지를 알고 컬렉터들에게 어떤 방식으로 접근해야 하는지를 공부했지요.
지금 시장이 침체기라 걱정도 있을 것 같아요.
물론 전 세계적으로 약간 침체기이긴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충분히 따져보고 한 투자이기 때문에 걱정이 크지는 않아요. 저희 갤러리의 특징이 개념미술 분야가 상당히 많고, 그래서 업도 다운도 크지 않다는 점이거든요. 한 해 한 해가 늘 다이내믹한 것 같은데, 막상 연말 결산을 해보면 예년과 비슷해요. 그런 면에서 어느 정도 예측이 가능하고 그 예측을 바탕으로 한 투자라 걱정은 크게 없어요.
컬렉터를 공부한다는 얘기가 재밌네요.
그럼요. 갤러리스트들도 반드시 컬렉터에 대해 공부해야 해요. 컬렉터들이 어떠한 성향을 갖고 있고 그 사람들이 어떤 이유로 특정 작품을 좋아하는지를 분석해요. 작품이 가진 개념적 토대를 어떻게 이해시킬지를 두고 한참을 토론하지요. 그런 공부는 하루아침에 할 수 있는 게 아니거든요. 컬렉터를 분석하는 회의를 어마어마하게 해요. 한국 컬렉터들의 성향, 최근 경향, 경향이 움직이는 동향 등을 두고 보고서도 쓰고 줌 미팅도 하지요.
이번 전시인 <대화>(Conversation)도 그렇고 지난 이전 확장 이후의 첫 개관전도 그렇고 솔로가 아닌 단체전으로 꾸며졌어요. 그전까지는 개인전이 주를 이뤘던 것 같아 큐레이토리얼의 전략이 변했나 싶어요.
조금 더 적극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고 이해해주시면 될 것 같아요. 사실 저희 갤러리가 아시아엔 하나밖에 없는 에스터쉬퍼의 브랜치거든요. 그러다 보니 아시아 전역의 컬렉터들이 한국을 찾을 때면 저희 갤러리에 방문해요. 그런데 한국에 오시는 분들은 이미 베를린도 가봤고 파리도 가본 경우가 많거든요. 그분들이 봤을 때는 “어 이거 지난번에 베를린에서 본 전시네”라고 할 수 있단 말이죠. 그래서 좀 새로운 방식으로 접근해봤어요. 예를 들어 지금같이 전시된 안젤라 블록과 살보, 소저너 트루스 파슨스와 니키 드 생팔의 작품을 ‘대화’라는 주제로 묶어보자는 거였죠. 파리와 베를린에서 다른 작가의 개인전을 보고 온 사람들에게도 새로워 보일 수 있게요. 다음번에는 한국 작가와 저희 에스터쉬퍼의 작가들을 엮어 보여드릴 예정이에요.
한국 작가요?
예, 이수경 선생님하고 인도 출신의 프라바와티 메파일(Prabhavathi Meppayil)의 2인전을 기획 중이에요. 이렇게 2인전과 단체전을 계속하면서 한국 컬렉터들에겐 저희의 국외 작가를 보여주고, 국외에서 온 컬렉터들에겐 한국의 작가를 선보이는 두 마리 토끼를 잡고 싶은 제 욕심이기도 해요.
이번에 확장 이전을 하며 에스터쉬퍼 최초로 ‘파트너’라는 직함을 달았어요. 구체적으로는 어떤 변화인가요?
이 질문을 정말 많이 받는데요. 간단히 설명드리면, 기존의 에스더쉬퍼 갤러리는 창립자인 에스터 쉬퍼와 파트너인 플로리안 보나르 2명이 공동으로 운영하는 구조였어요. 여기에 제가 파트너로 합류하면서 3인 경영 체제로 바뀌게 된거죠. 저의 경우 파트너가 되면서 기존의 역할에서 갤러리의 경영까지 확장해서 담당을 하게 되었어요. 아시아의 유일한 지점인 서울을 바탕으로 확장할 수 있는 부분이 많다는 것을 저희 경영진 모두 공감하고 있고, 이러한 가능성들이 서울에서 실질적으로 구현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는 책임감이 크긴 해요.
아까 잠시 얘기했는데, 에스터쉬퍼는 작가군이 탄탄하죠. 페이스라고 하면 아그네스 마틴이나 루이스 네벨슨이 떠오르듯, 에스터쉬퍼 하면 어떤 작가들이 있나요?
가장 오랫동안 함께한 작가는 필립 파레노하고 피에르 위그예요. 쉬퍼 대표의 성향 자체가 거의 학자에 가까워요. 대표의 어머님은 미술사 학자였고, 아버지도 역사학자였죠. 그래서인지 작가들의 전반적인 면모가 일반적인 상업 갤러리와는 조금 달라요. 어린 시절 파리에서 공부하다가 무작정 영국으로 건너가 화이트 채플에서 인턴십을 거치고 독립 큐레이터로 활동하면서 작가들과 프로젝트를 만들고 책을 출판하는 일을 했죠. 그때가 yBa(영 브리티시 아티스트)들이 20대거나 30대일 때였으니 얼마나 대단했겠어요. 쾰른에 상업 갤러리를 열고 그 작가들을 독일에 소개하기 시작한 게 에스터쉬퍼의 시작(1989년)이에요. 그야말로 현대 개념미술부터 시작한 갤러리라고 할 수 있죠.
그런데 최근 리움의 개인전을 생각해보니 필립 파레노, 피에르 위그, 아니카 이까지 세 번이나 에스터쉬퍼의 작가들을 다뤘습니다.
삼연타로 저희 갤러리 작가들의 개인전이 열리다 보니 오해하시는 분들이 많은데요. 전부 리움의 순수 자체 기획이었어요. 심지어 저희도 놀랐을 정도라니까요. 제 생각엔 리움의 김성원 부관장님께서 중요하다고 생각하시는 작가군과 저희 갤러리의 작가군이 겹친 것 같아요. 게다가 그 정도의 개인전에는 저희만 관여하는 게 아녜요. 예를 들면 필립 파레노의 경우엔 저희와도 하지만 글래드스톤, 세이디 콜스 갤러리도 같이 하고요. 피에르 위그의 경우도 메리언 굿먼, 하우저앤워스, 샹탈 크루젤이 다 조금씩 도와주는 역할을 하고 있어요. 또 언급하신 세 명의 아티스트 중에 아니카 이는 얼마 안 됐어요. 아니카는 바바라 글래드스톤과 먼저 함께했었고, 바바라가 생전에 저희 대표님에게 직접 전화를 줘서 함께 일하게 됐어요. 저희랑 함께한 지는 2년 정도 됐으니 다른 작가들에 비하면 아주 오래된 건 아니죠.
듣고 보니 에스터쉬퍼와 함께하는작가들의 작품에 그냥 하얀 벽에 걸어둘 게 많지 않은 이유가 있네요. 고객층이 좀 다를 것 같아요.
개념 작품이 많기는 하지요. 가장 큰 고객은 미술관들이에요. 그런데 그건 다른 규모 있는 갤러리들도 마찬가지긴 해요.
얘기하다 보니 지난 10년 사이에 한국의 전시 수준이 정말 눈에 띄게 높아졌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러니까요. 필립 파레노나 피에르 위그의 전시를 한국에서 볼 수 있다는 건 거의 기적에 가까워요.(웃음) 정말 어마어마한 돈이 들어가거든요. 그런 전시를 하려면 어쩔 수 없이 공익적인 성격을 띠게 되는데, 그러면서도 사립미술관으로서 본연의 목적인 수익성 역시 달성해야 하거든요. 정말 잘 해나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지금 미술 신 전체를 보면 다들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갤러리와 미술관은 서로를 필요로 하는군요.
갤러리와 기관이 친해지면 긍정적인 효과가 나타난다고 생각해요. 예술 생태계 안에서 미술관과 갤러리가 서로 좋은 영향을 주고받을 수 있거든요. 미술관에서 어떤 전시를 준비할때 그 작가의 소속 갤러리가 다양한 방식으로 서포트 할 수도 있는거지요.
미국 휘트니 미술관에 가보면 주변 첼시 갤러리들과의 긴밀한 관계가 눈에 보일 정도죠.
맞아요. 지금까지는 한국에서 그런 관계를 좀처럼 볼 수가 없었는데, 이제 조금씩 생겨나고 있다고 생각해요. 함께 좋은 걸 만들어내자는 어떤 분위기가요. ●
Credit
- PHOTOGRAPHER 김성룡
- ASSISTANT 송채연
- ART DESIGNER 김동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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