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프리즈 아트 위크의 기억 (3) 훠궈를 이기는 방법_김경미
아트 위크가 지난 후 미술 전문가들이 남긴 3장의 사진과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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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아트뉴스페이퍼’에 실린 엘름그린 & 드라그셋의 전시 소식.
writer 김경미
폭풍 같은 한 주가 지나갔다. 그리고 이것은 그 폭풍을 준비하기 위해 우리가 얼마나 오래전부터 가차 없는,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소중한 시간을 보냈는지를 보여주는 한 장면이다. 프리즈를 앞둔 8월 초의 어느 저녁, 시계는 7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오전 9시에 출근해 빽빽하게 시간을 쪼개 쓰며 밀도 있는 하루를 보내고 퇴근한 후였고, 지친 몸을 이끌고 근처 식당에서 동료와 뜨거운 훠궈를 먹으려던 차였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뜨거운 국물이 하루의 긴 피로를 녹여줄 수 있을 거라 믿었다. 왓츠앱의 메시지만 울리지 않았다면, 뜨거운 국물과 함께 차가운 맥주를 홀짝이며 내 삶의 질을 한 눈금 정도 올릴 수 있을지도 몰랐다. 런던 지점에서 일하는 직원이 보낸 메시지였다. “안녕, 방금 너에게 메일을 보냈어. 매체 데드라인은 바로 지금이야. 빨리 보내줄 수 있지?” 선택의 여지 같은 건 없었다. 나는 곧장 젓가락을 내려놓고 노트북을 꺼냈고, 휴대폰 테더링으로 인터넷을 연결했다. 뜨거운 국물이 하얀 김을 내뿜으며 나를 유혹했지만, 나는 시선을 노트북 화면에 고정시켰다. 데드라인을 놓칠 수는 없었다.
하루 종일 퇴근 후에도 안테나 전원을 완전히 끄지 못한 채 밥을 먹고, 운전을 하고, 넷플릭스를 봐야 한다는 건 생각보다 지치는 일이다. 이렇게 정신없이 하루 종일 송수신 대기 상태로 있어야 하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올해 프리즈 서울이 열리는 서울 아트위크 시즌의 홍보 캠페인 범위와 목표가 다른 해에 비해 컸기 때문이다. 일단 내가 속한 페이스 서울에선 이우환과 마크 로스코의 대대적인 2인전 그리고 중국의 추상작가 왕광러의 개인전이 동시에 열렸다. 한편 같은 시즌에 페이스 갤러리 소속의 아티스트인 ‘엘름그린 & 드라그셋’의 아시아 최대 전시가 아모레퍼시픽 뮤지엄에서 공개됐다. 목표는 단순히 갤러리 작가의 작품을 알리는 것을 넘어, 국내에서 열리는 전시를 해외 매체를 통해 적극적으로 홍보하는 것이었다. 프리즈 서울 기간 동안 서울에서 열리는 전시가 국제적인 주목을 받을 수 있게 할 것. 그리고 훠궈를 앞에 두고 내가 받은 메시지는 해외 매체가 프리즈 서울 시즌에 열리는 엘름그린 & 드라그셋의 소식을 싣고 싶으니 ‘지금 당장 영문으로 된 자료를 내놓을 수 있겠냐’는 것이었다.
엘름그린 & 드라그셋의 아모레퍼시픽 뮤지엄 전시를 홍보하는 것만이 목표인 것도 아니었다. 오는 10월 파리의 오르세 미술관에서 열릴 그들의 전시와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스토리를 만들어내는 것이 이번 캠페인의 핵심이었다. 화면에 띄운 자료를 재빠르게 스크롤하며, 틀린 내용은 없는지, 문장은 충분히 매력적인지 점검했다. 정제된 한 문장, 한 장의 이미지로 작가와 관객 사이에 어떤 가교를 놓을 수 있을지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했다. 그와 동시에 ‘기자가 매력적이라고 느낄 것인가’를 고민하는 일이야말로 커뮤니케이션 매니저들이 해내야 하는 저글링이다.
“어떤 이야기를 전해야 할까?”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은 단순하지 않았다. 그저 전시 정보를 나열하는 것을 넘어, 어떻게 하면 작가의 세계관과 작품의 의미를 제대로 전달할 수 있을지에 대한 끊임없는 고민이 이어졌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내 눈앞에는 훠궈가 있었다. 훠궈를 눈앞에 두고 예술 작품의 본질을 파악하고, 그것이 새로운 문화적 문맥에서 어떻게 해석될 수 있을지를 고려하는 일은 생각보다 힘든 일이다. 시간은 계속 흘러가고 왓츠앱은 나를 기다리지 않는다. 의식의 흐름에 따라 노트북 화면 속의 텍스트들을 고치고 다시 고쳐보며 부족해 보이는 부분을 메우고, 과한 부분을 삭제하며 점점 내 전략의 윤곽이 더 매력적으로 드러나도록 고쳐나갔다. 예술은 먼 곳에 있지 않다. 언젠가 한 아티스트가 이런 말을 했다. “영감은 중요하지 않아요. 영감은 어떻게든 찾아오죠. 제게 중요한 건 그 영감을 캔버스 위에 구현하는 과정과 그 구현이 언제 완성되었는지를 아는 것이에요.” 나는 마치 어렵게 찾아온 영감을 온 힘을 다해 잡으려는 아티스트처럼 영국에서 날아온 메시지(“데드라인만 맞추면 영국의 잡지에 실릴 수 있어”)를 움켜쥐기 위해 사력을 다했다. 작가와 관객 사이에 다리를 짓고, 그 다리 위로 수많은 사고(思考)들이 통행하기를 바랐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내 앞에는 훠궈가 있었고, 나는 누구보다 훠궈를 사랑한다. 하지만 기사 하나가 더 날 수 있다면 훠궈 따위야. →
who's the writer?
김경미는 현재 페이스갤러리 서울에서 커뮤니케이션 디렉터로 일하고 있다.
Credit
- ART DESIGNER 김동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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