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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리즘이 데려다준 여행지
알고리즘이 여행의 시작이 된 tvN <텐트 밖은 유럽> 남프랑스 편. / 이미지 출처: tvN <텐트 밖은 유럽>
특별히 검색한 것도 아니었다. 그냥 스크롤을 내리고 있었는데, 에메랄드빛 협곡 영상 하나가 화면을 가득 채웠다. <텐트 밖은 유럽> 남프랑스 편이었다. 저게 진짜 지구에 있는 색인가 싶을 정도의 물빛. 영상을 다 보고 나서 바로 캘린더를 열었다. 이번 여름 휴가는 남프랑스다, 라고 그 자리에서 정해버렸다.
파리는 이미 여러 번 가봤지만 남프랑스는 처음이었다. 방송에서 본 곳을 그대로 따라가 보기로 했다. 니스에 숙소를 잡고, 니스 시내를 둘러본 뒤 무스티에 생트 마리와 베르동 협곡은 당일 투어로 다녀오는 일정이었다.
1. 니스 - 화면 속 감탄이 그대로 재현되는 곳
프롬나드 데 장글레를 따라 펼쳐지는 니스의 지중해 해변. / 이미지 출처: 필자 촬영
방송에서 출연자들이 해변 드라이브를 하며 연신 감탄하던 장면, 그 감탄이 과장이 아니었다는 걸 도착하자마자 알았다. 니스 해변을 따라 이어지는 산책로 '프롬나드 데 장글레(Promenade des Anglais)'를 걸으면 지중해 특유의 파란빛이 눈앞에 펼쳐진다. 19세기 영국인 겨울 휴양객들이 만들었다고 해서 붙은 이름인데, '영국인의 산책로'라는 뜻이다. 지금은 니스를 찾는 모든 여행자가 걷는 상징적인 해변길이 됐다.
니스를 대표하는 프롬나드 데 장글레의 파란 의자. / 이미지 출처: 필자 촬영
그리고 니스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게 있다. 해변을 따라 줄지어 놓인 파란 의자. 방송에서도 니스의 상징으로 이 의자를 소개하는 장면이 나왔었는데, 영상으로 볼 때는 그냥 예쁜 소품인 줄 알았다. 실제로 가서 직접 보니 느낌이 완전히 달랐다. 화면 밖에 있던 걸 화면 안으로 들어가서 보는 기분이랄까. 별거 아닌 의자 하나에 이렇게 벅찰 일인가 싶었는데, 진짜 벅찼다.
쿠르 살레야 꽃시장에서 맛본 니스식 전병 '쏘카'와 활기찬 시장 풍경. / 이미지 출처: 필자 촬영
쿠르 살레야 꽃시장에서 맛본 니스식 전병 '쏘카'와 활기찬 시장 풍경. / 이미지 출처: 필자 촬영
니스 구시가지의 쿠르 살레야(Cours Saleya)도 놓치면 안 되는 곳이다. 이름은 '꽃시장'인데, 실제로 가보면 꽃보다 다른 것들이 더 눈에 들어온다. 과일, 올리브, 비누, 그리고 각종 니스 특산품이 좌판마다 가득하다. 시장이 열리는 시간이 오전 9시경부터 오후 1시경까지로 짧은 편이라, 이 시간을 놓치면 반나절 짜리 명물을 통째로 놓치는 셈이다.
아침 일정으로 반드시 잡고 가시길. 여기서 꼭 먹어야 하는 게 '쏘카(Socca)'다. 병아리콩 가루를 얇게 부쳐낸 니스식 전병인데, 한국 음식으로 비유하자면 누룽지와 녹두전 그 사이 어디쯤의 식감과 맛이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쫀득한데, 한 번 먹으면 계속 생각나는 맛이다.
2. 무스티에 생트 마리 - 시간이 멈춘 중세 마을
프로방스의 시간이 그대로 남아 있는 무스티에 생트 마리 골목. / 이미지 출처: 필자 촬영
니스가 활기찬 지중해 도시라면, 무스티에 생트 마리는 완전히 다른 시간대에 속해 있었다. 니스 숙소에서 당일 투어로 출발해 두 시간 남짓 이동해 마을 초입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공기가 달라진다.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중세로 넘어온 느낌이랄까. 골목골목을 걷는 내내 진짜 시간이 멈춰 있는 것 같았다.
두 절벽 사이에 걸린 전설의 별, 무스티에 생트 마리의 상징./ 이미지 출처: 필자 촬영
방송에서 봤던 그 별이 여기 있다. 두 절벽 사이에 매달린, 마을을 상징하는 별. 십자군 전쟁 때 사라센군에게 포로로 잡혔던 블라카 가문의 기사가 고향으로 무사히 돌아가면 별을 걸겠다고 성모 마리아께 맹세했고, 살아 돌아온 뒤 그 약속을 지켰다는 전설이 가장 널리 알려져 있다.
실제로는 이 별의 기원에 대한 설이 열 몇 가지가 넘는다고 하는데, 어느 쪽이 진짜든 상관없었다. 언덕을 오르는 내내 고개를 들어 별을 확인하게 되는 걸 보면, 전설은 이미 제 역할을 다 하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라벤더 아이스크림. 방송에서 출연자들이 먹던 걸 보고 꼭 먹어보리라 마음먹었던 메뉴다. 한 입 먹는 순간 입안 가득 라벤더 향이 퍼지는데, 이게 남프랑스에서만 가능한 벅참이구나 싶었다. 라벤더밭으로 유명한 지역이다 보니, 아이스크림 하나에도 이 동네의 정체성이 그대로 담겨 있다.
3. 베르동 협곡 - 이걸 보려고 여기까지 왔다
사실 이번 여행의 시작이자 목적지는 여기였다. 알고리즘에 뜬 그 영상 속 협곡. 니스 숙소에서 무스티에생트 마리와 묶인 당일 투어로 향했는데, 직접 마주한 순간 사진과 영상으로 아무리 봐도 실물을 이길 수 없다는 걸 실감했다.
베르동이라는 이름이 '푸른' 혹은 '초록'을 뜻하는 게 아닐까 궁금해서 찾아봤는데, 실제로 베르동이라는 이름은 라틴어 'viridum(초록이 우거진 곳)'에서 유래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이름부터 색을 품고 있었던 셈이다. 협곡의 초록빛은 물에 포함된 미량의 불소와 미세조류 때문에 나타나고, 댐으로 만들어진 호수 구간에서는 진흙 바닥의 영향으로 청록빛에 가까운 색을 띤다고 한다.
에메랄드빛 베르동 협곡 / 이미지 출처: 필자 촬영
베르동 협곡은 카약이나 카누, 보트를 타고 물 위에서 즐기는 액티비티로도 유명하다. 그런데 하필 방문한 날 뇌우 예보가 있어서 타지 못했다. 지금 생각해도 가장 아쉬운 순간이다. 혹시 베르동에 갈 계획이라면 꼭 타보시길 추천한다.
그리고 수영복은 반드시 챙기시길. 보트에서 내려 협곡 물 속에서 수영을 즐기는 사람들이 곳곳에 보였는데, 에메랄드빛 협곡 한가운데서 수영하는 기분은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이 될 것 같았다. 다음에 다시 가게 된다면 이번엔 꼭 물에 들어가 볼 생각이다.
남프랑스를 여행하는 사람을 위한 팁
니스를 베이스로 삼고 무스티에 생트 마리와 베르동 협곡을 당일 투어로 다녀오는 방식을 추천한다. 니스에서 두 곳까지는 두 시간 정도 거리라 렌터카로 직접 이동해도 되지만, 낯선 나라에서 운전이 부담스럽다면 두 곳을 한 번에 묶은 당일 투어 상품이 잘 되어 있으니 걱정할 필요 없다.
베이스캠프로 머물기 좋은 니스 해변과 프롬나드 데 장글레 풍경. / 이미지 출처: 필자 촬영
실제로 나도 이 코스를 8명 정도의 소규모 당일 투어로 다녀왔는데, 인원이 적다 보니 일정이 여유로웠고 각 장소에서 충분히 시간을 즐길 수 있었다. 니스에 숙소를 잡아두면 매일 짐을 옮기지 않아도 되니, 베이스 캠프 삼아 당일 투어로 근교를 도는 방식이 여러모로 효율적이다.
화면 밖으로 나온 여행
알고리즘이 던져준 영상 하나가 이렇게 구체적인 여행이 될 줄은 몰랐다. 니스의 파란 의자, 무스티에의 별, 그리고 베르동의 물빛까지. 화면으로 볼 때는 예쁜 장면이었는데, 직접 서서 보니 그게 왜 그렇게까지 예뻤는지 이해가 갔다.
지금까지 프랑스 하면 파리만 떠올렸다면, 이제는 남프랑스가 먼저 떠오를 것 같다.
이번에 다 돌아보지 못한 곳들까지 포함하면, 남프랑스에는 여전히 보물 같은 곳들이 너무나 많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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