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MA 크리스 반 두인 건축가의 재미있는 건축이란?
홍대 캠퍼스를 새롭게 만드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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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턴으로 시작해 아시아를 총괄하는 파트너 위치까지 올라간 건 OMA 역사상 처음이라고 들었습니다.
1995년 인턴십 프로그램에 지원하면서 OMA와의 인연이 시작됐습니다. 당시 저는 델프트 공과대학에서 건축을 전공하고 있었죠. OMA의 본사가 위치한 네덜란드 로테르담과는 고작 30분 정도 떨어진 곳이에요. 전 세계에 걸쳐 300명 이상의 직원이 함께 일하는 지금과 달리 1990년대 후반의 OMA는 불과 30여 명 정도밖에 되지 않는 작은 회사였거든요. 규모는 크지 않았지만 항상 글로벌 시장을 바라보며 일한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어요.
OMA가 다른 글로벌 건축사무소와 다른 점은 무엇인가요?
한 명의 천재가 아닌 ‘우리’로 일한다는 점입니다. OMA는 다 같이 머리를 맞대고 궁리하는 것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저명한 건축가가 스케치를 슥슥 그리면 아래 직원들이 거기에 맞춰 설계도를 작성하는 시스템이 아니에요. 타당한 의견이라면 인턴이 낸 아이디어도 얼마든지 채택 가능하죠. 저흰 다양성과 자유로움이 모여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낳는다고 믿거든요. 다양한 국적과 문화적 배경을 지닌 직원들을 고용하기 위해 노력하는 이유이기도 해요. 또한 OMA에는 파트너, 아키텍트, 주니어 아키텍트 등 경력에 따른 구분은 있어도 설계 담당, 인테리어 담당 같은 역할 구분은 없습니다. OMA의 건축가라면 어떤 건물을 지을 때 필요한 0부터 10까지 모든 과정에서 역량을 발휘할 줄 알아야 해요. 이건 OMA를 설립한 렘 콜하스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문화입니다.
2023년 10월, 홍익대학교 서울캠퍼스의 지하 캠퍼스 사업을 놓고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다섯 명의 건축가가 경쟁했어요. 그중 OMA가 프로젝트를 따낸 비결이 뭘까요?
솔직히 될 줄 몰랐습니다.(웃음) 저희는 마지막으로 초대받은 팀이었어요. 저희보다 앞서 초대받았던 팀이 포기하면서 생긴 자리에 ‘추가 합격’으로 들어간 셈이에요. 이길 가능성이 낮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되레 ‘우리가 잘하는 걸 보여주자’는 마음으로 편하게 접근할 수 있었어요. 팀원들과 함께 약 일주일간 홍익대학교(이하 홍대) 주변을 샅샅이 훑으며 돌아다녔는데, 홍대와 ‘홍대 앞’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지 않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홍대 앞엔 호텔, 상점가, 클럽을 즐기려는 전 세계에서 모여든 수많은 젊은이들로 넘쳐나지만 정작 홍대는 그 문화적 소용돌이에서 한 발자국 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였죠. 그래서 저희는 홍대와 홍대 앞을 연결하기 위한 프로젝트 기획안을 작성했습니다.
프로젝트를 위해 참고한 레퍼런스가 있나요?
제가 아는 선에서 홍대 케이스와 딱 들어맞는 사례는 없습니다. 건물 밀집도가 높고 고저 차가 심하다는 점에서 OMA 아시아 본부가 위치한 홍콩과 홍대가 닮았다는 느낌을 받긴 했어요. 이화여자대학교를 비롯해 지하 캠퍼스를 조성한 경우는 더러 있지만, 홍대처럼 주변이 건물들로 빽빽한 환경은 아닙니다. 예정대로 2031년에 완성이 된다면 전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독특하고 혁신적인 캠퍼스의 모습이 될 겁니다.
다른 인터뷰에서 건축을 대하는 태도 중 하나로 ‘재미’를 꼽았어요. 재미있는 건축은 어떤 의미인가요?
두 가지 측면에서 이야기하고 싶어요. 첫 번째는 건축을 대하는 방식의 변화입니다. 예전엔 건물을 설계할 때 따라야 할 규범과 규칙이 엄격했어요.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는 말처럼요. 그에 비해 OMA는 보다 유연한 자세를 취하는 편입니다. 효율성의 법칙에서 살짝 벗어나 숨 쉴 수 있는 여유 공간을 남겨둔다고 말할 수도 있겠네요. 두 번째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요소가 담긴 건축입니다. 건물 내부를 돌아다닐 때 모든 층의 구조나 인테리어가 똑같다면 너무 지루하지 않을까요? 마지막 순간에 약간의 트위스트를 넣는 게 저와 OMA의 방식이에요.
만약 공간과 비용의 제약 없이 서울에 건물을 지을 수 있다면 어떤 건물을 짓고 싶나요?
재미있는 상상이네요. 사실 특정 건물 하나를 짓는 것보단 ‘구도심 재생’에 더 관심이 갑니다. 서울처럼 커다란 빌딩과 밀집 주택, 그리고 산이 어우러진 복잡한 지형에선 기존의 것을 전부 밀어내고 새로 짓는 방식보다 지킬 건 지키면서 건물의 가치를 업그레이드하는 경향이 더 중요해질 거예요. 실제로 부산에서 이러한 구도심 재생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위해 여러 단체와 긴밀히 협의 중입니다.
전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는 건축가는 흔치 않죠. 다른 나라와 구분되는 한국 건축의 특징을 꼽는다면요?
현재 OMA 아시아 총괄 파트너를 맡고 있지만 전엔 미국, 러시아, 유럽, 중동에서도 일했습니다. 일단 아시아는 유럽에 비해 발전과 혁신에 대한 욕구와 에너지가 강해요. 보다 젊은 시장이라고 말할 수 있겠네요. 특히 한국은 좋은 디자인에 대한 기준과 이해도가 상당히 높습니다. 민간기업뿐만 아니라 관공서도 외국 건축가와의 협업에 긍정적으로 임하는 것도 흥미로워요.
30년 가까이 건축가로 일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프로젝트는 무엇인가요?
하나만 꼽긴 너무 어렵고, 두 곳을 이야기하고 싶어요. 밀라노의 프라다 재단 박물관 프로젝트와 베를린의 악셀 스프링거 사옥이요. 밀라노는 1920년대 지어진 증류소를 복합문화공간으로 바꾸는 작업이었는데, 프라다의 고향인 이탈리아에서 약 12년에 걸쳐 진행된 작업이라 더욱 의미가 깊었어요. 덕분에 밀라노 최초의 현대 미술관이라는 타이틀도 얻었고요. 건물을 짓는 것을 넘어 프라다 재단이 이곳을 어떻게 운영할지에 대한 플랜까지 함께 제시했다는 점이 개인적으로 마음에 드는 부분입니다. 베를린의 경우도 거의 10년 정도 걸린 장기 프로젝트였어요. 과거 베를린 장벽이 있던 자리였다는 점과 디지털 환경으로 급변하는 미디어 생태계를 건축적으로 풀어내는 과정이 무척 즐거웠어요. 말하면서 돌이켜보니 저는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건물이 위치하는 지역사회의 문화와 연결하는 걸 좋아하는 것 같네요.
건물을 짓다 보면 건축주와 대립하는 순간이 종종 있을 텐데요. 서로 의견이 맞지 않을 때 해결하는 노하우가 있나요?
설계에 앞서 공을 들이는 작업이 바로 듣고 관찰하는 일입니다. 고객의 성향을 파악하고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설계만큼이나 중요한 일이에요. 불가피하게 의견 조율이 필요할 땐 우리가 제안한 방식이 결과적으로 건축주에게 더 큰 이익이 된다는 걸 어필합니다. 앞서 설명한 홍대의 경우도 원래 그들의 머릿속엔 지하 캠퍼스가 없었지만, OMA의 치밀한 분석과 명료한 관점을 통해 납득 시킨 사례입니다.
스스로를 어떤 건축가라고 소개하고 싶은지 궁금해요.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라고 소개하고 싶어요. 항상 팀으로 일하니까요. 팀원 간 경험의 차이가 존재하긴 하지만, 각자 뛰어난 능력을 가진 인재들이라는 데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어요. 저보다 드로잉을 잘하는 팀원, IT 기술에 해박한 팀원 등 종류도 다양하죠. 파트너라는 직책은 모든 걸 다 잘하는 사람이 되기보다 팀원의 역량을 이끌어내고 프로젝트의 템포와 방향을 알맞게 조율하는 역할이 더 큽니다.
한국엔 ‘건축은 백년지계’라는 말이 있습니다. 들어본 적 있나요?
처음 듣는 표현이지만, 깊이 공감합니다. 건축가가 미래 예측 전문가는 아니기 때문에 먼 미래까지 가늠하고 설계하는 건 어려운 일이지만 변화에 대응할 수 있도록 일정 수준 이상의 여지와 유연성을 확보해두는 건 중요합니다. 여담이지만, 올해가 암스테르담 건립 750주년인데요. 도시 전체가 하나의 박물관같이 느껴질 정도로 옛 모습을 잘 유지하고 있어요. 그런 모습을 보며 건축이란 돈으로 환산되는 부동산의 가치를 넘어 도시와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는, 인간의 수명을 뛰어넘는 거대한 존재라는 생각이 들어요. 건축가로서 그런 건축물을 남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Credit
- PHOTOGRAPHER 김성룡
- ART DESIGNER 최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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