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OD

'캐시아드 빈야드'가 캘리포니아 산불 속에서 건진 보석 같은 와인들

2020년의 나파 밸리에는 최악의 산불이 들이닥쳤다.

프로필 by 박세회 2024.11.06
캐시아드 빈야드 와인 저장고의 모습.

캐시아드 빈야드 와인 저장고의 모습.

와인을 만드는 데 있어 가장 큰 재앙 중 하나는 뭘까? 수확 전의 폭우, 이른 봄의 서리 등 수 많은 재앙이 있겠지만, 가장 치명적인 것 중 하나는 단연 산불이다. 산불은, 불에 탄 나무에만 피해를 입히는 것이 아니다. 그을음 특유의 매캐한 냄새는 바람에 날리고 번지고 포도의 껍질에 붙어 와인의 맛을 망친다. 불이 아닌 냄새가 닿는 범위 안의 모든 포도가 쓸모 없어져 버리는 셈이다. 특히 레드와인, 그 중에서도 강건한 풀바디의 보르도 블렌딩이 산불로 인한 타격을 가장 심하게 입는다. 화이트 와인의 경우 압착한 후 껍질을 곧바로 걸러내면 껍질에 붙어 있던 불쾌한 냄새가 거의 묻어나지 않도록 양조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러나 레드와인의 경우 껍질에서 안토시아닌과 타닌을 비롯한 폴리페놀 등이 추출될 때까지 ‘그을음 냄새가 그대로 묻어 있는’ 껍질의 침용 과정을 필연적으로 거쳐야 한다. 특히 색과 타닌을 진하게 뽑아내야 하는 보르도 블렌딩의 경우 더욱 그렇다.
캐시아드 빈야드에서 일하는 팀원들. 왼쪽에서 다섯 번째에 있는 백발의 남성이 다니엘 캐시아드, 그 옆의 보라색 상의를 입은 여성이 플로렌스 캐시아드다.

캐시아드 빈야드에서 일하는 팀원들. 왼쪽에서 다섯 번째에 있는 백발의 남성이 다니엘 캐시아드, 그 옆의 보라색 상의를 입은 여성이 플로렌스 캐시아드다.

나파 밸리의 와이너리 80%가 산불의 피해를 입었던 저주의 빈티지 2020년. 그런데 바로 그 2020년에 자신들의 와이너리에서 만든 ‘첫 와인’을 내놓은 곳이 있다. 그냥 와인도 아니고 보르도 블렌딩과 카베르네 소비뇽을 주요 라인업으로 하는 레드 와인을 과감하게 내놓은 와이너리가 ‘캐시아드 빈야드’다. ‘캐시아드’라는 이름에서 뭔가가 떠오른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캐시아드 빈야드는 1990년대에 보르도 뻬싹-레오냥(Pessac-Leognan) 지역에 ‘샤토 스미스 오 라피트’(Chateau Smith Haut Lafitte)를 세우고 이 와이너리를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린 다니엘(Daniel)과 플로렌스 ‘캐시아드’(Florence Cathiard) 부부가 나파 밸리에 부지를 구입해 설립한 신생 와이너리다.
캐시아드 빈야드의 와이너리 본체의 모습. 오른쪽에 계절을 관장하는 여신 '호라'의 조각상이 보인다.

캐시아드 빈야드의 와이너리 본체의 모습. 오른쪽에 계절을 관장하는 여신 '호라'의 조각상이 보인다.

“그해 여름에 산불이 참 많이 났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글래스 파이어’라는 산불이 북부 캘리포니아의 여러 와이너리들을 덮쳤죠. 저희의 포도밭은 이 산불의 피해를 가까스로 비껴갔어요.” 캐시아드 빈야드에서 처음 한국에 출시하는 와인들을 테이스팅 하기 위해 모인 날, 샤토 스미스 오 라피트의 매니저 카미유 메이루가 말했다. ‘가까스로’라는 말은 농담이 아니다. 캐시아드 부부가 마야카마스 산맥 아래쪽에 펼쳐진 23헥타아르의 포도원을 사들인 것은 2020년 1월. “부지를 사긴 했지만, 코로나 바이러스로 여행 금지령이 내리는 바람에 캘리포니아에 와 보지도 못했는데, 산불까지 나버렸죠. 우리 밭에서 첫 포도를 수확할 때, 부지에서 5km 떨어진 곳까지 산불이 다가왔으니 정말 무서웠죠.” 플로렌스 캐시아드가 파인와인에 한 말이다.
(왼쪽부터) ‘캐시아드 빈야드 호라 나파 밸리 2020’, ‘캐시아드 빈야드 파운딩 블라더스 나파 밸리 2020’, '캐시아드 빈야드 카베르네 소비뇽 나파 밸리 2020'의 모습.

(왼쪽부터) ‘캐시아드 빈야드 호라 나파 밸리 2020’, ‘캐시아드 빈야드 파운딩 블라더스 나파 밸리 2020’, '캐시아드 빈야드 카베르네 소비뇽 나파 밸리 2020'의 모습.

노련한 와이너리 오너 답게 이들은 첫 빈티지에 신중을 기했다. 캐시아드 빈야드의 와인메이커들은 포도를 발효시킨 뒤 뉴 프렌치 오크로 바꿔 담기 전에 중성 오크에 담아둔 상태에서 연기로 인한 오염물질이 있는지를 정밀하게 테스트했다. 결과는? ‘마스터 오브 와인’이자 세계적인 와인 평론간인 잰시스 로빈슨은 “유기농 혹은 비오디나믹 농법을 적용하고 있는 캐시아드 빈야드, 프로그스립, 퀸테사 그리고 스팟츠우드 등은 상대적으로 빠르게 수확하고 수확물을 산불의 위험에서 떨어뜨려 불과 연기의 악영향을 최소화했다”고 말하며, 캐시아드 빈야드의 ‘호라 2020’, ‘파운딩브라더스 2020’ 그리고 ‘캐시아드 빈야드 나파 카베르네 소비뇽 2020’을 ‘엉망진창인 해에 찾아낸 보물’고 꼽았다. 이번에 한국에 수입된 것이 바로 이 3개의 와인이다.(수입사 : 하이트진로)
캐시아드 빈야드의 엔트리급인 보르도 블렌딩 와인 ‘호라’는 그리스 신화에서 계절을 관장하는 4명의 신들의 무리를 일컫는 이름인 ‘Hora’에서 따왔다. 첫 빈티지인 ‘캐시아드 빈야드 호라 나파 밸리 2020’은 카베르네 소비뇽 60%, 메를로 30%, 말벡 10%의 비율로 블렌딩했다. 레이블에 담긴 조각상은 캐시아드 빈야드에 있는 4개의 호라 조각 상 중 가을을 관장하는 여신의 모습이다. 비주얼 스크리닝을 통해 잘 익은 포도만을 선별하는 ‘광학 선별기’를 사용했으며, 중력 외의 압착 없이 발효조로 이동한 뒤 최대 5일간의 저온 침용을 거쳐, 신선한 과실향의 비율을 최대한 끌어올렸으며 이러한 방식은 다른 모든 와인에도 적용했다. 뉴 프렌치 오크에서 자연스레 젖산 발효를 거친 후 12개월간 숙성했다. 일반적으로 가장 고가로 알려진 ‘뉴 프렌치 오크’의 비중은 40%다. 첫 노즈에서 붉은 과실의 향미와 달콤한 뉘앙스를 풍기면서도 단단한 구조의 산미와 타닌감이 오랜 병숙성 뒤의 모습을 궁금하게 한다. 와인 인듀지에스트에서 94점, 제임스 서클링에서 93점을 받았다.
캐시아드 빈야드의 미들급 레인지인 ‘파운딩 브라더스’는 캐시아드 부부가 사들인 와이너리 부지의 오랜 역사에서 따왔다. 현재의 캐시아드 빈야드의 와이너리는 1880년 스코틀랜드를 떠나 캘리포니아에 정착한 제임스와 윌리엄 레니가 60 에이커의 땅에서 포도를 기르며 와인을 양조하기 위해 지은 석조 건물을 그 발판으로 한다. ‘파운딩 브라더스’는 이들이 일찍이 알아봤던 그 땅의 떼루아를 기리기 위한 이름인 셈이다. 55%의 카베르네 소비뇽, 40%의 메를로, 5%의 카베르네 프랑이 블렌딩 되었으며, 뉴 프렌치 오크의 비중은 40%, 대형 오크인 푸드르의 비중은 20%이며 숙성 기간은 16~18개월이다. 와인 인듀지에스트에서 96점을 받은 파운딩 브라더스는 젊은 와인임에도 농밀한 , 그러나 과숙하지 않은 검은 과실의 향미와 카시스, 계피, 정향, 카카오, 삼나무, 흙 심지어 아주 옅은 가죽 향까지 매우 복합적인 풍미를 뿜는다.
캐시아드 빈야드 나파 밸리 카베르네 소비뇽(Cathiard Vineyard Founding Brothers Napa Valley) 2020은 이들 가문이 소유한 러더포드와 세인트 헬레나 AVA에서 직접 기른 카베르네 소비뇽만을 사용한 단일 품종이다. 잘 알려졌다시피 캘리포니아에선 ‘카베르네 소비뇽’이라고 쓰여 있어도 100% 단일 품종인 경우가 무척 드물다. 75% 이상의 지배적인 품종이 있다면, 레이블에 해당 품종의 이름을 쓸 수 있기 때문이다. 오크 숙성 기간은 18개월로 라인업 중 가장 길며, 뉴 프렌치 오크의 비율 역시 80%로 가장 높다. 잘 익은 블루 베리, 검게 익은 자두, 올리브, 코코아, 마른 딜, 민트, 젖은 나무, 흙 등의 향이 매우 농축적이고 복합적으로 담겨 있으나, 폭발적이지 않고 은은하다. 캐시아드 빈야드의 첫 플래그십 와인인 나파 밸리 카베르네 소비뇽 2020은 와인 인듀지에스트와 제임스 서클링으로부터 97점을 받았다. 그 해가 이 보르도 와인 가문이 캘리포니아로 진출한 첫 해였다는 점, ‘글래스 파이어’가 나파 밸리의 와이너리 80%에 큰 피해를 끼쳤다는 점, 이 모든 일들이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팬데믹 상황에서 벌어지고 있었다는 점을 생각하며, 가히 재앙에서 건져낸 보석이라 할 만 하다.

Credit

  • PHOTO 캐시아드 빈야드

MOST LIKED ARTICL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