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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르그 코흐의 문장은 심플하고 명확하다
그 어디에도 거짓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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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두 번째 스토어를 연 건 그 의미가 클 것 같다. 032c에게도, 우리에게도.
지금 서울이 가장 뜨거운 도시라는 데에 이견을 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거다. 특히 패션 신에 있어서는 더더욱. 쿨한 것을 알아보는 눈과 트렌드를 찾고, 또 그걸 따라가는 속도는 어느 곳과도 비교가 안 된다. 우리가 두 번째 스토어를 밀라노나 파리, 도쿄가 아닌 한국에 세운 이유다.
스토어가 생기기 한참 전부터 이를 예견한 이들이 많다. 이미 서울과 몇 번의 협업이 있기도 했고. 이 도시에서 어떤 가능성을 본 건가.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갈망하는 힘. 한국만이 가진 정말 독특한 에너지다. 그 덕분에 포스트 아카이브 팩션, 준태킴처럼 훌륭한 브랜드들이 줄지어 나오는 거겠지. 한국의 패션을 말하려면 일본과의 비교도 피할 수 없다. 일본 패션 신의 문화는 참 오래됐고, 그만큼 깊으며 농도도 짙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한국 또한 그에 못지않은 독자적인 색채와 완성도를 갖추기 시작했다. 그것도 아주 급속도로.
그렇게 된 이유가 있을까?
그걸 왜 나한테 묻나?(웃음) 뭐 이야기해보자면, 원점으로 되돌아갈 필요가 있다. 새로운 것에 대한 갈증, 거기에 하나 더하자면 미친 듯이 디지털 친화적인 문화(?). 이 두 가지 요소가 결합된 결과 아닐까. 인스타그램에서는 그런 면모가 더 분명하게 드러난다. 032c는 프린트에서 시작됐지만 디지털 매체이기도 하지 않은가. 유행에 민감하고 목소리가 큰 한국에서 우리 같은 매체는 더 힘을 받는다. 반응이 유독 즉각적이고, 열광적이며, 동시대적이거든. 내가 한국에 관심을 갖게 된 것도 그런 지점 때문이었다.
그만큼 여기에 032c의 팬이 많다.
우리의 직관적인 기조가 한국의 민첩한 정서와 잘 맞는 것 같다.
직관적인 기조?
미디어로서 032c의 목표는 간결하다. 리서치 툴로서 제 역할을 충실히 하는 것. 생각할 거리를 끊임없이 던져주어야 한다. 대신 주제나 팩트는 명확하고 깔끔하게. 해석과 반응은 오로지 독자의 몫이다.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의견이 분분한 모습을 보는 건 언제나 흥미롭다.
032c를 이끌어온 지도 24년이다. 44권의 책이 나왔고. 이 시점에서 초창기 032c를 움직이게 한 원동력을 회상해본다면?
베를린. 이건 지금까지도 유효하다. 나는 이제 막 장벽이 무너졌던 1990년대 초반에 베를린으로 거처를 옮겼다. 특유의 서늘한 분위기에 압도당한 순간을 아직까지 잊지 못한다. 가난하며 텅 빈, 회색빛이 즐비한 도시. 그리고 어딘가 모르게 차갑고 검은 사람들. 건축가와 패션 디자이너, 아티스트, 새롭게 문을 연 바의 사장… 그때 만난 사람들이 나와 032c에 큰 영감을 줬다. 폭발하는 자유로부터 파생된 배고픈 예술과 컬트 문화. 나는 여전히 불안과 설렘이 마구 뒤엉킨 그 시대정신을 먹고 산다.


그렇다면 지금의 베를린을 가장 잘 보여주는 공간은 어딘가.
너무 많다. 그래도 하나 꼽자면 노이에 내셔널 갤러리. 최근에는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마일스 그린버그와 퍼포먼스를 선보여 바이럴되기도 했다. 작가를 발굴하고 소개하는 방식이 마음에 든다. 아주 현대적이면서도, 옛것을 향한 관심이나 존중을 놓지 않거든.
44권의 책 중 가장 마음 가는 책이 있나?
지금 엄마, 아빠 중 하나를 고르라는 건가? 그럴 수는 없다. 내게는 모두가 다 똑같다. 첫 번째 이슈는 처음이라 특별했고, 그다음은 두 번째라 특별했고. 가장 최근 건 가장 현재적인 문제들을 담고 있어서 특별하다. 하나하나 다 각자의 존재 이유가 있다. 그걸 설명하라면 내일 아침까지, 아니 내일 밤까지도 얘기할 수 있다.
미안하다. 반대로 생각해보면 나도 똑같을 텐데.
차라리 좋은 콘텐츠의 기준을 말하라면 그건 쉽다.
어떤 건가.
타이밍이 맞아떨어지는 콘텐츠. 어떤 콘텐츠가 세상에 나왔을 때, 지금은 맞고 언젠가는 틀릴 수도 있는 거다. 혹은 그 반대일 수도 있고. 이건 시대적인 흐름이나 문맥에 대한 얘기기도 하지만 개인적인 관심사에 대한 얘기기도 하다. RM을 커버에 올렸던 가장 최근 이슈가 그랬듯이.
왜? RM을 인터뷰하기까지 고민이 많았나 보다.
맞다. 사실 그때가 아니었다면 032c는 절대 케이팝 스타를 커버에 올리지 않았을 거다. 우리와는 결이 다르다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많이 달라지지 않았나. 모두가 케이팝을 주목하고 있고 BTS, 그중에서도 RM은 특히 상징적인 인물이다. 게다가 알면 알수록 아이콘이 될 자격이 충분한 사람 같더라. 그와의 작업 이후로 내 안의 작은 틀이 하나 더 깨졌다.
결과는 마음에 들었나.
100%. 예상치 못한 문화의 충돌이라 더 특별했던 것 같다. 늘 생각과 태도를 유연하게 유지해야 하는 이유다. 여전히 어렵지만. 나는 고집이 센 편이거든. 그래도 언제나 내가 원하는 것만 말할 수는 없다. 대중이, 독자가, 광고주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하고, 거기에 운도 따라야 한다는 걸 시간이 흐를수록 더 확실하게 깨닫는다.

032c 레디 투 웨어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마리아 코흐는 창문 너머로 햇살이 들이치는 오후를 사랑한다.

미스 반데어로에가 설계한 노이에 내셔널 갤러리. 지난 여름에는 이곳에서 생 로랑의 2024 S/S 쇼가 열리기도 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콘텐츠는 끊임없이 생산되고 있다. 수많은 선택지 사이에서 다뤄야 할 이슈를 정제하는 당신만의 방법이 있나?
어쩔 수 없이 나를 포함한 우리 팀원들의 취향과 관심사가 많이 반영된다. 그게 아주 뜬금없는 것일지라도 괜찮다. 우리는 무엇이든 우리 식대로 풀이하는 방법을 잘 알고 있거든. 그건 이제껏 우리가 쌓아온 아이덴티티가 공고하기 때문일 거다. DNA에 걸맞은 태도를 갖추는 게 중요한 이유다.
032c의 DNA라고 하면?
베를린 정신.(웃음)
그에 걸맞은 태도의 정체는 뭔가.
모든 것에 열린 마음, 그로부터 나오는 늙지 않는 창의성. 그렇다고 너무 판타지스러운 건 또 싫다. 뜬구름 잡는 소리 하는 저널에 회의적인 편이라서. 늘 다양성을 고민한다. 인종이나 국적, 비주얼, 나이… 모든 가능성을 넓혀야 한다. 우리는 베를린에서 시작했지만, 이제 전 세계에서 우리의 작업물을 찾을 수 있으니까. 최근에는 한국의 이미래 작가와 새로운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다. 기대해달라.
아내인 마리아 코흐가 032c 레디 투 웨어를 이끌고 있다. 어떤 비전으로 레디 투 웨어를 전개했나.
우리는 우리가 보여주고 싶은 것들을 만들어서 판다. 그게 다다. 032c의 정신을 소유하는 가장 쉽고 간단한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지난 시즌에는 파리 패션 위크에 쇼를 올리기도 했다.
그건 더 과감한 시도를 위한 신호탄이었다. 작가와의 협업이나 컬트적인 시도들을 통해 매거진 기반의 패션 브랜드는 캐주얼하다는 편견을 깨고 싶다. 좀 더 베를린스럽게. 우리답게.
에디팅, 디자인, 브랜드를 이끄는 일 전부 소모적이다. 새로운 인풋은 어디에서 얻나.
찌질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쿠르퓌르스텐담에 위치한 오피스에서 보내는 평화로운 나날들. 무언가를 보고 느끼고 경험한 뒤엔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도 꼭 그만큼 필요하다. 그때 생각들이 정돈되고 내가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지점에 다시금 주목할 수 있다. 마리아는 특히나 자연을 사랑한다. 달렘에 있는 정원에서 식물들을 보살피고 반려견과 산책하며 자연과 교감한다. 요즘은 오래된 취미인 승마에 매진하고 있다. 새로운 추진력을 위해 우리에게 꼭 필요한 시간이다.
책의 수명은 언제까지 유효할까?
영원히. 그리고 잘 알겠지만 우리와 함께 일하는 공고한 패션 하우스들이 수명을 다할 때까지는 절대. 유형이 주는 에너지는 그 무엇으로도 대체될 수 없다. 서버는 언제든 방전될 수 있지만 책은 여전히 우리 테이블 위에 놓여 있지 않나. 물론 우리도 노력해야겠지. 언제 펼쳐 보아도 이상하지 않을, 더 나은 수집품이 되기 위한 노력.

032c 갤러리 서울 한편에 설치된 곤잘레스 하세 AAS의 미디어 아트 ‘Catastrophe Colours’. 그는 스토어를 설계한 건축가이기도 하다.
Credit
- EDITOR 성하영
- PHOTOGRAPHER 표영민
- ART DESIGNER 주정화
JEWELLE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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