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한국 영화는 왜 이렇게 빠른 속도로 OTT를 향해 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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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시작부터 ‘나도 모르겠다’고 선언하는 건 아주 나태한 일이다. 그러니 몇몇 당연한 이유를 좀 나열해보자. 사람들이 극장에 발길을 끊은 데는 여러 가지 복합적인 이유가 있다. 가장 중요한 이유는 역시 코로나19다. 팬데믹은 영화 관람 문화를 바꾸었다. 사람들은 극장으로 가는 발길을 끊음으로써 건강을 지키는 방법을 선택했다. 팬데믹으로 힘들어진 극장들은 티켓 가격을 올렸다. 팬데믹 동안 OTT로 영화를 관람하는 데 익숙해진 관객들은 갑자기 오른 티켓 가격에 불만을 느꼈다. 여담이지만, 사실 한국 극장 관람료는 꽤 저렴한 편이다. 그래도 원래 저렴하던 물건값을 갑자기 50%나 올려놓고 ‘살 테면 사고 말 테면 말라’는 태도로 장사를 할 수는 없다. 팝콘 가격이라도 좀 내리고 티켓값을 올렸어야 하지 않겠는가 말이다. 아, 그렇다면 문제는 분명해졌다. 이 모든 건 결국 팬데믹이 불러온 나비효과다!
이 논리에는 큰 구멍이 하나 있다. 한국 극장 산업의 무시무시한 침체를 팬데믹만으로 설명하려면 전 세계 모든 국가의 영화산업이 같은 고통을 여전히 겪고 있어야만 한다. 현실은 그렇지 않다. 한국을 제외한 대부분 국가의 극장 매출은 이미 팬데믹 이전 수치로 빠르게 회복 중이다. 2023년 한국 극장 매출액은 팬데믹 이전의 60% 정도밖에 회복하지 못했다. 그것도 티켓 가격을 올린 덕이다. 관객으로 따지자면 지금 한국 관객 수는 팬데믹 이전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2019년 국민 1인당 영화 관람 횟수는 4.4회였다. 전 세계 최고 수준이었다. 지금은 2.2회다. 역시 반토막이 난 것이다. 도대체 한국만 왜 이 모양인가? 덕분에 모두가 이 질문을 서로에게 던지고 있다. 매체들은 저마다 답변을 내놓으려고 애를 쓰고 있다. 한국 영화가 재미가 없어서? 물론 지난 몇 년간 CJ와 쇼박스와 롯데 같은 대기업이 양산한 블록버스터들이 지속적으로 관객들을 실망시킨 이유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지금 한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볼 만한 영화를 만들어내는 몇 안 되는 국가 중 하나다. 나는 <노량>에 조금 실망했지만, 지금 세계에서 <노량> 같은 엔터테인먼트를 만들어내는 국가는 몇 없다. 그건 여전히 자부심을 가져도 좋다.
많은 매체는 OTT의 잠식을 이야기한다. 아마도 이것이 팬데믹보다는 좀 더 합당한 논리일 것이다. 한국만큼 영화산업이 OTT로 빠르게 넘어간 곳은 없다. 영화를 둘러싼 상업적인 구조 자체가 격변하고 있는 것이다. 넷플릭스를 비롯한 많은 OTT 플랫폼은 오스카 후보에 오르는 영화들을 만들어낸다. 그렇다고 할리우드가 OTT에 완벽하게 지배당한 것은 아니다.
한국 영화산업과 자본이 지나치게 빠른 속도로 OTT를 향해 가는 이유는, 역설적으로 한국이 영화를 잘 만들기 때문이다. 아니다. 다시 말하자. 역설적으로 한국이 영화를 ‘싸게’ 잘 만들기 때문이다. 넷플릭스 입장에서, 한국만큼 적은 자본으로 압도적인 효과를 불러올 수 있는 시장이 없다. 넷플릭스에 한국의 충무로는 애플의 대만 폭스콘이나 다름없다. 값싼 노동자들을 채찍질해 만든 완제품을 애플에게 공급하는 저렴한 해외 공장 말이다. 게다가 지난 몇 년간 많은 창작자가 넷플릭스에 투항했다. 극장 개봉용 영화를 만들 법한 제작비를 아낌없이 투자하는 데다 기존 제작사들만큼 집요한 프로듀싱 시스템이 없는 넷플릭스는 어떤 면에서는 창작자들의 천국에 가깝다(게다가 흥행 실패로 받을 심적 상처로부터 완벽하게 안전하고 말이다!). 그래서 더 좋은 영화가 나오는지는 잘 모르겠다만, 지금처럼 시장이 불안한 시기에는 창작자들도 안전한 방식을 택하기 마련이다. 어쨌거나 넷플릭스는 계속 영화를 만들 것이고, 사람들은 OTT로 영화를 보는 데 점점 익숙해질 것이다.
여기서 당신은 다시 질문을 던지고 싶을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의 극장 산업만 이 모양이 되어가는 걸 막을 수는 없는가? 자, 여기서 나는 좀 더 몰염치하게 원대한 예견을 하나 내놓을 생각이다. 한국 극장 산업만 이 모양이 되어가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전 세계 극장 산업은 다 이 모양이 될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한국은 이제 다른 나라의 모델을 따라가는 국가가 아니라 선도하는 국가이기 때문이다. 가만 생각해보시라. 이제 한국이 따라가야 할 모델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
선진국 모델을 바라보며 미래를 예측했던 개발도상국 시대는 완벽하게 끝이 났다. 많은 면에서 한국은 ‘트렌드세터’ 혹은 ‘테스트 마켓’으로서의 위치를 확고히 하고 있다. 낮은 출산율 때문에 한국이 사라질 거라고? 걱정 마시라. 아이를 키우기 좋은 국가의 출산율도 점점 떨어져가는 중이다. 2022년만 해도 프랑스는 합계출산율 1.8을 기록했다. 같은 시기 겨우 0.78이던 한국과 비교하는 기사들이 줄을 이었다. 결혼을 하지 않은 커플에게도 출산과 육아를 지원하고, 부모 모두의 출산 휴가를 장려하는 정책을 우리도 도입해야 멸망을 막을 수 있다고들 했다. 어럽쇼. 겨우 일주일 전 나온 기사에 따르면 선진국 중 상대적으로 출산율이 높던 프랑스에서도 17개월 연속으로 출산율이 감소했다. 한 번 지속적으로 감소한 출산율이 다시 올라갈 리는 없다. 모두가 한국처럼 사라질 것이다. 한국이 좀 빠르게 앞서 나갈 뿐이라는 소리다.
그렇다면 우리는 크게 걱정할 이유가 없다. 그건 한국 극장 산업의 추락이 세계 극장 산업의 미래라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전 세계에서 시대적 변화에 가장 민감한 족속들이다. 새로운 것이 탄생하는 순간 한국에서 그것은 주류가 된다. 그리고 다른 세계로 퍼져 나간다. 한국인은 지금 영화라는 매체의 새로운 진화를 가장 빠르게 목도하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영화를 극장의 경계 속에만 계속 두려는 고전적인 몸부림은 어쩔 도리 없이 점점 힘을 잃을 것이다. 다른 나라의 경우를 보며 고쳐나갈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어차피 그들도 결국은 한국을 따라가게 되어 있다. 그렇다. 이건 어디까지나 딱히 유명하지도 않고 인기도 없는 어느 영화평론가의 방구석 예측에 불과하다. 이 몰염치한 예측이 맞는지 아닌지는 10년 후, <에스콰이어> 칼럼을 통해 다시 밝히도록 하겠다.
김도훈은 글을 쓰는 사람이다. <씨네21> <geek>과 <허프포스트>에서 일했고, 책 <우리 이제 낭만을 이야기합시다> <낯선 사람>을 썼다.
Credit
- EDITOR 김현유
- WRITER 김도훈
- ILLUSTRATOR MYCDAYS
- ART DESIGNER 주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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