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올해 책을 낸 소설가 3명이 들려준 '이 책의 주요 대목을 썼던 장소들'

어떤 이야기는 꼭 그것이 태어날 법한 장소에서 만들어지는가 하면, 어떤 이야기는 엉뚱한 곳에서 만들어진다. 최근 책을 낸 세 명의 소설가에게 물었다. 당신이 아직 기억하는 당신 소설 속 장면은 어디에서 탄생했는가?

프로필 by 오성윤 2023.12.03
 
경희대학교 중앙도서관 개가 열람실.

경희대학교 중앙도서관 개가 열람실.

그 집은 6층짜리 빌라의 가장 높은 층이었는데 그 건물에는 엘리베이터가 없었다. 그녀가 천천히 계단을 걸어 내려오는 동안 피아노 소리가 점점 멀어졌다. 그녀는 꿈을 꾸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 손보미 ‘사랑의 꿈’ 中
 
<사랑의 꿈 (문학동네, 2023)>           손보미           경희대학교 중앙도서관 


나는 <사랑의 꿈>에 실린 단편 대부분을 내가 졸업한 학교와 광화문의 프랜차이즈 카페를 오가며 썼다. 내가 졸업한 학교의 중앙도서관 개가 열람실은 좀 특이한 구조인데, 열람실 2층은 거대한 원형 발코니처럼 되어 있어 거기에 앉아 있으면 1층이 훤히 내려다보였다. (에어컨을 트는 것에 인색해서) 여름에는 조금 덥고(나는 이게 정말 좋았다. 지나치게 차갑지 않은 것), (역시 히터를 트는 것에도 인색해서) 겨울에는 조금 추웠다(이건 좀 힘들었다).
2019년 여름, 도서관은 공사 중이어서 화장실을 사용할 수 없었다. 화장실에 가고 싶으면 교수회관으로 가라고 했다. 교수회관은 작은 동산 위에 있었다. 도서관 2층 구석의 (평상시엔 있는 줄도 몰랐던) 문을 열면 작은 홀이 하나 나오고 거기에서 숲길 사이로 난 돌계단이 있었다. 교수회관으로 가는 다른 길은 알고 있었지만 그 길은 미처 몰랐다. 나는 화장실을 갈 것도 아니면서 그 문을 열고 나와 홀을 뱅글뱅글 돌았다. 울창한 나뭇잎 사이로 드문드문 떨어지는 햇살, 바람이 불면 그 햇살들이 이리저리 움직였다. 소설이 잘 써지지 않으면, 도서관 바깥으로 나와 도서관 앞에 나 있는 길을 하염없이 걷곤 했다. 뜨거운 햇살이 내리쬐고, 살갗이 뜨거워지는 느낌(나는 땀이 잘 안 나는 체질이다). 본관으로 이어지는 길을 걸으면, (원래 내가 알고 있는) 교수회관으로 이어지는 돌계단이 나왔다. 그곳을 따라 올라가면 내가 뱅글뱅글 돌던 홀로 통했다. 나는 그 길을 반복해서 걸었다. 드디어 내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히고 약간 어질어질해질 때, 그때 갑자기 어떤 여자가 낯선 집의 벽에 기대어 있는 모습이 떠올랐다. 집은 약간 허름하고 벽에는 무언가가 튄 얼룩이 남아 있었다. 절대 지워지지 않을 것 같은 그런 얼룩. 거기에는 그 여자 혼자 있는 게 아니었다. 다른 여자들이 있었고, 누군가 피아노를 쳤다. 나는 내 상상 속 그 여자가 동떨어진 느낌을 받고 있다는 걸 알았다. “마침 그 집에 낡은 피아노 한 대가 있었고, 사람들이 그 여자에게 피아노를 쳐보라고 권유했다. 그 여자는 별로 빼는 기색도 없이 피아노 앞에 앉았다. 주위가 순식간에 조용해졌고, 그 여자가 건반을 누르는 소리만 집 안을 감돌았다. 리스트의 ‘사랑의 꿈’이었다. ‘사랑의 꿈’ 말고도 그 여자는 몇 곡을 더 연주했다. 누군가 말했다. “시끄럽다고 다른 집에서 항의를 할지도 몰라요.” 그러자 공주연이 대답했다. “그럼 항의가 올 때까지 실컷 연주해보죠.” 다른 여자들이 와하하 하고 웃었다. 그녀는 얼룩이 진 거실 벽에 붙어 서서 피아노 소리를 좀 더 듣다가 외투를 챙겨 입고 집 밖으로 나왔다. 닫힌 문 밖으로 피아노 소리가 새어 나왔다. 그 집은 6층짜리 빌라의 가장 높은 층이었는데 그 건물에는 엘리베이터가 없었다. 그녀가 천천히 계단을 걸어 내려오는 동안 피아노 소리가 점점 멀어졌다. 그녀는 꿈을 꾸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바깥에는 눈이 펑펑 내린다는 것, 그 눈을 헤치고 그 여자가 어디론가 떠나려고 한다는 걸 알았다. 그런 식으로 그해 여름 그 뜨거운 햇살 아래서 추운 겨울 어디론가 떠나려는 여자의 입김을 떠올렸다.
내가 기억하는 뜨거운 햇살에 관한 또 다른 기억. 이번에는 광화문 커피빈이다. 나는 이 카페를 소설가가 되기 훨씬 전, 20대 중반에 자주 다녔다. 그때는 지금과 구조가 달랐다. 도로 쪽에는 흡연실이 있어 거기 앉은 사람들은 담배를 뻑뻑 피워댔다. 그 카페에서 친구들과 나누던 이야기들이 떠오른다. 내 소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적도 있었을 것이다. “내가 소설가가 될 수 있을 것 같아?”라고 물으면 내 앞에 앉은 상대가 말한다. 그래, 그래. 고개를 끄덕인다. 한동안 그 카페를 가지 않다가, 작가가 되고 나서도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 다시 가게 되었다. 흡연석은 사라졌지만 안쪽 구조는 그대로였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자리는 여러 명이 같이 앉을 수 있는 공용 테이블이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안쪽에 있는 공용 테이블의 가장 안쪽, 그러니까 창문 쪽. 거기서 ‘불장난’을 썼다. 카페의 단점은 여름에는 에어컨을 너무 쌩쌩 튼다는 것이다. 나는 카페에 갈 때는 긴팔을 입거나 카디건을 챙겨야만 했다. 안 그래도 짐이 많은데, 하고 불평불만을 하면서(하지만 그 카페가 내 불평불만을 왜 신경 써야 한단 말인가?). 살갗이 너무 차가워져서 견딜 수가 없으면 카페 건물 주차장과 이어지는 일종의 뒷문을 열고 나갔다. 너무 차가운 공기와 너무 뜨거운 공기. 그 순식간의 변화, 새겨지는 신체의 변화, 그 낙차. 어쩌면 ‘불장난’이라는 작품 자체가 그런 낙차의 순간들로 이루어진 것인지도 모른다. 혹은 그런 낙차를 거부하겠다는 의지. 그 소설에 나오는 여자아이는 언제나 무언가를 간절히 바라지만, 마치 그런 적이 없던 것처럼 군다.
어느 날의 내 옷차림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이유는 모르겠다). 허벅지 위를 덮는 하얀색 블라우스와 검은색 쇼츠, 검은색 플랫 슈즈. 나는 주차장에 서서 카페 창에 비친 내 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그리고 카페로 들어왔을 때, 나는 카페 안에서 바깥이 훤히 내다보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마 누군가 내 모습을 봤다면 무척 웃겼을 것이다. 얼굴에 떠오르는 약간의 홍조. 나는 다시 원고를 쓰기 시작했다. “내가 떠올린 것은 그저 꿈속에서의 내 모습, 그것뿐이었다. 나는 거대한 귀 모양을 하고 있었다. 거대한 귀에 손과 발이 달려 있었는데, 꿈속의 나-거대한 귀는 아주 조잡하고 초라하며, 볼품없었다. 그 조잡하고 초라하고 볼품없는 귀가 꿈속에서 어떤 소리를 들었는지 꿈 밖의 (더 이상 거대한 귀가 아닌) 나로서는 기억해낼 재간이 없었다.”
많은 것이 변했다. 이제 광화문 카페의 공용 테이블은 사라졌다. 한동안은 그 자리에 비행기 좌석을 흉내 낸 인테리어를 했다가 이제는 둥근 테이블 몇 개를 가져다 두었다. 도서관은 에어컨과 히터에 더 이상 인색하지 않다.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하다. 교수회관으로 통하는 문은 잠겼으리라. 하긴, 뭔들 변하지 않았을까. 나도 변했는걸. 하지만 왠지 어떤 것들이 손상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절대로 복구할 수 없는 것, 영원히 우리 품에서 사라진 것들이 있는 것 같다는 기분이 든다. 어쩔 수 없이 그런 기분이 든다. 그래도 어떤 순간들을 이렇게 내가 쓴 소설들로 기억해낼 수 있다는 것은 크나큰 행운이다. 아마 이 글을 읽는 여러분도 그런 것들이 있을 것이다. 순식간에 당신을 어떤 순간으로 데려가는 그런 것이. 시간과 시간의 틈, 공간과 공간의 틈, 그 어딘가를 뱅글뱅글 돌면서 절대로 당신들의 순간을 잊어버리지 말라고, 그러면 안 된다고, 마음속에 그걸 간직하라고 독려하는 그런 것이. 꿈결에 들려오는 피아노 선율처럼, 깨어나도 잊히지 않은 꿈속의 장면처럼, 마치 ‘사랑의 꿈’ 같은 그러한 것이. 
경희대학교 내 노천극장에서 중앙도서관 방면으로 향하는 길목의 풍경.
 
장류진 작가가 입주했던 플랫폼P의 1인 창작자를 위한 지정석.

장류진 작가가 입주했던 플랫폼P의 1인 창작자를 위한 지정석.

“뭐예요? 쿨팬티 입으신 거예요? 저는 순면이라 불리한데요, 팬티도 서로 벗으시죠. 공정하게.” - 장류진 ‘라이딩 크루’ 中  
 
<연수 (창비, 2023)>           장류진           마포출판문화진흥센터 


내게 소설을 쓰는 일은 때로 바닷가에 돌집을 짓는 일처럼 느껴진다. 어떻게 설계하고 구축해야 하는지, 심지어 완성되었을 때 그 집이 어떤 분위기를 풍길지마저도 머릿속에는 있는데 그것을 실재하는 집으로 구현하기 위해서는 돌 하나를 구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내게 그 최소단위는 ‘단어’로 느껴진다. 적절한 단어를 찾는 일. 때로는 모래사장을 뒤져 애써 찾아낸 대단한 돌을 원하던 자리에 두었는데 딱 들어맞지 않는 경우도 있다. 혹은 들어맞긴 하는데, 어쩐지 어색한 경우도 있다. 그럴 때면 돌을 갈아보거나 쪼개보거나 아깝지만 그 돌은 버리고 새로운 돌을 찾아 나서기도 한다. 
작년 어느 여름날, 나는 다음 소설에 쓸 적절한 단어 하나를 찾고 있었다. 소설은 거의 완성된 상태였고 문장도 대부분 다듬어 두었는데 단어 하나가 도저히 생각나지 않아 빈칸으로 남겨져 있었다. 간절히 찾던 그 단어는 바로 특정 타입의 남성용 속옷을 지칭하는 말이었다.
내 머릿속에는 분명 그것의 구체적인 형태와 물성이 존재했다. 평범한 사각 드로즈 모양이지만 여름용으로 만들어 통기성을 극대화한 팬티였다. 소설 속 가상의 팬티는 아니었다. 그런 팬티는 이미 시중에 유통되고 있었다. 웹사이트 한구석의 정신없이 번쩍이는 배너 이미지 속에서, 무심결에 채널을 돌리다 마주친 홈쇼핑 방송에서, 나는 그런 팬티를 스쳐 지나가듯 본 적이 몇 번이나 있었다. 그때마다 그것들은 그냥 전시되는 법이 없었다. 꼭 그 안에 손이 들어가 있었다. 쇼호스트들은 보기만 해도 시원한 재질의 팬티 속으로 손바닥을 넣고 찰랑찰랑 흔들어 보이면서 “세상에, 보이세요? 이렇게나 얇습니다!”라고 외쳤고, 역시나 손바닥이 들어가 있는 팬티 이미지의 배너 광고 아래에는 ‘남편 사줬더니 이것만 찾아’ 같은 카피가 붙어 있었다. 안쪽으로 손을 집어넣으면 손가락 형태가 다 비쳐 보일 정도로 파격적으로 얇은 팬티. 극강의 통기성을 자랑하는 팬티. 그러면서도 내구성을 높인 팬티. 여름용 팬티. 그런 걸 대체 뭐라고 부르면 알맞을까? 알듯 말 듯했다.
단어를 찾는 일이 한층 더 난감하게 느껴졌던 건, 내가 글을 쓰고 있는 공간 때문이었다. 당시 나는 마포구에서 운영하는 공유 오피스인 ‘플랫폼 P(마포출판문화진흥센터)’에 입주해 있었다. 1인 창작자를 위한 ‘오픈 오피스’에 책상을 배정받았는데, 이름처럼 개방된 공간이었다. 여러 작가와 출판인들이 창작을 펼치고 지식과 경험을 공유하는 지적으로 풍요로운 커뮤니티 공간에서 계속 속옷을 검색하고 있자니 여간 민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검색창에 하루 종일 남자 팬티를 검색하고 있는 모습, 모니터에 다종다양한 팬티를 띄워놓고 스크롤하고 있는 모습을 행여나 누군가 보지는 않을지 걱정됐다. ‘저는 단지 소설을 쓰는 중일 뿐, 이상한 사람은 아니에요!’라고 속으로 괜히 외쳐보기도 했다. 그 와중에 광고 알고리즘은 나를 ‘팬티를 너무나 원하는 사람’으로 인식해버렸고, 팬티 이름을 찾는 일을 포기하고 다른 용무를 보고 있어도 모니터 이곳저곳의 온갖 광고 배너들이 내게 팬티를 보여주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황당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게는 소설의 완성도를 위해 적절한 단어를 찾는 일이 더 중요했다. 나는 종종 내 파티션 위로 고개를 쭉 빼고 주위를 살핀 다음, 다시 고개를 숙이고 모니터 앞에 바짝 붙어 팬티 이름 찾기에 몰두했다. 여러 키워드로 검색했지만 내가 생각하던 그 느낌, 내 소설의 문장에 딱 맞는 느낌은 아니었다.
하지만 소설 마감일이 임박했고, 나는 아쉬우나마 내가 그간 찾은 차선의 단어를 넣어보았다. 여름용 팬티, 인견 팬티, 얇은 팬티, 실크 팬티…다 아니었다. 나는 다채로운 팬티 이름을 경건한 한글 파일에 명조체로 썼다 지우기를 반복했다. 아니야, 이건 아니야! 그러다 오픈 오피스의 마감 시간이 다가올 무렵, 나는 기적적으로 내가 찾던 단어를 찾아내고야 말았다. 내가 그려내고 싶던 이미지를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게 정확하게 칭하는 그 단어를…… 마침내. 
쿨팬티. 그래, 내 머릿속을 지배하고 있던 그 팬티를 부르는 단어는 다름 아닌 ‘쿨팬티’였다. 바로 이것이 내가 간절히 찾아 헤매던 그 팬티였다.
나는 광활한 모래사장에서 진주 알이라도 발견한 것처럼 환희에 가득 차 내가 썼던 미완의 문장, 그 빈자리에 ‘쿨팬티’라는 단어를 집어넣어 보았다. 그리고 그 문장을 속으로 천천히 읽어보았다. 세상에. 완벽했다. 빈 공간에 맞춤하게 딱 들어맞았다. 그래, 이거지. 나는 비로소 이 소설을 완성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현재 존립의 기로에 서 있는 플랫폼P(마포출판문화진흥센터)의 정상화를 바랍니다.
플랫폼P는 출판업계 창작자들을 위해 작업 공간, 스튜디오, 회의실, 서적 등 다양한 시설을 제공한다.플랫폼P 오픈 오피스 공간 전경.
 
신라 석탑을 그대로 옮겨놓은 신라천년서고 내부 전경.

신라 석탑을 그대로 옮겨놓은 신라천년서고 내부 전경.

길은 변하지 않는다. 길 양쪽의 다른 것들이 올라가고 무너지고 흥했다 스러진다 해도, 길 자체는 같은 굽이로 흘렀다. 그저 흙바닥일 뿐인데도 사람들의 발에 다져지며 그대로인 것에 자은은 어쩐지 좀 울 것 같은 기분이 들었지만 인곤에게 들키고 싶지 않아 꾹 눌렀다.  - 정세랑 <설자은, 금성으로 돌아오다> 中
 
<설자은, 금성으로 돌아오다 (문학동네, 2023)>           정세랑           신라천년서고 


“신라 시대 사람을 만나면 어떤 음식을 함께 먹고 싶어요?”
책이 나오고 나서 들었던 흥미로운 질문이다. 곰곰 떠올려보았는데 떡볶이나 막국수라면 좋을 것 같다. 고춧가루가 없던 시대 사람에게 고춧가루를 잔뜩 먹여보고 싶다. 고추의 부재를 비롯해 차이들이 수없이 많아서, 소설을 쓰는 내내 많이 헤맸다.
<설자은, 금성으로 돌아오다>는 오랫동안 쓰고 싶은 이야기였기에 그렇게 오래 헤매게 될 줄은 몰랐다. 2016년부터 경주에 가서 이야기를 건져 올리려고 시도했다. 책의 3분의 1쯤을 썼다가 통째 버린 적도 있다. 1300여 년 전의 세계로 진입하지 못하고 멈춘 채 다른 이야기들을 먼저 쓰며 미루었다. 더는 미룰 수 없다고 결심했던 올해, 작년 말 개관한 경주박물관 신라천년서고의 도움을 크게 받았다. 그곳에 가니 꼭 읽었어야 했는데 놓친 책들이 눈높이에 꽂혀 있었던 것이다. 책을 쓰려다 잃은 길을 책에서 다시 찾은 경험이었다. 신라천년서고의 책들 덕분에 소설에 있었을 법한 질감을 더하는 일이 가능했다. 특히 당나라 유학을 마친 설자은이 큰 바다를 건너는 첫 편은 해양 교역사 책들에 완전히 기대고 있다. 신라천년서고에는 두 번 방문했고 겨울에 또 방문할 예정이다. 나의 꿈은 경주에 길게 머물며 소설을 써보는 것인데 이룰 수 있으면 좋겠다. 지금까지는 답사를 하고 읽을 목록을 작성하느라 바쁘게 다녀오기만 했다.
역사교육을 전공했다 보니 기록과 유물을 존중하고 싶었다. 처음부터 지어낸 이야기인 것을 명확히 하고 비어 있는 부분이 이렇지 않았을까 채워보는 방식을 택했다. 큰 줄기를 건드리지 않으면서 실가지를 뻗어보는 방식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탐정이라는 단어가 쓰이지 않았던 시절의 탐정 역할 주인공 설자은은 유명한 6두품 인물인 최치원과 설총에서, 과학수사 담당 조수 목인곤은 아비지나 아사달 같은 백제 장인들에게서 모티브를 얻은 가공의 캐릭터다. 교과서에서 출발해 교과서 같지 않은 유쾌함이 있는 인물들이길 바랐다. 다른 캐릭터들도 대부분 마찬가지지만 실존 인물 두 사람이 예외적으로 포함되었는데, 그중 신문왕을 두려울 정도로 카리스마 있는 남자 주인공으로 만든 것이 약간 양심의 가책이 되었다.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한껏 멋지게 그리긴 했지만… 사죄의 마음으로 신문왕릉에 방문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곳이 신문왕이 아닌 효소왕의 능일 가능성이 높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래서 그다음 경주 방문 때 신문왕릉일 가능성이 높은 진평왕릉에 가 두 번째 사죄를 했는데, 그 안에 실제 누가 누워 계신지 모르겠다. 어차피 나의 사죄는 허공에 흩어지는 종류의 것이지만 말이다.
밤에 월지와 월성을 걸어본 경험도 소설에 스며들었다. 낮과는 또 다른 풍경이었다. 과하지 않은 조명이 어둠을 해치지 않아 지나간 사람들의 마음에 접속할 수 있을 듯했다. 어둠 속에서 등불을 보며 걷고 또 그 등불을 지나쳐 다음 등불을 향했을 것이다. 호랑이들이 한반도를 활보하던 시절이었으니 얼마나 무서웠을지, 그럼에도 어떤 순간에는 밤의 감미로움을 즐기지 않았을지 상상해보았다.
경주에서 또 어떤 발견들이 빛을 보기를 기다리고 있을까? 천 년도 더 전 사람들의 면면이 끝없이 새로 밝혀지고 있다는 게 독특한 위안이 된다. 끝나도 끝나지 않는 삶들이 존재하며, 언젠가 우리가 모두 사라지고 없어도 누군가 우리의 시대를 들여다보리라는 점이…. 익숙한 설정의 미스터리 시리즈를 쓰며, 사람들 안쪽에 세월과 무관히 변하지 않은 부분과 끊임없이 변해온 부분을 살펴보고 싶다. 즐겁게 미끄러지면서도 끝나고 나면 까끌거림이 남는 이야기들을 쓰는 것이 언제나 목표다.
신라천년서고는 다양한 형태의 소파와 좌석으로 '눕독'이라는 표현으로 대변되는 독서와 휴식, 사색을 권하는 공간이다.신라천년서고 바로 옆에 위치한 국립경주박물관 수묵당.

Credit

  • EDITOR 오성윤
  • PHOTOGRAPHER 박기훈
  • ART DESIGNER 주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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