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한강이 소설을 쓰며 겪은 것들

소설을 쓰는 일은 어떤 작가에겐 매우 위험한 일이다,

프로필 by 박세회 2024.10.31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의 마지막 챕터와 <작별하지 않는다>의 첫 번째 챕터를 읽는 일은 고통스럽다. 여러 인물들의 시점으로 전개되는 <소년이 온다>에서 마지막 챕터 ‘에필로그 - 눈 덮인 램프’는 한강의 시점이다. 소설 속의 화자는 작가와 분리되어야 한다. 아무리 소설이 자전적으로 읽히더라도 세실은 사강이 아니며, 지하 생활자는 도스토옙스키가 아니고, 뫼르소는 카뮈가 아니다. 그러나 이 챕터에서의 화자는 ‘거의’ 한강이다. 이 챕터에서 목소리는 <소년이 온다>의 중심인물 동호의 기억을 이야기한다. 화자의 아버지가 중학교에서 작문을 가르쳤던 아이, 화자의 가족이 떠난 뒤 그들이 살던 광주 중흥동 집으로 이사 온 가정의 아이. 그의 가족이 서울 수유리로 올라온 지 얼마 되지 않은 그해 5월에 광주에서 죽은 아이. 한 번도 만난 적 없이 사진으로만 확인한 아이 동호. 화자의 행적은 아버지가 중학교 선생이던 한강의 삶과 일치한다. 뒤늦게 도착한 광주의 기록들, 아버지가 터미널에서 구해왔다는 사진집, 그 사진집에서 마주한 ‘총검으로 내리그어 으깨어진 여자애의 얼굴’은 자신의 안에 있는 줄도 몰랐던 연한 부분을 깨뜨렸다고 화자는 말한다. 한강이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뒤 한승원 작가는 한 인터뷰에서 말했다. “독일 모 작가가 찍은 5.18 사진첩이 암암리에 거래가 됐어요. 그걸 사서 가방속 깊이 넣어와서 책상에 뒀는데, 강이가 그걸 열어봤나 봐요. 어린
5학년 학생이 충격이었겠죠. 그때 받은 충격이 <소년이 온다>의 동기가 됐어요.” 작가에게 기억은 멍에다. 작가는 어떻게든 그 기억으로 소설을 빚어 풀어보려 했을 것이다. 한강이 <소년이 온다>를 쓴 것은 2013년. 서른세 해가 지나도록 그 거대한 슬픔은 풀어지지 않았다. 기억들이 그의 속을 얼마나 갉아먹었을까? 그 소설을 쓰기로 한 뒤로 ‘읽을 수 있는 모든 자료를 다 읽기’로 결심한 그는 광주의 기록만을 두 달 동안 읽다가 꿈을 꾸기 시작한다. 한 무리의 군인들을 피해 달아나는 꿈. 그러다가 누군가가 다가와 불과 열아홉 시간 뒤면 5.18 연행자 수십 명이 처형당할 것이라고 말해주는 꿈. 꿈속에서 그는 어떻게 하면 처형을 막을 수 있을지 입이 타들어가도록 걱정하다 잠에서 깼다. 이 꿈은 <작별하지 않는다>로 이어진다. 1부 ‘새’에는 소설가 화자가 등장하는데, 이 역시 거의 한강이다. 화자는 2014년 여름, 그러니까 ‘그 도시의 학살에 대한 책을 낸 지 두 달 가까이 지났을 때’, 어떤 꿈을 처음으로 꾼다. <소년이 온다>가 2014년 5월에 출간됐으니 정확하게 들어맞는 시점(時點)이다. 눈이 내리는 벌판에 서 있는 꿈. 벌판의 한쪽 끝부터 이어지는 산등성이에서부터 수천 그루의 검은 통나무들이 봉분들 앞에 묘비처럼 심겨 있는 꿈. 그런데 지평선인 줄 알았던 벌판의 끝에서 바닷물이 밀려들어 무덤들을 휩쓸고, 바닷물이 더 들이치기 전에 뼈들을 옮겨보려 하지만, 어찌할 도리가 없어 검은 나무들 사이를 달릴 수밖에 없는 꿈. 소설의 어떤 부분은 배우의 연기와 매우 비슷한 방식으로 작동한다. 배우 최민식은 <악마를 보았다>를 찍고 난 뒤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이웃 남자와 대화를 나누다 문득 ‘근데 이 새끼 왜 나한테 반말을 하지?’라고 생각하는 자신을 발견하고 놀랐다고 말했다. 소설가는 광주에 관한 소설을 쓰다 ‘화사하고 태연하고 낯설어 보이는 사람들’을 만나면 ‘사람이 얼마나 많이 죽었는데’라고 생각한다. 소설가는 물 위를 걷는 심정으로 사건과 인물이 지닌 우울의 늪에 빠지지 않고, 살아내야 한다. 그건 정말이지 너무도 위험한 일이고, 그걸 해낼 수 있는 건 소설가의 재능도 능력도 아닌 ‘권능’이다. <작별하지 않는다>에서 소설가 화자는 몇 번인가 개인적인 이별을 경험하고, 자살을 마음에 품는다. 죽음은 아슬아슬하게 유서까지 썼던 그의 곁을 비껴간다. 그것이 한강의 이야기라는 것을, 정확하게 같지는 않아도 매우 비슷하다는 것을 직감한다. 어떤 소설은 죽음을 곁에 두고 써야 써지는 것이라는 사실을 믿는다.

Credit

  • ILLUSTRATOR KASIQ
  • ART DESIGNER 김동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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