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YLE
Part2. 양동근이 <무빙> 촬영 현장에서 울었던 이유
양동근이 문득 생각났다는 듯 천천히 꺼내놓은 이야기들. 음악과 연기, 예술과 책임, 불완전한 삶과 늘 진실함 가까이에 살고자 했던 남자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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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트 호이테. 터틀넥 스튜디오 니콜슨 by 비이커. 팬츠 라프 시몬스 by 지 스트리트 494 옴므 플러스. 슈즈 질 샌더. 링 벨앤누보. 벨트, 키 체인, 이어커프 모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어쩌다 춤 얘기가 나와서 음악 이야기까지 다 하게 됐네요. 만약 인터뷰를 연기 이야기로 시작했다면 동근 씨 톤이 지금과는 달라지는 부분이 있었을까요?
그러게요. 춤이랑 음악 얘기로 시작하셔서 신기하고 좋았는데. 제가 좋아하는 것들이니까. 연기는 제가 그만큼 즐거워하는 주제는 아니거든요. 음악이나 춤에는 스낵처럼 즐길 수 있는 요소가 굉장히 많은 반면에 연기는 제가 좀 무겁게 대하는 것 같아요.
예전보다 좀 더 자유롭게 연기를 하시는 것 같다고 느꼈는데, 여전히 무거운 분야군요.
저는 사실 제 연기에 대해 사람들이 무슨 얘기를 하는지는 잘 몰라요. 최근에 제가 이렇다 할 작품을 내놔서 평이 나왔다거나 하는 것도 아니고, 댓글을 찾아본 적도 없고요.
예전에 비해 '숲'이 되어주는 역할, 작품의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다양한 캐릭터를 폭넓은 스타일로 소화하고 있잖아요.
그러네요. 딱 그거예요. 사실 저한테 연기 이야기를 할 때마다 늘 언급되는 게 드라마 <네 멋대로 해라>인데요. 그걸 촬영할 때는 그게 그런 작품이 될 줄 몰랐잖아요. 쉽게 말하면 저도 모르게 ‘찢어놓은’ 거죠. 저는 그걸 다시 붙이든지 더 찢든지 해야 하는데, 그 이상의 뭔가를 보여줘야 하는데, 그냥 꼬리표 같은 게 돼버린 거예요. 시트콤 <논스톱>에서 보여줬던 ‘구리구리’라는 캐릭터도 그렇죠. 그것들이 이미지가 너무 세서 그 이후로 다른 작품 이야기를 할 수가 없는 거예요. 20년이 지나도 사람들이 저를 보면 그 작품 잘 봤다는 이야기를 하니까 저는 그 앞에서 어떻게 반응을 해야 할지도 숙제였죠.
사람들에게는 가벼운 인사이거나 존경의 의미로 꺼내는 얘기일지라도 동근 씨에게는 굉장히 어려운 얘기군요.
그분들에게는 그게 좋은 기억으로 남아서 그렇겠죠. 그런데 저는 계속 새로워지고, 성장하고, 늙고, 다른 작품을 바라보고 있는데 사람들이 계속 다시 저를 그 작품으로 끌어다 놓는 느낌이 드는 거예요. 혹자는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죠. ‘그런 작품이 하나라도 있는 게 어디야. 감사해야지.’ 저도 알지만 당사자는 피부로 다가오는 게 그렇지가 않아요. 저는 사실 지나간 것들이 바로바로 포맷되는 편이거든요. 더구나 지금 저는 아빠로 살아가고 있잖아요. 배우로서, 음악인으로서의 삶이 절대적이었던 때를 떠나와서 어찌 보면 좀 부수적인 순위를 차지하게 된 시기예요. 제 내면의 틀을 부수고 탈피하고 마인드셋을 하는 과정이 굉장히 길었거든요. 내가 어떤 작품을 했지, 이런 랩을 했지, 그런 에너지로는 제가 더 이상 삶을 살아갈 수가 없었으니까. 결혼을 하고 애를 낳고 하는 과정에서 제가 그냥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방법도 잘 모르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된 거예요. 그 부족한 걸 계속 찾아내다 보니까 사람들이 말하는 기억 속의 음악인 양동근, 배우 양동근은 정말 부차적인 부분이 되었고요. 저에게 지금 가장 중요한 건 꾸준히 일을 해서 애들을 잘 키우고 가정을 잘 가꾸는 거죠.
사람들이 보는 양동근과 인간 양동근의 삶 사이의 괴리군요.
네. 그런데 그건 아무리 얘기해도 사람들을 이해시킬 수는 없는 부분인 것 같아요. 제가 20대 때는 그걸 너무 전하고 싶었어요. 매번 답답해하고.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야.’ 하지만 아무리 해도 전할 수가 없는 부분이더라고요. 나이가 들면서 그걸 이해하게 됐고, 이제 사람들의 입장에서 이해하는 부분도 생겼죠.

재킷 에스티유 오피스. 셔츠 코스. 팬츠, 허리에 묶은 저지 재킷 이로. 레드 네크리스 포트레이트 리포트. 링 마르스마크. 실버 체인 네크리스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사람들은 자꾸 20년 전 동근 씨의 연기 이야기를 하는데, 동근 씨는 최근 인터뷰에서 지금이 ‘배우로서의 전성기’인 것 같다는 얘기를 하기도 했어요.
그렇습니다. 30년 기다렸습니다. 제가 연기에 대해서도 어릴 때부터 선배들에게 많이 물어본 것 같아요. 어떤 게 연기인가, 어떤 게 배우인가. 그런데 그때 들은 말 중에 이런 말이 있었거든요. ‘남자 배우는 마흔 이후부터가 진짜야.’ 제가 활동을 일찍 시작해서 그걸 열 살 때부터 들은 거죠. 그래서 기다린 거예요. 기다리는 동안 정점도 있었고 바닥도 있었는데, 오랫동안 바닥을 치고 발악을 한다는 느낌이 들 때 다행히 그 말이 기억이 났어요. ‘그래, 마흔 이후부터야.’ 그 말에 큰 힘을 얻었고, 현실에서는 아무것도 없는데도 그렇게 믿으니까 뭔가 피부로 와닿는 느낌이 있더라고요. 제가 오래전에 아역에서 성인 연기자로 넘어가는 과도기를 겪었는데, 사실 젊은이에서 중년 배우로 넘어갈 때에도 그만큼의 어려움이 있거든요. 그런데 이렇게 일을 많이 할 수 있게 됐으니까 전성기죠. CF 많이 찍고 많은 사람이 기억해주는 작품을 했던 때와는 또 다른, 일을 많이 할 수 있는 전성기.
연기에 대한 이해 측면에서도 달라진 부분이 있어요?
그건 시기에 따라 늘 달랐던 것 같아요. 제가 20대 때는 정말 로봇처럼, 제 안에서 철저하게 계산을 끝내고 현장에 갔거든요. 대사 숙지뿐만 아니라 감정을 그래프처럼 짜고 모든 걸 철두철미하게 계산한 거예요. 그래서 그때는 현장에서 급하게 대본 확인하고 외우는 선배님이 있으면 이해를 못 했어요. 그때의 저한테는 그 모습이 연기를 대충 하는 듯한 인상을 준 거죠. 저는 다 계산되어 있어야 했으니까. 그런데 사실 가정이 있고 애들이 있으면 집에서 대본을 보기가 힘들거든요.
이제 그 입장이 되셨네요.
그 입장이 되어보니까 뭔가가 제 머리를 딱 때리는 거죠. 아, 내가 어릴 때 가진 연기에 대한 생각은 정말 얕았구나. 시간이나 공을 들이는 에너지 측면에서만 따지면 안 되는 거였구나. 그래서 연기를 대하는 제 태도도 정말 많이 바뀌었죠. 예전에는 철저한 계산으로 답을 도출하는 연기를 추구했다면 지금은 ‘의외성’에 좀 더 중점을 두는 것 같아요. 대본이 갖고 있는 힘을 믿고, 감독님을 믿고, 모두를 믿고. 사실 특정 장면을 보면서 각자가 느끼는 부분은 연기자가 의도하고 표현한 것이 아닐 때가 굉장히 많거든요.
사실 제가 어제 늦게까지 <무빙>을 계속 보다 왔는데요. 언제쯤 동근 씨가 나올까만 기다리면서.
(웃음) 속으셨네요.(양동근이 연기한 정준화는 <무빙>의 극 후반부에 등장하는 빌런 캐릭터로, 화보 촬영 당일까지 방영분이 없었다.) 저 그런데 그 작품 찍고 울었어요.
왜요?
여섯 살 때였던가. <주말의 명화>에서 처음 본 영화가 <슈퍼맨>이었거든요. 그래서 그때 꿈이 슈퍼맨이었어요. 형이 “야 저거 다 가짜야 줄 매달고 하는 거야” 하면서 초를 치는 바람에 순식간에 부서지긴 했지만요. 그런데 이번에 하늘을 나는 초능력을 가진 캐릭터를 맡았잖아요. 촬영 장면을 모니터링하는데, 그 장면이 순간적으로 여섯 살 때의 저와 관통하더라고요. ‘여섯 살의 어린 양동근이 TV에 나오는 걸 보며 막연한 꿈을 가졌는데 지금 마흔네 살이 된 내가 이러고 있네?’ 그게 제가 저 멀리서 날아오는 걸 롱테이크로 잡은 장면이었거든요. 그런 장면을 가진 배우는 세상에 정말 몇 없을 거잖아요. 그때 애들 셋 다 촬영하는 모습을 보러 왔는데, 애들한테도 자랑했죠. “야, 아빠 날지?” 그러고는 밖에 나가서 좀 울고.
어릴 때 아빠가 나는 장면을 본 아이도 세상에 몇 없겠죠.
그러니까요. 그 부분도 너무 감격스러웠어요. 그랬다는 것도 제가 잊고 있었네요. 이렇게 작품은 한번 지나가면 잊히거든요. 저는 삶으로 빨리 복귀해야 하니까. 제 배우 인생의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순간이었는데도 말이죠.
<오징어 게임> 시즌2의 캐스팅 소식도 최근에 큰 화제가 됐어요. 그건 동근 씨에게도 의미가 있는 일일까요?
큰 포인트죠. 인생의 큰 점 같은. 사실 <오징어 게임> 시즌2 섭외 이후로는 제가 계속 제 마음을 가라앉히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작품을 찍기도 전에 이렇게 축하를 받는 건 난생처음이라, 저도 들뜨게 되는 부분이 있더라고요. 회사에서도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일단 영어 공부를 해두라고 하고.(웃음) 저는 흥행도 크게 해봤고 낙심해서 보낸 시간도 길었고, 앞일은 알 수 없는 거라는 방어 기제가 제 안에 있거든요. 그런데 사람들은 다들 무작정 ‘축하한다’고 하니까, 어떻게 답을 해야 할지도 잘 모르겠어요.
새로운 숙제군요.
숙제죠.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20년 동안 저를 따라다닌 <네 멋대로 해라> 꼬리표를 뗄 수 있게 된 것 같아 좋기도 하고요. 사람들이 저한테 연기 이야기를 할 때 새로운 작품 이야기를 하게 된 거잖아요. 곤란한 건 양쪽 다 마찬가지지만, 적어도 제 과거의 영광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미래에 대한 기대를 말하게 된 거죠. 축하를 받을 일인지는 몰라도, 감사한 일은 확실히 맞는 것 같아요.
Credit
- EDITOR 오성윤
- PHOTOGRAPHER HYEA W. KANG
- STYLIST 박선용
- HAIR & MAKEUP 김환
- ASSISTANT 송채연
- ART DESIGNER 김동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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