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퍼렐 윌리엄스의 루이비통과 위켄드의 <디 아이돌>, 그 결정적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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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센스>는 그냥 잡지가 아니다. ‘흑인 여성의 라이프스타일’을 표방하는 매체다. 단 한 번도 흑인 여성이 아닌 모델이 커버를 장식한 적이 없는 매거진이다. 셸튼 그리프스가 이 매체 전체를 대변하는 것은 아니겠으나, 블랙 커뮤니티에서도 퍼렐의 영전을 축하만 하는 건 아닌 게 분명하다. 핵심은 결국 ‘디자이너’다. 펜 선 하나로 런웨이를 수놓을 드레스의 질감까지 표현할 줄 아는 사람들, 흔한 나일론 천을 메트 갈라 의상으로 탈바꿈할 수 있는 사람들. 그중에서도 루이 비통에 들어갈 만큼 최고의 기술력을 가진 사람들을 퍼렐이 이끌어도 되겠느냐는 말이다. 그가 자신의 브랜드를 운영할 순 있다. 그렇다고 그가 전문가는 아니지 않은가? 패션 잡지 <스프레차(Sprezza)>의 편집장 클레이튼 체임버스는 “유명 연예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전통적인 패션하우스의 CD가 될 수 있다는 잘못된 선례를 우려하는 이들에 공감한다”고 말했다. 그녀의 머릿속엔 손이 부르터가며 천을 다뤄온 패션 업계 종사자들의 노고가 훤하게 그려졌을 것이다.
여론이 바뀐 건 퍼렐의 첫 컬렉션이 공개된 이후였다. 파리 패션위크 첫날인 6월 20일 공개된 그의 2024 루이 비통 S/S 컬렉션은 기대 이상의 반응을 이끌어냈다. 특히 다미에 패턴과 카무플라주를 섞은 ‘다머플라주’의 우아함은 정말 신선했으며, 버질 아블로의 유산인 스트리트 웨어의 유전자들 역시 두 계단쯤 진화한 듯 보였다. 그러나 짧은 나의 취향으로 퍼렐의 성공을 판단할 순 없다. 트위터 역시 칭찬 일색이었으나, 퍼렐 팬클럽이 피드를 장악했을지도 모른다는 음모론적인 의구심이 들어 패션 척척석사 임일웅 에디터에게 의견을 물었다. “좋았어요!” 그는 퍼렐의 컬렉션이 그간의 우려를 불식할 만큼 꽤 안정적이었다고 말했다. “버질 아블로의 세계관에서 더 나아갔고, 퍼렐만의 베리에이션이 더해졌어요.” 이후 실제로, 퍼렐을 향한 부정적인 반응은 쑥 들어갔다.
퍼렐처럼 깊게 공부하거나 해당 업계에 종사한 바가 없음에도 이렇게 리더가 되어 성공적인 결과물을 낼 수 있다면 사실 전문성이란 아무 의미가 없는 건 아닐까? 문득 코딩을 하나도 못 하면서도 애플을 이끌었던 스티브 잡스가 떠올랐다. 퍼렐과 함께 미국 최고의 패셔니스타로 꼽히던 카니예 웨스트(현재 이름 Ye) 역시 패션에 전문성은 없었으나 직접 디자인한 스니커부터 의류까지 다양한 제품을 내놓지 않았나. 어쩌면 유명세가 전문성보다 더 큰 소구력을 가지는 건 아닐까?
“그렇다기에 카니예는 굉장히 긴 시간 트렌드를 이끌어왔거든요. 그냥 유명세로 만들어낸 직위는 오래가지 않잖아요. 린제이 로한이 엠마누엘 웅가로 디자이너였을 때 쏟아진 혹평을 떠올리면 알 수 있죠.” 의류학과를 졸업하고 국내 의류회사에서 MD를 하고 있는 30대 여성의 말이다. 그녀는 단순한 유명인이 아닌 ‘아티스트’가 가진 ‘감각’에 대해 말했다. “업계가 패션 전문가가 아닌 다른 분야 아티스트에게 ‘작위’를 부여하는 건, 그들이 가진 분명한 영감이 있기 때문일 거예요. 그들의 창의성에 조직의 다른 사람들이 전문성을 더해 훌륭한 작품을 만들어내는 거죠.”
문득 카니예의 일생을 다룬 다큐멘터리 <지니어스>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스스로를 창의적인 천재라고 칭하는 그지만, 그는 혼자서 모든 일을 결정하진 않는다. 끄적끄적 열심히 스니커즈 디자인을 그린 카니예는 제작에 앞서 전문성을 빌릴 수 있는 이들을 찾는다. 재질, 밑창, 착화감, 원단, 안전성 등 다양한 측면에서 구현 가능성과 문제점을 상세히 듣고 디자인을 차츰 개선한다. 현재 각종 브랜드와 빚고 있는 갈등과는 별개로 ‘베이프(BAPE)’와의 협업부터 이지부스트까지, 그가 디자인한 스니커즈가 지난 20년 내내 선풍적 인기를 구가해온 것은 그의 ‘감각’ 위에 전문가의 실력이 더해진 결과라는 점이 납득이 갔다.
옆자리의 오성윤 에디터는 밴드 자미로콰이를 다룬 다큐멘터리 <애비로드 라이브>를 언급했다. “보컬 제이 케이는 즉석에서 떠오른 멜로디를 흥얼흥얼 부르다가 키보드 맷 존슨에게 ‘이것대로 만들어와’라고 해요. 존슨은 열심히 만들어 가지만, 케이는 곧바로 ‘응 아니야~ 다시’라는 반응이죠.” 듣기만 해도 생짜증이 난다. 그러나 재미있는 건 존슨이 그다음에 하는 말이다. “신기하게도 고생 끝에 케이의 오케이를 받는 곡은 진짜로 너무 좋다는 거죠.” 슈프림 팀의 노래 ‘Do’의 가사가 떠올랐다. ‘음표를 몰라도 가수가 될 수 있어.’ 케이가 그 실례인 셈이다. 하지만 음표를 모르는 케이가 가수인 것만큼 중요한 건, 케이의 옆에 음표를 아주 잘 아는 존슨이 있다는 사실일 것이다.
퍼렐의 작업 방식을 직접 본 바는 없으나, 최근 공개된 인터뷰를 통해 짐작할 수는 있다. “루이 비통에서 진행하는 모든 것이 컬래버레이션이에요. 제 아이디어를 쓰지만, 동시에 저보다 전문성을 갖춘 수많은 이들로부터 여러 가지 다른 방법과 관점에 대해 배우거든요. 모든 결정 뒤에는 장인들의 손길이 닿아 있어요.” 루이 비통이 바랐을, 가장 바람직한 방법이다. 그러니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균형이다. 린제이 로한의 웅가로처럼 어떤 영감도 안 담겨 있다면 그건 또 다른 잣대로 다뤄야 할 일이다. 또 그 반대로 자신의 감을 지나치게 독단적으로 발휘할 경우 유명세를 빌리기만 한 것보다 못한 꼴이 나기도 한다. 최근의 적당한 예는 아마 가수 위켄드가 제작에 극본도 쓰고 출연까지 겸한 드라마 <디 아이돌>일 것이다. 칸 영화제 비경쟁 부문에 진출했다던 이 작품은 시즌2는커녕 원래 방송분보다 한 편을 줄여 조기 종영하며 그야말로 깨끗하게 망했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자신의 감을 과하게 믿은 위켄드의 오만이 있었다.
<롤링 스톤>에 따르면 위켄드는 연출을 맡은 에이미 세이메츠 감독을 촬영 막바지에 내쫓았다. 과하게 컬트적이고 여성적 관점에서만 진행된다는 이유를 댔지만, 또 다른 이유는 자신보다 여자 주인공의 비중이 더 크기 때문이었다. 촬영분은 폐기됐고, 당연하게도 위켄드의 입김은 세어졌다. 작품의 방향성은 완전히 바뀌었고, 쪽대본이 쏟아졌으며, 재촬영에 재촬영이 이어지며 제작비만 늘어갔다. 불만을 품은 제작진이 그의 폭정을 폭로하며 이 끔찍한 망작의 비화가 세간에 알려진 것이다.
“한국은 나름 분권이 잘되어 있거든요. 작품 전반을 주도하는 건 작가지만, 연출이나 배우가 수정을 요청하면 최대한 맞춰요.” 최근 인기리에 방영된 드라마의 기획 PD로 일한 30대 여성의 말이다. “제아무리 업계 톱인 작가라도 연출을 하지 않고, PD가 극본을 쓰는 일도 드물죠. 이제는 각자 잘하는 걸 해서 모아놓는 게 가장 나은 결과물이 나온다는 걸 모두가 알고 있으니까요.” 그렇다. 남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 것. 그것이 어쩌면 퍼렐을 CD로 뽑느냐 마느냐보다 중요한 요소가 아닐까? 그녀는 오히려 나에게 물었다. “미국도 크게 다르진 않을 것 같은데, 위켄드는 왜 그랬을까요?” 그러게… 정말 위켄드는 왜 그랬을까?
김현유는 <에스콰이어 코리아> 피처 에디터다.
Credit
- EDITOR 김현유
- WRITER 김현유
- ILLUSTRATOR MYCDAYS
- ART DESIGNER 주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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