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렌티노 가라바니가 패션계에 남긴 순간과 우리가 몰랐던 이야기
발렌티노를 레드 드레스와 우아함으로만 정의하기엔 그의 세계는 훨씬 깊습니다. 소년 시절의 기억에서 시작된 색과 상류 사회 한복판에서 살아낸 삶, 창작과 경영의 완벽한 파트너십부터 알레산드로 미켈레의 합류 이후 새 변화를 맞은 현재까지. 발렌티노 가라바니가 남긴 유산과 브랜드의 흐름을 다섯 장면으로 정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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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페라 극장에서 본 붉은 드레스는 훗날 발렌티노 레드라는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 그는 상류 사회의 중심에서 살았고, 그 세계의 감각을 쿠튀르에 담아냈다.
- 메종의 세계적 성공은 창작자 발렌티노와 전략가 지안카를로 지아메티의 협업에서 비롯됐다.
- 2008년 은퇴 무대는 한 시대의 쿠튀르를 스스로 정리한 역사적 장면이었다.
- 오늘날 발렌티노는 미켈레와 함께 또 다른 장을 써 내려가고 있다.
1997년 파리 패션쇼 런웨이에 등장한 발렌티노 가라바니의 모습. / 이미지 출처: 게티 이미지.
1974년, 발렌티노 이탈리아 로마 본사에서 찍은 사진. 이미지 출처: 게티 이미지.
지난 1월, 발렌티노 가라바니가 향년 93세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는 1960년 로마에서 자신의 이름을 건 하우스를 연 뒤 반세기 넘게 오트 쿠튀르의 정점을 지켜온 인물이었는데요. 완벽에 가까운 테일러링과 절제된 실루엣, 그리고 무엇보다 강렬한 레드 드레스는 그의 이름을 곧 하나의 미학이자 시대의 아이콘으로 만들었죠. 하지만 우리가 기억하는 화려한 이미지 뒤에는 조금 더 인간적인 이야기들이 존재합니다. 한 소년의 기억에서 시작된 색, 실제 귀족처럼 살았던 삶, 보이지 않는 동업자의 전략, 영화 같은 은퇴, 그리고 오늘날 메종과의 미묘한 거리감까지. 우리가 미처 깊이 들여다보지 않았던 다섯 가지 장면을 정리하여 소개합니다.
1. 발렌티노의 시그너처 레드 컬러는 오페라 극장에서 시작됐다.
2007년 아라 파치스 박물관에서 열린 자신의 대표작 전시회에서 포즈를 취하고있는 발렌티노 가라바니. / 이미지 출처: 게티 이미지.
2023년 멧 갈라쇼에 발렌티노의 제작 의상을 입고 참석한 페드로 파스칼의 모습. / 이미지 출처: 발렌티노.
사람들은 발렌티노를 떠올릴 때 앞다퉈 가장 먼저 발렌티노 레드를 말합니다. 그러나 이 상징적인 컬러는 처음부터 계획된 것은 아니었는데요. 그는 어린 시절 오페라를 관람하던 중, 어두운 객석 속에서 유독 선명하게 빛나던 한 여인의 붉은 드레스에 완전히 매료됐다고 말했었죠. 이 경험은 그의 색채 감각을 결정지은 순간이 되었고, 이후 컬렉션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한 붉은 드레스들은 자연스럽게 하우스의 시그너처가 됐습니다. 이 컬러는 단순히 강렬한 색이 아니라, 주홍빛이 섞인 깊고 관능적인 톤으로, 발렌티노가 추구한 화려함과 관조적인 우아함을 동시에 담고 있죠. 그의 마지막 쿠튀르 컬렉션 피날레에서 다시 한번 붉은 드레스가 등장한 것은, 이 색이 곧 그의 인생이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라고 알 수 있듯이 말입니다.
2. 그는 실제로 귀족처럼 살았다.
1976년, 스페셜 올림픽 기금 마련 행사에 참석한 발렌티노 가라바니와 제35대 미국 대통령의 배우자인 재클린 케네디 오나시스의 모습. / 이미지 출처: 게티 이미지.
1974년, 로마에 있는 자신의 아파트 소파에 기대어 앉아 있는 발렌티노 가라바니의 모습. / 이미지 출처: 게티 이미지.
1974년, 뉴욕의 한 스튜디오에서 친구들과 함께 펠리니 감독의 영화 '광대들'에 나오는 의상을 입고 46번째 생일 파티를 열었다. / 이미지 출처: 발렌티노.
발렌티노의 삶은 흔히 디자이너라기보다 유럽 귀족의 라이프스타일에 가까웠습니다. 로마부터 파리, 뉴욕, 제네바 등을 오가며 거주했고, 프랑스에는 성까지 소유했다죠. 개인 요트를 타고 지중해를 항해했고, 수십 마리의 퍼그와 함께 생활하기도 했습니다. 그의 사교 범위 역시 남달랐는데요. 패션계를 넘어 왕족과 할리우드 스타와도 자연스럽게 교류하며 친분을 쌓았었죠. 엘리자베스 테일러, 오드리 헵번, 다이애나 왕세자빈까지 당대의 아이콘들이 그의 드레스를 선택할 정도로 그의 인기는 대단했었죠. 이런 삶의 경험은 그의 디자인에 그대로 반영됐는데요. 발렌티노의 옷은 판타지 속 의상이 아닌 실제 상류 사회의 삶에 맞춰진 현실적인 쿠튀르처럼 보였습니다. 그의 드레스가 시대를 넘어 우아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트렌드를 좇기보다 자신이 속한 세계 속 미적 감각을 옷에 담았기 때문입니다.
3. 브랜드의 성공 뒤에는 오랜 사업파트너, 지안카를로 지아메티가 있었다.
1970년, 코비 어워드 수상을 위해 뉴욕에 함께 방문을 한 지안카를로 지아메티와 발렌티노 가라바니. / 이미지 출처: 게티 이미지.
발렌티노를 이야기할 때 종종 언급되는 인물이 있습니다. 그의 평생의 동반자이자 사업 파트너였던 지안카를로지아메티인데요. 지아메티는 브랜드 운영부터 재정 관리, VIP 관리까지 책임졌던 인물이었고, 그렇기에 발렌티노는 오롯이 창작에 몰두할 수 있었습니다. 1960~70년대 이탈리아 쿠튀르가 세계 무대에서 경쟁력을 가질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이 두 사람의 명확한 역할 분담과 신뢰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죠.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메종 발렌티노는 타고난 창작물만이 아닌, 파트너십의 성공적인 결과물에 가깝죠.
4. 그는 패션계에서 가장 영화 같은 은퇴를 한 디자이너다.
맷 타이노어 감독이 연출한 다큐멘터리 <발렌티노: 마지막 황제>의 포스터 이미지. / 이미지 출처: 발렌티노.
1976년 뉴욕 피에르 호텔에서 열린 스페셜 올림픽 자선 패션쇼에서 발렌티노 남성복을 입은 모델의 모습. / 이미지 출처: 게티 이미지.
1992년 봄 시즌 남성 컬렉션 이미지 / 이미지 출처: 발렌티노.
2008년, 그는 로마에서 열린 오트 쿠튀르 쇼를 끝으로 공식 은퇴를 선언했습니다. 피날레에는 수십 벌의 레드 드레스가 런웨이를 가득 메웠고, 그는 기립박수 속에서 마지막 인사를 건넸었죠. 그 장면은 다큐멘터리 <Valentino: The Last Emperor>에 고스란히 기록됐습니다. 제목 그대로 마지막 황제라는 수식이 어색하지 않을 만큼 장엄한 퇴장이었죠. 그의 마지막 무대는 단순한 여성 쿠튀르 컬렉션의 피날레가 아니었습니다. 정교한 테일러링으로 다져온 남성복 라인 역시 그의 미학을 증명해온 또 하나의 축이었기에, 그가 내려놓은 것은 한 시즌이 아니라 브랜드 전체를 관통하던 뛰어난 감각과 장인정신에 가까웠다고 볼 수 있죠.
5. 알레산드로 미켈레가 전개하는 발렌티노의 미래.
2025년 9월에 공개된 발렌티노 가라바니와 반스의 첫 번째 협업 컬렉션 캠페인 화보. / 이미지 출처: 발렌티노.
25SS 피날레 쇼에서 인사를 하는 알레산드로 미켈레의 모습. / 이미지 출처: 게티 이미지.
2024년 6월에 공개된 알렉산드로 미켈레의 발렌티노 데뷔 컬렉션, 2025 리조트 컬렉션 룩 이미지. / 이미지 출처: 발렌티노.
2024년 6월에 공개된 알렉산드로 미켈레의 발렌티노 데뷔 컬렉션, 2025 리조트 컬렉션 룩 이미지. / 이미지 출처: 발렌티노.
현재의 발렌티노는 창립자 발렌티노 가라바니가 구축한 고전적 쿠튀르의 이미지와는 결이 다릅니다. 균형 잡힌 실루엣과 절제된 우아함으로 상징되던 이미지는 최근 몇 시즌 동안보다 복합적인 스타일링과 장식성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는데요. 특히 알레산드로 미켈레가 합류한 이후 그 변화는 구체적인 형태로 드러났죠. 그의 데뷔 컬렉션인 리조트 컬렉션은 1970년대적 감수성과 르네상스풍의 디테일 그리고 빈티지한 자수, 리본과 러플 등 장식 요소를 전면에 배치하며 하우스 아카이브를 다른 시각으로 해석했습니다. 남성과 여성의 구분을 흐리는 실루엣, 과감한 레이어링, 풍부한 텍스처의 혼합 역시 인상적이었죠. 더불어 반스와의 협업은 이러한 방향성을 보다 분명히 보여줬죠. 클래식한 쿠튀르 하우스가 스케이트 문화의 상징과 손잡았다는 점에서 화제를 모았고, 이는 단순한 로고 활용을 넘어 브랜드가 젊은 서브컬처와 접점을 넓히고 있음을 드러냈습니다.
이 같은 변화는 단순한 세대교체를 넘어, 발렌티노에 새로운 장을 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알레산드로 미켈레가 데뷔 컬렉션에서 선보인 룩들은 브랜드의 이미지를 단번에 환기했는데요. 아카이브를 동시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한 그의 접근은 하우스에 신선한 긴장감과 서사를 더했고, 이는 자연스럽게 브랜드에 대한 새로운 관심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죠. 이제 발렌티노는 과거의 상징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닌, 미켈레가 앞으로 펼쳐갈 다음 챕터를 기대하게 만든 브랜드로 자리 잡은 것이죠.
Credit
- PHOTO 각 캡션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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