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용의 예술활동 50주년을 기리는 대형 전시가 페이스 갤러리에서 열린다
한국의 실험미술, 행위미술, 개념미술의 방향성을 바꾼 작가 이건용은 올해로 예술활동 50주년을 맞았다. 그의 언어가 어떻게 다른지를 이해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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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간담회에서 '장소의 논리'를 재연하는 이건용 작가.
바닥에 원을 그린다. 널빤지 위에서라면 백묵으로, 흙바닥 위에서라면 나뭇가지로. 원 바깥에 서서 원의 내부를 가리키며 “저기”라고 외친다. 원 안으로 들어가 바닥을 가리키며 “여기”라고 외친다. 원을 빠져나와 팔을 어깨 뒤로 넘겨 원 안을 가리키며 “거기”라고 외친다. 다시 원 안으로 들어가 “여기”라고 말한다. 원 밖으로 나가 팔을 어깨 뒤로 넘겨 원 안을 가리키며 “거기”라고 말한다. 원의 선을 밟으며 돌면서 “어디, 어디, 어디”라고 외친다. 선이 있기 전까지는 이름이 없던 공간이 선 하나를 통해 분리되며 논리가 생긴다. 걸어가기 전까지는 저기였던 곳이, 걸어 들어가면 여기가 되고, 지나오고 나면 거기가 된다.
이건용의 이벤트 ‘장소의 논리’의 설명이다. 이건용은 자신의 신체로 벌이는 사건을 해프닝이나 퍼포먼스가 아닌 ‘이벤트’로 지칭했다. 이벤트에서 중요한 것은 그 결과가 아닌 행위의 구조이며, 그에게 미술은 우연적 표현의 세계가 아닌 필연적 논리의 세계다. 신체를 하나의 측정 도구로 삼거나 인식의 매개, 사고 실험의 현장으로 만드는 이건용의 방법론은 행위예술보다 개념미술에 더 가깝고, 1975년에 초연한 ‘장소의 논리’는 그의 논리성을 선명하게 선언하는 작품이다.
'드로잉의 방법 76-3', 1976/2026. © Lee Kun-Yong, courtesy Pace Gallery
앞으로 한 달 반 동안 우리는 이건용의 이벤트의 세계를 꽤 깊게 감상할 수 있다. 페이스갤러리에서 이건용 개인전 《사유하는 몸》을 2월 5일부터 3월 28일까지 개최해서다. 작가의 예술 활동 50주년을 기념해 기획된 이번 전시는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바디스케이프’, ‘달팽이 걸음’ 등의 연작을 포함해 1970년대 중반에 초연된 초기 이벤트의 기록들을 주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1층부터 3층까지 갤러리 전체를 할애해 기록 영상과 사진, 작업 노트 등 역사적 의의가 깊은 아카이브 자료를 함께 선보인다. 전시는 작가의 작업 세계를 관통하는 ‘신체와 논리’에 대한 문제의식을 중심으로, 한국 아방가르드 미술의 전개 속에서 이건용의 실천이 갖는 의미를 새롭게 조망한다.
그가 택한 방법의 이유를 생각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1970년대 한국은 사회 전반에 작동하던 통제와 검열로 인해 예술의 의미와 의도가 쉽게 정치적 해석의 대상으로 귀결되던 환경이었다. 이러한 조건 속에서 그는 작품이 감정이나 표현, 메시지로 독해될 가능성을 의도적으로 비껴가고자 했다. 그는 특정한 조건과 규칙에 기반한 논리적 구조를 설정한 뒤, 그것을 자신의 신체를 통해 수행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1970년대 중반부터 신체를 매개로 한 수행을 본격화한 그는 이를 ‘퍼포먼스’가 아닌 ‘이벤트’, 이후에는 ‘로지컬 이벤트(Logical Event)’로 지칭했다. 걷기, 먹기, 손의 움직임과 같은 일상적 행위는 단순히 즉흥적 제스처가 아니라, 신체·공간·시간의 관계가 작동하는 방식을 드러내는 형식적 실험으로 확장되었으며, 작가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다양한 매체로 이어왔다.
'건빵 먹기', 1977/2026. © Lee Kun-Yong, courtesy Pace Gallery
이건용에게 퍼포먼스의 기록은 행위 이후에 남겨진 부산물이 아니라, 기존에 설정된 논리를 다시 읽고 재구성하는 또 다른 단계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동일면적’(1975), ‘실내측정’(1975)의 초연 영상과 함께, ‘건빵먹기’(1977), ‘화랑 속의 울타리’(1977), ‘손의 논리 3’(1975) 등 당시의 수행을 기록한 사진들을 작품으로서 처음 공개한다.
이건용의 퍼포먼스는 과거의 사건으로 고정되기보다, 기록을 통해 끊임없이 현재의 문제로 다시 독해된다. 신체를 통해 수행된 논리와 그 흔적은 관객으로 하여금 행위와 구조, 그리고 기록 사이의 관계를 차분히 따라가도록 이끈다. 아울러 전시 기간 중 이건용의 퍼포먼스가 두 차례 진행될 예정이다.
'성냥 켜기', 1975/2026.. © Lee Kun-Yong, courtesy Pace Gallery
이건용(1942년 사리원 출생)은 한국아방가르드협회(AG)의 주요 인물이자 한국 전위 예술 그룹 ST(Space and Time)의 창립 멤버로, 신체와 행위가 시간의 구조 안에서 어떻게 새롭게 인식될 수 있는지를 탐구해왔다. 1975년부터 스스로 이벤트(Event)라 명명한 행위 작업을 본격적으로 전개하며, ‘장소의 논리’(1975), ‘이어진 삶’(1977), ‘달팽이 걸음’(1979) 외 다수의 실연을 통해 신체를 세계를 인식하는 하나의 매체로서 활용했다. 가장 잘 알려진 연작 중 하나인 <바디스케이프(Bodyscape)>(1976~)는 이러한 방법론을 확장해 회화와 미술 제작의 기존 방식을 근본적으로 질문한다.
Credit
- PHOTO 페이스 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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