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스위켄드룸 김한샘 전시에서 찾은 사랑스러운 회의주의
이번 프리즈 디스위켄드룸의 부스에서도 김한샘을 만나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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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김한샘의 작품. 왼쪽부터 ‘Zeus’s Laughter’(2025), ‘Michael’s Skull’(2024), ‘Statue of Prayer’(2024), ‘Skull Bottle’(2024), ‘Podium’(2025).
<디아블로>라는 게임 시리즈가 있다. 용사, 드루이드, 강령술사, 혼령사 등의 캐릭터 중 하나를 골라 디아블로라는 악마를 죽이면 플레이어가 승리한다. 그런데 <디아블로 1>부터 <디아블로 3>까지 디아블로는 죽이고 또 죽여도 살아난다. 게다가 게임 방식도 킹받는다. 아이템을 얻기 위해 몬스터들을 끊임없이 사냥해야 한다. 게임 플레이어들은 이를 ‘앵벌이’라 부른다. 심지어 이 앵벌이는 다른 유사한 게임들과는 달리 ‘자동 사냥’ 기능으로 활성화할 수 없다. 작가 김한샘은 어느 날 <디아블로 4>를 하다가 이런 생각을 했다. 내가 왜 이걸 하고 있을까. 즐거우려고 하는 게 게임인데, 이 단순노동은 재미도 없는데, 나는 왜 이걸 하고 있을까. 거대한 바위를 산 위로 밀어올리기를 반복하는 시시포스의 이미지가 떠올랐다. 그런데 좀 더 알아보니, 시시포스는 <디아블로 4>를 하다가 화가 난 우리보다는 좀 더 멋지다. 그는 강의 신 아소포스의 딸을 제우스가 납치하자 이를 아소포스에게 알려 둘 사이에 싸움을 만들고, 이에 분노한 제우스의 명으로 자신을 잡으러 온 죽음의 신 타나토스를 제압해 감금했다. 죽음의 신의 부재 때문에 일이 다 꼬여버린 지옥의 신 하데스와 아무리 싸워도 병사들이 죽지 않아 전쟁다운 전쟁이 없어져 난감해진 전쟁의 신 아레스를 분노하게 했다. 이 모든 일이 실은 시시포스가 자신이 건국한 고린토스에 물길을 내기 위해 벌인 일이었다. 신들의 시스템에 저항하다 영원의 형벌에 갇힌 인간의 영웅. 화면 왼쪽 CRT 모니터에 보이는 백발남은 김한샘의 이번 전시 <NOWON>의 세계관에서 산꼭대기에 달한 바윗덩이를 다시 굴러 떨어뜨리고 시시포스를 비웃는 제우스의 모습이다. 김한샘은 “아무리 싸워도 승리할 수 없는 부조리한 삶의 반복”을 게임으로도 구현했다. 전시 중인 디스위켄드룸의 지하에선 벽면 하나를 가득 채운 영상 속에 자동 재생 플랫폼 게임(슈퍼마리오류의 컨트롤 게임)이 상영 중이다. 플레이어, 즉 게임의 영웅들은 다람쥐가 대왕 몬스터인 세계에서 끊임없이 죽고 또 죽는다. 다람쥐를 무찌르기 위해 용사들이 지나가는 길에는 먼저 죽은 영웅들의 해골이 널려 있다. 잔인하게도 영상 속 대왕 다람쥐의 실물 버전의 복부에는 한 용사가 허접한 애플 박스 포디엄을 쌓고, 그 위에 올라 나뭇가지로 가짜 승리를 축하하는 모습이 박제되어 있다. 아무에게도 승리는 없다. 혹은 아무도 아니다. 김한샘의 세계에서 다람쥐는 말한다. “노원”이라고. 그리고 그 ‘노원’은 김한샘이 2000년대에 머물러 있는 듯한, 거대 도시 서울의 변방인 노원구에서 살며 느낀 감정이기도 하다. 작가는 플랫폼 게임의 그래픽을 직접 디자인한 것은 물론 코딩했으며, 이를 실제로 플레이해 여러 번 죽는 장면을 녹화했다. “계속 죽어서 슬펐어요.” 작가의 말이다. 귀여운 다람쥐가 가상의 게임 속에서 죽어도 너무 여러 번 죽으면 슬프기 마련. 쓸데없는 비장미와 덧없는 감상주의로 치장하지 않고 유머러스하게 자신만의 방식으로 풀어낸 김한샘의 슬픔을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다.
Credit
- EDITOR 박세회
- PHOTOGRAPHER 정우영
- ART DESIGNER 김대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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