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디스위켄드룸 김한샘 전시에서 찾은 사랑스러운 회의주의

이번 프리즈 디스위켄드룸의 부스에서도 김한샘을 만나볼 수 있다.

프로필 by 박세회 2025.09.02
모두 김한샘의 작품. 왼쪽부터 ‘Zeus’s Laughter’(2025), ‘Michael’s Skull’(2024), ‘Statue of Prayer’(2024), ‘Skull Bottle’(2024), ‘Podium’(2025).

모두 김한샘의 작품. 왼쪽부터 ‘Zeus’s Laughter’(2025), ‘Michael’s Skull’(2024), ‘Statue of Prayer’(2024), ‘Skull Bottle’(2024), ‘Podium’(2025).

<디아블로>라는 게임 시리즈가 있다. 용사, 드루이드, 강령술사, 혼령사 등의 캐릭터 중 하나를 골라 디아블로라는 악마를 죽이면 플레이어가 승리한다. 그런데 <디아블로 1>부터 <디아블로 3>까지 디아블로는 죽이고 또 죽여도 살아난다. 게다가 게임 방식도 킹받는다. 아이템을 얻기 위해 몬스터들을 끊임없이 사냥해야 한다. 게임 플레이어들은 이를 ‘앵벌이’라 부른다. 심지어 이 앵벌이는 다른 유사한 게임들과는 달리 ‘자동 사냥’ 기능으로 활성화할 수 없다. 작가 김한샘은 어느 날 <디아블로 4>를 하다가 이런 생각을 했다. 내가 왜 이걸 하고 있을까. 즐거우려고 하는 게 게임인데, 이 단순노동은 재미도 없는데, 나는 왜 이걸 하고 있을까. 거대한 바위를 산 위로 밀어올리기를 반복하는 시시포스의 이미지가 떠올랐다. 그런데 좀 더 알아보니, 시시포스는 <디아블로 4>를 하다가 화가 난 우리보다는 좀 더 멋지다. 그는 강의 신 아소포스의 딸을 제우스가 납치하자 이를 아소포스에게 알려 둘 사이에 싸움을 만들고, 이에 분노한 제우스의 명으로 자신을 잡으러 온 죽음의 신 타나토스를 제압해 감금했다. 죽음의 신의 부재 때문에 일이 다 꼬여버린 지옥의 신 하데스와 아무리 싸워도 병사들이 죽지 않아 전쟁다운 전쟁이 없어져 난감해진 전쟁의 신 아레스를 분노하게 했다. 이 모든 일이 실은 시시포스가 자신이 건국한 고린토스에 물길을 내기 위해 벌인 일이었다. 신들의 시스템에 저항하다 영원의 형벌에 갇힌 인간의 영웅. 화면 왼쪽 CRT 모니터에 보이는 백발남은 김한샘의 이번 전시 <NOWON>의 세계관에서 산꼭대기에 달한 바윗덩이를 다시 굴러 떨어뜨리고 시시포스를 비웃는 제우스의 모습이다. 김한샘은 “아무리 싸워도 승리할 수 없는 부조리한 삶의 반복”을 게임으로도 구현했다. 전시 중인 디스위켄드룸의 지하에선 벽면 하나를 가득 채운 영상 속에 자동 재생 플랫폼 게임(슈퍼마리오류의 컨트롤 게임)이 상영 중이다. 플레이어, 즉 게임의 영웅들은 다람쥐가 대왕 몬스터인 세계에서 끊임없이 죽고 또 죽는다. 다람쥐를 무찌르기 위해 용사들이 지나가는 길에는 먼저 죽은 영웅들의 해골이 널려 있다. 잔인하게도 영상 속 대왕 다람쥐의 실물 버전의 복부에는 한 용사가 허접한 애플 박스 포디엄을 쌓고, 그 위에 올라 나뭇가지로 가짜 승리를 축하하는 모습이 박제되어 있다. 아무에게도 승리는 없다. 혹은 아무도 아니다. 김한샘의 세계에서 다람쥐는 말한다. “노원”이라고. 그리고 그 ‘노원’은 김한샘이 2000년대에 머물러 있는 듯한, 거대 도시 서울의 변방인 노원구에서 살며 느낀 감정이기도 하다. 작가는 플랫폼 게임의 그래픽을 직접 디자인한 것은 물론 코딩했으며, 이를 실제로 플레이해 여러 번 죽는 장면을 녹화했다. “계속 죽어서 슬펐어요.” 작가의 말이다. 귀여운 다람쥐가 가상의 게임 속에서 죽어도 너무 여러 번 죽으면 슬프기 마련. 쓸데없는 비장미와 덧없는 감상주의로 치장하지 않고 유머러스하게 자신만의 방식으로 풀어낸 김한샘의 슬픔을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다.

Credit

  • EDITOR 박세회
  • PHOTOGRAPHER 정우영
  • ART DESIGNER 김대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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