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키 준지 치프 블렌더가 말하는 닛카 위스키의 철학
과거의 원액들로 현재의 도전에 호응하고, 미래를 위해 새로운 원액을 남긴다. 이 모두가치프 블렌더의 역할이다. 올해 초 한국에 정식 출시한 닛카 위스키의 치프 블렌더 이세키 준지를 만나 세대를 연결하는 위스키의 철학에 대해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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닛카 위스키는 이미 한국 위스키 팬들에게 익숙한 브랜드입니다. 개인적으로도 일본을 여행할 때 늘 마셔왔고, 사온 적도 여러 번 있지요. 그러나 정식으로 한국에 진출한 것은 처음이죠.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이번에 한국 방문 일정을 계기로 한국 본토의 음식들을 처음 접했는데, 우리 위스키가 한국 소비자들에게 어떤 반응을 얻을지 매우 궁금합니다. 누가 좀 알려줬으면 좋겠어요.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요이치가 숯불에 구운 한우, 특히 안심과 굉장히 잘 어울린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흥미롭네요. 요이치는 피트 향이 강해 일본에서 여러 음식과 즐길 때는 기름진 음식과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거든요. 기름진 음식과 위스키의 풍부한 스모키함이 어우러져 마치 미식 마리아주의 표본처럼 여겨질 정도죠.
치프 블렌더님은 1996년에 입사해 2001에 블렌더가 되시는 등, 벌써 30년 가까이 닛카 위스키에서 일하고 있는 걸로 압니다. 주조회사로서 닛카 위스키의 정체성을 정신적, 기술적인 면에서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닛카 위스키의 철학을 얘기하자면…. 저희는 기본적으로 우리가 추구하는 맛이 있습니다. 여러 가지 원주를 관리하며 최종 제품이 원하는 수준에 도달하도록 블렌딩하지요. 이 ‘원주’들은 5년 전에 만들어진 것부터, 15년 전에 만들어진 것까지 다양해요. 중요한 건 원주는 지금 당장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무한정 쓰다 보면 모자랄 수밖에 없는 상황이 생긴다는 겁니다. 게다가 기본적으로 각 배럴마다 원주의 맛이 같을 수 없습니다. 몰트 베이스인지, 그레인 베이스인지, 사용된 캐스크의 종류, 숙성 기간, 숙성 환경의 습도나 온도 등에 따라서 크게 달라지지요. 긴 세월을 거치면 거칠수록 그 차이는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우리가 추구하는 맛’을 미리 정해두고 거기에 도달하기 위해 매번 레시피를 바꿔가며 블렌딩하고 있습니다.
과연 다른 위스키 회사들과는 접근이 다르군요. 닛카 위스키의 뼈대는 제게 스페이사이드를 연상케 하는 미야기쿄 증류소의 ‘닛카 위스키 미야기쿄 싱글 몰트’와 아일레이를 떠올리게 하는 요이치 증류소의 ‘닛카 위스키 요이치 싱글 몰트’ 그리고 이 두 증류소의 원주를 블렌딩한 ‘닛카 위스키 타케츠루 퓨어 몰트’라고 생각합니다.
요이치 증류소의 가장 큰 특징은 석탄으로 직접 가열하는 방식과 (증류기의 상단이 구부러져 있지 않고 뻗어 있는) 스트레이트 헤드를 사용하며 바다의 영향을 받는다는 점입니다. 석탄으로 직접 가열하는 스트레이트 헤드 증류기의 특성상 매우 강렬하고 묵직한 스피릿을 증류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피트 향이 강한 몰트를 사용하고 바닷바람의 영향을 받아 굉장히 ‘솔티’한 캐릭터가 완성되지요. 스모키한 풍미와 바닐라 향까지 더해져 굉장히 복합적입니다. 한편 미야기쿄는 석탄 직접 가열 방식이 아니라 스팀 가열 방식을 사용해요. 상대적으로 굉장히 부드러운 증류 방식이라 프루티하고, 경쾌하며 꽃내음이 강하죠, 그러나 맛은 드라이합니다. 스코틀랜드의 지역에 비유하자면, 요이치는 아일레이보다는 하일랜드처럼 복합적인 뉘앙스에 가깝고, 미야기쿄는 스페이사이드보다는 로랜드나 캠벨타운에 더 가깝다고 이해하면 됩니다. 차이가 명확하게 드러나는 위스키를 만들겠다는 창립자 타케츠루 마사타카의 의지가 드러나는 부분입니다. 이런 확연한 차이의 두 위스키 원액을 블렌딩한 위스키에 ‘타케츠루’라는 이름이 붙은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싱글 몰트의 본질은 ‘증류소의 특징을 구현’한다고 보면 됩니다. 그래서 취향에 좌우되지요. 맛있다고 느끼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갈립니다. 타케츠루는 이런 두 싱글 몰트의 개성을 섞어 좀 더 마시기 편한 위스키를 탄생시켰다고 할 수 있습니다.
타케츠루 선생은 1910년대에 일본인 최초로 스코틀랜드 유학을 다녀왔지요. 이런 배경이 없었다면 세우기 힘든 계획인 것 같습니다.
아마도 타케츠루 선생은 일찍이 여러 원주의 필요성을 인식한 것 같아요. 그 배경에는 일본 음식 문화의 철학이 자리 잡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일본 요리는 각 재료의 특징을 살려 조화를 이루는 것을 기본 개념으로 삼기 때문이죠. 닛카 위스키의 또 다른 특징은 일본 최초로 코페이 증류기(연속 증류기의 일종)를 도입해 그레인 위스키와 블렌디드 위스키 시장을 일찌감치 개척해왔다는 점이기도 합니다. 그 결정체 중 하나가 ‘닛카 위스키 프롬 더 배럴’이라고도 볼 수 있겠고요. 타케츠루 선생은 아무래도 좋은 그레인 위스키가 없다면 훌륭한 블렌디드 위스키를 만드는 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것 같아요. 싱글 몰트 위스키나, 이를 블렌딩한 퓨어 몰트 위스키보다 그레인 위스키까지 섞은 블렌디드 위스키가 좀 더 대중적이라고 생각하기도 했고요. 연속 증류기에는 여러 종류가 있는데, 저희가 사용하는 방식은 ‘코페이 스틸’이라는 굉장히 오래된 방식이라, 효율적이지는 않지만 더 풍성하고 여운이 긴 풍미를 지닌 원주를 만들어낼 수 있지요. 그런 코페이 스틸로 증류한 원주와 몰트 원주를 블렌딩해 완성한 위스키가 바로 ‘프롬 더 배럴’입니다. 그레인 위스키의 특징을 잘 살리고, 여운이 굉장히 길죠.
위스키 팬들 중에는 닛카 위스키의 코페이 스틸의 옹호자들이 있습니다. 좀 오래돼서 비효율적이긴 하지만 오히려 풍미가 좋다고요.
최신식의 연속식 증류기는 굉장히 효율적으로 정말 깨끗한 술을 뽑아낼 수 있지요. 그렇게 뽑아낸 술에는 풍미나 향기도 전혀 남아 있지 않을 정도입니다. 그러나 저희의 오래된 증류기는 비효율적이지만, 오히려 스피릿 안에 여러 향이 남아 있거든요. 그 방식이 저희가 추구하는 풍미를 깊게 만드는 방식이라 아직도 오래된 증류기를 고수하고 있습니다.
최근에 닛카 위스키의 증류소가 있는 일본 최북단의 본섬 홋카이도의 온도가 37℃까지 올라갔다는 뉴스를 봤습니다. 기후에 따라 숙성 환경이 변하면서 새로운 도전이 되고 있지는 않은지 궁금합니다.
사실 위스키를 만드는 과정에서 사람 손을 거치는 건 일주일 정도에 불과해요. 나머지는 캐스크에 저장해서 숙성하는 작업이지요. 당연히 그 숙성 환경의 영향이 굉장히 큽니다. 자연의 혜택을 받으며 살아가는 인간으로서 환경의 변화는 겸허하게 받아들여야겠지요. 그러나 닛카 위스키의 증류소들은 애초에 만들어질 때부터 스코틀랜드와 비슷한 지역을 선택했기에 아직도 굉장히 서늘합니다. 기후변화의 영향에 대해서는 계속 예의 주시하고 있지만 눈에 띌 정도의 변화는 아직 없다고 보시면 될 것 같아요.
여러 의미에서 치프 블렌더는 과거와 현재, 미래를 연결하는 역할을 한다고 봅니다. 과거의 원액으로 현재를 블렌딩해내고, 지금 증류한 원액들로 미래의 블렌더가 사용할 원주를 만들죠. 그런 다리 역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기본적으로는 선배 블렌더들이 지금까지 해온 것과 똑같은 결과물을 고객에게 제공하려는 마음이 첫 번째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미래 세대를 위해 끊임없이 새로운 혁신에 도전해야 한다고도 생각하지요. 달라지는 환경 속에서 같은 품질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새로운 것을 계속 내지 못하면 소비자의 취향 변화에 대응할 수 없어요.
현재 한국에 들어온 제품군들에 최초로 숙성 연수를 미표기(Non Age Statement)하는 결정에도 마스터님이 큰 역할을 했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면에선 그 역시 미래를 위한 결정이었지요.
요이치와 미야기쿄는 원래는 숙성 연수를 표기하는 제품이었습니다. 제 기억에 따르면 처음으로 숙성 연수를 미표기한 요이치 싱글 몰트가 나온 해는 2007년이었습니다. 500mL 사이즈에 하얀 라벨이 붙어 있었을 때죠. 제가 주장한 일이었지요. 숙성 연수도 중요하지만, 그런 숫자에 상관없이 최대한 맛있는 위스키를 만들고 싶은 생각도 있었습니다.
Credit
- PHOTO NIKKA WHISKY/오동근
- ART DESIGNER 최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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