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타냐후와 트럼프가 그리는 서로 다른 그림
온 우주가 네타냐후를 도와주듯 힘든 상황들이 겹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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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는 오바마가 만들어낸 빌런”이라는 말이 있다. 많은 사람은 그 근거로 2011년 백악관 기자단 만찬회 때의 한 장면을 든다. 당시 프레스와 관계자들을 모아놓고 연단에 선 오바마 대통령은 만찬 며칠 전 하와이주가 자신의 출생증명서를 공개한 사실을 꺼내 들고 “도널드 트럼프만큼 이 출생증명서 문제의 해결을 기뻐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며 “이제 트럼프는 더 중요한 문제들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인류는 정말 달에 착륙했을까? 로즈웰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비기와 투팍은 어디에 있을까?’ 같은 문제들 말이죠”라고 말해 좌중의 폭소를 자아냈다. 당시 그 농담을 듣고 있는 트럼프의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는데, 웃고는 있었지만 기분이 썩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미국인들 중에는 바로 그 순간 트럼프가 정치를 시작하기로 결심했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다.
실제로 몇 년 뒤 정치에 뛰어든 트럼프는 오로지 오바마의 업적과 상징성을 부정하는 데 집중하는 사람처럼 보였다. 물론 모든 게 사실은 아니다. 트럼프는 그 일이 있기 전부터 대통령 출마를 준비하고 있었고, 기자단 만찬장에서 대통령이 농담을 던지는 건 1980년대 레이건 이후로 미국 대통령들이 항상 해온 전통이었다. 그날 오바마의 농담은 “오바마는 미국에서 태어나지 않았기에 대통령 자격이 없다”고 주장하는 ‘버서’(birther)운동의 핵심 인물이었던 트럼프의 주장을 공개적으로 반박하기 위해서였다. 트럼프는 이미 남부 백인들 사이에 존재하는 반오바마 정서를 발판으로 대선에 도전하기로 결심한 차였다. 그러니 그 장면은 트럼프를 정계에 입문시킨 트리거라기보다는 트럼프를 향한, 또 트럼프라는 인물을 대하는 대중을 향한 유머러스한 경고로 보는 게 타당하다.
그럼에도 트럼프의 목표가 ‘오바마 지우기’에 있다는 건 공공연한 사실이다. 오바마 케어부터 에너지 정책, 미국의 소프트 파워를 중심으로 한 국제 외교 전략까지, 오바마가 이룩한 업적들을 깎아내리고 없애는 데 전력을 다하고 있다. 지난 6월 미국의 전략 폭격기를 동원해 이란의 핵시설을 폭격한 사태도 사실은 오바마가 이란과 맺은 포괄적 핵협정(JCPOA)을 트럼프가 2018년에 일방적으로 탈퇴한 데서 비롯됐다. 2016년 대선에서 트럼프는 “오바마가 (이란과) 형편없는 협정을 맺었다”며, 자기가 대통령이 되면 이를 탈퇴하고 훨씬 더 유리한 협정을 맺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약속대로 이란과의 핵협정을 폐기했지만, 오바마 때 이미 큰 양보를 했다고 생각하는 이란이 더 불리한 조건으로 재협상에 응할 리 없었다. 트럼프가 일방적으로 경제 제재를 시작했으니 이란 입장에선 핵 개발을 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고, 이를 지켜보는 이스라엘은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이스라엘이 느끼는 위협은 ‘이란이 핵무기를 갖게 되면…’이라는 막연한 가능성이 아니다. 이란은 하마스와 헤즈볼라, 예멘의 후티 반군 등 중동 지역에 많은 프록시(proxy, 대리 세력)에게 무기를 공급해왔다. 이스라엘 입장에선 꾸준히 이란과의 그림자 전쟁(shadow war)을 벌여온 셈이다. 이스라엘은 지구상에서 없어져야 한다고 외치는 이란의 최고 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도 이스라엘이 긴장을 늦출 수 없게 만드는 요소다.
어떤 정치인에게 위기는 기회다. 국내에서 정치적인 입지가 약해져 극우세력과의 연정으로 정치 생명을 유지하고 있던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에게 2023년 10월 7일에 일어난 하마스의 테러 사건은 기회였다. 네타냐후는 총리로서 대규모 기습을 막지 못한 책임은 차치하고, 가자지구 전쟁을 시작했다. 이 전쟁으로 국내의 반네타냐후 여론은 잠잠해졌고, 그는 ‘전시(戰時) 지도자’를 자처하며 자신의 입지를 강조했다. 사실 이후 가자지구에서의 전투가 잦아들자 중동 전문가들은 이때부터 네타냐후가 전시 지도자의 특권을 이어가기 위해 이란과 새로운 분쟁을 시작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스라엘은 작년 4월과 10월 두 차례에 걸쳐 이란의 방공망을 파괴했다. 이때 파괴된 방공 시스템은 이란이 러시아에게서 사온 것으로, 이란의 주요 핵시설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때도 이미 이스라엘이 이란의 핵시설을 파괴할 준비를 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예상대로였다. 올해로 접어들자 이스라엘은 이란의 핵시설과 에너지 관련 설비를 대대적으로 폭격했을 뿐 아니라, 트럼프를 설득해 미처 파괴하지 못한 핵시설을 미국만이 가지고 있는 전략 폭격기와 벙커버스터를 활용해 파괴하는 데 성공했다. 네타냐후는 “이란의 방공망이 무력화된 지금이 이란의 핵시설을 파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며 트럼프를 설득한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트럼프에게도 무력시위를 할 만한 이유는 있었다. 자기가 원하는 핵 협정 조건을 이란이 받아들이지 않고 있었고, 임의적으로 부여한 시한은 끝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제 문제 전문가들은 이 모든 과정에서 원하는 모든 것을 얻은 건 네타냐후뿐이라고 평가했다. 트럼프는 미군이 국제 분쟁에 개입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 지지자들을 실망시켰고, 그렇게 전례 없이 대대적인 폭격을 하고도 이란과의 핵 협상에는 아무런 진전이 없기 때문이다.
네타냐후의 욕심은 이란의 핵시설 파괴로 그치지 않는다. 우리가 북한의 핵무기 개발 과정에서도 본 것처럼, 한 나라가 모든 희생을 각오해서라도 핵무기를 개발하겠다고 작정하면 그걸 막을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뿐이다. 바로 자발적 포기다. 그리고 핵무기를 개발하기로 한 나라가 이를 자발적으로 포기하는 방법은 핵무기 포기에 상응하는 대가를 약속하는 협정을 체결하는 것, 혹은 핵무기 개발을 원하지 않는 정권으로 교체하는 것뿐이다. 미국은 전자를, 네타냐후는 후자를 원한다.
미국의 폭격이 성공적이었다면 이란의 핵무기 개발이 5~10년 정도 후퇴했을 것으로 보인다. 네타냐후에게 그 시간은 이란의 정권을 교체하는 데 필요한 시간이다. 그는 협상을 통해 이란의 핵 위협을 없앨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가 협상을 통한 방법을 선호하는 오바마를 좋아하지 않았던 이유다. 그런 네타냐후에게 까다로운 중동 외교에 대한 지식이 없을 뿐 아니라, 경험 많은 미국 외교 전문가들의 견해를 무시하는 트럼프는 하늘이 내린 선물이나 다름없었다. 네타냐후는 트럼프를 쉽게 다룰 수 있는 인물이라고 생각했고, 실제로 오바마 정권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이란 폭격까지 끌어냈다.
그러나 그런 트럼프도 이란의 정권 교체에 대해서는 회의적이고, 마르코 루비오 국무장관을 비롯한 참모들은 반대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미국은 2003년에 시작해 8년 넘게 지속했던 이라크 전쟁에서 정권 교체를 시도했다가 크게 데었기 때문이다. 그 전쟁을 시작한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세계 최강의 군대를 둔 미국 전투에서 승리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고, 원하면 정권도 무너뜨릴 수도 있지만, 그 자리에 새로운 정권을 세우는 일은 미국의 능력 밖의 일이라는 사실을 큰 대가를 치르고 배웠다.
명분 없는 전쟁으로 많은 민간인이 목숨을 잃어가며 후세인 정권을 무너뜨렸으나, 그 자리를 이슬람 원리주의 무장단체인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 국가(IS)가 차지하며 중동 지역을 크게 위협했다. ‘IS’는 시리아 내전에도 개입하며 중동을 더욱 불안하게 했고, 그로 인해 발생한 수백만의 시리아 난민은 유럽으로 건너가 유럽의 극우가 정치적으로 결집하게 되는 원인을 제공했다. 이라크 전쟁은 후세인이라는 독재자 하나를 상대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크고 복잡한 문제를 일으키는 결과를 낳은 것이다.
네타냐후는 이란을 폭격하는 작전에 ‘일어서는 사자(Operation Rising Lion)’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는 이스라엘의 역사와 정체성을 나타내는 것이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이슬람 혁명 이전의 이란 국기에 사자가 있던 것을 지적하며 네타냐후가 이란 국민들에게 현 정부에 대한 저항을 촉구하는 메시지를 담았다고 해석했다. 실제로 네타냐후는 이란 국민을 향한 영상 메시지를 통해 “여러분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빨리 자유로워질 것”이라며, 반정부 시위를 촉구하는 듯한 발언을 하기도 했다.
현재 이란 국민의 정부에 대한 지지율은 20% 정도에 불과하다. 정권 교체를 노리는 데도 일리는 있는 셈이다. 그러나 이란 국민들이 아무리 하메네이의 독재와 무능을 싫어한다 해도, 자기 나라 정부가 이스라엘과 미국에 의해 무너지는 것을 반기지는 않을 것이다. 더 중요한 건, 설령 하메네이 정권이 외세에 의해 무너진다고 해도 이를 대체할 수 있는 조직된 정치 세력이 이란 내에 없다는 사실이다. <이코노미스트>는 이란의 정권 교체 가능성을 분석하는 기사에서 현 정권을 대체할 대안이 없는 상황에서 이란 국민은 마음에 들지 않는 정부라도 정부가 없는 상황보다는 낫다고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란은 큰 나라다. 영토는 이라크의 3.8배에 달하고, 인구도 2배다. 게다가 민족 구성도 다양하다. 페르시아인이 전체의 60%로 다수를 차지하고 있지만, 아제르바이잔인(16%), 쿠르드인(10%) 등 다양한 민족이 높은 산지 등의 지리적으로 분리된 땅에서 다른 언어를 사용하며 살고 있다. 이란 정부는 민족이라는 개념을 인정하지 않고 이슬람을 통한 통일을 강조하지만, 비(非)페르시아계의 독립 움직임은 꾸준히 있었다. 특히 이란 북서부에 거주하는 쿠르드인들은 지금도 분리, 독립을 시도하고 있다.
네타냐후는 지난달 이란의 핵시설을 공격하면서 쿠르드인이 거주하는 서부 케르만샤에 위치한 이란군 기지를 폭격했다. 핵 관련 시설도 없고, 이스라엘에 위협이 되는 미사일 기지도 아닌데 굳이 폭격한 이유를 두고 전문가들은 그 군사 기지들이 쿠르드인의 반란 시도를 억제하는 역할을 해왔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즉 이스라엘은 이란 정부의 통제를 약화해 쿠르드인들이 반군을 구성하기를 바라고 있다는 뜻이다.
민족과 종파 간의 갈등은 효과적이다. 이라크 전쟁이 종료된 후 이라크에선 시아파와 수니파의 갈등이 폭발하면서 보복 정치가 시작되었고, 북부에 있던 쿠르드족이 자치 지역을 만들어 사실상 분리 독립했다. 네타냐후는 이란에서 이와 같은 갈등이 일어나는 것을 개의치 않거나, 적극적으로 부추기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중동 지역이 또 한 번 큰 혼란에 빠지는 한이 있더라도, 프록시 세력에 무기를 지원하는 ‘강력한 중앙집권국가 이란’이 해체되는 것이 이스라엘의 생존과 안전에 유리하다는 계산이다.
이라크의 붕괴로 홍역을 치른 미국이 네타냐후가 그리는 이란의 미래에 동의하기는 힘들다. 이란의 붕괴나 분열이 초래할 충격파는 중동에 국한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 수십 년 동안 중동에서 힘의 구도를 뒤집기 위해 애써온 네타냐후는 기적적으로 찾아온 ‘트럼프라는 기회’를 절대 놓치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의 시도가 현실이 된다면 세계는 또 한 번 크게 흔들릴 것이다.
박상현은 <오터레터>의 발행인으로, 여러 매체에 테크와 미디어, 문화에 관한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Credit
- EDITOR 박세회
- WRITER 박상현
- ILLUSTRATOR MYCDAYS
- ART DESIGNER 주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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