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콰이어>가 추천하는 이달의 신간
이 달 나온 신간 중에서도 유독 눈에 띄고 오래 곱씹게 되는 세 권의 책을 꼽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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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의 멸종
크리스틴 로젠 / 어크로스

‘몰아보기’ 영상으로 영화나 드라마를 보는 데에 익숙해지면 점점 본연의 호흡으로 콘텐츠를 보기가 어려워진다. SNS 상의 정보와 평점을 기반으로 여행하는 데에 익숙해지다 보면 실제 여행은 점점 답습과 번거로움의 집합체가 된다. AI에게 요약과 결론부터 받는 데에 익숙해지다 보면, 솔직히 말해서, 이 정도 분량의 책 소개 글도 너무 길다고 느끼는 사람이 있지 않을까 걱정이다. 오늘날 기술 변화가 모든 경험을 ‘간접적’으로 취득 가능하도록 만들고 있으며 그로 인해 우리 안의 뭔가가 달라지고 있다는 건 사실 그리 이해하기 어려운 이야기가 아니다. 다소 고답적인 한탄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이야기. 책 <경험의 멸종>이 갖는 미덕은, 그 어렴풋한 우려 속에서 정확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다각도로 살핀다는 것이다. 왜 기술은 ‘매개 경험’으로 나아가며 우리는 그것을 실제 경험보다 선호하게 되었을까? ‘리액션 영상’으로 감상을 대체할 때 우리 안에서는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 지금 태어난 아이들은 정확히 어떤 식으로 세상을 인식하며 살아가게 될까? 문화 비평가 크리스틴 로젠은 간접 경험의 증폭이 불안과 우울의 시대, 음모론의 시대와 무관하지 않는다고 짚는다. 혹 독자가 논조를 ‘반기술주의’로 오해하는 것을 끝없이 경계하면서. “문제는 우리가 ‘변화가 개선으로 이어진다’는 가정에 안주하고 있다는 점”이며, “경험의 소멸은 불가피한 것이 아닌 선택”이라고 말이다.
근대 괴물 사기극
이산화 / 갈매나무

우리는 괴물이 없는 세상에 산다. 도깨비라거나, 흡혈귀라거나, 호수 속 거대 공룡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일반 상식으로 공유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과학이 그것들에 낱낱이 빛을 들이기 전에는, 근대에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모두가 누군가가 보고 들었다고 주장하는 그 미지의 존재들을 두려워하며 살았다. 왜일까? 왜 인간들은 그리도 오랫동안 실재하지 않는 존재의 이미지를 만들고 공유하며 굳이 두려워 했을까? SF 작가인 이산화는 지난 몇 년간 동서양의 근대 괴물에 대한 기록들을 탐독했다. 그리고 그가 찾은 답은, 괴물이란 우리가 가진 두려움, 욕망, 편견, 그리고 당대 과학적 헤게모니와 역사적 이데올로기의 형상화라는 것이다. <근대 괴물 사기극>은 해당 연구를 바탕으로 18세기, 19세기, 20세기 괴물들을 정리한 책이다. 500쪽 분량의 책을 빼곡히 채운 글은 단순한 흥미 본위의 이야깃거리를 넘어 그 탄생과 전파에 얽힌 인간 역사와 본성 속의 어두운 부분을 짚어 다양한 생각할 거리를 선사하며, 영화 <파묘>의 아트디렉터로 잘 알려진 최재훈 작가가 그린 일러스트는 괴물의 허구적 실체를 속속들이 파헤친 후에도 다시 독자들을 거부할 수 없는 기이한 공포의 세계로 데려다 놓는다.
뱀과 양배추가 있는 풍경
강보라 / 문학동네

‘뱀과 양배추’는 1600년대 프랑스 사회학자 부르디외의 주도로 진행된 연구에서 기인한 표현이다. 대중 설문조사 결과, 두 피사체는 어떤 이들에게는 호기심을, 다른 어떤 이들에게는 불쾌감을 안긴 존재였다고 한다. 단편 <뱀과 양배추가 있는 풍경> 속에서 강보라 작가는 우리 사회 속에 숨은 ‘문화 계급’을 짚어낸다. 미술계 종사자인 주인공은 ‘순혈 문화인’인 남편에게 은근한 열등감을 느끼며 휴양지에서 만난 배낭여행자들을 자신의 기준으로 재단한다. 그러나 함께 지내는 동안 점차 그들에게 끌리게 되고, 종국에는 그 일원의 숨겨진 정체로 인해 내적 전환을 맞이한다. 불쾌감과 호기심을 동시에 일으키는 사람들, 어떻게 보면 흥미롭고 어떻게 보면 불쾌한 일상적 대화와 관계 속 힘의 관계, 뱀과 양배추의 풍경. 이런 이중적 감각은 단편집 속 다른 이야기들에서도 폭넓은 형태로 드러난다. 타인의 시선과 욕망 속에서 끊임없이 스스로의 정체성과 이미지를 자각할 수밖에 없는 휴양지의 여인, 유산이라는 누구와도 쉽게 터놓지 못할 기억을 새 작품의 배역을 따내는 발판으로 삼아야 하는 연극 배우, ‘창문 너머’로 보이는 타인의 삶에 무턱대고 흠모와 혐오를 품는 사람들…. 고단한 삶과 그것을 잘 살아내고 싶어하는 평범한 인물들의 내면을 그려낸다. 2025년 젊은 작가상 심사평에 언급되었듯, 그 처연함과 아름다움이 긴 여운을 남기는 형태로.
Credit
- 자료제공
- 어크로스
- 갈매나무
- 문학동네
CELEBR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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