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동아기획을 기억하는 방식
당신은 모르겠지만, 동아기획은 당신의 기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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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D는 중학생 때부터 모았지만, 바이닐은 20대 후반부터 모으기 시작했어요. 의식을 한 건 아니지만, 누가 준 게 아니라 제 돈을 주고 처음 산 바이닐이 김현철의 <김현철 Vol.1>이었죠. 그 노래만 들으면 졸업한 지 오래된 교정에 다시 들어가는 듯한 느낌을 받아요.” 담당 에디터와 동아기획 얘기를 하던 중 그가 고백하듯 말했다. “들국화와 조동진, 김현식을 시작으로 시인과 촌장, 봄여름가을겨울, 빛과 소금, 김현철, 박학기, 한영애, 장필순, 그들의 음악을 들으며 나는 감탄했고, 고마웠고, 부러웠으며, ‘음악 하는 사람들’에 대한 호기심이 깊어졌다. 그들은 곡을 만드는 사람들인 동시에, 삶을 노래하는 이들이었다.”(@eeeho_), “‘동아기획’이라는 글자만 보고 음반을 사던 시절이 있었다. 카세트테이프를 뜯으면 어김없이 보이던 주황색 라벨에 대한 기억은 지금도 마음을 쿵쾅거리게 한다.”(대중음악평론가 김학선)
최근 내게 이런 얘기를 해주는 사람이 참 많은데, 그건 내가 얼마 전 <동아기획 이야기>라는 제목의 책을 출간해서다. 이 책은 나의 박사학위 논문 <동아기획의 음악적 실천과 가요사적 의미>를 재구성하여 대중이 읽기 쉽도록 풀어서 쓴 결과물이다. 나는 그 글을 쓰고 다듬으며 조동진, 들국화, 김현식, 한영애, 봄여름가을겨울, 푸른하늘 등 1980년대 다양한 장르의 아티스트들 대부분이 속해 있던, 대한민국 음악사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기획사 ‘동아기획’을 되돌아봤고 그 의미에 대해 썼다. 그러나 나는 이 책을 낸 뒤에야 비로소 동아기획이 어떤 문화사적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를 독자들의 반응을 통해 실감할 수 있었다. 이 책에는 ‘그때 그 시절을 함께한 어떤 음악 레이블에 대하여’라는 부제가 달려 있다. 출간을 통해 확실히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1980~1990년대 한국 대중음악계를 풍미했던 동아기획의 음악이 그 시절을 산 이들의 추억 속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30~4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여전히 현재형으로 기억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면 한 소셜미디어에 올라온 이런 반응들을 보면 그렇다. “책을 읽는 동안 난 라디오 주파수를 맞추고 카세트테이프를 사모으고 노래가 있는 그 위에 또 녹음을 하는, 따뜻한 방바닥에 배를 깔고 엎드려 노래를 듣던 어린 시절로 돌아갔다.”(@p.hongcil_cw2)
그 시절의 추억을 간직한 독자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카세트테이프 윗면의 양쪽 작은 네모난 칸 안에 휴지를 돌돌 말아 넣거나 스카치테이프를 붙여 녹음할 수 있게 준비하고,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담기 위해 녹음과 재생 버튼을 동시에 누르던 그 수많은 밤들. 그렇게 만들어진 나만의 유일무이한 플레이 리스트를 만들어 주야장천 듣고, 모은 용돈을 들고 레코드점에 가서 들국화, 시인과 촌장, 김현식, 장필순, 김현철, 박학기, 신촌블루스, 봄여름가을겨울, 푸른하늘, 이소라 등의 음반을 사모으던 시절 말이다. 다른 후기들에서도 ‘동아기획’이라는 단어는 우리를 그때 그 시절 서로의 작은 공간 속으로 이동하게 만드는 힘이 존재하는 듯하다. 책이 나온 뒤 음악감상회와 함께 진행된 한 독서모임의 후기에는 이런 글이 올라와 있었다. “캬~캬~캬~가 참 많이 나오는 날이었습니다. 모두가 할 말이 참 많은 날이었습니다. 울컥한 기분이 잠시 올라온 것은 저만이었을까요?”(@love.lalasoul). 음악이 자극해 소환한 노스탤지어와 멜랑콜리의 감정은 우리의 생각보다 강한 것인지도 모른다.
‘동아기획’이 자극하는 세대와 성별이 무척이나 특정적이라는 점 역시 특기할 만하다. 국내 대표 온라인 서점 중 하나인 알라딘은 구매자 분포 정보를 제공하는데, <동아기획 이야기>의 경우 2025년 6월 초를 기준으로 50대의 비율이 전체 58%에 달하고 있다. 이 중 50대 남성 구매자 수가 46.6%으로 독보적인 비율을 자랑하고, 30대를 제외한 나머지 연령에서도 ‘여성’보다는 ‘남성’의 비율이 높은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남성’ 구매자의 비율을 높은 순으로 나열한다면 50대(46.6%), 40대(14.8%), 60대(6.8%), 30대(4.5%) 순이다. 동아기획이 1980~1990년대에 뜨거운 사랑을 받았던 대중음악 레이블이었던 만큼 지금의 50대들에게 가장 뜨거운 반응을 일으키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책 기획 단계에서부터 주요 독자의 연령층을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지만, 이처럼 특정 연령과 성별의 압도적인 비율은 출판사 대표님, 서점 관계자도 놀랄만한 일이었다. 동아기획 음악이 어떤 의미이기에, 30~40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그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일까? 전체의 72.7%를 차지하는 ‘남성’ 구매자의 비율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동아기획은 물리적 실체를 가지고 있는 음반 시대의 레이블이었고, 동아기획을 추억하는 이들 중에는 실물 음반의 권위를 중시하는 ‘음악 마니아’들이 다수를 차지한다는 점을 생각해본다. 그러고 보니 국내 ‘음악 마니아’ 중에서 50대 남성의 비중은 꽤 높은 편이 아닐까? 경험상 빈티지 오디오를 모으고 자신이 좋아하는 특정 장르의 바이닐 음반을 수집하는 이들의 대부분은 50대였다. 이들은 음반을 수집하고, 이에 관한 지식과 정보(이를테면 첫 번째 프레스인지 두 번째 프레스인지를 신경 쓰는 부류들)를 중요시하면서 동일한 취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과 커뮤니티 안에서 소통을 이어가는 특징을 갖고 있는데, 이를 통해 자신의 문화적인 취향을 남들과 구별하고 그룹 짓는다. ‘음악 마니아’라는 느슨한 표현으로 묶을 수밖에 없는 이들은 특정 취향의 음악 스타일 혹은 장르를 선호한다는 점에서 개별 가수를 좋아하는 집단인 ‘팬덤’과는 확연히 구별된다. 좀 더 강하게 얘기하면 지금의 음악 시장은 팬덤 중심인 반면 당시의 동아기획이 주류를 이루던였 음악시장은 ‘마니아’ 중심이었다는 얘기로 해석할 수도 있다. 실제로 동아기획의 음악을 좋아했던 많은 이들은 ‘동아기획은 달랐다’라고 입을 모은다.
사실 동아기획이 출범하기 전 레코드점을 운영했던 김영 대표와 소속 아티스트들도 뮤지션이기 이전에 ‘음악 마니아’였다. 동아기획 출범 이전, 광화문에서 포크 가수인 아내 이름을 내건 ‘박지영 레코드’를 운영했던 김영 대표는 국내외에서 어떤 음악이 인기를 얻는지에 대한 대중들의 취향과 그 취향들의 동향을 그 누구보다 잘 파악하고 있었다. 빛과 소금의 장기호 또한 실제로 1980년도에 남영동에서 조그만 레코드 점을 운영한 이력이 있는데, 그와 초등학교 동창이자 같은 팀의 멤버인 박성식은 그곳에 매일 놀러 가서 음악을 들었고, 그곳에서 장기호를 통해 퓨전 재즈 음악을 많이 접하게 됬다고 한다. 동아기획 아티스트들의 회고에 따르면 이들은 좋아하는 음악을 함께 듣고 연주하며, 이를 바탕으로 응용과 실험을 거쳐 자신들만의 창작으로 나아갔다. 보다 보면 쓰고 싶고, 쓰다 보니 찍고 싶었다는 영화 마니아 집단 카이에 뒤 시네마의 이야기가 떠오르는 흐름이다. 동아기획이 오아시스, 아세아, 지구 레코드 등의 당대 주요 음반사와는 다르게 ‘음반’과 ‘라이브 공연’을 중심으로 홍보를 이어갔다는 점 역시 그 특징이다. 즉, 그 당시 당연하게만 여겨졌던 방송국 중심의 TV 쇼 프로그램 출연이 아닌 ‘음악’을 중심에 두는 음반 발매, 라이브 공연, 라디오 출연 등을 통해 대중과 만나 소통했다.
동아기획의 음악은 소재와 주제 면에서도 당대의 음악과는 그 결을 달리했다. 그들은 사랑보다는 삶을 노래했고, 이별의 슬픔보다는 공감의 위로를 던졌다. 동아기획 뮤지션들의 정신적 지주였던 조동진은 3집 수록곡 ‘슬픔이 너의 가슴에’에서 “슬픔이 너의 가슴에 갑자기 찾아와 견디기 어려울 때/ 잠시 이 노래를 가만히 불러보렴”이란 가사로 담담하게, 그러나 깊이 있게 위로의 메시지를 전한다. 시인과 촌장의 ‘사랑 일기’에서는 “피곤한 얼굴로 돌아오는 나그네의 저 지친 어깨 위에”, “아무도 없는 땅에 홀로 서 있는 친구의 굳센 미소 위에”, “수없이 밟고 지나는 길에 자라는 민들레 잎사귀에”, “가고 오지 않는 아름다움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들에게”라는 구절을 통해 삶의 여러 장면에 조용히 스며드는 따뜻한 시선을 담아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랑해요라고 쓴다”는 맺음말로 위로를 건넨다. “그들의 음악은 단지 좋다는 감정을 넘어서 내 세계관을 뒤흔들었다. 덩어리째 다가오는 새로운 맥락이었다.”(@eeeho_)라는 한 소셜미디어 사용자의 후기처럼 서구의 팝 음악에서 느껴지던 감수성 위에 작가 의식이 고스란히 담겨 있던 동아기획 음반 속 노랫말들은 당대 젊은이들의 감수성을 송두리째 흔들었고, 지금도 여전히 그들, 그러니까 지금은 4050이 되어버린 마니아들의 가슴 깊숙한 곳에 굳게 자리하고 있다
동아기획의 또 다른 매력은 ‘아티스트 추천제’라는 독특한 뮤지션 영입 방식, 그리고 품앗이처럼 서로 협업하며 음악 활동을 이어간 공동체적 성격이다. 이 공동체는 ‘우리’라는 단어로 요약된다. ‘나’도, ‘너’도 아닌 ‘우리’라는 용어는 들국화 최성원이 동아기획과 계약하기 전 기획했던 <우리 노래 전시회>라는 컴필레이션 음반명에서 처음 등장했다. 실제로 이 앨범에 참여한 많은 아티스트들이 동아기획에 합류하게 되면서 ‘우리’는 동아기획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단어가 되었고, 이후 동아기획 뮤지션들이 총출동하는 소속사 연합 콘서트 이름도, 컴필레이션 음반의 이름도 ‘우리 모두 여기에’가 되었다. 어쩌면 동아기획을 상징하는 ‘우리’라는 정감 가득한 이 단어가 지금 이 시대를 각자 바쁘게 살아가는 이들에게 위로와 공감이 되어주는 것은 아닐까?
한 ‘돌돌’이라는 블로거의 서평 중엔 이런 내용이 있었다. ‘책을 읽는 내내 현존하는 기획사들을 하나둘 머릿속에서 꺼내 봤다. 지금의 K-POP이 성공한 이유는 분명 시대의 흐름을 재빠르게 읽고 앞서 나갔기 때문이리라. 중독성 있는 멜로디와 가사가 음악의 본질처럼 느껴지는 요즘 시대엔 또 그 나름대로의 흐름이 있겠지만, 노래가 노래다웠던 시대, 길게 길게 연주하고 마음을 표현했던 그 시대가 종종 그리워지는 것은 별수 없다.’
동아기획에서 터를 잡고 음악 공동체를 만들어나갔던 주요 뮤지션들 중 상당수는 이후 하나뮤직이라는 레이블로 자리를 옮겨 작가주의적 음악 활동을 이어갔다. 동아기획의 뒤를 이은 하나뮤직은 언더그라운드 뮤지션으로서의 초심을 지켜낼 수 있는 새로운 터전으로 자리매김했고, 이후에는 직접 작사·작곡하며 내면을 얘기하는 싱어송라이터들의 등용문이 되었다. 이제 ‘동아기획’이라는 이름은 어느덧 대중의 기억 속에 소중한 추억으로 남았지만, 그들이 보여준 음악적 실천은 자신만의 이야기와 사운드를 만들어가고자 하는 후배 뮤지션들에게 여전히 살아 있는 유산으로 전해지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푸른 하늘의 ‘우리 모두 여기에’를 떠올리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 속에. LP를 찾아 턴테이블 위에 올리든, 스트리밍 사이트나 유튜브에서 검색을 해서 듣든 상관없다. 당신이 50대가 아닌 20대라도, 혹은 우연히 이 노래를 접한 10대라고 상관없다. 우리에게 동아기획은 언제고 ‘우리 동아기획’으로 남을테니.
이소진은 대중음악 연구자이자 작곡과 연주 활동을 병행하는 뮤지션이다. 오래된 음반, 신문 기사, 방송 자료 등을 탐색하며 한국 대중음악의 흐름을 연구해왔고, 2023년 <동아기획의 음악적 실천과 가요사적 의미>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Credit
- EDITOR 박세회
- WRITER 이소진
- ILLUSTRATOR MYCDAYS
- ART DESIGNER 주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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