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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환수가 어려운 이유

국외 소재 문화재가 24만7718개나 된다.

프로필 by 박호준 2025.05.06

문화재 환수에 진심인 외국 회사 ▼

93억원. 라이엇 게임즈(이하 라이엇)가 지난 10년간 문화재 보호 및 환수를 위해 기부한 금액이다. 매년 8억원씩 기부금을 쌓았고 상황이 급박할 땐 추가로 더 내놓기도 했다. 라이엇은 리그 오브 레전드(이하 LOL)를 만든 회사로 미국 캘리포니아를 기반으로 한다. 한국 회사도 아닌 외국 게임 회사가 국내에서 문화재 환수에 막대한 기부금과 관심을 기울이는 이유가 뭘까?

“얼핏 보면 게임과 문화재 환수에 접점이 없어 보이죠. 하지만 저희는 게임의 본질이 스토리와 경험을 공유하는 문화 콘텐츠에 기반한다고 생각합니다. 문화유산은 과거와 현재, 미래를 잇는 매개체로서 문화를 지탱하는 중요한 요소이고요.” 라이엇 홍보 담당자에게 문화재 환수에 앞장서는 이유를 묻자 돌아온 답이다. 그는 라이엇이 단발성이 아니라 장기적인 사회공헌사업으로 활동을 지속해오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렇게 우리나라로 돌아온 문화재가 총 7점이다. 2014년 1월 조선시대 불화 ‘석가삼존도’를 시작으로 가장 최근엔 ‘경복궁 선원전 편액’ 환수에 성공했다. 조선 왕실의 인장 ‘어보’를 담는 ‘보록’과 ‘문조비 신정왕후 왕세자빈책봉 죽책’(이하 죽책) 역시 라이엇의 지원으로 돌아온 문화재다. 2018년 환수한 죽책의 경우 2023년 국가지정문화재(보물)로 지정됐다. 이는 민간기업이 환수를 지원한 문화재가 보물로 지정된 첫 번째 사례다.

죽책 환수 과정은 꽤 극적이다. 강화도 외규장각에 소장 중이던 죽책은 1866년 발생한 병인양요로 인해 불타 없어졌다는 게 학계의 정설이었다. 그런데 2017년 프랑스의 한 개인 소장가가 보관 중이던 죽책이 갑자기 경매에 등장했다. 왕실 용품이었다는 의의와 공예품으로서 뛰어난 작품성이 더해진 죽책을 두고 경매 경쟁이 치열했는데 다행히 라이엇이 미리 조성해둔 기부금을 활용해 빠르게 입찰을 성사시켰다.

문화재 환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라이엇 이전에 2006년 방영된 MBC 예능 프로그램 <느낌표>의 ‘74434’ 코너가 있다. 해외로 반출된 우리 문화재의 개수가 7만4434개나 된다는 걸 알리고 환수에 관심을 갖자는 취지였다. 방송을 통해 모은 국민성금을 이용해 김시민 장군의 <공신교서><조선왕조실록 오대산사고본> 등 몇몇 문화재가 한국으로 돌아왔다.


문화재 환수가 까다로운 이유▼

앞선 사례를 듣고 나면 ‘그럼 돈을 더 들여서 전부 사오면 되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결론부터 말하면, 현실성이 떨어진다. 환수 사업엔 돈으로 해결할 수 없는 부분이 더 많다. 그 원인을 이해하려면 문화재 환수의 개념과 과정을 들여다봐야 한다.

문화재 환수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소장처에 문화재 반환을 요구하는 것과 경매를 통해 구매하는 것이다. 이때 반환을 요구하기 위해선 해당 문화재가 약탈이나 도난 같은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유출됐다는 걸 증명해야 하는데, 증인도 증거도 남아 있지 않아 입증하기가 무척 까다롭다. 입증을 하더라도 반환을 강제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또한 정당한 방식으로 바다를 건넌 문화재도 많다. 예를 들면 고려시대에 전 세계로 팔려 나갔던 고려청자가 그렇다. 따라서 명확한 근거 없이 반환을 요구하는 건 되레 서로 감정만 상하는 지름길이다.

경매에 참여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자금을 마련하는 건 차치하더라도, 언제 어느 경매장에 중요 문화재가 매물로 나올지 가늠하기 어렵다. 라이엇과 함께 문화재 환수에 힘쓰고 있는 국가유산청 산하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이하 재단)이 2011년 설립 후 10년 넘도록 국외 문화재 현황 통계 확립에 노력을 기울인 이유다. 앞서 2006년엔 7만 개로 추정했던 국외 문화재 수가 지금은 21만 개에 달하는 것 역시 이러한 노력의 결실이다. 재단에서 해외 소장처를 발굴하고 데이터를 차곡차곡 모을수록 그 숫자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 덕분에 재단 홈페이지에서 나라별로 몇 개의 문화재가 흩어져 있는지, 소장처는 어느 박물관이고 소장 경위는 어떻게 되는지 한눈에 파악이 가능하다.

이렇게 모은 데이터는 문화재 환수의 우선순위를 결정하는 데 도움이 된다. 가장 최근 라이엇과 함께 환수에 성공한 ‘경복궁 선원전 편액’이 좋은 예다. 2023년 일본의 어느 경매에 유물이 출품됐다는 정보를 입수한 재단은 즉각 경매 중단을 요청하고 소장자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지난 2월 한국으로 돌아왔다. 이렇게 환수한 편액은 2020년 국가유산청이 발행한 ‘경복궁 2차 복원 기본 계획’ 보고서에 따라 2030년 국립민속박물관이 세종시로 이전하고 나면 그 자리에 복원될 선원전에 쓰일 것으로 보인다. 참고로 선원전이란, 역대 왕들의 초상화를 봉인하고 의례를 지내던 공간으로 경복궁 내에서도 가장 위계가 높은 건물이다. 종묘가 궁궐 밖의 공식적인 사당이라면 선원전은 궐내 왕실만을 위한 사당이다.

'경복궁 선원전 편액'은 역대 왕들의 초상화를 봉인하고 의례를 지내던 선원전에 걸리는 현판이다. 일본에 있던 것을 지난 2월 라이엇의 도움으로 가지고 왔다. 프랑스에서 발견되어 환수한 '문조비 신정왕후 왕세자빈책봉 죽책'은 민간기업이 환수를 지원한 국외 문화재가 보물로 지정된 첫 번째 사례다.

문화재 환수 패러다임의 변화▼

2021년 기준으로 우리나라로 돌아온 문화재는 1만여 점이다. 1990년대 후반에서야 문화재 환수에 대한 논의가 등장했으니 약 20년이 걸린 셈이다. 같은 속도라면 24만7718점을 전부 환수하기 위해 480년이 필요하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다. 이러한 상황을 반영해 몇 년 전부터 문화재 환수에 대한 접근 방식이 달라지고 있다. 과거엔 문화재를 한국으로 가지고 오는 것에 집중했다면, 이젠 해당 국가에서 우리 문화재에 대한 연구 및 보존을 지원하고 문화재의 가치를 높이는 방향으로 환수 범위를 확장하는 것이다.

재단에서 발행한 <국외소재문화재 조사·환수·활용 10년과 미래전략> 보고서는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는 해외 소장처와의 네트워킹 강화다. 어떤 소장처가 어떤 문화재를 가지고 있는지 철저히 파악하고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는 일이다. 실제로 2022년 클리블랜드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던 묘지석 18점이 환수된 일이 있었는데, 재단이 미술관의 소장품을 발견하고 2년이 넘게 수백통의 이메일을 보내며 설득한 결과였다. 둘째는 해외에서 활동하는 한국 미술 전공자를 보다 많이 배출하는 것이다. 앞선 클리블랜드의 경우 해당 미술관에 한국인 출신 학예사가 있던 게 큰 도움이 됐다. 수장고에 잠들어 있는 문화재를 수면 위로 끌어 올리기 위해선 일본과 중국처럼 해외에서 활동하는 전문가가 늘어나야 한다. 셋째는 ‘윈윈’을 도모하는 전략이다. 예를 들어 한국 미술관에서 자주 쓰이는 디지털 영상 콘텐츠 제작 기술을 해외 미술관에 제공하며 협업을 유도하는 식이다. 이렇게 신뢰와 전문성이 쌓이면 큰돈을 들이지 않고도 문화재 환수를 도모할 수 있다.

이에 발맞춰 라이엇 역시 문화재 환수 자금 지원 외에 여러 활동을 펼치는 중이다. 워싱턴에 위치한 ‘대한제국공사관’의 보존 처리 및 재현 사업,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문화유산 교육, 국가무형문화재 명장과 함께 <아리따운 우리 한복전>개최가 그렇다.

‘스킨을 샀더니 우리 문화유산이 돌아왔다’, 라이엇의 문화재 환수 활동을 두고 어느 LOL 유저가 남긴 말이다. 사실 LOL을 즐기는 사람 중 라이엇의 사회공헌을 잘 알지 못하는 게이머가 더 많다. 그래서 더 값지다. 사기업에서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는 프로젝트를 10년 이상 지속한다는 건 보통 일이 아니다. 라이엇은 인터뷰 중 자신들의 행보가 굳이 널리 알려지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했지만, 요즘은 왼손이 한 일을 오른손이 아는 시대다. 전 국민이 나서 LOL 스킨 사기 운동을 펼쳐 ‘돈쭐’을 내줘도 모자라다. →

Credit

  • PHOTO 라이엇 게임즈
  • ART DESIGNER 최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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