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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1. 노상현은 <대도시의 사랑법>을 보면 누구나 '흥수'를 이해하게 될 거라 믿는다고 했다
어떤 사람이 되고자 하는가. 내 안에는 어떤 욕망과 돌연한 광기가 존재하는가. 배우 노상현은 양단의 질문을 똑바로 직시하고자 한다고 했다. 결국 그 모두가 자신인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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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더 벨티드 톱, 데님 팬츠 모두 드리스 반 노튼.
화보 촬영을 정말 잘하시네요.
감사합니다. 포토그래퍼 실장님이 리액션이 너무 좋으셔서 재미있게 했습니다.
절제된 듯 과감한 포즈들이 너무 좋아서, 저희끼리 그런 감탄을 하기도 했어요. 모델 시절에 괜히 유명했던 게 아니라고요.
아니에요. 별로 유명하진 않았어요.
에이. 사실 제가 이력을 패션 어시스턴트로 시작했거든요. 당시에 ‘스티브(노상현 배우가 모델로 활동할 당시 사용했던 영어 이름)’ 하면 모든 잡지에 다 나오는 모델이었던 걸로 기억해요.
(웃음) 아유, 민망하네요. 제가 이렇게 띄워주시면 어쩔 줄을 몰라 하는 타입입니다.
아, 그러고 보니까 이렇게 과거 이력과 연결 지어 일반화하는 게 불편하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제가 미처 못 했네요. 혹시나…
아니에요. 괜찮아요. 그런 건 전혀 없어요. 그때 경험은 저한테도 아주 소중하고, 재미있었던 추억이에요. 화보 촬영이라는 작업의 의미가 제 안에서 그때와는 좀 달라지긴 했죠. 일단 본업이 아니니까 좀 더 자유롭게 즐기면서 할 수 있게 됐고요. 드라마나 영화 촬영 사이사이에 일종의 환기, 리프레시가 된다고 할까요.
화보 촬영이 부담이 아니라 오히려 리프레시로 다가갈 수도 있군요.
새로운 시도를 해보면서 영감을 찾게 되는 거죠. 일단 화보 촬영을 하면 제가 평소에 잘 입지 않는 옷들을 입잖아요. 사람은 어떤 옷을 입느냐에 따라 애티튜드가 많이 바뀌기도 하니까, 화보 촬영을 하는 동안 저도 제 안에서 새로운 페르소나를 발견할 때가 있는 것 같아요.
오늘은 촬영 막판에 갑자기 춤까지 추셨죠.
그랬죠. 제가 화보 찍을 때 최대한 재미있게 하려는 편이라, 그냥 순간적인 영감이 떠오르면 굳이 막지 않기도 하고요. 그런데 또 춤을 춘다거나 하는 게 자주 있는 일은 아닌데…. 음악이 좋아서 그랬나? 모르겠어요.(웃음) 사실 초반부터 그런 느낌이 있었는데 자제했거든요. 화보 테마가 ‘새벽의 멜랑콜리’라고 했으니, 갑자기 춤을 추고 이런 건 안 어울리지 않을까 하고요.
다들 저마다의 새벽과 저마다의 멜랑콜리가 있는 거니까요. 시안을 짤 때는 막연히 상현 씨의 새벽을 고요하고 차가운 이미지로 떠올렸는데, 오늘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앗, 이분 혹시 파티 피플인가?’
(웃음) 제가 파티에 안 간 지는 굉장히 오래됐어요.
춤 느낌은 날카롭게 살아 있던데요.
그러게요. 오늘 좀 잘 나오는 것 같던데.(웃음) 제가 흥이 없지는 않아요. 밖으로 자주 표출하지는 않아도 내적인 흥이 있죠. 음악도 좋아하고, 춤도 좋아해요. 보는 것도 좋아하고, 듣는 것도 좋아하고요. 그래서 이렇게 어느 순간 딱 맞는 느낌이 올 때 한 번씩 해보는 것 같아요.
고등학생 때까지는 지금과 성격이 좀 달랐다고 한 적이 있어요. 굉장히 외향적이었다고.
네. 그땐 그랬던 것 같아요. 제가 가족을 떠나 캐나다와 미국에서 혼자 자랐지만 따지고 보면 늘 단체 생활을 했거든요. 중학생 때는 홈스테이를 했고, 고등학생, 대학생 때는 기숙사 생활을 하거나 룸메이트들과 살았죠. 그래서 친구들과 많이 어울려 다녔던 것 같아요. 축구랑 스포츠도 워낙 좋아했고요.
밴쿠버에 정착할 때 할아버지와 어머니가 1년 정도 함께 머물긴 했지만 이후로는 쭉 혼자 해외에서 살았다고 들었어요. 막연히 상상하기로는 좀 의기소침해지기 쉬운 환경일 것 같기도 한데요.
그때는 별생각 없었어요. 운 좋게도 늘 좋은 사람들을 만나기도 했고요. 홈스테이 호스트 분들, 함께 홈스테이를 했던 사람들, 학교에서 만난 친구들 모두 가족 같고 형제 같았죠. 그래서 빠르게 적응하고 잘 지냈어요. 제가 또 잘하는 게 적응이거든요. 적응과 견디기는 자신 있어요. 사주를 보면 제가 기본적으로 ‘잔디’라고 하더라고요.
잔디요?
네. 잔디, 덩굴, 이런 것들요. 적응력과 생명력의 상징이죠. 새로운 환경에 잘 적응하고, 아무리 밟아도 죽지 않는 그런 생명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큰 나무는 무럭무럭 자라나지만 대신 한번 꺾이면 다시 일어나기가 어렵잖아요. 잔디나 덩굴은 큰 나무가 되지는 못해도 끈질기게 다시 살아나고요. 그렇게 각 속성의 장단점이 있죠.

니트 톱, 팬츠, 로퍼 모두 베르사체.
잔디와 덩굴의 이미지도 의미심장하고, 상현 씨가 사주팔자를 믿는 사람이라는 부분도 신선하게 다가오네요.
(웃음) 다는 아니고, 어느 정도 믿는 거죠.
영화 <대도시의 사랑법>이 초청을 받아 곧 토론토 국제영화제에 간다고 들었어요. 귀향 같은 기분을 내기에는 밴쿠버에서 너무 먼 도시려나요?
그렇죠. 사실 그보다 <파친코> 시즌2 촬영을 토론토에서 했거든요. 다녀온 지 정말 얼마 안 됐죠. 그래서 가을의 토론토는 어떨까 하는 정도의 기대를 갖고 있어요. 촬영하는 기간 동안에는 늘 눈이 많이 오고 하늘도 우중충했거든요. 선선할 때 보면 또 새로울 것 같아요.
첫 국제영화제 참석인 걸로 알고 있어요. 그런 측면에서는 어떤 기대를 갖고 있을까요?
일단 사람들 구경하는 게 재미있을 것 같아요. 제가 출연한 영화가 그런 곳에서 상영된다는 것도 참 설레는 일이고요. 떨림, 약간의 두려움, 설렘, 그런 다양한 감정들이 공존하죠. 처음 해보는 일이니까. 어쨌든 해야 하는 일이라면 열심히 하고, 한다면 최대한 즐기고 싶어요.
상상하니까 좀 긴장이 되긴 하겠네요. 한국어로 연기하면서 한국적인 정서를 표현한 영화를 외국인들 사이에 섞여서 함께 본다는 게.
저는 그런 걱정은 없어요. 다들 잘 이해해줄 거라고 봐요. 일하면서 깨닫게 된 게, 제가 생각보다 ‘외국 정서’더라고요. 유년기를 전부 이국에서 보냈으니 그렇겠죠. 한국말로 연기를 하면서 맞닥뜨리는 어려움도 한국 특유의 정서에 대한 부분이 컸고, 감정선도 내가 내 생각보다 좀 미국 스타일이었구나 깨닫는 순간들이 있었어요. 그런 저도 <대도시의 사랑법>은 시나리오를 읽을 때부터 술술 읽어 내려가고 감탄했으니 그분들에게도 큰 허들이 없을 거라 믿고 있습니다.
박상영 작가의 <대도시의 사랑법>에 실린 첫 단편 ‘재희’를 기반으로 한 영화잖아요. 원작을 많이 읽어보셨을까요, 아니면 의도적으로 피하셨을까요?
느낌만 봤어요. 정말 좋더라고요. ‘이래서 베스트셀러가 됐구나’ 싶었죠. 하지만 영화 <대도시의 사랑법>은 영화만의 또 다른 매력으로 전개되는 측면이 있거든요. 스토리도 그렇고, 각자의 러브 라인이 있지만 메인 포커스는 재희와 흥수의 우정, 그들만의 사랑법, 성장에 관한 이야기죠. 나이나 성별을 불문하고 누구나 다 같이 즐길 수 있을 만한, 굉장히 유쾌하면서 메시지까지 있는 매력적인 작품이 됐다고 생각해요.
아, 상현 씨는 영화를 이미 보셨군요.
네. 저는 편집본을 봤죠. 시나리오에서 제가 느꼈던 그 분위기, 굉장히 재미있으면서도 뭔가 곰곰이 생각하게 하는 여운, 너무 가볍지도 너무 무겁지도 않게 전달하는 메시지의 심지, 그런 게 아주 잘 담겼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개봉을) 많이 기대하고 있습니다.
상현 씨가 연기한 ‘흥수’(원작 소설에서는 ‘영’)는 원작에서 성소수자이며 다소 무절제해 보이는 라이프스타일을 가진 인물이잖아요. 이 인물이 관객들과 만나는 측면에서 어떤 고민을 하셨을지 궁금해요.
그 측면에서는 연출자님께서 제 고민을 많이 덜어주셨던 것 같아요. 시나리오를 보면서 저는 그 인물의 대사, 그 인물이 갖고 가는 감정선을 최대한 솔직하게 잘 표현만 하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런 특징을 가진 인물이라고 해서 어떤 스테레오티피컬한 동작이나 말투를 추가하진 않았어요. 실제로 사전 조사를 했을 때도 다들 그냥 똑같은 사람들이었으니까요. 말 그대로 하나의 속성일 뿐인 거죠. ‘나는 남자다’ ‘나는 서른다섯이다’ 뭐 이런 것처럼, 그냥 그 사람이 가진 여러 특성 중 하나로 갖고 갔던 것 같아요.
정확히는 이런 의미의 질문이었어요. 원작이 워낙 세련된 미묘함을 가진 소설이잖아요. ‘영’은 다소 무절제하고 무책임한 방식으로 연애를 하는 인물이지만 그게 어릴 때부터 사람들에게 곁을 주지 않는 버릇이 들었기 때문이며, 관계를 피상적으로밖에 맺지 못하기 때문일 거라는 사실이 아주 은근하게 전달되죠. 유머와 자조 속에 숨어서. 소설의 그 미묘한 표현이 영상으로 옮겨질 때, 흥수라는 캐릭터를 잘 전달하기 위해 어떤 고민을 하셨을지 궁금했어요.
그 부분은 재희와의 케미스트리 속에서 제일 많이 드러날 거라고 생각해요. 흥수가 특유의 시니컬함을 지녔지만 또 한편으로는 굉장히 순수하고, 솔직하고, 사랑받고 싶어 하고 이해받고 싶어 하는 사람이라는 게 두 사람의 관계 속에서 잘 보이니까요. 사실 저는 흥수라는 인물을 따라가며 이해하다 보면 다 자연스럽게 납득이 될 거라고 느껴요. 요점은 흥수가 가진 ‘누구에게도 이야기하고 싶지 않은 비밀’이잖아요. 조금씩 다를 수는 있겠지만 그런 비밀을 가진 사람은 생각보다 많죠. 남다른 가정사라든가, 유년 시절에 느꼈던 고립감이라거나, 그때 겪었던 어떤 종류의 수치심이라거나. 그 비밀이 발현되는 방식은 다 달라요. 누군가에게 이해받고 싶다는 강렬한 감정이 될 수도 있고, 사람들에게서 스스로를 보호하고자 하는 방어 기제가 될 수도 있죠. 그게 부드럽게 나올 수도 있고, 인간이다 보니 좀 공격적으로 나올 수도 있고요. 흥수를 이해한다면 그런 면들이 다 보일 거라고, 결국 공감해주실 거라고 생각해요.

레더 코트, 슬리브리스 톱, 데님 쇼츠, 삭스 부츠 모두 보테가 베네타.
Credit
- EDITOR O 오성윤
- PHOTOGRAPHER 김형상
- STYLIST 전진오
- HAIR 태민
- MAKEUP 권지영
- ASSISTANT 송채은
- ART DESIGNER 주정화
CELEBR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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