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OD

음식과 칵테일의 절묘한 '페어링'을 기대할 수 있는 칵테일 바 6곳

자타 공인 칵테일 애호가들에게 ‘음식’에 대해 물었다. 혹시 안주 때문에 자꾸 생각나는 바도 있느냐고. 여름밤 그곳에서 먹고 싶은 음식과 그에 가장 잘 어울릴 음료를 하나씩 꼽아 달라고 했다.

프로필 by 오성윤 2024.07.08
핫도그 & 강기슭 - 기슭
기슭은 불광동 외진 주택가에 자리한 조용한 바지만 수준 높은 칵테일과 특유의 재치로 늘 새로운 즐거움을 안겨주는 곳이다. 일단 자리에 앉자마자 내어주는 기본 안주, 가게 분위기와 사뭇 언밸런스한 뻥튀기부터 흥미롭다. 쫀드기나 뽀빠이 같은 추억의 간식들, 한 번씩 스페셜로 만드는 컵라면을 업그레이드한 요리, 핫도그 같은 메뉴는 또 어떻고. 특히 정성스럽게 구운 소시지와 다진 베이컨, 크림치즈를 곁들여 제대로 미국 남부식을 표방한 핫도그는 기슭의 시그너처라고 할 만한 메뉴다. 가격, 자태, 맛 모든 측면에서 예상을 뛰어넘는 감동을 안기기 때문이다. 한입 베어 물 때 가장 직관적으로 떠오르는 건 롱아일랜드 아이스티 같은 칵테일, 즉 콜라 역할을 대신해줄 음료지만 그건 기슭이라는 바의 묘미를 100% 즐긴다고 하기에는 다소 아쉬운 조합이다. 개인적으로 추천하는 페어링 드링크는 강기슭이다. 피트 위스키에 직접 만든 피클 주스, 탄산수를 섞어 만드는 롱드링크 칵테일. 잔에 직접 만든 한국식 후리카케를 리밍해 내어주는데, 덕분에 본인들도 ‘변태적 칵테일’이라 표현할 만큼 독특한 맛을 낸다. 음식에서나 느낄 법한 맛이 칵테일에서 난달까. 재미있는 경험을 선사해줄뿐더러, 핫도그 같은 음식과 함께 먹으면 감칠맛에 한층 깊이를 만들어준다. 특히 아드벡을 기주로 쓰면 더 절묘하다. 특유의 훈연 향이 입을 감싸고, 핫도그의 풍부한 맛이 그에 어우러지며, 후리카케의 바다 향과 감칠맛, 아드벡의 고소한 맛과 피티함, 피클 주스의 새콤함과 짭조름함이 입안에 다양한 층위의 여운을 남긴다. 한은규(글렌모렌지 앰배서더)

묵라볶이 & 안동 - 크리켓 서울
작년 가을에는 어디선가 귀뚜라미 소리가 잔잔하게 들려오면, 반사적으로 크리켓 서울을 떠올렸다. 귀뚜라미라는 뜻을 지닌 이 바는 그동안 자세히 보지 못했던 아름다운 한국의 술과 음식을 많은 사람에게 들려주겠다는 모토로 탄생한 귀엽고도 생기 넘치는 공간이다. 우리 곁에 늘 있지만 어느새 존재를 잊게 된 귀뚜라미 울음처럼 말이다. 실제로 가게 한 귀퉁이에서 ASMR처럼 나오는 귀뚜라미 소리에 나도 모르게 마음이 평화로워진다. 그래서인지 ‘퇴근길 한잔’이 간절한 날엔 이곳을 자주 찾았다. 음식 메뉴가 탄탄하게 준비되어 있어 저녁을 먹지 못한 채로 방문해도 오히려 즐겁다. 뭉티기나 차돌박이 된장파스타처럼 바에서 보기 어려운 메뉴와 함께 한국의 술과 지역 특산물을 활용한 창의적인 칵테일을 즐길 수 있다. 특히 묵라볶이에 한동안 빠져서 친구들을 데려가 너스레를 떨며 이 메뉴를 널리 전파했다. 떡 대신 건조한 묵을 사용해 쫄깃한 식감을 200% 살린 이 떡볶이는 칼로리에 대한 죄책감 없이 박력 있게 젓가락을 움직일 수 있는 기특한 메뉴다. 치즈와 두유로 만든 에스푸마가 킥으로 올라가 있어 먹다가 중간에 섞어서 로제 떡볶이처럼 변주해 즐길 수도 있다. 사려 깊은 실력자 바텐더들이 있는 공간이라 크리켓 서울에 갈 때마다 술은 늘 추천을 부탁했는데, 박동건 바텐더는 안동이야말로 묵라볶이에 가장 잘 어울리는 술이라고 했다. 안동 생강과 나주 배가 들어가는 진저비어 타입의 탭 칵테일이 매콤한 음식 맛을 부드럽게 중화해주기 때문이다. 여름이라는 계절을 염두에 둔 추천은 아니었지만, 요즘 같은 날씨에 창가에 앉아 묵라볶이와 안동을 먹고 마시다 보면 그야말로 정답이라는 생각이 든다. 김아름(주류 브랜드 컬처 매니저)

밑반찬들 & 바텐더스 터치 #1 - 바 집
애주가들은 보통 술을 마실 때 배부른 음식을 피한다. 포만감을 느끼면 술 맛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나도 그렇다. 바에서 프리 스낵으로 내는 초콜릿, 땅콩 따위에도 쉽게 손을 뻗지 않고, 페어링으로서 대단한 의미를 갖는 게 아니라면 안주에 큰 신경을 쓰지 않는다. 그런 내가 최근 바에서 수줍게 ‘리필’을 요청한 메뉴가 있으니, 바로 밑반찬이었다. 참기름에 무친 도라지, 토란대, 오징어채무침… 이희람 바텐더가 채운 종지들을 갖고 돌아와 “별거 아닌데” 웃으며 말했을 때는 나도 모르게 이마를 탁 쳤다. 한 상 거하게 차려놓고도 “우리 딸 먹을 게 없네” 말하는 엄마가 떠올라서 그랬다. 바 집의 반찬들이 과연 별거 아닌가 하면 전혀 그렇지 않다. 기교 없는 평범한 음식일수록 감동을 주기 어려운 법인데, 부담스럽지 않으면서 싱겁지도 않은 절묘한 간이 내 마음도 술잔의 술도 자꾸만 훔쳐간다. 알고 보니 전라도에서 오랫동안 반찬 가게를 한 바텐더 어머니의 솜씨라고. 손맛은 유전인 걸까. 시그너처 칵테일, 바텐더스 터치 #1을 마시며 든 생각이다. 맑게 내린 토마토 주스와 보드카, 샤르트뢰즈를 더해 완성한 한 잔은 식전, 식 중, 식후 술의 역할을 모두 해낸다. 청량한 풍미가 입맛을 돋우고, 지나치게 달지 않아 음식과 먹기에도 좋으며, 애플 시럽과 민트 리큐어로 만든 얼음이 조금씩 녹아들면서 점점 아이스크림 ‘캔디바’ 같은 맛이 난다. 이희람 바텐더의 20여 년 경력이 빚은 연륜과 노하우가 응축된, 플레어 신의 활달한 무드와 클래식 신의 정교함이 맞닿은 똑똑하고 다정한 맛의 칵테일이라 할 만하다. 장새별(푸드콘텐츠 그룹 스타앤비트 리더)

트러플 아란치니 & 윌로우 브랜치 - 찰스 H.
요즘 칵테일은 물론 안주 구성까지 훌륭한 바가 참 많다. 이 기사의 주제를 처음 들었을 때도 온갖 바의 다양한 음식이 머리를 스쳤다. 공간의 한우 육회 타르타르, 소코의 소코 라멘… 결국 찰스 H.의 트러플 아란치니를 선택하게 된 건 ‘오늘 밤 퇴근 후’를 상상했기 때문이다. 긴장이 탁 풀리는 분위기와 빼어난 음식을 원한다면 5성급 호텔 바만 한 곳이 없을 테니까. 찰스 H.는 거기다 세계적 명성으로 증명된 실력, 개성 있는 분위기, 바텐더들의 빼어난 인사이트와 열정까지 다양한 매력을 품고 있어 특히 애정하는 곳이다. 이곳의 트러플 아란치니는 누구에게나 대뜸 권할 만한 음식이지만 특히 ‘한국인은 밥심’이라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1차에 주문하기 딱이다. 핑거푸드처럼 간단한 느낌이면서도 허기를 든든히 채워준다. 트러플 향이 강한 만큼 곁들일 술로는 무난한 계통이 먼저 떠오를 수 있는데, 개인적으로 추천하는 건 윌로우 브랜치와의 조합이다. 교토의 장인정신이 고스란히 담긴 섬세한 향의 드라이 진 키노비를 캐주얼하고 달콤하게 풀어내 누구나 즐길 수 있도록 한 진토닉 베이스의 칵테일. 특유의 향이 트러플 향과 신기하리만큼 조화롭게 어우러지며 상큼한 맛이 튀김 음식 특유의 헤비한 끝맛을 리프레시해준다. 번갈아 먹고 마시면 그야말로 끝도 없이 들어간달까. 밤을 시작하기에 더할 나위 없는 콤비다. 박인영(페르노리카 코리아 브랜드 매니저)

풍기 시소 파스타 & 시소 진 피즈 - 바 명
근사한 바에서의 식사가 간절한 저녁이 있다. 적적한 마음에 허기진 배를 그냥 대충 때우기보다는 좋은 술을 곁들인 정성을 담은 음식과 세심한 배려로 채우고 싶은 날. 한남동에 위치한 바 명은 그런 마음이 피어오르는 저녁에 아무 걱정 없이 발걸음을 옮길 수 있는 공간이다. 개업한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지만, 명동 숙희에서 인연을 맺은 김명규 오너 바텐더와 박두리 셰프, 두 사람의 내공이 깊다. 여러 메뉴 중에서도 풍기 시소 파스타가 특히 일품이다. 우선 가게에서 숙성한 생면을 사용해 차진 식감과 퍼지지 않는 촉촉함을 동시에 품고 있다. 자꾸 손이 간다. 적절한 점도로 면과 일체화되어 있는 소스 역시 풍부한 감칠맛과 녹진함으로 입안을 사로잡는다. 네 가지 버섯과 양파, 마늘을 볶아 표고 우린 물을 더한 뒥셀(duxelles)에 올리브유와 그라나파다노 치즈를 얹어 만든 것이다. 자칫 무거워질 수 있는 맛이지만 살짝 스치는 마늘과 시소, 베르무트의 터치로 절묘하게 밸런스를 잡았다. 여기에 가장 잘 어울리는 한 잔은 시소 진 피즈다. 심플하지만 디테일이 살아 있다. 차갑게 얼려둔 비피터 진에 직접 만든 두 가지 시럽을 넣고, 시소 가니시와 강한 청량감을 위한 싱하 소다로 마무리한다. 술 향이 음식 향을 더 돋워주고, 과하지 않은 단맛과 좋은 산도, 강한 탄산이 피클이나 와인처럼 입안을 개운하게 씻어준다. 좋은 궁합의 근사한 식사다. 김광연(전통주 양조사)

가츠샌드 & 김렛 - 폴스타
폴스타가 도산공원 뒤켠에 문을 연 지도 벌써 8년째다. 일본 클래식 바 신에서 바텐더로서도 사업가로서도 위상이 당당한 요시후미 츠보이 상이 운영하는 폴스타는 칵테일 바가 스시집만큼 많아진 요즘에도 홀로 고고하다. 츠보이 상이 지금도 여전히 매달 한국을 찾아 기술 전수를 하는 폴스타는 엄격한 바텐더의 몸놀림만큼 맛과 서비스에 타협이 없다. 배가 고파지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역시 폴스타의 자랑, 핑크빛이 살짝 감돌게 튀긴 돼지고기 등심을 하얗고 촉촉한 식빵 사이에 넣은 가츠샌드다. 식빵의 속살은 거친 부분 하나 없이 나긋하고 부드럽다. 그 사이에 들어간 돈카츠는 퇴폐적일 정도로 두툼하고 기름져서 단순히 혀끝의 기쁨을 넘어 쾌락의 차원 어딘가로 이끄는 것만 같다. 8년 전 처음 폴스타의 가츠샌드가 소개되었을 때 그 수준은 한국에서 맛볼 수 있는 경지가 아니었는데, 그건 지금도 유효해 보인다. 일본의 칵테일 바 시스템을 그대로 가져와 가츠샌드, 에비샌드, 나폴리탄 파스타 등 웬만한 식당보다 많은 메뉴 가짓수에 맛까지 놀라울 정도로 잘 챙기고 있기 때문이다. 볼륨감 있는 가츠샌드에 곁들일 칵테일로는 김렛이 좋을 것 같다. 진의 매끈한 물성에 라임의 강렬한 산미가 뒤섞인 김렛은 살얼음이 살짝 올라갈 정도로 강하게 셰이킹한다. 낮은 온도감과 높은 산미, 약하지 않은 알코올의 앙상블은 입안을 깔끔하게 정리한다. 희미하게 남는 주니퍼베리의 차분한 향은 화려하지만 정돈된 폴스타의 분위기와도 어딘가 맞아떨어진다. 정동현(요리사, 음식 칼럼니스트)

Credit

  • PHOTOGRAPHER 박기훈
  • ART DESIGNER 김동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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