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아이 웨이웨이(Ai Weiwei)는 웃음을 터뜨렸다. 부활과 파멸을 동시에 상징하는, 십이지(十二支) 중 가장 변덕이 심한 동물로 알려진 용의 해에도, 그는 태생적인 목적을 위해 그의 일을 계속해 나갈 뿐이다. 그는 수탉을 비유로 들었다. “가장 예측 가능한 동물이 뭔 줄 아세요? 수탉이에요. 매일 아침 똑같이 울잖아요.” 아이 웨이웨이의 삶은 그 자체로 인간의 권리, 표현의 자유, 도덕적 선택이라는 가치에 대해 경종을 울린다. 그는 수탉을 침묵시킬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반항과 의혹 제기의 마에스트로인 그는 경계를 무너트리는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한다. 억압에 항의하기 위한 퍼포먼스로 싸이의 ‘강남 스타일’에 맞춰 말춤을 추기도 했다. 아이 웨이웨이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중국인 개념 미술가일 뿐 아니라 건축가, 도시계획가, 블로거, 탐사 작가, 무대 미술가, 작사가, 사진가이자 만화가이기도 하다.
최근 그는 이탈리아 산지미냐노(San Gimignano)에 있는 갤러리아 콘티누아(Galleria Continua)에서 2006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창작 활동을 되짚어보는 전시 <Neither Nor>를 열었다. 그러나 그가 수탉처럼 침묵하지 않는 창작 활동을 하는 작업실은 베를린에 있다. 그를 거기서 만났다.
약속 장소는 맥주 생산 단지에서 가장 가장 눈에 띄는 지점인 어느 호스텔 앞이었다. 그의 지하 스튜디오로 가는 계단을 따라 내려가자 냉장 창고와 미로처럼 복잡한 복도가 나타났고, 곧 베이징과 독일을 비롯해 온 세계를 오가는 작품 박스들로 어질러진 공간들이 펼쳐졌다. 박스에 붙은 라벨을 통해 내용물을 유추해보자면 의자, 자전거, 레고가 들어 있는 것 같다. 한 공간에는 그가 수년에 걸쳐 색을 입혔던 그 유명한 테라코타 꽃병 수십 개가 놓여 있기도 했다.
두 개의 방은 무려 30톤에 달하는 단추들로 채워져 있는데, 도산한 공장에서 옮겨온 것이라고 했다. 단추에 대한 집착은 아버지인 시인이자 중국 화가인 아이칭(Ai Qing)의 유배로 가족과 함께 살던 어린 시절에서 기인했다. “바지가 단 한 벌밖에 없는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건 허리를 여밀 수 있는 단추거든요.” (단추를 잃어버리면 바지를 못 입기 때문으로 추측한다.) 단추들 중 일부는 벽에 만들어진 ‘FUCK’이라는 글자의 소재로 변해 있었다. 그 공간은 3000m² 정도로 보였고. 많은 인원을 수용할 수 있도록 거의 모든 것이 대형화돼 있었다. 아이 웨이웨이가 친구들이나 협업자들에게, 혹은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음식을 만들어주는 주방조차도 거대했다.
아이 웨이웨이는 지난 3월 말까지 진행된 프로젝트 ‘Ai vs AI’에 대해 얘기했다. 그가 2011년 중국 정부에 의해 감금됐던 81일과 같은 숫자인 81개의 질문을 AI에게 던지고 그 답변을 받아 게시하는 프로젝트였다. 이는 디지털 아트 플랫폼 CIRCA와 런던, 서울, 베를린과 밀라노의 대형 스크린에 게시됐고, 아이 웨이웨이의 인스타그램 계정을 통해서도 방송됐다. ‘죽음 이후에는 무엇이 있나?’ ‘비밀이란 지켜질 수 있나?’ ‘사랑과 증오, 어느 것이 더 오래 지속되나?’와 같은 질문을 AI에게 던졌다. 아이 웨이웨이는 2300년 전 시인 굴원(Qu Yuan, 취위안)이 하늘에 건넨 172개의 질문인 천문(Tiānwèn)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했다. 아이 웨이웨이는 “우리가 원하는 답을 얻는 것보다 질문하는 방법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라고 했다. “AI는 효율적이지만 의심의 여지를 주지 않지요. 안심할 수 있는 답변을 제공한다는 건, 사람의 마음을 게으르게 하고, 그 외에 발견할 수 있는 여지는 없다는 확신을 줄 수 있는 겁니다.”
새 전시 <Neither Nor>가 산지미냐노에서 막 열렸습니다.
전시라는 건 꽃피우기 위해 씨앗을 심은 정원과 같습니다. 어떤 씨앗은 싹이 트는 데 시간이 걸리고, 어떤 것은 즉각 빛을 내기도 하지요. 20년 전에 만든 제 작품이 요즈음에 구상한 작품과 어떻게 상호작용할 수 있을지, 그리고 이 모든 것이 궁극적으로 작가의 현재 상황을 어떻게 반영하게 될 것인지 예측하기란 어렵거든요. 전시 결과는 저도 궁금하네요.
회고전이 처음은 아니지만 완성형에 가장 가까울 것으로 보입니다.
특별할 것 같아요. 이탈리아가 주는 자유로움 때문에 그럴 거라는 생각도 드네요. 예술에서 가장 중요한 건 공감할 수 있는 표현 방식, 공감할 수 있는 언어를 찾는 것입니다. 친근한 문맥일수록 이야기의 맥락을 찾는 게 더 수월하니까요.
스토리텔링 방식에 관해서도 질문 드리고 싶네요. 최근 출간한 자서전 <조디악(Zodiac)>은 만화책 형식이었습니다. 자신에 대해 기록하는 것이 스스로를 돌이켜보고 점검하는 계기가 되나요?
어릴 때 내 관심은 오직 하나뿐이었습니다. 바로 나 자신을 표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걸 해나가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꼈죠. 그러나 노년으로서 내가 필요한 건 조금 다릅니다. 나의 과거가 어땠는지 완전히 이해해야 합니다. 점검한다기보다는 스스로를 이해할 수 있도록 그 해석을 찾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내가 무엇을 알고 싶어 하는가조차 저 스스로에게 주도권이 있는 게 중요하고요. 가장 중요한 건 잘못된 사람들에게 권력을 내맡기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 배후에는 정부가 있는 경우도 있지요. 예를 들어 내 생각을 표현한 것이 잘못 해석된다면, 결국 그 책임도 나에게 돌아오는 거지요.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말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진실. 누구라도 자기 신념에 따라 정직해야 합니다. 설사 그것이 듣기에 불편한 말일지라도요.
중국에서 활동하면서 여러 차례 보복을 당하기도 했는데요. 여전히 위험하다고 느낍니까?
저는 단지 질문을 했다는 이유로 감옥에 보내졌습니다. 2008년 쓰촨성 지진의 희생자들과 학교 담장 밑에 묻힌 유아들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는 이유로요. 방치와 부패로 희생된 그들에 대해서 물었던 겁니다. 그러나 권력자들은 결코 간섭하는 행위를 좋아하지 않지요. 그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을 수 있을까요? 적어도 그 대답이 저한테 있지는 않은 것 같네요.
쓰촨성 대지진으로 희생된 5219명의 유아들을 조사하고 탐사한 프로젝트를 블로그에 게시했습니다. 탐사도 창조적인 행위의 일부라고 할 수 있을까요?
그건 스스로를 위한 행위였습니다. 독일로 이주하고 나서 이주민과 난민들을 위한 조사와 연구를 다시 시작했습니다. 다큐 <유랑하는 사람들(Human Flow)>에 제가 본 것들을 담았고요. 이러한 얘기는 이전엔 시리아에 있었고, 오늘은 가자지구, 내일은 예멘에서 펼쳐질 수 있습니다. 그들 상황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통제 불능입니다. 그런데 사회는 이를 방관하고 싶은 것 같습니다. 권력이 소수의 손에 집중되면 마치 세상에는 단 한 가지 목소리밖에 들리지 않는 것 같습니다. 이런 목소리를 만드는 진정한 기원은 무엇일까요? 그게 궁금한 거죠.
우리가 믿고 있는 것과 앞으로 일어날 일 사이의 경계가 얇다고 생각하나요?
일반 대중은 실제로 무엇이 사회를 움직이고 있는지 모릅니다. 사물의 표면만 볼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그 표면 아래 얼마나 많은 죽음이 있는지, 인간의 생명이 얼마나 계속해서 희생되고 있는지 모릅니다. 해결책을 찾기 위해 테이블에 앉지 않는다면, 이 상황이 누구에게 득이 되는지 알 수 없는 거죠. 이건 민주주의가 아니에요. 장난이죠.
민주주의라는 건 존재하지 않습니다. 도대체 일반적인 정서를 반영하지 않아요. ‘사람’을 존중하지 않는 게 민주주의입니다. 대중이 좋은 패를 가질 수는 없고, 패자가 될 운명에 놓인 게임인 거죠. 카지노에서 게임할 때와 같아요. 몇 번 해보면 크게 딸 수 있을 것 같거나 이길 수 있을 것처럼 보이지만, 시스템은 이미 당신이 패배하도록 설계된 겁니다.
올해는 세계 인구의 절반이 각 나라에서 투표를 하게 될 텐데요. 뭔가 바뀔 가능성은 없나요?
나는 선거가 혁명의 엔진이라고 믿어본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우파가 더욱 성장할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나는 투표 안 해요. 투표권이 없거든요. 그런데 이건 행운이라고 생각해요. 트럼프와 바이든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고 상상해보십시오. 그것은 마치 최악과 악마 사이에서 결정하는 것과 같을 것입니다.
이 세상에 존경받을 만한 사람은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현대의 영웅은 이데올로기의 이름으로 자신을 희생할 준비가 된 사람들입니다. 저는 에드워드 스노든, 줄리안 어산지, 그리고 지난 2020년 자신의 원칙을 지키기 위한 극단적인 항의 행위로 자살을 시도했던 전 미군 첼시 매닝을 생각합니다. 그들은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고 공유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칩니다. 그리고 저는 하고 싶은 다른 말이 있습니다.
서양에서조차 엄격한 검열이 만연해 있습니다. 제가 중국에서 경험한 것과 비슷한 통제인 거죠. 시스템에 대해 아주 사소한 비판이라도 하면 역효과를 낳습니다. 언론인, 배우, 작가, 예술가들에게 이런 일이 지금 일어나고 있는 거죠. 우리는 지금 21세기에 살고 있습니다. 생명은 무엇보다 먼저 보호돼야 하며 모든 사람에게는 존엄성과 권리가 보장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인류가 이뤄온 수천 년의 진보가 무슨 소용인가요? 야만인과 같은 거지. 과거에는 그저 몰랐다고 변호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요즘 시대에서 그런 건 불가능합니다. 모든 것이 우리 눈앞에서 번쩍이고 있어요. 우리는 공범자이며 부동의 희생자입니다.
예술은 어떤가요?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것이 예술이 되지 않나요?
저는 예술과 민주주의를 함께 묶지 않을 겁니다. 종종 최고의 예술은 암울한 시대에서 창조됐지요. 중세 시대 이탈리아만 봐도 그렇고요. 그런 시대에 비하면 지금은 안락한 시대라고 할 수 있죠. 저는 이를 비유로 설명합니다. 훌륭한 식물종은 온실에서 재배되고 보호되지만, 어려운 조건에서 자라는 종은 예측할 수 없는 특성을 드러냅니다. 삶의 어려움을 통하지 않고 예술은 없습니다.
둘로 나뉜다고나 할까요. 유명하고, 내적으로 단단하고, 안정된 아이(Ai)가 있죠. 지인들이 셀카를 찍자면 같이 찍기도 하는. 그리고 67세에도 집이라 부를 곳이 없는 위태로운 웨이웨이(weiwei)가 있습니다. 저는 중국 여권을 가지고 있고, 베를린에 작업실이 있고, 케임브리지에 아들이 있고, 포르투갈에 거주하고 있지만, 나는 여전히 국외 거주자, 외국인입니다. 올리브나무의 뿌리를 기억하시나요? 올리브나무는 땅으로 뿌리를 내리지만, 그 지점에 돌이 있으면 그 길을 우회해서 뿌리를 내리죠. 그러기 위해 스스로의 모양을 바꾸기도 하고요. 나 역시 그렇게 저항하면서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에 매달릴 뿐입니다.
나는 중국어를 사용하지만 중국의 기득권층이 나를 싫어하기 때문에 내 목소리가 들리지 않습니다. 나는 서양에 살고 있지만 영어가 나를 대표하는 언어가 되진 않지요. 조국의 개념은 종종 언어와 연결됩니다. 말은 우리의 정체성을 보호합니다. 말이 없으면 우리는 벌거벗은 것과 같고, 취약하며, 손상됩니다.
당신의 아버지는 당신이 살아야 하는 방식에 대해 죄책감을 느꼈습니다. 당신도 아들 라오에게 같은 책임감을 느끼나요?
제 아버지는 스무 살에 시와 그림, 자유를 공부하기 위해 프랑스로 떠났습니다. 돌아오자 그는 우익으로 선고돼 유배됐고 우리도 그 뒤를 따랐죠. 나는 아버지가 유학을 가셨던 거의 같은 나이에 뉴욕으로 떠났고, ‘해방’이라는 개념에 대해 배운 내용은 나를 상당히 혼란스럽게 했어요. 나는 내 아들이 가족의 틀을 깨뜨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들은 이미 이민자라는 낙인이 찍혀 있어요. 진심으로, 인간이 열망할 수 있는 최고의 신체적, 정신적 건강이 아들의 미래에 있기를 기원합니다.
인간이 어떠한 유산을 남길 수 있는가 결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나요?
아들에게 우리가 어디서 왔는지 알려주기 위해 쓴 회고록 ‘천년의 기쁨과 슬픔’ 첫 페이지에 제 아버지의 시가 적혀 있습니다. 마지막 구절은 이렇습니다. “살아 있는 자들아, 최선을 다해 살아라. 땅이 그것을 기억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각 세대가 자신의 역사를 책임지고 명확하게 말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우리가 말하는 유산이 그런 거라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