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전 세계에서 가장 핫한 위스키를 꼽으라면 아마 버번일 것이다. 통계가 아닌 ‘애호가’의 관점에서 보면 20세기는 스카치 블렌디드의 최전성기였고, 꽤 긴 시간 싱글 몰트, 그중에서도 캐릭터가 너무도 뚜렷한 아일레이의 몰트들이 위스키 애호가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리고 최근 10년은 아마도 버번과 일본 위스키 시대가 아닐까? 버번 위스키(whiskey)는 아주 단순하다. 미국 영토에서 생산된 위스키 중 51% 이상의 옥수수를 포함한 곡물을 발효시켜 알코올 볼륨 80% 이하로 증류하고, 토칭한 뉴오크에서 숙성시켜 알코올 볼륨 40% 이상, 62.5% 이하로 병입한 제품에 버번의 이름을 붙일 수 있다. 그러나 ‘스트레이트 버번’의 이름을 달았다면 얘기가 조금 다르다. 스트레이트 버번은 2년 이상의 숙성을 최소 요건으로 하며 다른 향미 물질을 첨가할 수 없다. 다른 증류주를 섞어도 안 되고 대부분은 칠 필터링(저온 여과) 과정을 거치지 않은 논 칠 필터드 위스키인 경우가 많다. 특이하게도 ‘4년 이하의 스트레이트 버번은 에이징 기간을 표기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다. 즉 연수가 쓰여 있지 않은 스트레이트 버번의 원액은 4년 이상 숙성된 것이라는 얘기다. 이런 이유로 스카치에 비해 평균적으로 숙성 연수가 짧은 버번 업계는 그래서 쉽게 뛰어들 수 있지만, 또 그래서 오히려 살아남기 힘든 시장이기도 하다. ‘제퍼슨’은 버번계에서 근성의 상징이다. 버번 위스키가 팔리지 않아 남아돌던 1997년, 완벽한 버번을 만들겠다는 일념 하나로 버번 업계에 발을 디뎠고, 살아남았다. 버번이 주로 생산되는 미국 남부 켄터키와 뉴올리언스의 고집스러운 분위기를 생각하면 이들의 신념이 얼마나 터프한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제퍼슨의 ‘스트레이트 버번’을 마셔보면 이들의 지향점을 확연하게 알 수 있다. 잔에 따르는 순간 사과를 뜨겁게 닳아오른 프라이팬에 올렸을 때 나는 캐러멜라이즈드 된 당과 활력 넘치는 산미의 향연이 펼쳐지며 입안에 넣으면 부드러운 아메리칸 뉴오크의 바닐라 향과 달콤한 벌꿀 맛이 감돈다. ‘래빗홀’은 브랜드의 이름에도 잘 드러나 있듯, 카베 자마니안(Kaveh Zamanian)이 무슨 일이 생길지 전혀 알 수 없는 토끼굴에 뛰어드는 심정으로 2012년에 설립한 브랜드다. 그중에서도 이번에 출시된 래빗홀 데어린저는 이란 혈통의 자마니안을 아메리칸 위스키의 길로 안내한 루이빌 출신의 아내 헤더 자마니안으로부터 영감을 받은 사랑의 위스키다. 아메리칸 뉴오크에서 숙성하고 스페인의 페드로 히메네스 셰리 캐스크에서 피니시했다. 빨갛게 익은 사과잼과 달고나에서 나는 고소하고 풍부한 단 향이 폭발적이다. 알코올 볼륨이 46.5%에 달하지만 향기로운 벌꿀과 블랙커런트의 풍미 덕에 부드럽게 넘어간다는 점도 특징이다. 엔젤스 엔비는 ‘켄터키 버번 명예의 전당’ 초대 멤버인 전설의 마스터 디스틸러 링컨 핸더슨이 자신의 아들과 함께 지난 2010년에 설립한 브랜드다. 40년간 잭다니엘의 모회사 브라운 포맨에서 일한 그는 잭다니엘의 스몰 배치 럭셔리 라인 ‘젠틀맨 잭’의 출시에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엔젤스 엔비의 피니시드 인 포트배럴은 그 이름처럼 천사가 부러워할 위스키다. 와인에서 느낄 수 있는 캐릭터인 청사과와 풀 향, 아카시아 혹은 소국을 떠올리게 하는 하얀 꽃들이 향에서부터 연상된다. 이런 첫 향들과 과하지 않은 버번 특유의 벌꿀 맛이 섞이며 미국과 유럽이 섞인 듯한 엘레강스한 느낌을 풍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