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YLE
스니커즈 애호가들이 말하는, 지금 한국의 스니커즈 신에서 가장 흥미로운 지점들
운동선수를 위한 기능성 제품으로 개발되었으나 이제는 수집의 대상, 패션 아이템의 중심, 심지어 예술 작품의 입지까지 차지하게 된 물건, 스니커즈. 지금 우리는 이 신발들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5인의 스니커즈 애호가에게 오늘날 스니커즈 문화와 산업에서 가장 흥미롭게 바라보는 지점을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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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니커즈 애호가들이 더 이상 에어 조던 원 시카고에 목매지 않는 이유
- 허유진(스택하우스, 칩스 대표)
지난 5년간 스니커즈 시장은 그야말로 폭발적 성장을 이뤘다. 한국뿐만이 아니었다. 거의 세계적 추세였다. 하지만 그 안에서도 작년과 올해만 떼어놓고 보면 시장은 급하락세를 보인다. 전체적 수요의 움직임뿐만 아니라, 오래도록 이 분야에 몸담아온 ‘스니커헤드’들의 반응을 봐도 그렇다. 현 상황에 대해 낙관하는 사람을 찾아보기가 힘들고, 하나둘 등을 돌리는 사람도 생기는 판이다. 왜일까? 이런 이야기가 나올 때면 나는 늘 단순한 답을 내놓는다. “스니커즈가 예전만큼 쿨하지 못하니까.”
4~5년 전까지만 해도, 에어 조던, 에어 포스, 에어 맥스 같은 모델들의 한정판은 그야말로 열망의 대상이었다. 여타 브랜드와 협업으로 만든 한정판이나 특별판만 인기를 얻는 게 아니었다. 레트로(전에 나왔던 모델이 재발매되는 것) 모델은 5~6년에 한 번씩 발매되며 아주 소량만 발매되었기에 나오는 즉시 프리미엄이 붙었다. 하지만 최근 2, 3년은 사정이 좀 달랐다. 귀하다고 회자되는 모델들이 유사한 컬러를 띤 채 수도 없이 재발매됐고, 조금 잘 팔린다 싶은 모델은 곧장 추가 생산되기도 했다. ‘리셀(재판매)’과의 전쟁을 벌이고 있는 나이키 입장에서는 리셀 시장이 더 이상 커지지 않도록 한정판의 수량을 늘리는 정책을 쓰고 있는지 모르겠으나, 아무튼 한정판의 가치를 꼼꼼히 따져 거액의 가격을 지불한 초기 구매자들에게는 힘이 빠지는 일이었다.
남발된 것은 컬래버레이션도 마찬가지였다. 힙합 아티스트나 패션 브랜드 디렉터들과의 협업은 분명 스니커즈 시장이 성장하는 데에 큰 역할을 한 문화였다. 애초에 스니커즈가 스트리트 문화의 중심에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것 역시 RUN DMC와 아디다스의 협업, 그리고 마이클 조던과 나이키의 협업 덕분이었으니까. 특히 2017년 패션 디자이너 버질 아블로와 나이키가 함께한 프로젝트 ‘The Ten’은 컬래버레이션이 시장에 얼마만큼의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 보여준 정점이라 할 만했다. 운동선수와의 시그너처 라인만을 고집하던 나이키는 그 후로 힙합 아티스트, 패션 브랜드 디렉터, 인플루언서들로까지 협업 영역을 확장했고, 스니커즈 시장점유율을 모두 가져가기 시작했다.
이제 사람들은 협업 프로젝트의 내용을 듣기도 전에 질려 한다. 급격히 많아진 프로젝트 수에 비해 임팩트가 있는 프로젝트는 잘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 흐름의 중심에 있던 버질 아블로는 안타깝게 생을 마감했고, 칸예 웨스트 역시 브랜드들과의 불화로 스니커즈업계를 떠났다. 그나마 트래비스 스캇×나이키 컬래버레이션 라인들이 인기를 끌고 있기는 하지만 글쎄. 앞서 열거한 제품들 옆에 놓으면 솔직히 그게 그렇게 훌륭한 협업이라고 말할 수 있는지 잘 모르겠다. 아주 오래전 멋진 컬래버레이션 모델은 못 사더라도 그런 멋진 행보를 보이는 나이키 신발을 사고 싶었던 때를 기억한다. 이런 잦은 시도와 실패들이 단순히 특정 모델의 성패에서 끝나는 게 아닐 수도 있다는 뜻이다.
한정판 스니커즈의 시세를 누구나 한눈에 알 수 있게 된 것도 시장에 큰 영향을 끼쳤다. 처음 이를 가능하게 한 것은 스탁X라는 플랫폼이었다. 처음 등장했을 때만 해도 리셀러들은 물론 수집가들도 그 존재를 달가워했다. 한정판 스니커즈를 합리적(?) 가격으로 쉽게 사고팔 수 있게 되었으니까. 그 덕분에 더 많은 수집가와 리셀러가 생겨났으니 스니커즈 시장을 키운 큰 요인 중 하나라고 할 수도 있겠다.
국내에서도 2019년부터 프로그, xxblue 같은 플랫폼들이 생겨났고, 2020년부터는 크림, 솔드아웃처럼 대기업이 해당 플랫폼 사업에 뛰어드는 경우가 속속 생겨났다. 그 결과는 이런 식이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신발에 별 관심이 없는 친구들이 내 신발을 보면 이렇게 묻곤 했다. “이런 신발은 도대체 어디서 구하는 거야?” 하지만 이제는 내 신발이 궁금해지면 스마트폰을 꺼내 들며 이렇게 말한다. “이 신발 얼마야? 이거 크림에 있어? 나도 사야지.”
앞서 말했듯 시장에 긍정적 영향을 끼친 부분도 크지만, 온라인 시장 탓에 너무 많은 수요가 유입되면서 스니커즈 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기 시작했다. 단순히 애호가들이 제품을 구하기 어려워졌다는 상황만을 말하는 게 아니다. 간절함이나 노하우를 떠나, 그냥 돈을 많이 내면 제품을 구하는 게임이 됐다는 뜻이다. 코로나로 야외 활동을 하지 못하게 된 사람들은 스니커즈를 투자 종목의 일종으로 여기며 뛰어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렇게 팽창을 거듭하던 리셀 시장은 팬데믹의 종언과 함께 빠르게 거품이 꺼지는 것처럼 보인다. 아니, 어쩌면 스니커즈 시장이 커졌다는 말 자체가 어불성설은 아닐까? 그 요체는 투자 시장에 일어난 버블이 보여준 착시였다고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전 세계적 경기 침체와 함께 소비자들은 점점 더 신중해지고 있고, 팬데믹 때 즐기지 못한 것들에 투자를 하며 스니커즈 시장에 몰렸던 관심도 분산되고 있다.
작년 말, 예전이었다면 내게 초미의 관심사였을 에어 조던 원 시카고 리이매진드의 발매 소식에도 어쩐지 시큰둥한 스스로를 보며 문득 자문하게 됐다. 어쩌면 바뀐 건 내가 아니라 ‘스니커즈’ 가 아닐까? 온라인 상거래의 발달과 스니커즈의 투자 가치 재인식과 그 물결에 흔들린 브랜드들의 움직임 아래에서, 스니커즈 컬렉팅이라는 취미 자체가 예전과는 전혀 다른 것이 되어버린 건 아닐까? 아니면 이건 그냥 일시적인 현상인 뿐인 걸까? 거품이 빠지면서 시장이 안정되고, 브랜드들도 곧 다시 쿨하고 멋진 신발, 신중한 컬래버레이션 프로젝트들을 내놓게 될까? 개인적으로는 후자라고 믿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애호가들이 시장 논리보다는 문화와 스토리에 집중해야 할 필요가 있을 테다. 문화가 단단하게 기반을 잡고 있어야 시장도 건강하게 성장할 테니까.
이 원고를 쓰면서 문득 몇 년 전, 에어 조던을 사기 위해 3일 동안 나이키 매장 앞에서 캠핑을 하며 많은 사람과 신발 이야기를 하던 때가 떠올랐다. 꼰대처럼 들릴 거란 걸 알지만, 그때 참 좋았다.

반스 타이거 패치워크보다 흥미로운 건 반스 타이거 패치워크의 가격 추이다
- 오상환(스니커즈 컬렉터)
‘액션 스포츠/라이프스타일 브랜드’를 표방하는 반스는 그 범용성으로 오랜 세월 사랑받아왔다. 최근에는 몇 주가 멀다 하고 다양한 브랜드 및 아티스트와 협업을 전개하고 있으며, 슈프림부터 노스페이스까지 거느린 VF 코퍼레이션을 모회사로 두고 있는지라 한정판과 리셀에 대한 데이터 인프라 역시 남부럽지 않게 갖추고 있다. 하지만 2020년 반스 에라 타이거 패치워크 모델을 둘러싸고 벌어진 일은 그들도 전혀 예측하지 못했을 것이다.
반스 에라 타이거 패치워크는 소비자가 7만9000원에 발매된 평범한 모델이었다. 비교적 단조로운 디자인의 반스 에라 라인업의 특성을 감안하면 꽤 화려한 모델이긴 했지만, 딱히 특별판이라는 키워드를 내걸거나 특정 매장에 한정 출시한 제품은 아니었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 제품이 스니커즈 커뮤니티, 패션 커뮤니티에서 언급되기 시작하더니 어느샌가부터 가격이 훌쩍 뛰었고, 나중에는 2배 이상의 가격에 거래되기에 이르렀다. 예쁘다는 평을 많이 받기는 했으나 단순히 디자인에 대한 반향이라 보기에는 너무 폭발적이었다. 한국에서 정식 발매된 수량은 많으면 많았지 결코 적지 않았으니까. 국내 정식 발매된 수량은 발매와 동시에 품절되었고, 무신사나 JD 스포츠 같은 대형 리테일러의 홈페이지를 느리게 만들 정도의 화력을 자랑했다. 그리고 그 후로도 커뮤니티에는 하루가 멀다 하고 타이거 패치워크의 전 세계 발매 정보, 직구 링크가 공유되었다. 한정판이나 리셀에 큰 관심이 없으면서 그냥 반스를 즐겨 신던 사람들이 이 제품 때문에 리셀이라는 분야에 입문하기도 했고, 고급 한정판 스니커즈를 고집하던 컬렉터들이 처음으로 반스를 구매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대체 이 모델의 어떤 매력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졌던 걸까?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국내의 초도 물량 대부분이 발매와 동시에 중국으로 넘어가면서 벌어진 일이었다. 당시 국내에서는 다운로드 및 설치조차 불가능했던 중국의 리셀 앱 더우(毒)를 비롯해 국내 포털 검색으로는 잡히지 않는 중국 쇼핑몰들에서 해당 제품이 활발히 거래 중이었다. 중국 내에서의 인기는 발매 초기 중국의 유명인들이 착용하며 벌어진 현상이었고, 특히 K-POP 그룹 출신으로 중국에서 폭발적 인기를 누렸던 크리스 우의 영향력이 (당시만 해도) 상당했다.
뉴스의 사회면은 코로나에 잠식당하고 생활면에는 스니커즈 리셀이 ‘문화’와 ‘재테크’라는 수식어로 한창 소개되던 때, 한국에 거주하는 한국인들이 추첨 발매에 응모하며 일확천금을 꿈꾸는 동안 해외에서는 새로운 방법을 개척한 이들이 있었다. 평범한 아이템으로 ‘물량전’을 벌인 것이다. 이들은 시세차익보다는 특정 모델을 하루에 몇 켤레 구할 수 있는지에 집중했다. 그렇게 준비된 상품은 시세에 상관없이 켤레당 5000원 정도씩 더해져 중국행 배에 실렸다. 매장 한 곳에 입고된 50켤레를 모두 산다고 가정했을 때 한 번의 방문으로 25만원의 보장된 수익을 낼 수 있었던 것이다. 한국의 많은 유학생이 이 ‘작전’에 동참했다.
메신저를 통해 특정 집단의 지령이 전달되면 매장의 재고는 순식간에 동이 났다. 추첨제로 구할 수 있는 한정판이 아닌 반스는 그들에게 내비게이션에 위치만 입력하고 찾아가면 되는 가장 쉬운 미션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비교적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스니커즈도 어렵게 사게 됐고, 중개 거래 플랫폼은 한정판을 사고파는 필수 수단으로 자리 잡게 됐다.
과거에는 GDP가 낮은 나라가 한정판을 쉽게 구하는 경로로 꼽혔다. 대표적인 예로 브라질의 슈퍼스타 호나우두의 축구화로 알려진 나이키 머큐리얼 15주년 기념 모델이 있다. 이 모델은 1998켤레 한정 발매되었는데, 2013년 당시 35만9000원이라는 가격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는 발매와 동시에 품절되었으며 이후 프리미엄이 붙어 거래되었다. 하지만 정작 호나우두의 모국이자 어마어마한 축구 사랑을 자랑하는 브라질에서는 발매 후 몇 주가 지나도록 매장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나이키는 전 세계적으로 비슷한 가격으로 소비자가를 설정하는데, 2012년 브라질의 근로자 월평균 소득이 1590헤알이었기 때문이다. 한화 약 70만원 돈. 축구화 한 켤레가 월급의 절반이 넘는 가격이었다.
그보다 이전에는 각 나라의 환율 차이도 업자들에게 수단이었다. 스니커즈를 화폐처럼 ‘환치기’에 이용했다는 뜻이다. 2007년 발매된 나이키 에어 포스 원 25주년 기념 제품이 좋은 예다. 이탈리아에서 수제작한 에어 포스 원 ‘럭스’ 모델은 한국에서 소비자가 200만원에 발매되었는데, 바로 옆 나라인 일본에서는 소비자가 30만 엔에 세금까지 더해져 나왔다. 800원대였던 당시 환율로만 단순 계산해도 그대로 일본에 팔면 켤레당 약 50만원의 차익을 남길 수 있는 구조였던 것이다. 이를 알게 된 사람들은 해당 제품을 구하는 족족 일본으로 보냈다.
이제 다시, 스니커즈가 새로운 종류의 재테크라는 말을 생각해보자. 당신은 스니커즈의 거래 가격이 어떤 식으로 형성되는지 알고 있는가? 설마 단순히 희소성과 수요에 따라 움직이기에 값이 오르는 걸 사면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가? 박막례 할머니까지 응모하게 한 한국의 스니커즈 열기는 정말 국내에서 순수하게 만들어진 열기가 맞을까? 스니커즈 거래 플랫폼들이 왜 자꾸 해외 플랫폼을 인수하려고 하는지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이 질문의 의미에 대해서는?
지금의 스니커즈 시장은 과거 개인과 소규모 업자를 통해 보였던 다양한 리셀 방법들이 특정 세력이나 거대 기업을 만나 사업 모델과 수익 창출의 한 갈래가 되어가는 과도기라 할 수 있다. 이곳은 수요와 공급의 법칙이 무너진 세계이고, 개인이 파악할 수 없는 온갖 의도와 상호 영향이 뒤엉킨 세계이며, ‘작전주’나 특정 세력의 횡포를 막는 금감원 같은 기관도 없는 세계다. 만약 당신이 직접 신거나 소장하는 것 외에 다른 이유로 스니커즈를 구매하고자 한다면 다시 한번 생각해보라는 뜻이다.

사람들이 다시 뉴발란스 2002와 아식스 젤 카야노를 신는 이유는 뭘까?
- 국석화(신발 디자이너)
최근에 길을 다니다 보면 다시 러닝화를 신는 사람들이 많이 보이기 시작했다. 재미있는 건 그 신발들의 모양새가 퍽 친숙하다는 것이다. 대부분 다소 투박해 보이는 옛날 스타일 러닝화들이다. 몇 년 전부터 뉴발란스가 점점 더 많이 보이더니 최근엔 아식스까지 가세했고, 줌 보메로 같은 나이키 모델들도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스니커즈에 ‘레트로’라는 새 바람이 분다는 식의 이야기까지 나온다. 과연 그럴까? 사람들이 옛날 스타일 러닝화를 다시 찾는 이유는 뭘까?
사실 현재의 러닝화 트렌드는 몇 년 전 대세였던 ‘대디 슈즈’ 그리고 ‘어글리 슈즈’의 연장선이라고 볼 수 있다. 대디 슈즈를 대표하는 뉴발란스 제품들이 러닝화이며, 어글리 슈즈의 원조 격인 발렌시아가 트리플 S 역시 나이키의 1997년 트레일 러닝화 에어 테라 알비스를 바탕으로 새로운 실루엣을 만든 제품이었기 때문이다.
여러 협업 제품들과 990 시리즈로 자신들의 영역을 넓혀오던 뉴발란스는 대디 슈즈 트렌드와 함께 더욱 많은 주목을 받게 된다. ‘미국 백인 아저씨들이 신는 신발’ 하면 떠오르는 브랜드가 바로 뉴발란스였기 때문이다. 이들은 2018년 992 모델을 재발매하고 다양한 협업 제품을 선보이는가 하면 327 등의 신제품을 선보이며 주류 운동화 브랜드로 떠올랐다.
특히 2020년 재발매된 2002R은 지금 길에서 가장 자주 볼 수 있는 러닝화다. 2002R은 2010년에 발매했던 고급 모델 2002의 생산지를 미국에서 아시아로 옮기고 신발창을 860V2의 신발창으로 변경한 모델이다. 제품 사양을 조정해 가격을 낮추면서 팬데믹 시대에 안정적으로 물량을 공급해 베스트셀러가 된 것이다.
기존의 대디 슈즈 같은 단정하고 고급스러운 분위기에서 벗어나 다양한 매력의 협업 제품을 선보인 것도 2002R의 성공 요인이었다. 특히 표면이 찢긴 듯한 디테일이 인상적인 프로텍션 팩은 당시 넘쳐났던 에어 조던 1과 덩크들 사이에서 신선한 느낌을 선사했고, 스트리트 패션 신에서 뜨거운 반응을 불러일으키는가 하면 여러 매체에서 2021년 최고의 운동화 자리를 차지하기도 했다.
반면 아식스의 부흥은 뉴발란스의 성장과 결이 다르다. 아식스는 꽤 오래도록 길거리 패션에서 보기 쉽지 않았다. 이들을 수면 위로 올린 것은 예전부터 아식스 신발을 즐겨 착용해오던 패션 디자이너 키코 코스타디노브와의 협업이었다. 2018년 선보인 그들의 첫 협업 제품 젤 버즈 1은 당시 최신 러닝화였던 젤 님버스 20과 젤 벤처 6의 조합을 바탕으로 디자인되었다. 이 모델은 사람들로 하여금 마라토너, 편한 신발을 찾는 아저씨들이나 신던 투박한 아식스 러닝화를 새로운 시각으로 보게 했고, 연달아 발매한 독창적인 디자인의 협업 제품들 역시 패션계와 운동화 시장에서 주목을 받았다.
2021년 키코의 젤 카야노 14 UB1-S를 시작으로 발매된 수많은 아식스의 2000년대 러닝화는 국내외 여러 브랜드와 협업을 통해 화제가 됐고, 러닝과 관련한 기능성에 충실한 특유의 디자인은 역설적으로 기능적인 요소를 중심으로 하는 고프코어나 Y2K 패션 트렌드에 완벽하게 부합했다. 발렌시아가가 그해 발표한, 2000년대 아식스 러닝화를 오마주한 어글리 슈즈는 아식스의 부상에 대한 날카로운 분석이자 확실한 예고였다.
뉴발란스도 기능적 미학이 도드라진 2010년의 러닝화 1906을 작년에 1906R로 재발매했다. 앞서 얘기한 2002R과 같은 이유로 860V2의 신발창을 사용해 비용을 절감했고, 실제로 1906R의 시작을 알린 디스이즈네버댓 협업 제품은 원판의 미학을 잘 살려 큰 인기를 얻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 발매된 많은 1906R은 기대만큼의 반응을 얻지 못하는 듯하다. 2002R과 동일한 신발창을 사용했음에도 2002R을 비롯한 여러 제품에서 이미 보여줬던 소재와 색상들을 유사하게 적용했고, 그렇기에 별달리 신선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유행은 돌고 돈다던가. 확실히 최근의 운동화 시장은 특정 흐름을 만들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렇게 단순히 회귀적 움직임이라 설명하기에는 어려운 부분이 있다. 많은 브랜드에서 과거에 인기 있던 제품들을 다시 내놓지만, 인기를 얻는 제품들은 일부일 뿐이기 때문이다. 익숙한 듯 이전에 보지 못했던 신선한 미감이 버무려져 있으며 브랜드의 치밀한 전략까지 합을 이룬, 그야말로 일부 모델들. 이들의 성공을 지켜본 누군가가 또 어떻게 그들의 유산을 기반으로 새로운 해석을 가미해 제시할지, 그런 움직임들이 새로운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수 있을지, 개인적으로도 기대가 크다.

살로몬 XT-6는 ‘고프코어’ 트렌드에서 얼마나 멀고 얼마나 가까울까?
- 박세진(패션 칼럼니스트)
XT-6은 본래 살로몬의 트레일 러닝 팀을 위해 개발된 러닝 슈즈다. 엘리트 운동선수를 위한 전문 운동화였다는 뜻이다. 살로몬이라는 브랜드는 1940년대에 스키 관련 제품을 내놓으면서 출발했지만 점점 여타 아웃도어 및 스포츠 분야로 범위를 넓혀갔고, 2015년경부터 한 단계 더 확장 이동했다. ‘라이프스타일’ 부문으로 뛰어든 것이다. XT-6 역시 앞서 말했듯 트레일 러닝에서 출발한 모델이지만 출시 10년이 지난 지금은 라이프스타일 분야에서 더 열광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살로몬은 XT-6 모델명 뒤에 뭔가를 더 붙인 모델들, 즉 개별화된 특징이 있는 모델이나 디자이너의 협업 모델을 지금도 끊임없이 출시하고 있다.
전문적인 아웃도어, 스포츠 제품을 필요에 의해 이용하는 사람들에게 ‘라이프스타일’이라는 표현은 그리 반가운 존재가 아니다. 이런 표현이 주로 생긴 모습은 동일하지만 비싼 비용이 드는 기능성은 제거하고 겉모습을 더 트렌디하게 꾸며서 팔겠다는 뜻으로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좀 나쁘게 받아들이자면 자기 분야에서의 명성을 껍데기만 따로 이용하겠다는 말이나 다를 바가 없다.
여전히 그런 제품이 많긴 하지만, 최근 흥미로운 경향 중 하나는 이런 특정 분야 전문가를 위한 테크니컬 스니커즈 모델들이 기능적 스펙을 그대로 가지고 도심용으로 들어오는 경우가 점차 늘고 있다는 점이다. ‘고기능성’ 자체가 패셔너블함으로 인식되는 경향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도심 속 도로를 돌아다니는 페라리나 평온한 사무실 속의 롤렉스처럼 되어간달까. 이런 제품들은 단순히 겉모습 때문에 사랑받는 게 아니다. 극한의 환경에서 고도의 능력을 발휘할 가능성을 품고 있다는 것, 그게 바로 요체다.
편안하고 기능적이고 실용적인 옷을 찾는 건 최근 패션의 큰 흐름 중 하나다. 옷차림에서 형식의 중요성이 점차 감소하고, 실용성이 중시되며, 타인의 시선보다 자신의 기준을 중시하는 분위기가 사회 전반에 퍼진 결과일 것이다. 지구온난화 영향도 있을 테다. 예측이 어려운 변덕스러운 날씨는 민감하고 까다로운 소재를 멀리하게 하니까.
이런 흐름 속에 가장 큰 각광을 받는 부문이 바로 아웃도어 웨어다. 흔히 말하는 ‘고프코어’ 트렌드처럼 말이다. 캠핑용 견과류 간식 ‘고프’에서 따온 해당 용어처럼 이 트렌드는 편안하고 실용적인 아웃도어 옷을 도심 속 패션으로 대체해가는 흐름을 일컫는다. 하지만 오래도록 지속되면서 그 안에서도 변화가 있었다. 초창기 고프코어의 이미지는 빈티지 숍에서 털어온 듯한 플리스와 레인 재킷, 스포츠 샌들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처비 룩, 어글리 룩은 시간이 흐르며 점점 고기능성 테크웨어와 시크한 패션으로 대체되었다. 사람들의 시선이 파타고니아와 노스페이스에서 아크테릭스, 아크로님, 스톤아일랜드로 이동했다는 뜻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키치에서 벗어나 높아진 기준의 룩을 완성도 있게 마무리할 ‘제대로 만든’ 스니커즈를 찾아 나서기 시작했다. 트레일과 러닝, 캠핑, 아웃도어 등 각 분야에서 뚜렷한 성과를 보여왔고 오리지낼리티를 가지고 있는 살로몬을 비롯해 아식스, 킨, 호카 오네오네, 아크테릭스 같은 브랜드의 스니커즈가 룩에 흡수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들은 양산 제품 외에도 시즌 한정의 특별한 컬러, 협업 제품 등을 내놓으며 해당 흐름에 마중물을 부었다.
그래서 살로몬 XT-6에 쏟아지는 열렬하고도 오랜 인기가 고프코어의 소산이냐고 묻는다면, 그건 쉽게 답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고프코어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그 영향 아래 있다고도, 혹은 새로운 시대의 시작점에 있다고도 할 수 있을 테니까. 스니커즈의 생김새에서 오는 매력은 여전히 중대한 요소다. 다만 최근 사랑받는 모델들을 보면 거기에 안정성, 편안함, 속도, 접지력 등 어느 것도 놓칠 수는 없다는 욕심이 엿보인다. 이런 스니커즈들이 자동차 페달을 누르거나, 도심의 아스팔트 위만 걷는 일을 하며 평생을 보낼 수도 있다는 사실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 페달을 지그시 누른 이 신발이 언제든 바위와 실개천 사이에서 기록 경쟁을 하며 뛰어다닐 수 있다는, 저변에 품은 가능성이 더 중요하다. 기능적 아이덴티티가 아웃도어에서의 명성을 품고 도심 속 패션에 이식되는 현상은 당분간 계속 이어질 것이다.

아디다스 이지를 지금 신어도 되냐는 질문에 대하여
- 아디 장(슈톡 운영자)
작년 말, 칸예 웨스트는 엄청난 실언들을 쏟아냈다. (현재 칸예 웨스트는 ‘예(Ye)’로 개명했으나 혼동을 피하고자 이하 칸예로 표기한다.) 자신감이라고 하기에도, 정신 불안 문제라고 하기에도 선을 한참 넘는 발언들이 이어졌고, 흑인 인권운동에 대한 조롱에 유대인 혐오 발언까지 하자 결국 그와 연을 맺고 있던 브랜드들이 나서서 선을 긋기 시작했다. 갭, 발렌시아가, 그의 에이전시인 MCR, 그를 그토록 원했던 포브스 선정 억만장자 순위에 올려줬던 가장 큰 조력자 아디다스까지. 디자이너 존 갈리아노의 선례가 있었기에 누구나 예상한 결과였다. 유구한 칸예의 기행이 가져다 준 학습 효과 때문인지, 혼탁한 세상이 안겨준 도덕적 피로감 때문인지, 이런 결과에 놀라는 사람도 있기는 했지만 말이다.
특히 놀라움을 산 건 아디다스의 결단이었다. 칸예와의 계약 해지로 아디다스는 작년 4분기에만 약 3500억원가량의 피해를 볼 것으로 예상했다. 2016년 아디다스는 칸예와의 협업에 대해 ‘스포츠 브랜드와 비스포츠 선수 간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파트너십’이라며 자축하기도 했다. 확실히 칸예가 아디다스에서 일군 이지(YEEZY)는 아디다스라는 브랜드를 현재의 입지로 올려준 일등 공신이었으며, 나아가 스니커즈 신에 선명한 흔적을 남긴 브랜드라고도 할 만했다.
나이키와의 분쟁 이후 2013년부터 아디다스와 함께한 칸예는 첫 모델부터 발매되는 순간 품절로 이어지는 엄청난 반향을 이끌어냈다. 아디다스의 부스트 시스템을 활용한 첫 제품, 이지 부스트 750이 그 주인공이었다. 그리고 곧이어 등장한 이지 부스트 350은 품귀 현상은 물론 <풋웨어뉴스>가 주최하는 ‘FNAA(Footwear New Achievement Awards)’ 시상식에서 올해의 신발로 선정되는 등 본격적인 ‘이지 시대’ 개막을 알렸다. 350의 디자인은 단순하지만 여타 아디다스 모델과는 완전히 다른 결을 품고 있었다. 2개로 나뉜 프라임 니트를 외피로 두르고 선포와 뒤축에서 엮어 꿰맨 디자인은 화려한 디테일이 없음에도 그 실루엣만으로 완성도가 높았다. 더 이상 더할 것도 뺄 것도 없어 보였달까.
이 대목이 중요한 건, 사실 우리 곁의 스니커즈 대부분이 1970~1980년대에 나온 공정과 기술을 토대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지는 스니커즈를 완전히 새로운 기반에서 바라보고 싶어 했고, 심지어 그럼에도 충분히 웨어러블(wearable)했다. 근 10년 동안 나온 스니커즈 중에 과연 이지만큼 독창적인 게 있었나? 카리스마 있는 디렉팅, 새로운 브랜드 이미지, SNS 시대에 대한 높은 이해, 기술력의 조화가 잘 버무려지며 이지는 그야말로 스니커즈업계에 새로운 제국을 건설했다고 할 만하다. 그 건설이 미완으로 남았다는 게 아쉬울 뿐.
물론 칸예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는 이지를 시작하기 전에도 아디다스와 협업해 클래식 테니스 슈즈 로드 레이버 샘플을 만든 바 있다. 뮤지션으로 한창 주가를 올리던 시절이었음에도 아디다스 디자인 디렉터 닉 갤웨이와 함께 공장을 쫓아다닐 정도로 그는 늘 스니커즈에 진심이었다. 그리고 그의 곁에는 여전히 최고의 신발 디자이너인 스티븐 스미스가 남아 있다.
그래서 이지를 지금 신어도 되느냐는 질문을 받으면 나는 난처해진다. 그게 만약 도덕적 영역의 질문이라면 그건 각자의 판단에 달려 있다고 할 수밖에 없다. 이미 구매한 신발을 신는 것이 그의 발언에 동조하는 뉘앙스를 띠게 될까? 재고로 남은 이지를 판매하며 수익금 일부를 차별, 혐오가 없는 세상을 위해 노력하는 단체에 기부하겠다는 아디다스의 명분에도 불구하고 결국 해당 계약에서 10%에서 15%로 올린 칸예의 로열티를 더 중요하게 여겨야 할까? (‘손절’한 후에도 이런 별도 계약을 맺어야 할 만큼 아디다스의 재정 부담은 크고 간절한 상황이다.)
하지만 그 질문이 만약 ‘이지는 한물간 것 아니냐’는 뜻이라면 개인적으로 공감하기 어렵다. 이지는 늘 스니커즈에 진심이었던 칸예의 꽉 찬 20년 내공을 담아낸 엑기스라 할 수 있으니까. 이 브랜드가 남긴 신발들은 당대의 유행 안에서만 유효했던 것이라기보다 (일련의 사건이 없었다면) 클래식으로 남았을 무엇이라고 보는 게 정확하다.
그렇기에 나는 곧 마지막 판매를 앞둔 칸예의 이지는 물론 ‘포스트 칸예’ 시대의 이지를 기다린다. 이지 스니커즈의 저작권은 아디다스에 있다. 그러니까 언젠가 다시 이지 라인업을 등장시킬 수 있다는 뜻이다. 혹시 아나? 곧 60주년을 맞이하는, 아디다스의 또 다른 대표 스니커즈 스탠스미스처럼 ‘하일렛’에서 이름만 바꾸고 등장해 새로운 성공 신화를 만들어낼지.
Credit
- EDITOR 오성윤
- PHOTO 나이키/반스/뉴발란스/살로몬/게티이미지스코리아
- ASSISTANT 송채연
- ART DESIGNER 김동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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