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출렁다리, 케이블카가 자꾸 생겨나는 진짜 이유

구조적으로 의사 결정의 모든 순간에 압박이 가해진다.

프로필 by 박세회 2025.08.26

남해 상주해수욕장에서 여름 휴가철을 맞아 주민들이 여는 작은 축제를 찾은 적이 있다. 축제에는 응원차 방문한 남해군청 문화관광과 공무원들도 와 있었다. 그날 마을의 한 어르신이 공무원들에게 말하는 걸 들었다. “남해 금산과 상주해수욕장을 잇는 케이블카를 만들어야 상주가 살아납니다.” 돌아가는 길에 문화관광과 과장님이 내게 말했다. “저 어르신은 제가 20년 전 9급 공무원일 때도 똑같은 말씀을 하셨어요. 케이블카 놓아야 한다고.” 나는 늘 남해는 케이블카나 구름다리 같은 시설물이 없어 아름답다고 말해왔다. 그런 내가 말했다. “저렇게 20년 동안 한결같이 주장하는 거라면 해줘야 하는 거 아니에요?” 모두들 한바탕 웃었다. 웃고 나자 궁금증이 생겼다. 얼마 전 ‘요즘 지자체마다 케이블카를 짓고 있다’는 기사를 봤다. 20년 전에도 케이블카를 놔야 한다고 주장한 사람이 있다. 그러니, 지역의 관광 시설물에도 유행이 있고 그 유행이 마치 패션처럼 돌고 도는 건 아닐까? 그렇다면 그 유행은 왜 생기고 누가 주도할까?

아직 20대일 때, 전역 후 사귄 여자 친구와 함께 서울 여행을 갔었다. 남산타워에 사랑의 자물쇠를 걸며 영원한 사랑을 약속하고 싶었다. 그날의 데이트가 나의 처음이자 마지막 케이블카 탑승 경험이다. 1962년 5월에 운행을 시작한 남산 케이블카가 우리나라 최초의 케이블카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그해 3월 운행을 시작한 창경원의 창문 없는 케이블카가 우리나라 최초의 관광 케이블카다. 초기 케이블카는 부산 금정산, 강원 설악산, 구미 금오산 케이블카처럼 산악 지형에서 이동을 돕기 위한 기능적 목적으로 설치되었다. 그러다 점차 심미적 경험이 중요해지면서 주변 풍광을 감상할 수 있는 관광용 케이블카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대표적으로 2007년에 개통한 통영 케이블카를 꼽을 수 있다. 미륵산 정상으로 향하며 한려수도의 절경을 감상할 수 있는 이 케이블카의 한 해 탑승객이 100만 명을 넘어서면서 전국에 그야말로 케이블카 붐을 일으켰다. 2014년에는 여수 바다를 가로지르는 여수 해상케이블카가 개통했다. 1960년대 이후 10년간 2~4기 정도 조성되던 케이블카가 2019년 한 해에만 5기, 2021년에는 7기가 개통했다.

케이블카의 뒤를 이어 요즘 유행하는 관광시설이 출렁다리다. 출렁다리는 현수교의 순우리말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현대식 현수교는 1973년 개통한 ‘남해대교’다. 우리 어머니의 증언에 따르면, 당신이 아직 직장에 다니던 시절에 “바다 위에 줄로 매달아놓은 다리가 있다네”라고 구경하러 가자고 해서 단체여행으로 남해 대교를 보러 놀러 갔다고 한다. 남해대교는 내가 살고 있는 남해섬과 육지를 잇는 중요한 교통시설이었지만, 마치 골든게이트브리지를 떠오르게 하는 조형적 아름다움으로 관광객을 끌어모았다. 우리나라 최초의 현수교라는 상징성과 노량해협의 빼어난 경관이 유명세를 타며 신혼여행, 수학여행의 메카가 되었다. 정월 대보름날 다리밟기를 하면 다리병을 앓지 않는다는 풍속처럼, ‘남해대교 세 번은 건너야 저승 가는 길이 편하다’라는 말도 퍼져 어르신들의 효도관광도 줄을 이었다. 남해대교 아래에서 평온하게 살던 사람들은 남해대교가 그려진 수건만 팔목에 걸치고 나가도 하루 일당을 벌었다고 할 정도로 지역 전체가 흥하며 전국 명소가 되었다.

1972년에 개통한 강원도 강촌의 등선교는 우리나라 출렁다리의 시초로 알려져 있다. 서울에서 춘천으로 향하는 길목에 위치해 잘 알려지지 않았던 강촌이 대학생 MT 장소와 데이트 코스로 부상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등선교라는 원래 이름 대신 ‘강촌 출렁다리’로 불리며, ‘강촌 출렁다리를 거닐러 강촌을 찾는다’는 말이 나왔을 정도였다. 1985년 안전 문제로 철거되었는데, 이후 2015년에 보행만 가능한 관광형 다리로 다시 개통되었다. <전국 출렁다리 현황 및 효과분석> 보고서를 보면, 1999년까지 전국에 출렁다리는 12개뿐이었으나 2005~2009년 41개, 2010~2014년 60개, 2015~2020년에는 무려 104개가 새로 준공되었다. 2023년 12월 기준 전국에 총 238개로 이는 기초자치단체 수인 226개를 넘어선 수치다. 1970년대의 출렁다리는 관광객들에게 인기를 얻기도 했지만, 그 근본은 지역 주민이 이용하는 교통 인프라였다. 그러나 2015년을 기점으로 출렁다리는 주변 경관의 조망, 스릴 있는 보행, 형태적 아름다움을 갖춘 관광상품으로 SNS 인증 붐을 타며 관광 인프라가 되었다.

그러나 이제 출렁다리의 붐도 지나가고 있다. 요새 제일 힙한 건 대관람차다. 어린 시절 용인 에버랜드에 가면 대관람차를 보며 ‘저걸 누가 타나’ 싶었다. 더 스릴 넘치고 재밌는 것들을 타기에도 시간이 모자라지 않은가. 그 에버랜드의 대관람차가 1982년 우리나라 최초로 설치된 대관람차였다. 대관람차의 컴백에는 레트로 유행과 SNS 인증이라는 배경이 있다. 당진 삽교호 놀이동산의 한 대관람차가 붐을 일으킨 적이 있는데, 이는 SNS에 올라온 대관람차에서 본 전경이 ‘논두렁 뷰’로 불릴 만큼 레트로적 감흥을 불러일으켜서였다. 이 놀이동산이 한때 충남 지역 내비게이션 검색 데이터 1위를 차지하기도 했을 정도다. 전국에 30개 이상의 대관람차가 현재 운행 중이며, 조성 계획을 발표하는 지자체들이 늘고 있다. 심지어 서울시도 세계 최대 규모의 고리형 대관람차 ‘서울링’을 준비 중이다.

그런데 문제는 다른 데 있다. 케이블카, 출렁다리, 최근의 대관람차로 이어지는 관광시설의 유행은, 그 유행이 끝나면 관광시설은 어떻게 될까? 관광객의 발길이 뜸해졌다고 없앨 수는 없고, 결국 적자 운영 중인 곳이 대부분이다. 시설이 유휴화되면 결국은 지역의 자연경관을 훼손하는 시설물이 될 것이라는 우려도 크다. 그리고 그건 우려가 아니라 사실 정해진 미래에 가깝다. 그럼에도 지방정부가 지속 가능하지 않은 시설물을 유행에 휩쓸려 조성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실 지방정부는 최소 20억 이상이 소요되는 관광시설을 조성할 자체 재원이 없다. 2025년 남해군의 세입예산은 7501억원이며 이 중 자체 재원은 538억원이다. 남해군이 스스로 살림을 꾸릴 수 있는 능력, 즉 재정 자립도는 10.04% 수준이다. 그러나 놀랍게도 이는 남해군과 재정 규모 및 여건이 유사한 지자체들의 평균보다 높은 수준이다. 약 90%를 교부세 및 보조금 등 의존 재원으로 충당하고 있는 것이 지역의 현실이다. 순수한 재정 수입에서 순수한 재정 지출을 차감한 수치, 즉 ‘통합재정수지’를 보면, 올해 남해군은 –342억원을 기록했다. 최근 5년 연속 적자다. 이런 상황에서 새로운 관광시설을 중앙정부의 보조금 없이 조성하기란 불가능하다. 그러니 보통 관광시설의 개발은 중앙정부 50%, 군 단위 기초자치단체 35%, 관할 광역자치단체 15%로 예산을 매칭하여 추진한다. 중앙정부는 국민들의 여행과 관광 즉 여가활동은 복지의 영역이기에 지역에 관광 인프라 조성을 지원하고, 지역은 농수산물의 생산·가공·유통 이외의 새로운 산업으로 관광산업을 육성하여 경제 활성화를 도모하고자 하는 것이다.

지역마다 각자의 지역성이 묻어나는 관광 시설물을 조성하지 못하고 유사한 관광시설만 유치하게 된 데에도 이유가 있다. 관광개발사업 관련 중앙정부 보조금은 공모에 선발된 지방정부에만 주어진다. 중앙정부의 정책 방향에 따라 설계된 공모사업들이 각 부처별로 배정되고 각 부처에서는 그 사업들을 실행할 지역들을 공모 방식으로 선발한다. 즉 공모할 때부터 사업 방향, 사업 개발 방식, 예산 집행 방식, 지출 항목, 개발 기간, 예산액이 정해져 있고, 사업 구성도 어느 정도 가이드라인이 마련되어 있다. 이에 맞추어 지방정부는 평가 항목들을 충실히 따르는 사업 계획을 세워야 한다. 여기서 1차적으로 개발 사업의 큰 틀이 정해진다.

그런데 지방정부가 이러한 공모사업에 도전하기 위해 예비계획서를 작성하는 단계에서부터 비용이 발생한다. 또 준비 과정에서 개발 예정 부지 주변 주민들에게 사업 계획을 설명하고 나면, 주민들은 벌써 기대감을 갖는다. 돈도 썼고, 주민들도 들뜨게 해놓고 실패해선 안 된다는 기대감이 지자체를 압박하기 시작한다. 결국 지자체는 새롭고 도전적인 계획보다는 ‘흥행 가능성이 검증된 아이템’을 선정한다. 요새 유행하는 게 더 유행하게 되는 배경이다.

운영 부담도 새로운 아이템을 발굴하기 힘든 이유다. 관광개발사업에서 중앙정부 보조금은 어디까지나 ‘조성’ 비용을 도와주는 것이지, 조성 후 ‘운영’ 비용은 지방정부의 몫이다. 적게는 20억, 많게는 200억 규모 관광 시설물의 운영 비용은 지방정부에는 큰 부담이다. 결국 선정할 때부터 운영 비용이 적게 드는 아이템을 선정하게 된다. 또한 미술관이나 문화공간처럼 관련 분야 전문 인력이 필수인 시설은 지역에서 전문 인력을 찾기 어려워 개발하기 힘들다. 결국 전문 인력 수급과 프로그램 개발비 등이 지속적으로 투입되어야 퀄리티를 유지할 수 있는 시설보다는 케이블카, 출렁다리, 모노레일, 스카이워크, 대관람차와 같이 시설 관리 차원의 운영비가 소요되는 아이템을 선정하게 된다.

지역 주민의 눈높이라는 기준도 작용한다. 개발을 성공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주민들의 동의와 응원이 필수다. 산속 미술관, 바다 위 도서관, 물속 놀이터와 같이 개념이 생소한 아이템을 주민들에게 제시하기는 어렵다. 주민들도 주변 도시에서 본 것, 매체에서 들은 것, 흥행했다고 하는 것을 쉽게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당장 예산을 투자해 운영을 하면 소위 대박을 쳐야 한다는 압박을 피해 가기 어렵다. 다른 지자체에서 출렁다리가 대박이 났으면, 우리 지역에 그보다 더 길거나 높은 시설을 짓지 않으면 무능한 공무원으로 오인받는다.” 지역개발사업을 추진 중인 한 공무원의 이야기다.

새로운 방식이 필요한 시점이다. 우리 지역 자랑을 좀 해보자면, 얼마 전 남해군이 축제 기간에 시범적으로 운영한 남해대교 브리지 클라이밍 프로그램에 신청자가 몰렸다. 오픈하자마자 마감되어 참여 인원을 늘려달라는 항의 전화도 빗발쳤다. 1973년에 개통한 남해대교는 약 50여 년이 흐른 현재 노후화되었고, 그 곁에는 최신 교량 기술로 건설한 노량대교가 자리 잡았다. 남해군의 랜드마크이자 남해인의 마음속 어머니 다리인 남해대교의 잔존수명을 반영구적으로 늘리기 위해 보도교 전환을 준비하고 있는데 이와 함께 브리지 클라이밍과 같은 프로그램을 운영할 계획이다. 본 사업 역시 국가 보조금을 통해 추진하는 것임에도 새로운 시설을 조성하지 않고 기존 시설을 다른 기능으로 재생하는 개발 방식, 즉 ‘유휴공간을 재생’하는 방식으로 추진하고 있다.

관광 인프라와 생활 인프라를 중첩시키는 방식도 있다. 남해의 ‘앵강봉’은 남해 앵강만을 바라볼 수 있는 언덕에 조성한 전망시설이다. ‘전망시설’이라고 하는 이유는 이곳이 전망대 기능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음악 공연과 마켓을 열 수 있는 형태로 조성하고, 주변에는 어린이들이 놀 수 있는 공원도 함께 조성하여 지역민과 관광객 모두 향유할 수 있는 공간으로 개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케이블카, 출렁다리, 스카이워크, 대관람차와 같은 시설은 관광객을 타깃으로 한, 관광만을 위한 시설물이다. 관광객이 적은 평일이나 시간이 흘러 인기가 시들해져 더 이상 관광객이 찾지 않을 때, 그 시설물들은 존재 이유를 잃고 만다. 지역에 사는 사람들도 이용할 수 있는 기능을 배치해 지역 생활 인프라의 기능도 수행할 수 있는 개발 방식을 고려해봐야 한다. 지역의 인구는 줄고, 산업은 쇠퇴해갈 것이다. 그러나 포기하거나 체념하지 말아야 한다. 정주인구가 줄면 지역과 관계 맺으며 정기적으로 방문하는 도시 여행객들도 주민으로 보고 함께 살아가고자 하는 지역을 만들어가면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역의 상황과 여건을 먼저 이해하는 것에서 출발해보자. 결국 우리의 눈높이가 유행을 주도하는 것이니까.


최승용은 돌창고 대표이자 총괄 디렉터이다. 역사와 문화콘텐츠 기획을 전공했다. 2016년 남해에서 돌창고를 문화공간으로 재생한 이후 남해의 유휴공간을 활용하여 지역 문화 인프라를 구축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Credit

  • EDITOR 박세회
  • WRITER 최승용
  • ILLUSTRATOR MYCDAYS
  • ART DESIGNER 주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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