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YLE

웨스턴 웨어는 현대까지 어떻게 존재해 왔을까?

에스콰이어가 들려주는 패션 아이템의 비하인드 스토리, 웨스턴 웨어 편.

프로필 by 송정현 2025.08.06

ORIGIN

웨스턴 웨어의 뿌리는 16세기 초 스페인 정복자들이 현재의 미국 서부, 당시 멕시코 땅에 도착하면서 시작된다. 스페인 정착민들은 가축을 방목하기에 이상적인 이곳에 대규모 목장을 세웠고, 점차 관리를 위한 전문 기술이 필요해지면서 ‘바케로(Vaquero)’라는 목축 문화가 자리 잡게 된다. 대부분의 시간을 말 위에서 보내야 했던 이들에게 뜨거운 햇볕, 가시덤불, 흙길 같은 거친 환경에 맞설 수 있는 기능적인 복장은 필수였다. 이것을 웨스턴 웨어의 시초로 본다. 이후 19세기 미국의 서부 개척 시대에 접어들며 바케로들은 자신의 땅에 온 미국 정착민에게 문화를 전수했고, 본격적인 카우보이 시대가 열리며 의복 문화가 서서히 자리 잡게 된다.


WESTERN ITEMS

스페인의 전통 모자 솜브레로에서 발전한 카우보이 해트는 햇빛으로부터 얼굴과 목을 보호하는 큰 챙이 특징이다. 튼튼한 펠트 소재 덕에 강한 자외선에도 거뜬하며, 물을 퍼 담아 말에게 먹이거나 불을 지피는 도구로 활용되기도 했다. 웨스턴 부츠19의 원형은 바케로의 신발에서 찾아볼 수 있다. 뾰족한 앞코는 말안장에 달린 발 받침대에 발을 쉽게 넣을 수 있도록, 각지고 높은 힐 컵은 발이 빠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설계됐으며, 종아리를 감싸는 긴 부츠 통은 뱀이나 가시덤불, 잡초로부터 다리를 보호하는 역할을 했다. 하의를 단단히 고정하는 데 사용된 콘초 벨트17는 간단한 도구를 매달 수 있는 아이템으로 출발했으나 행운과 안녕을 기원하는 차원에서 종교적인 문양으로 장식되기도 했다. 면이나 양모로 만든 셔츠엔 로프를 던지고 당기는 과정에서 생기는 마찰을 견딜 수 있도록 어깨 부분에 물결이나 브이 형태로 원단을 덧댔다. 이것을 웨스턴 요크라 부르며, 이후 웨스턴 셔츠를 상징하는 디테일로 자리 잡았다.


IN THE POP CULTURE

20세기 중반, 웨스턴 웨어는 대중문화와 결합하며 하나의 패션 코드가 되었다. 그 출발점은 1930년대, 할리우드 서부극의 전성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1939년 영화 <역마차>에서 존 웨인18은 193cm의 큰 키와 마초적인 마스크로 터프한 카우보이 이미지를 각인시켰고, 1953년 영화 <셰인>에서 온화한 눈매와 도덕심이 강한 방랑자로 등장하는 앨런 래드11는 웨스턴 스타일에 젠틀한 무드를 덧씌웠다. 오늘날 카우보이 이미지에 쐐기를 박은 것은 뭐니 뭐니 해도 1964년 영화 <황야의 무법자>속 클린트 이스트우드10다. 판초를 두르고 모자를 내려쓴 채 찡그린 얼굴로 시가를 문 그의 모습은 이후 수많은 오마주를 남기며 서부극 역사상 가장 아이코닉한 장면으로 기록됐다.

1970년대에 들어 웨스턴 웨어를 일상화한 건 히피들이었다. 자유로운 정신을 추구하던 그들은 카우보이의 이미지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재해석하며 부츠와 벨트 같은 아이템을 리폼하거나 염색해 개성 있게 소화했다. 히피 문화를 대표하는 록 밴드 도어스의 리드 보컬 짐 모리슨7 역시 웨스턴 룩을 즐겨 입었으며, 그가 착용한 콘초 벨트는 이후 수많은 복각 제품을 탄생시켰다. 1980년대에는 컨트리 스타 조지 스트레이트8가 웨스턴 열풍에 불을 지폈다. 그는 카우보이 해트 브랜드 레시스톨(Resistol)과 협업해 ‘조지 스트레이트 컬렉션’을 출시했는데, 그 인기가 얼마나 대단했던지 이 컬렉션은 지금까지도 판매되고 있다. 1990년대엔 미니멀리즘이 부상했지만 웨스턴 룩은 그 속에서도 존재감을 발휘했다. 랭글러의 대표적인 카우보이 팬츠 ‘13MWZ’는 꾸준한 사랑을 받으며 대중의 곁을 지켰고, 캘빈 클라인은 케이트 모스와 마크 월버그를 내세운 캠페인으로 웨스턴 부츠와 데님 팬츠의 세련된 조합을 조명했다. 21세기에 들어서도 웨스턴 DNA는 여전히 대중문화 곳곳에서 발현됐다. 2000년 마돈나의 <Don’t Tell Me> 뮤직비디오는 Y2K 트렌드와 맞물리며 ‘카우 걸’ 붐을 이끌었고, 인디언의 후예라고 주장한 조니 뎁2은 웨스턴 스타일을 일상의 워드로브로 확장시켰다. 특히 그가 즐겨 입은 록마운트 랜치 웨어(Rockmount Ranch Wear)의 볼레로 재킷은 어느새 그의 상징처럼 자리 잡았다. 최근 들어 웨스턴 룩은 유연하고 다층적인 방식으로 재해석되며 고전적인 남성성의 상징을 넘어 보다 개인적이고 자유로운 표현의 수단으로 변화하고 있다. 일례로 ‘얼굴 없는 카우보이’라 불리는 컨트리 뮤지션 오빌 펙3은 퀴어 미학을 접목해 전통적인 웨스턴 룩을 비틀었고, 2020년 그래미 어워즈에서 핫핑크 누디 슈트에 웨스턴 아이템을 매치한 릴 나스 엑스5는 ‘퀴어 웨스턴’ 스타일의 정점을 보여줬다. “서른이 되면 컨트리 음악을 하겠다”고 말했던 포스트 말론1 역시 최근 웨스턴 스타일로 이미지 변신을 꾀하며 새로운 챕터를 열었다.


RUNWAY

물론 일찍이 웨스턴 룩의 매력을 포착한 패션 디자이너도 있었다. 이들은 웨스턴 웨어를 패션 코드로 끌어올렸고, 그 과정에서 이 장르는 또 한 번 진화를 거듭했다. 가장 대표적인 디자이너는 랄프 로렌이다. 고급 소재와 웨어러블한 디자인으로 재해석한 랄프 로렌의 웨스턴 룩은 도시의 상류층 대학생과 젊은 화이트칼라 직장인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1993년에는 ‘더블알엘(RRL)’6,9을 론칭하며 더욱 정제된 형태의 웨스턴 룩을 제시하기도 했다. 구찌의 전성기를 이끌던 톰 포드 역시 2004년 S/S 컬렉션으로 자신의 고향인 텍사스를 향한 러브레터처럼 웨스턴 룩으로 가득한 사적인 컬렉션을 선보였다. 남성복의 황금기를 상징하는 에디 슬리먼 또한 록 시크와 결합한 카우보이 아이템을 꾸준히 제안하고 있다. 그리고 지난해 웨스턴 웨어는 하이패션과 스트리트 감성이 교차하는 무대 위에서 또 한 번 강렬한 존재감을 드러냈다. 다시 이 불을 지핀 건 루이 비통12,13의 2024 F/W 컬렉션. 퍼렐 윌리엄스4는 서부 개척 시대 속 흑인과 원주민 카우보이들의 존재를 재조명하며 웨스턴의 전통 요소들을 총망라한 감각적인 컬렉션을 완성했다. 2025 F/W 시즌에는 디스퀘어드14가 글리터 프린지 장식을 활용해 보다 팝하고 유쾌한 웨스턴 무드를 연출했고, 프라다15,16는 요크 디테일이 담긴 스웨터, 서부의 겨울을 연상케 하는 시어링 코트, 다채로운 패턴과 컬러로 채운 웨스턴 부츠 등을 선보이며 이 장르를 현대적으로 풀어냈다. 광활하고 황폐한 땅 위, 개척 시대의 카우보이들이 혹독한 환경에 맞서며 만들어낸 웨스턴 웨어는 시대를 초월해 또 다른 언어로 숨 쉬고 있다. 이제는 거칠거나 젠틀하거나, 각자의 방식으로 웨스턴 드림을 실현할 때다.

Credit

  • EDITOR 송정현
  • ART DESIGNER 주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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