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억만 장자들의 그림 싸움에서 드러난 놀라운 디테일들

수없이 쏟아지는 기사의 홍수 속에서 <에스콰이어>가 찾는 건 누구나 기억하는 1면 톱기사가 아니다. 지나간 기사들 속에서 작지만 흥미로운 이야기, 쓸데없어 보이지만 생각할 만한 기사를 골라 당신과 이야기를 나눠본다.

프로필 by 박세회 2025.06.13

역시 세상에서 가장 재밌는 건 싸움 구경이다. 최근 뉴욕 법정에서 두 억만장자가 자코메티의 조각 ‘Le Nez’(영문 제목 ‘The Nose’)의 소유권을 두고 서로 자기 것이라며 고소장을 제출했다. 먼저 제기한 쪽은 중국의 암호화폐 재벌인 저스틴 선. 그는 자신이 지난 2021년 뉴욕의 한 경매에서 7840만 달러에 낙찰 받은 ‘Le Nez’를 자신의 미술 고문이 자신과 상의하지 않고 데이비드 게펀에게 판매했다며, 데이비드 게펀에게 작품의 반환을 요구하고 나섰다. 응? 게펀? 음악 팬이라면 그의 이름이 무척이나 낯익을 것이다. 그렇다. 게펀 레코드의 바로 그 게펀이다. 오노 요코와 존 레넌의 유작 앨범 <Double Fantasy>를 발매한 게펀 레코드도, 조니 미첼의 <Court and Spark>를 발매한 어사일럼(Asylum) 레코드도 다 그가 설립한 음반사다. 그 뒤로는 영화 산업에도 뛰어들어 엄청난 부를 이뤘다. 그런 게펀의 입장은 저스틴 선과는 전혀 다르다. 자신은 1050만 달러의 현금과 두 점의 회화 작품을 포함해 총 6500만 달러(약 950억원)의 정당한 가치를 지불하고 이 작품을 샀다는 입장이다. 게펀은 저스틴 선이 최근에 자신에게 받은 두 점의 회화를 판매하려 했으나 원하는 액수만큼의 제안이 들어오지 않자 작품을 판 것을 후회한 나머지 이 복잡하고 정교한 ‘가짜 소송’을 꾸며 작품을 되찾으려 한다고 주장했다. 저스틴 선 몰래 작품을 팔았다는 이 ‘어드바이저’의 이름은 ‘시드니 슝’(Sydney Xiong)인데, 그녀의 이름을 검색하니 저스틴 선과 시드니 슝이 NFT 기술을 활용한 멀티버스 디지털 전시 플랫폼 ‘APENFT 재단’을 함께 이끌 예정이라는 기사가 뜬다. 암호화폐 억만장자, 멀티버스, NFT…. 어디선가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는 것만 같지 않은가?

개인적으로 이 싸움에서 누가 이겼는지를 점치는 것보다 더 흥미로운 건 슬슬 흘러나오는 디테일들이다. 예를 들면 이런 것. 데이비드 게펀은 ‘Le Nez’를 사기 위해 캘리포니아의 한 미술 딜러들에게 수수료를 지불했는데, 수수료가 200만 달러다. 그러니까 자신이 원하는 작품을 사게 해주는 대가로 수수료만 30억원에 가까운 돈을 지불하는 세상이 있다. 두 사람 모두 게펀이 지불한 ‘두 점의 회화’가 뭔지 그 존재를 밝히지 않았다는 점 역시 흥미롭다. 그 작품이 무엇이든 특정되어 밝혀지면 시장가격에 영향을 미칠 게 뻔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가장 소름 끼치는 사실은 이것이다. 저스틴 선이 지난 2024년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가장 유명한 작품, 덕트 테이프로 바나나를 벽에 붙인 ‘코미디언’(2019)을 620만 달러에 샀다는 것. 그 뒤에 한 일 역시 우리의 예상을 전혀 빗나가지 않았다. 그는 작품을 구매한 뒤 기자 간담회를 열어 기자들 앞에서 이 바나나를 먹어치웠다. 암호화폐로 흥하고, 예술과 NFT의 공존을 위해 디지털 미술관 멀티버스 플랫폼을 만든 사람이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작품을 사서 기자회견을 열고 바나나를 먹었다. 어디선가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는 것만 같지 않은가? 영화 시나리오 속의 캐릭터라도 이렇게 썼다가는 너무 빤하다고 욕먹을지 모른다. 어쩌면 오늘의 교훈은 이것인지도 모르겠다. 당신의 예상을 한 치도 벗어나지 않는 전형적인 사람을 조심할 것. 거기에 한두 마디 덧붙이자면 이렇다. 카우스와 무라카미 다카하시가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전부인 사람을 조심할 것. 쿠사마 야요이라고 하면 호박밖에 모르는 사람을 조심할 것. 마우리치오 카텔란을 바나나로만 기억하는 사람을 조심할 것. 그런데도 자꾸 NFT에 대해 얘기하는 사람을 조심할 것.

Credit

  • ART DESIGNER 김동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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