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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인 베를린 테이스팅의 20주년을 맞아 에두아르도 회장이 한국에 온 이유[인터뷰]

'파리의 심판'이 세계에 미국 와인을 알렸다면 '베를린 테이스팅'은 칠레 와인을 알렸다.

프로필 by 박세회 2024.06.05
워커힐의 유영진 소믈리에(왼쪽), 에두아르도 채드윅 회장, 와인인 최민아 대표가 호스트와 패널로 참여한 '비녜도 파밀리아 채드윅'의 마스터 클래스 전경. 비녜도 파밀리아 채드윅 와이너리 제공.

워커힐의 유영진 소믈리에(왼쪽), 에두아르도 채드윅 회장, 와인인 최민아 대표가 호스트와 패널로 참여한 '비녜도 파밀리아 채드윅'의 마스터 클래스 전경. 비녜도 파밀리아 채드윅 와이너리 제공.

지난 5월, 칠레에서 거의 처음으로 '프리미엄 와인'이라는 카테고리를 만들다시피 하고, 역사적인 '베를린 테이스팅'을 통해 칠레 프리미엄 와인의 존재를 세계에 알린 와인 메이커 '비녜도 파밀리아 채드윅'의 에두아르도 채드윅(Eduardo Chadwick) 회장이 내한했다. 칠레 와인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사건인 '베를린 테이스팅'(Berlin Tasting)의 20주년을 기리기 위해서였다. 일단 '베를린 테이스팅'을 이해하려면 그보다 조금 전에 있었던 한 사건으로 돌아가봐야 한다. <와인 미라클>이라는 제목으로 영화화 되기도 한, 와인 애호가들에겐 너무도 유명한 '파리의 심판'이라는 바로 그 사건이다. 프랑스의 와인 교육기관인 '아카데미 뒤 바인'의 창업자인 스티븐 스퍼리어는 1976년, 파리의 인터콘티넨탈 호텔에 프랑스 및 미국의 와인 전문가들을 불러 놓고 미국 캘리포니아의 와인들과 프랑스의 유명 최상급 샤토의 와인들을 섞어 블라인드 테이스팅해 순위를 매기도록 하는 이벤트를 벌였다. 미국 와인으로 프랑스 와인의 아성이 도전장을 낸 것이다. 그런데, 이 도전이 의외의 결과를 불러왔으니, 예상을 깨고 화이트와 레드 모두에서 미국 와인들이 프랑스의 유명 샤토들 보다 높은 점수를 차지하며 1위에 올랐다. 와인 업계를 뒤흔든 이 사건 이후 이 블라인드 테이스팅에서 높은 전수를 받은 캘리포니아의 '나파 와인'들이 그 명성을 세계에 떨쳤다. 에두아르도 채드윅은 칠레 와인에도 그런 포텐셜이 있다고 믿었다. '파리의 심판'에서 영감을 받은 에두아르도 채드윅 회장은 2004년 1월 23일, 바로 그 '파리의 심판'을 이끌었던 와인 평론가 스티븐 스퍼리어, 독일어권 와인 평론가인 르네 가브리엘과 함께 유럽 최고의 와인 평론가와 저널리스트, 바이어 등으로 구성된 블라인드 테이스터 36명을 베를린으로 불러 모으고, 보르도 그랑 크뤼 와인, 수퍼 투스칸의 수퍼 스타들에게 자신의 칠레 와인으로 도전장을 내밀었다. 블라인드 테이스팅 방식으로 평가하게 한 것이다. 이 이벤트에서 에두아르도 채드윅의 칠레 와인들은 채드윅의 보르도 일등급 와인들을 제치고 1, 2위를 차지하며 대반전을 이뤄냈다. 사실상 이날 이후 전 세계가 칠레의 프리미엄 와인을 인지하기 시작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워커힐의 유영진 소믈리에(오른쪽), 와인인 최민아 대표(왼쪽)을 비롯해 에두아르도 채드윅 회장과 그녀의 막내 딸 알레 채드윅이 호스트와 패널로 참여했다. 비녜도 파밀리아 채드윅 제공.

워커힐의 유영진 소믈리에(오른쪽), 와인인 최민아 대표(왼쪽)을 비롯해 에두아르도 채드윅 회장과 그녀의 막내 딸 알레 채드윅이 호스트와 패널로 참여했다. 비녜도 파밀리아 채드윅 제공.

이 역사적인 베를린 테이스팅의 20주년을 맞아 에두아르도 채드윅 회장은 세계를 여행하고 있다. 전 세계 주요 도시에서 이를 기념하는 이벤트를 개최 중이며 그 중엔 2008, 2013년 그의 와인들을 블라인드 테이스팅 했던 한국도 포함됐다. 지난 달 23일 조선 팰리스 서울 호텔에는 에두아르도 채드윅의 주요 파트너사와 미디어의 와인 전문가들이 모여 '베를린 테이스팅 20주년 기념 마스터 클래스' 서울 편이 진행됐다. 비녜도 파밀리아 채드윅 와이너리에선 이번 베를린 테이스팅 20주년 이벤트를 위해 비냐 에라주리즈(Viña Errázuriz)의 돈 막시미아노 파운더스 리저브(Don Maximiano Founder’s Reserve 1984, 2008, 2021)와 카이(KAI 2010, 2021), 세냐(Seña 1998, 2009, 2015, 2021), 비녜도 채드윅(Viñedo Chadwick 2000, 2014, 2021) 네 가지 레이블의 버티컬 테이스팅을 준비했다. <에스콰이어>는 이 마스터 클래스를 마친 뒤 에두아르도 채드윅 회장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파밀리아 비녜도 채드윅에서 만드는 것과 같은 와인들, 그 땅의 떼루아와 빈티지를 표현하면서 최상의 밸런스를 지향하는 와인들을 우리는 ‘파인 와인’이라고 하지요. 파인 와인 만들려고 결심을 하고 나서 처음으로 바꾼 와인 메이킹의 프로세스가 뭔지 궁금해요. 포도의 가지치는 방식을 바꿨다든지, 선별 프로세스를 바꿨다든지, 발효조와 발효 온도를 바꿨다든지 등의 구체적인 변화가 있었을 것 같습니다.
단 하나를 꼽기엔 어려울 것 같아요. 전반적인 진화가 일어났다고 보는 편이 맞을 겁니다. 크게는 3가지 측면으로 생각해볼 수 있겠네요. 첫 번째는 포도밭을 개발하는 일이었습니다. 하나의 포도원이 있는 계곡 안에서도 서로 다른 떼루아적 특성을 고려해서 다양한 밭을 나눴어요. 기존에 저희가 시작하기 초창기에 트렌드를 보면 저희가 자리 잡았던 그런 토양, 소위 ‘헤비 소일’이라고 하는 진흙 성향의 밭에는 다들 관심이 없었죠. 그땐 모두들 구릉지로 올라가서 미네랄리티가 있는 석회암 토양을 찾았어요. 두 번째로는 포도 재배와 와인 양조의 혁신을 들 수 있을 것 같아요. 사실 70년대 칠레의 와인 양조 스타일은 아주 올드 스타일을 고집하고 있었거든요. 아마 1960년대의 나파 그리고 1950년대의 보르도와 비슷한 상황이었다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그 이후에 각 지역에서 좀 혁신가들이 나오게 되면서 와인 양조 스타일이 발전을 했어요. 칠레도 사실은 1980년대까지는 폐쇄 경제를 유지해오고 있었던 터라 수출입이 쉽지 않았어요.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처음으로 와인을 수출하기 시작했는데, 그때 저희가 처음 했던 일이 포도 재배 전문가 팀과 와인 양조 전문가 팀들을 전부 해외로 보내서 연수를 시킨 것입니다. 보르도, 토스카나, 나파 밸리의 UC 데이비스 같은 양조 명문 대학이 있는 곳들로 보내서 그들의 노하우를 전수 받고 오게 했지요. 토스카니나 보르도 나파에서 어떠한 노하우를 쌓았는지 배운 다음에 다시 칠레로 돌아와서 와인 양조를 시작하는 과정을 거쳤습니다. 세 번째로는 최고 수준, 거의 예술의 경지에 다다른 아이콘 와이너리를 만드는 것이었는데요. 일단 지속 가능성이라는 가치를 염두에 두고 모든 요소들과 장비들을 최첨단화했어요. 기자님이 아까 질문에서 예를 들었던 것 처럼 포도 수확에서부터 선별 그리고 발효조 안에서 중력을 이용하면서 어떻게 포도를 섞어줄 것인지, 스테인리스 스틸을 언제 쓰고 프렌치 오크를 언제 쓸 것인지 숙성은 얼만큼의 기간을 들여 할 것인지를 최첨단 시설의 설치 여부 지속가능성 등과 함께 고려했지요. 지금 말씀드린 것처럼 인적 자원의 교육, 장비, 아이콘 와인을 만들겠다는 와이너리의 지향점이 모두 연결 되었을 때 파인 와인을 만들 수 있습니다.
파밀리아 비녜도 채드윅의 와인들은 바디감이 있는 레드 와인이 많습니다. 최근 전세계적인 라이프스타일의 변화를 보면 저도수 화이트 와인들, 가볍고 섬세한 와인들이 각광을 받고 있는데 이에 대한 대책은 있나요?
전 일단 지구의 기후 변화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고 봅니다. 기후 변화가 실제로 굉장히 큰 영향을 미치고 있고 저희 포도원의 농법, 기후 변화에 대응하는 방법 등에 굉장히 많은 변화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칠레의 기후 상황을 보면 점점 더 비가 덜 내리고 있어요. 가뭄은 심해지고 기온은 계속 올라가고 있지요. 대부분의 와이너리들이 좀 더 바다 가까이로 부지를 옮겨가면서 서늘한 기후를 찾아가고 있는 실정입니다. 물을 끌어오는 ‘관개’가 농법에서 좀 더 중요해졌어지요. 저희는 가능한 한 최상의 밸런스를 찾아서 움직이고 있는데요, 그러다 보니까 아까 말씀드린 지속 가능성을 지키고 바이오다이나믹 농법을 활용하면서 전반적으로 와인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 그에 따른 첫 번째 대응 방식이었죠. 말씀하신 와인 소비 스타일의 변화를 두고 봤을 때는 저희 역시 좀 더 섬세함과 우아함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어요. 아까 저희가 시음한 와인 중에 2000년대에서 2010년에 이르는 약 10년의 경향을 보면 당시의 기후변화 탓에 전 세계적으로 파워풀한 와인들이 많이 생산됐지요. 바디감이 묵직하고, 알코올 도수도 15%까지 가득 차 있고, 오크에서 100% 숙성해 향미물질이 가득한 그런 와인들이었요. 저희는 그런 스타일을 벗어나서 좀 더 프렌치에 가까운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해야할까요? 섬세하면서 우아한 밸런스를 맞추기 위해서 포도를 조기 수확해서 산도와 산뜻함을 맞추는 데 초점을 두고 있어요. 우리가 지금 자리잡고 있는 떼루아 안에서 최상의 퍼포먼스를 보여주려면 이런 스타일의 와인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워커힐의 유영진 소믈리에(왼쪽), 와인인 최민아 대표(오른쪽), 에두아르도 채드윅 회장. 제공 비녜도 파밀리아 채드윅.

워커힐의 유영진 소믈리에(왼쪽), 와인인 최민아 대표(오른쪽), 에두아르도 채드윅 회장. 제공 비녜도 파밀리아 채드윅.

기자의 관점에서 파밀리아 비녜도 채드윅의 와인들이 모델로 삼는 ‘나파 와인’이라든지, ‘수퍼투스칸’의 성공 요인 뒤에는 ‘수퍼투스칸’이라는 단어 그 자체가 브랜딩 측면에서 무척 중요했다고 봅니다. 지금 파밀리아 비녜도 채드윅의 와인들을 통칭하는 ‘칠레 프리미엄 와인’은 좀 지나치게 평범한 느낌인데, 다른 단어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수퍼 투스칸은 정말 브랜딩이 잘된 단어지요. 저희는 세냐를 칠레의 첫 아이코닉 와인이라고 부릅니다. ‘아이코닉 칠리언 와인’이라는 단어를 쓰지요. 이는 제3자가 인정해주는 저희 와인의 지위지요. 제3자가 인정해 주어야지만 ‘아이코닉’이라는 단어를 쓸 수 있습니다. 오늘 마스터 클래스에서 테이스팅한 4개의 레드 와인들 돈 막시미아노 파운더스 리저브, 비녜도 채드윅, 카이, 세냐는 모두 아이코닉의 반열에 오른 와인들입니다. 특히 세냐는 로버트 몬다비와 조인트 벤처로 만든 최초의 와인이기도 해서 아이콘적인 이정표의 역할을 하고 있지요. 나파에서는 보르도 품종과 블렌딩 방식을 차용한 자신들의 와인에 ‘메리티지 와인’이라는 단어를 붙였고, 수퍼투스칸들은 이탈리아의 특정 지역의 체계에서 디노미네이션을 통해 홍보에 성공한 케이스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사시까이아를 ‘수퍼투스칸’으로 정의하진 않지요. 오퍼스원도 그저 오퍼스원일 뿐이지 메리티지 와인으로 정의하지 않아요. 저희 와인도 칠리안 아이코닉 와인이지만, 로버트 파커가 100점을 줬던 ‘비녜도 채드윅’ 그 자체로 우뚝 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역과 떨어져서 그 자체로 서는 거죠.

Credit

  • 사진 비녜도 파밀리아 채드윅 와이너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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