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YLE
빈티지 티셔츠 한 장에 가득 담긴 추억들
빈티지 티셔츠를 좋아하는 남자 10명에게 물었다. 적당히 늘어나고 빛바랜 티셔츠 한 장에 담긴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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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티지 숍 액기스 대표 / @eggkisu
1993 - Radiohead Pablo Honey Tour T-shirt
라디오헤드는 1993년 2월 22일 <Pablo Honey> 앨범으로 데뷔했고, 나는 1993년 2월 23일 태어났다. 이 앨범 공연 투어 티셔츠가 제작된 것도 같은 해. 나와 동갑내기인 셈이다. 어릴 때부터 라디오헤드의 음악을 좋아했다. 콘서트 영상을 볼 때마다 관객들이 입고 있는 라디오헤드 티셔츠에 눈길을 빼앗겼고, 그러면서 굿즈 티셔츠 문화를 알게 됐다. 라디오헤드 티셔츠만큼은 꼭 갖고 싶었고 해외 중고거래 사이트를 수개월간 들락거린 끝에 마침내 손에 넣게 된 제품. 내게 빈티지 세계를 알려준 계기이기도 해 더 의미 있는 티셔츠다. 현재는 200만원에 달하는 가격에도 거래되지만 절대 팔 생각은 없다.

빈티지 숍 배드서비스 클래스 대표 / @ the_badservice_class_
1988 - Soundgarden Godzilla T-shirt
1988년 사운드가든이 ‘Screaming Life’ 라이브 투어를 위해 제작한 티셔츠. 고질라가 프린트된 프로모션 이미지 덕분에 마니아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다. 평소 사운드가든 음악을 즐겨 듣는 데다 등에 타투를 새길 만큼 고질라도 좋아하니, 완벽히 나를 위한 티셔츠인 셈. 만약 내 취향을 담은 옷을 만들었더라면 이 티셔츠처럼 생겼을 거다. 어디를 둘러봐도 매물이 없어 반쯤 포기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운명처럼 이 티셔츠를 입은 손님이 매장에 찾아왔다. 그리고 신기하게 그 손님이 원하던 옷이 딱 내 매장에 있어 서로 제품을 교환했다. 역시 만날 것들은 만나게 되는 법이다.

빈티지 숍 아카이빈 대표 / @archivin.kr
1990s - Snoop Dogg Bootleg T-shirt
근본 있는 부틀렉 티셔츠를 하나쯤은 갖고 싶었다. 아티스트의 영향력, 프린트 디자인, 상태, 너무 싸지도 비싸지도 않은 적절한 가격대까지. 따져야 할 조건이 많았다. 그런 의미에서 스눕독 부틀렉 티셔츠는 완벽해 보였다. 프린트에서조차 아티스트의 오라와 쿨함이 느껴지니까. 반드시 스눕독 부틀렉 티셔츠를 찾겠다고 다짐하고 야심 차게 떠난 LA 바잉 트립. 그곳에서 운명처럼 이 옷을 만났는데 생각보다 가격이 너무 비쌌다. 하지만 꼭 사고 싶었다. 그렇게 이 티셔츠는 200만원이 넘는 돈을 주고 구매한 처음이자 마지막 티셔츠가 됐다. 아직까지는.

빈티지 숍 피버 체이서 대표 / @fever_chasers
2002 - Nike Guss Hiddink T-shirt
월드컵 4강 신화를 이뤘던 2002년을 기억한다. 온몸을 빨갛게 칠하고 거리로 나선 사람들, 북적이는 도로와 대한민국 구호에 맞춰 울리는 자동차 클랙슨 소리, 부모님 손을 잡고 동참했던 길거리 응원….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내게 2002년은 축제의 해였다. 그리고 시간이 한참 흐른 뒤, 내 매장 근처 다른 빈티지 숍에서 히딩크 감독의 얼굴이 프린트된 이 빨간 티셔츠를 발견했다. 보자마자 당시의 행복했던 추억들이 떠올랐다. 무척 반가웠다. 가격은 단돈 5만원. 그러니 더더욱 사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값비싼 티셔츠보다 훨씬 더 아끼는, 소중한 옷이다.

요리사 / @vintagesu
1991 - Nike Jump Man T-shirt
이 티셔츠는 20대 초반 광주 여행을 갔을 때, 어떤 할아버지가 운영하던 낡고 허름한 가게에서 구입했다. 큰 기대 없이 들어가 옷을 뒤적였는데 소매와 밑단을 싱글 스티치로 마감한 이 티셔츠가 유독 눈에 띄었다. 심지어 라벨을 보니 1991년에 생산되었음에도 거의 새것 같은 컨디션. 이렇게 귀한 옷을 단돈 5000원에 사서 6년째 입고 있다. 그동안 편하게 즐겨 입은 탓에 이제야 1991년에 만들어진 티셔츠처럼 보이지만 그것조차 마음에 든다. 이 티셔츠만큼은 옷장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두고 입는다.

빈티지 숍 방구석 빈티지 대표 / @roomcorner_vintage
1992 - Pink Floyd Wish You Were Here T-shirt
육군 장교로 군 복무를 마친 후 힘들게 공부를 이어갈 때였다. 어느 날 유튜브 영상을 하나 보게 됐는데, 거기서 흘러나오는 핑크 플로이드의 노래 ‘Wish You Were Here’가 묘한 위로가 됐다. 그때부터 핑크 플로이드에 빠져들었고 결국 밴드 티셔츠까지 수집하게 됐다. 개인적으로 가장 의미 있는 티셔츠를 하나 고르자면 바로 이것. 등판에 ‘Wish You Were Here’ 문구가 새겨져 있는 데다 제일 처음 구매한 핑크 플로이드 티셔츠이기도 하기 때문에. 프린트의 강물을 보면 괜히 노래 도입부의 어쿠스틱 기타 사운드가 떠오르면서 마음이 차분해진다.

주얼리 디자이너 / @haaanyonghui
1990s - Pig Face T-shirt
희귀한 밴드 티셔츠나 부틀렉 티셔츠보다 엉뚱한 프린트가 새겨진 빈티지 티셔츠를 더 좋아한다. 몇 년 전 자주 가는 빈티지 숍에서 발견한 이 티셔츠가 딱 그랬다. 그윽한 미소로 나를 쳐다보고 있는 돼지를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이후론 쉬는 날이면 거의 이 티셔츠를 입었다. 삼겹살 집에 가거나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 돼지 프린트는 흥미로운 이야기 소재가 되곤 했으니까. 전 애인과의 첫 만남에서 경직된 분위기를 풀어주던 것도 바로 이 돼지였다. 이 옷과 얽힌 추억이 무척이나 많다. 어느새 돼지 티셔츠는 내게 단순한 옷 이상의 존재가 되었다.

빈티지 숍 소울레스 대표 / @souless_vintage
1995 - R.E.M. Monster Tour T-Shirt
어릴 때부터 박효신을 좋아했다. 공연이나 뮤지컬을 빼놓지 않고 관람할 만큼. 한번은 뮤지컬이 끝나고 나오는 그를 기다린 적 있는데, 그때 박효신이 입고 있던 것이 바로 이 티셔츠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R.E.M.은 이름만 들어본, 크게 관심을 두지 않던 밴드. 하지만 좋아하는 가수가 그들의 티셔츠를 입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미친 듯이 해외 사이트를 뒤졌다. 빈티지 마니아들 사이에선 이미 유명한 티셔츠여서 매물은 없었다. 그래도 굴하지 않고 몇 개월간 뒤져 발견해낸 것은 약간 뿌듯한 대목. 번역기를 돌려가며 1달러, 2달러씩 깎아 40만원대에 구매했다.

빈티지 숍 앳더프론트 대표 / @at.the.front_vintage
1990s - Neiman Marcus Staff T-Shirt
처음 니만 마커스 백화점에 간 건 1990년대 후반, 초등학생 때였다. 미국에 살던 이모를 따라가서 먹은 시나몬롤과 레모네이드의 맛이 아직까지 선명하게 남아 있다. 두 번째 방문은 뉴욕으로 유학을 갔을 때. 니만 마커스는 외로운 타지 생활의 오아시스가 되어줬다. 오랜 시간이 흐르고 나서, 우리나라 빈티지 숍에서 이 니만 마커스 스태프 티셔츠를 마주했다. 사장은 방금 어떤 외국인이 구매하려 했지만 현금도 없고, 카드도 오류가 나서 나에게 기회가 온 것이라 웃으며 설명했다. 이 티셔츠를 볼 때마다 시나몬롤과 레모네이드, 유학 시절의 추억이 생생하게 되살아난다.

빈티지 숍 도비가 대표 / @dobbyga__station
1997 - DIABLO 1 PROMO T-Shirt
어릴 땐 디아블로를 무척 좋아했다. 나는 학교가 끝나자마자 정신없이 PC방으로 달려가는 초등학생이었고, 야만 용사 바바리안과 한 몸이 되어 수많은 전쟁을 치렀다. 천사와 악마의 대립, 인간 세계의 파멸을 구원하는 전사… 그 시절 내 세상은 온통 디아블로였다. 그러다 몇 년 전, 웹 쇼핑을 하다 이 티셔츠를 보게 됐다. 태그를 확인하니 디아블로 1 시리즈가 처음 나온 1997년 버전이었다. 고민 없이 바로 구매 버튼을 눌렀다. 컴퓨터 앞에 앉아 게임을 켜던 기분으로. 이 티셔츠는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시절에 대한 노스탤지어니까.
2013 - Supreme Shaolin T-Shirt
홍콩 쿵후 영화 <응조철포삼>의 포스터가 그려진 티셔츠. 응조철포삼부터 취권, 쿵후 허슬까지 그 시절 쿵후 영화를 좋아해 꼭 소장하고 싶었다. 게다가 슈프림 티셔츠니까. 심지어 엽기적인 표정의 할아버지는 대한민국의 황정리 배우다. 대한민국 배우가 크게 들어간 이 티셔츠만큼은 꼭 손에 넣었어야 했다. 이 티셔츠 존재를 알고 나서 6개월간 매일같이 관련 검색어로 서치하면서 내 몸에 맞는 사이즈를 찾게 됐다. 가격대도 나름 합리적인 10만원대. 올해로 30주년을 맞은 슈프림은 그 시간만큼 다양한 그래픽 티셔츠를 발매했다. 근데 이런 비주류 디자인이 또다시 나올 수 있을까?
Credit
- PHOTOGRAPHER 정우영
- ART DESIGNER 박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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