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진화하는 야구의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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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잠깐, ‘로봇 심판’이라는 말에 혹시라도 SF영화 <아이, 로봇> 속 인간을 닮은 휴머노이드나 애니메이션 <월-E>에 등장한 귀여운 바퀴 달린 로봇이 다이아몬드 그라운드의 정중앙에서 호령하는 모습을 상상했는가? 아쉽지만 2024년에도 경기장에는 인간 심판이 변함없이 서 있을 예정이다. 그렇다면 로봇 심판은 대체 어떤 역할인가.
올해 KBO에서 선보일 로봇 심판은 투수가 던진 공이 스트라이크인지, 볼인지 판정하는 ‘자동 볼-스트라이크 판정 시스템(ABS, Automated Ball-Strike System)’이다. 타자가 타석에 들어서면 내야와 외야에 설치된 3대의 초고속 카메라가 타자의 체형에 맞춰 스트라이크 존을 설정하고, 투수가 던진 공의 궤적과 홈플레이트를 통과하는 과정을 추적한다. 이를 바탕으로 인공지능(AI)이 스트라이크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다. 판정 결과는 경기장에 서 있는 인간 심판에게 이어폰으로 전달돼, 볼카운트를 선언하는 역할은 이전과 마찬가지로 인간 심판이 할 예정이다.
로봇 심판의 도입은, 인간이 인간보다 AI를 더 신뢰한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매 경기 심판은 투수가 던진 공 하나하나에 대해 볼 판정을 내려야 하는데, 판정 결과는 아웃 카운트에 직결되고 경기 승패에도 직접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중요한 경기 요소 중 하나다. 이처럼 야구는 심판이 경기에 많이 개입하는 스포츠지만, 문제는 볼 판정에 대한 오심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실제로 지난 10년간 400만 개가 넘는 볼 판정을 분석한 연구에 따르면, 세계 최고 수준인 MLB에서도 이닝당 평균 1.6회, 경기당 평균 14개의 볼 판정 오류가 발생했다. 오심으로 인한 팬들의 분노가 매 경기 이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온갖 노력에도 해결될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워낙 빠른 투구 속도를 눈으로 좇는 것이나, 열렬한 경기장의 분위기에 흔들리지 않고 장기간 일관된 판정을 내리는 것은 모두 인간의 한계에 가까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로봇 심판이 성공적으로 도입된다면 볼 판정 오류는 이제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될 것이다. 인간미가 사라지고 흥미가 떨어질 수 있다는 일부 부정적 의견도 있지만, 시범운영 경기에 참여한 선수와 심판들은 대체로 만족하는 분위기다.
로봇 심판뿐 아니라 첨단 과학기술의 발달은 야구계에 다양한 변화의 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AI를 비롯한 사물인터넷(IoT), 정보통신기술(ICT), 빅데이터, 로봇공학 등 여러 지능정보기술들이 스포츠 선수들이 흘리는 땀방울에 새로운 가치를 더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전 세계 야구판의 가장 큰 화두는 ‘데이터 야구’다. 사실, 야구는 원래부터 ‘데이터’와 떼놓을 수 없는 스포츠였다. 경기의 모든 내용을 전부 숫자로 남길 수 있는 특징 때문이다. 야구는 경기 중 별개의 사건이 반복되고, 이 사건들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지 않으며, 모든 투구와 타격 결과가 범주화되어 정리되는 만큼 기록이 쉽다. 거의 매일 경기가 열리니 표본도 크다. 덕분에 필연적으로 다양한 통계 수치가 생긴다. 타자에게는 타율과 타점, 도루, 홈런이, 투수에게는 평균자책점, 탈삼진, 승패, 세이브 등과 같은 기록들이 남는다.
야구에서 축적된 데이터를 과학적으로 분석한 후 유의미한 통계 수치를 추출해 전략적으로 활용하는 과정을 ‘세이버메트릭스(Sabermetrics)’라 부른다. 데이터가 야구를 지배하는 절대적 법칙이 된 건, 일명 ‘머니볼’이라 불린 빌리 빈의 도전이 대성공을 거두면서부터다. 새로운 세기를 앞두고 빌리 빈은 형편없는 성적을 거두고 있던 MLB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단장으로 취임했다. 그는 타율과 홈런 등 당시 리그를 지배하던 화려한 스탯 대신 출루율과 장타율을 합한 OPS(공격 공헌도)와 같은 새로운 지표를 활용해 고연봉 선수가 아닌 유망주들을 영입, 이들을 중심으로 팀을 운영했다. 이후로는 알려진 대로 오클랜드는 적은 예산에도 강팀 반열에 올랐고, 세이버메트릭스의 위상은 점차 높아졌다.
빌리 빈의 ‘머니볼’ 이후 세이버메트릭스는 보다 전문화됐고, 통계 수치를 조합해 선수의 능력치를 여러 관점에서 평가하는 지표도 다양하게 개발됐다. 이제는 MLB는 물론 KBO 구단들도 어떤 선수를 영입하고 활용할지, 좀 더 고도화된 데이터를 분석해 결정한다. 최근에는 첨단 과학으로 더욱 정교한 데이터를 수집하는 것도 가능해졌다. 타구의 난이도와 수비 범위까지 고려한 수비 지표인 UZR(수비 기여도, Ultimate Zone Rating)을 예로 들 수 있겠다. 원래 수비는 객관적으로 평가하기 매우 까다로운 분야였다. 전통적으로 많이 이용된 지표인 ‘실책’의 경우, 수비 범위나 적극성은 전혀 고려하지 못했다. UZR처럼 보다 정밀한 지표 측정이 가능해진 건, ICT의 발달로 그라운드 내 공의 위치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얼마나 질 좋은 타구를 생산하는지 보여주는 지표인 xwOBA(가중기대 출루율, eXpected weighted On-Base Average)의 경우 측정된 타구속도와 발사각도까지 계산에 활용해 타구가 안타나 장타가 될 확률까지 보여준다.
이처럼 상세한 데이터를 수집하기 위해, KBO의 구단들은 경기 중 야구공은 물론 모든 선수의 움직임을 측정하는 트랙맨(Trackman)을 경기장 곳곳에 설치해 활용하고 있다. 이는 군사용 레이더를 활용한 기술로, 투수가 공을 던질 때 초속과 종속은 물론 볼의 무브먼트, 회전율, 로케이션, 릴리스 포인트, 투구 궤적, 타구 속도, 발사각 등을 세밀하게 확인할 수 있다.
데이터는 선수 개개인의 능력치를 높이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KBO 구단들이 최근 주목하는 것 중 하나는 생체역학 데이터를 활용하는 바이오메카닉(Bio-mechanic)이다. 일례로 투수의 역량 중 경기를 지배하는 가장 중요한 능력은 빠른 구속인데, 전통적으로 구속을 높이기 위해 웨이트트레이닝을 병행하며 코치의 지도 아래 시행착오를 거쳐 투구폼을 찾아야 했다. 이제는 생체역학을 통해 수십 개 관절의 복합적 움직임을 분석해 개인에게 맞는 최적의 협응 동작을 찾아 빠르고 효율적으로 구속을 높일 수 있다.
MLB 구단의 경우, ‘26인 로스터’에 든 26명의 선수로 한 팀을 꾸려 운영한다. 그 뒤에는 적게는 30명에서 많게는 50명까지, 매 경기의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분석해 전략적으로 활용하는 이들이 있다. 선수단보다 훨씬 많은 인원이 ‘데이터 야구’에 골몰하고 있는 것이다. KBO는 아직 MLB 수준은 아니지만, 마찬가지로 발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일례로 2022년, KIA는 레이더보다 더욱 정밀한 정보를 얻기 위해 매처럼 날카로운 고해상도 광학카메라를 12개나 사용하는 호크아이(Hawk-eye) 시스템을 도입하기도 했다.
선수와 감독의 뜨거운 열정과 경험 대신, 각종 데이터의 차가운 분석과 숫자가 경기 결과에 더 큰 영향을 미치는 시대가 성큼 다가왔다. 과연 앞으로의 야구는 첨단 과학과 손잡고 어떻게 변화하게 될 것인가. 원년 야구팬으로서도, 또 과학 칼럼니스트로서도 기대되는 바다.
김홍재는 <과학동아> 기자와 <사이언스타임즈> 편집장으로 일했다. 책 <아파트 속 과학>을 썼다.
Credit
- EDITOR 김현유
- WRITER 김홍재
- ILLUSTRATOR MYCDAYS
- ART DESIGNER 주정화
CELEBR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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