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나는 솔로>와 <하트시그널> 사이의 거리

프로필 by 김현유 2023.07.05
 
<하트 시그널>이 돌아왔다. 네 번째 시즌이다. 2017년 첫 번째 시즌을 공개한 지 5년 만이다. 연애 예능 리부트의 시작점으로 꼽히는 이 프로그램의 기백은 여전했다. 여론분석기관 굿데이터코퍼레이션에 따르면, <하트 시그널>은 6월 1주차 TV-OTT 통합 비드라마/쇼 부문 화제성 1위에 올랐다. 그런데 <하트 시그널>이 이처럼 높은 화제성을 얻기까지는 약간의 고충(?)이 있었다. 애초 수요일 오후 10시 30분에 방송됐던 <하트 시그널>은 3회 만에 시간대를 옮겼다. 공식적인 이유를 밝히진 않았지만, 많은 이가 동시간에 방영된 <나는 솔로>와의 시청률 맞대결에서 패배했기 때문이라고 봤다. <하트 시그널>은 방영 시간 이동 후에야 비로소 지난 시즌의 시청률을 회복할 수 있었다.
연애 예능을 보지 않는 사람이라면, 어차피 똑같은 연애 예능인데 <하트 시그널>이니 <나는 솔로>니 아무거나 골라 보면 어떠냐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얼추 맞는 말이기도 하다. 연애 예능은 구성이 비슷하다. 여기서 잠깐, 내 지난 연애 이야기를 터놓겠다.
20대에 사귄 남자는 첫 만남에서 자신을 ‘쇼와 시대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쇼와? 1984년에 대전에서 태어나 20대에는 철원에서 군 생활을 하고, 상수역 인근에 있는 카페에서 소개팅을 하는 사람은 보통 자신을 그렇게 소개하지 않는다. ‘대체 뭐지?’ 이상함을 감지했으나 그 때의 나는 일단 자리를 지켰다. 식사를 하는 내내 남자는 말을 했다. “저는 슈게이징 록밴드를 좋아하는데요…” “저의 관심사는 스티븐 핑커인데 <언어 혁명>이라는 책이 있거든요…” “‘스파게티 웨스턴’은 제가 좋아하는 영화 장르인데 혹시 세르지오 리오네를 아실까요?” 여기 오기 전에 대본을 미리 준비했나 싶을 정도로 인상적이고 일방적인 대화였다. 그가 말하는 무엇도 흥미롭지 않았고, 어느 순간부터는 몹시 기괴하게 느껴졌다.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상대 여성은 피곤하다는 이유로 만남을 연장하지 않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 슬며시 주선자를 원망했을 것이다. 소개팅에 보편적인 공식이 있다면 그게 정석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저렇게 일방적인 말들을 한없이 늘어놓으면서도 가끔 부끄러워하는 남자의 모습에 호감을 느껴 그 뒤로 몇 차례 더 만남을 갖고 사귀기까지 했다.
자, 이제 기괴한 건 어느 쪽인가? 갑자기 이 이야기를 꺼낸 것은 유행을 넘어 하나의 장르로 자리 잡은 ‘연애 예능 리얼리티’가 대부분 이런 구성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어서다. ‘연애보다 썸이 재미있다’는 만고 불변의 법칙을 따르듯, 첫 만남의 전개 과정만을 수없이 반복한다. 그래서 문법도 대부분 비슷하다. 출연자가 가진 특질을 스펙으로 함축해서 소개하고, 그가 사랑 앞에서 어떤 모습을 보이는지 대화와 행동을 통해 관찰한다. 이처럼 연애 예능의 문법은 대부분 비슷하다. 처음 보는 일반인들끼리 호기심을 갖게 한 뒤, 그들이 가진 특질을 스펙으로 함축해 소개하고, 그들이 사랑 앞에서 어떤 모습을 보이는지 대화와 행동을 통해 관찰한다. 이 과정에서 인물의 존재감에는 왜곡이 생기지만, 시청자들은 그들의 고민과 결심을 영화 보듯 지켜본다. 마침내 그들이 마음을 결정하고 상대를 선택하면 거기에 만족감을 얻거나 실망을 한다. 수많은 연애 예능은 이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다만 이 과정을 다루는 방식에는 프로그램마다 차이가 있고 사람들은 그 비교를 즐기기 시작했다.
연애 예능 전성기를 열었다고 평가받는 <하트 시그널>과 원조 연애 예능 <짝>을 계승한 <나는 솔로>는 비슷한 구성 속에서도 극명한 차이를 보여주는 프로그램이다. 사실 두 프로그램의 시청률 대결은 무의미한 일이기도 하다. <하트 시그널>이 덩크를 하고 홈런을 치며 반짝반짝 빛나는 프로 스포츠라면, <나는 솔로>는 동네 이웃들이 치는 게이트볼이나 중학교 운동장에서 아저씨들이 하는 조기 축구다. 두 프로그램의 관객층에도 확연한 차이가 있다.
<하트 시그널>은 만남과 인연의 시작을 표백하는 것에 몰두한다. ‘대체 저런 집엔 누가 살까?’ 싶은 공간에, 외모가 눈에 띄는 출연자들을 입주시킨다. 그들은 마치 누군가에게 떠밀려서 그 공간에 온 것처럼 매우 소극적으로 움직이고 조심스럽게 말한다. ‘황사 필터’로 불리는 색과 명암 보정이 들어간 화면, 유튜브에서 반복적으로 공유되는 감각적이고 분위기 있는 음악, 사랑의 노랫말을 만드는 작사가 김이나의 황홀한 코멘터리. 그 모든 것이 조화를 이루면 현실엔 있을 수 없는 판타지 로맨스가 ‘시그널 하우스’ 안에서는 이루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하트 시그널>에 열광하던 한 외국인 시청자가 SNS 리뷰를 통해 ‘이 쇼는 전형적인 한국 드라마’ 같다고 평한 것처럼, 평균 이상의 ‘스펙’과 외모를 갖춘 출연자들은 모든 것이 아름답게 세팅된 배경 속에서, 자신의 감정을 은은하게 드러내며 기꺼이 동화의 주인공이 되는 것이다.
<나는 솔로>는 다르다. 일단 촬영의 배경이 되는 장소가 아주 현실적이다. 연출도 그렇다. 근처에 조각공원이 있으면 그 조각을 찾는 게임을 하고, 주변에 폐가가 있으면 담력 테스트를 하는 등 섭외지 주변에서 즉흥적으로 영감을 받은 듯한 모양새다. 직설적인 방식으로 인물의 속내를 끌어내서 그가 보이는 반응을 황당하게 클로즈업하는 기법이나 어떤 상황을 마무리할 때 뜬금없이 화면에 등장하는 철학적 명언도 인상적이다. 시즌제가 아닌 레귤러 방영을 유지하며 다큐멘터리 연출 기법을 유지하는 것도 <나는 솔로>만의 특징이다. ‘누가 연애를 다큐처럼 보고 싶어 하지?’ 싶지만 매주 정기적으로 공급되는 전통적인 포맷에 신뢰감을 얻은 사람들은 표백이 되지 않은 상황과 상황의 충돌을 즐기면서, <하트 시그널>보다 거리감이 줄어든 출연자들에게 적극적인 이입을 시도하는 것이다.
한편 <하트 시그널>과 <나는 솔로>를 모두 열심히 챙겨 보는 ‘드문’ 시청자들은 두 프로그램의 차이보다 비슷한 점에 주목할 것이다. 만남을 다루는 형식과 속도에 차이를 보이는 <하트 시그널>과 <나는 솔로>지만, 둘 모두 본격적인 로맨스가 시작되기 전 사람과 사람 사이에 흐르는 기류를 포착하는 데 열중한다. 거기까지 선을 긋는 데서 시청자들은 안정감을 느낀다. <하트 시그널>을 통해 누군가가 잠들지 못하는 밤에 느꼈을 간지러운 감정을 느끼고, <나는 솔로>에서는 망한 소개팅을 간접 체험한다. 관전평을 늘어놓고 훈수를 두며 출연자들을 줄 세우고 평가하는 고약한 편집 패턴에 슬며시 빠져들다가 문득 정신을 차리고, 그런 줄 세우기 풍조가 문제라며 푸념도 하면서.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런 패턴들이 연애 예능의 핵심 동력이라는 것을. 또한 남을 함부로 평가하고 있는 나의 모습을 발견하며 느끼는 자괴감이 이 프로그램들이 자극하는 나의 길티 플레저라는 것도.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이면 텔레비전 앞을 서성이며 볼 것인가, 말 것인가 고민하는 이유다. 그러나 고민은 길지 않다. 나는 결국 송해나의 말에 맞장구를 치고, 미미의 추리에 공감을 하고 있다. 기세가 꺾이지 않는 연애 리얼리티의 종착점은 어디일지, 과연 <하트 시그널>과 <나는 솔로> 중 최후에 살아남는 콘텐츠는 누가 될지 나는 잘 모른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형식 판타지 로맨스든, 다큐멘터리든, 사람들은 이 자극적이고 달콤한 ‘길티 플레저’에 끝없이 열광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복길은 텔레비전 보는 것을 좋아해 방송국에 취직한 직장인이자 자유기고가이다. 책 <아무튼, 예능>을 썼다. 

Credit

  • EDITOR 김현유
  • WRITER 복길
  • ILLUSTRATOR MYCDAYS
  • ART DESIGNER 주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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