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SHION

조나단 앤더슨이 그리는 새로운 시대

파리의 디올 아틀리에에서 만난 조나단 앤더슨. 그가 지금 말하고싶은 것들.

프로필 by 김유진 2026.03.31

도전적인 리더십으로 알려진 애플의 전 CEO 스티브 잡스는 이런 말을 남겼다.

“해군에 들어가느니 해적이 되는 편이 낫다.”

이 격언은 전설적인 패션 하우스 디올의 남성복과 여성복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새롭게 임명된 조나단 앤더슨에게도 정확히 들어맞는 말처럼 보인다.

“가장 중요한 건 자신이 리더가 될 것인지, 아니면 팔로어가 될 것인지를 결정하는 겁니다.”

그는 파리의 널찍하고 밝은 사무실에서 커다란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조나단 앤더슨을 만난 곳은 파리 8구에 위치한 디올 남성복 본사. 앤더슨은 패션 어워즈에서 3년 연속 ‘올해의 디자이너’로 선정된 직후 런던에서 유로스타를 타고 막 도착한 상태였다.

“리더가 되는 데는 시간이 걸립니다. 반면 따르는 건 순간이죠.”

그는 에스프레소를 몇 모금 마시며 담담하게 말했다.

“너무 뻔하고 익숙하면 그건 아무것도 도전하지 않는 거예요. 결국 돈을 벌게 하는 건 독창적인 사고입니다.”

결단력 있는 리더십이 앤더슨의 운영 방식이라면, 독창적인 사고는 그의 결정적인 능력이다. 북아일랜드 출신으로 올해 42세인 그는 로에베에서 11년간 일하며 한때 조용했던 LVMH 계열의 가죽 브랜드를 완전히 탈바꿈시켰다. 아이디어로 가득 찬 컬렉션은 그가 수집한 예술 작품뿐 아니라, 집요하게 파고든 문학작품들에서도 영감을 받았다. (2018년 로에베는 고전문학 시리즈를 재출간했는데, 책 표지에는 스티븐 마이젤의 아카이브 사진이 사용됐다.) 이러한 지적인 전략은 성과로 이어졌다. 앤더슨이 재직하는 동안 로에베의 매출은 2024년 기준 약 8억8500만 유로로 4배 가까이 늘었다.

앤더슨은 디올에서 지금까지 세 번의 남성복 컬렉션, 그러니까 2026 Summer, 2026 Prefall, 2026 Winter 시즌을 진행했고, 첫 여성복 컬렉션은 9월 파리에서 선보였다. 우리가 만난 시점은 2026 Winter 남성복 컬렉션 마무리 작업이 한창이던 때였다. 이 컬렉션은 잡지가 인쇄에 들어가기 며칠 전 파리에서 공개됐으며, 가운처럼 거대한 파카, D-토 카우보이 부츠, 스팽글 베스트가 그의 첫 쇼를 장식했던 리젠시풍 아이템들과 뒤섞여 조나단 앤더슨의 취향이 응축된 모습으로 완성됐다.

현재 매장에 걸려 있는 2026 Summer 시즌 첫 컬렉션은 프레피 스타일에 대한 찬가였다. 부츠컷 진, 무슈 디올 시대를 정의한 동명의 재킷에서 영감을 받은 트위드 ‘바(Bar)’ 블레이저, 클럽 타이, 버튼다운 셔츠, 사탕 같은 색감의 케이블 니트 스웨터까지 총 67개의 룩이 이어졌다. 누군가에게는 신선하고 입기 쉬우며 매우 ‘조나단 앤더슨다운’ 무드였지만, 다른 이들에게는 디올보다는 미국의 유서 깊은 아이비리그에 더 어울릴 법한 룩을 하이패션으로 재해석한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호불호는 의도된 것이었다.

파리 디올 레디투웨어 아틀리에에서 2026 Winter 남성복 컬렉션을 준비하는 모습

파리 디올 레디투웨어 아틀리에에서 2026 Winter 남성복 컬렉션을 준비하는 모습

파리 디올 레디투웨어 아틀리에에서 2026 Winter 남성복 컬렉션을 준비하는 모습

파리 디올 레디투웨어 아틀리에에서 2026 Winter 남성복 컬렉션을 준비하는 모습

디올 맨 북 토트백.

디올 맨 북 토트백.

“첫 남성복 컬렉션은 하나의 아키타입(Archetype),즉 원형을 제시하는 작업이었습니다.” 앤더슨이 설명했다. “데님 재킷과 청바지가 대표적이죠. 하지만 그걸 디올이라는 맥락에 놓는 순간, 급진적으로 보여요. 익숙한 도상을 비트는 전복적인 시도죠. 누군가는 ‘그냥 제이크루 같네’라고 평할 수도 있겠지만, 그 논쟁을 즐겨요. 오히려 너무 ‘패션’스러웠다면 소비자가 입을 수 없었을 겁니다.”

이러한 앤더슨의 도발적인 접근 방식에서 또 다른 거대 하우스의 수장을 떠올렸을지 모르겠다. 당신의 직감은 정확하다. 앤더슨은 프라다의 쇼윈도 디스플레이어로 커리어를 시작했기 때문. 미우치아 프라다의 최측근인 마누엘라 파베시의 가르침 아래, 그는 내면의 반골 기질을 키웠다. 가슴팍에 디올 로고가 새겨진 그레이 케이블 니트 스웨터를 입고 팔짱을 낀 채 그가 말했다. “프라다에서 일할 때, 저는 쇼를 하나의 ‘제안’이라고 봤어요. 받아들이거나, 아니면 말거나였죠.” 그는 설명을 이어갔다. “제 철학은 늘 이렇습니다. 만약 어떤 시기에 ‘이게 딱 맞다’는 의도로 접근한다면, 당신은 잘못된 길로 가고 있는 겁니다. 지금 당장 유효한 작업을 할 수도 있겠지만, 패션쇼의 본질은 그 옷들이 6개월 뒤에 매장에 걸린다는 데 있죠. 그러니 ‘지금’만을 위해 디자인한다면, 그만큼 더 빨리 구식이 되어버릴 뿐입니다.”

최근 ‘콰이어트 럭셔리(Quiet Luxury)’라 불리는 트렌드의 부상을 모르는 이는 없을 것이다. 팬데믹 이전의 로고 플레이에 대한 대응으로 나타난 이 흐름은 베이지색 코트와 값비싼 캐시미어로 대변되며, 더 로우와 로로피아나가 그 선두에 있다. 누군가에게 이 트렌드는 패션이 즐거움을 잃었다는 신호였고, 누군가에게는 산업이 성숙해졌음을 의미했다. 하지만 앤더슨의 입장은 단호하다. “저는 콰이어트 럭셔리가 답답하고 지루하다고 생각합니다. 마치 일산화탄소 같아요.”

앤더슨의 시선에 오늘날의 패션 하우스들은 인플루언서의 행태가 맥락을 같이한다. SNS 사용자들이 비판을 피하고 찬사를 받기 위해 무결점의 이미지를 큐레이션하듯, 많은 디자이너가 리스크와 창의성을 제거한 채 매끈하게 다듬어진 컬렉션을 선보인다는 것이다. “진정으로 새로운 것을 제안하며 대화에 참여하는 순간, 그것이 사람들에게 도전이 될 것임을 알기에 반응을 불러일으키게 됩니다. 인스타그램 출시 직후 로에베에 합류한 그는 동세대 디자이너 중 소셜미디어를 가장 잘 이해하는 인물로 성장했다. 현재 170만 명 이상의 팔로워를 보유한 그는 조시 오코너, 제이미 도넌 같은 앰배서더를 통해 자신의 디자인을 알리고 있다. 이는 직접 쇼를 보거나 매장을 방문하는 이들보다 훨씬 더 많은 이들에게 그의 옷을 노출하고, 소유욕을 자극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로에베 시절에는 남성 게스트 상당수가 제 친구들이었어요. 디올에서도 드류 스타키나 조시 오코너 같은 친구들이 올 겁니다.” 그가 말을 덧붙인다. “하지만 라키스 스탠필드는 최근 특히 중요한 손님이에요. 정말 뛰어난 배우죠. 그가 출연한 영화를 많이 봤는데, 굉장히 인상적이었어요. 아주 특별한 매력을 지니고 있어요.”

물론 소셜미디어는 축복이자 저주이기도 하다. 보링 낫 컴이나 니키 캠벨처럼 인스타그램에서 활동하는 평론가들은 알고리즘에 맞춰 빠르게 반응하며 영향력 있는 ‘소파 위 비평가’들이다. 그 결과는 때로 잔인하다.

“웬만하면 상처받지 않지만, 결국 저도 사람입니다.” 앤더슨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모두를 만족시킬 수 없다는 걸 받아들여야 해요. 저는 논쟁을 싫어하지 않아요. 논쟁이 없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또 브랜드가 있기 때문에 내가 있다는 사실도 빨리 깨달아야 하죠. “

그는 반응을 읽을까?

“소셜미디어 댓글은 보지 않아요. 어느 정도 차단해야 하죠.”

그는 잠시 멈춘 뒤 덧붙였다.

“예전엔 가끔 대응했지만, 어느 순간 네브래스카 어딘가에서 소파에 앉아 낮 시간에 TV를 보며 댓글을 쓰는 사람과 대화하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되죠. 그때 깨달았습니다. ‘아 이건 이길 수 없는 게임이구나.’”

앤더슨의 임명은 디올 79년 역사상 한 명의 디자이너가 남성복과 여성복을 모두 총괄하게 된 첫 사례다. 그는 마리아 그라치아 키우리와 남성복 디렉터였던 킴 존스의 자리를 이어받았다. 인터넷은 즉각 그가 업무량을 감당할 수 있겠느냐는 의문을 제기했다. 2024년 기준 크리스찬 디올 그룹의 매출은 847억 유로에 달한다. 이 압박을 어떻게 견디느냐고 묻자, 그는 잠시 지친 표정을 지었다. 너무 자주 받은 질문이라는 듯.

“저는 일하는 걸 좋아해요. 일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는 의자에 몸을 바로 세우며 말했다. 북아일랜드 런던데리 억양은 유럽의 패션 수도들을 오가며 많이 누그러진 상태다.

“브랜드에 맞는 리듬을 찾기까지는 사이클이 필요해요. 첫해는 항상 가장 힘들죠. 모든 걸 처음으로 하니까요. 지금 브랜드에 필요한 것과 미래에 필요할 것을 동시에 저울질해야 합니다. 기존 고객을 유지하면서도 계속 시험해 보는 과정이죠.”

로에베는 디올이라는 거대한 공룡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작은 브랜드였기에 앤더슨은 자신의 과감한 비전을 바닥부터 쌓아 올릴 자유가 있었다. 하지만 디올에서는 전 세계의 까다로운 고객층을 만족시켜야 한다. 로고가 박힌 스웨트셔츠와 북 토트백으로 고객을 붙잡는 동시에 최상위 시장에는 신선함과 창의성을 제시해야 한다. 그에게 이 균형을 어떻게 맞추느냐고 물었다.

크리스챤 디올의 뉴 룩, 1947년. 조나단 앤더슨의 디올 첫 남성복 컬렉션. 앰배서더 배우 라키스 스탠필드. 조나단 앤더슨의 디올 첫 남성복 컬렉션. 앰배서더 배우 조시 오코너. 첫 남성복 컬렉션의 스트라이프 타이.

“제가 내부 회의 때마다 하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를 만족시킬 수 없습니다. 만약 그럴 수 있다면, 우리가 특별할 이유가 없겠죠.”

“세계에서 가장 큰 다섯 개 브랜드를 예로 보세요. 그들은 큽니다. 제품이 아니라 시각적 밀도로 말이죠. 우리는 모두 그 브랜드를 ‘내 것’처럼 느낍니다. 지금 럭셔리가 맞닥뜨린 흥미로운 딜레마예요.”

앤더슨은 산업 전체가 변혁의 시기를 겪고 있다고 봤다.

“이건 고객에게도 가장 어려운 일입니다. 회사와 디자이너에게도 마찬가지죠.”

“위험을 감수해야 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수익도 고려해야 하죠. 두 개의 모자를 써야 하는 거예요. 밀어붙이는 역할과 균형을 잡는 역할을 동시에 조율하면서요.”

내가 보기에 가장 강력한 브랜드는 단지 아름다운 제품을 만드는 데서 그치지 않고, 명확한 목적과 비전, 존재 이유를 지닌 곳들이다. 마티유 블라지의 보테가 베네타, 현재의 샤넬처럼 공예 중심의 고급스러움부터 아워 레거시처럼 패브릭에 집중한 디자이너 브랜드까지, 열성적인 팬층을 확보한 브랜드들은 메시지가 명확하다.

“저는 지금 크리스찬 디올이라는 브랜드의 존재 이유를 다시 정리해 보려고 해요. “사람들이 왜 디올을 살까요? 오랜 유산을 지녔고 럭셔리 브랜드이기도 하면서 이야기가 있고, 깊은 역사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결국 소비자에게 다가가려면 수많은 브랜드가 뒤엉켜 있는 이 시장에서 우리가 정확히 어디에 서 있는지부터 분명히 해야 합니다.”

디올에 온 지 6개월이 지난 지금, 앤더슨은 자신의 디올이 테일러링을 중심축으로 삼아야 한다고 믿는다.

“지금의 디올 테일러링이 무엇인지, 그리고 향후 3년 동안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정리해야 합니다. 매일 그 부분을 다듬어가고 있죠.”

디올은 쿠튀르 아틀리에를 보유한 몇 안 되는 현대 럭셔리 하우스 중 하나다. 애비뉴 몽테뉴에 기반을 둔 디올의 쿠튀르는 장인정신의 정점이다. ‘오트 쿠튀르’로 분류되려면 가장 숙련된 장인들의 손으로 전 과정을 작업 해야 하며, 엄격한 기준을 충족해야 한다. 앤더슨은 쿠튀르 경험이 없기에 이것이 그의 남성복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궁금해진다.

“흥분됩니다. 쿠튀르는 궁극의 공예니까요.”

“정석대로 쿠튀르를 하는 하우스는 손에 꼽을 정도입니다. 디올은 그중 하나죠. 전 쿠튀르를 스코틀랜드 킬트의 스포런(Sporran)을 만드는 장인들처럼, 공예 대하듯 여깁니다. 해가 갈수록 그 일을 하는 사람이 줄어들고 있어요. 그런 의미에서 쿠튀르는 멸종 위기의 공예인 거죠. 저는 쿠튀르를 레디투웨어를 위한 실험실로 보고 있습니다.”

 2026 Winter 남성 컬렉션 룩.

2026 Winter 남성 컬렉션 룩.

개구리 모티브의 디올 핀 쿠션.

개구리 모티브의 디올 핀 쿠션.

디올 레디투웨어 아틀리에에서 한 벌의 옷을 완성하기 위해 들어가는 디테일을 보면 그 수준에 압도된다. 정교한 패턴 드로잉으로 빽빽하게 채워진 무드보드, 반쯤 완성된 토왈을 입은 수많은 마네킹들, 2026 Winter 남성복 쇼를 위해 바지로 변신을 기다리는 벨벳 원단, 그리고 핑크와 머스터드 컬러의 바틱 실크들이 쌓여 있다. 이 원단들은 결국 쇼를 사로잡았던 풍성한 코트와 케이프로 변할 것이다.

최신 컬렉션에 대해 묻자, 앤더슨은 이렇게 말을 꺼낸다.

“최근 애비뉴 몽테뉴 매장에 갔다가 바닥에 폴 푸아레를 기리는 작은 명판을 봤어요.”

패션사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를 위해 설명하자면, 푸아레는 20세기 초 코르셋을 거부하고 독자적인 드레이핑 스타일을 확립한 쿠튀르의 거장이다.

“과거 폴 푸아레의 매장이 지금 디올 매장과 같은 자리에 있었죠. 그래서 생각했어요. ‘디올과 푸아레의 대화는 무엇일까?’ 갈리아노도 이걸 다뤘습니다. 두 개의 상반된 신화에 대한 이야기죠. 이 컬렉션은 그것을 구현할 예정이에요.”

영화 역시 앤더슨의 확장되는 작업 세계에서 중요한 축이다. 그는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감독 루카 과다니노와의 협업으로 잘 알려져 있으며, <퀴어> <챌린저스> 등 여러 작품의 의상을 맡아왔다. 패션이 시들해질 경우, 영화 의상 디자인은 대안이 될까?

“영화 의상 작업을 좋아하는 이유는 옷의 심리를 다루기 때문입니다.”

“<챌린저스>에서는 스포츠 안의 미국 자본주의라는 개념이 모든 출발점이었어요. 패션이 대중문화에서 거대한 파도가 되는 시기를 다루죠. 캐릭터들은 처음엔 아베크롬비 앤 피치를 입고, 이후에는 까르띠에 브레이슬릿으로 스타일을 바꿔 갑니다.”

과다니노는 남성복 쇼마다 카메라 팀을 이끌고 앤더슨을 따라다니며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그에게 ‘브랜드 베컴’ 같은 넷플릭스식 다큐멘터리를 곧 보게 될 수 있느냐고 묻자, 그는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루카가 저를 따라다니고 있으니, 어떻게 될지는 두고 봐야죠. 아직 구체적인 계획은 없습니다. 하지만 언젠가 뭔가가 생길 수도 있고, 기존의 ‘영화 속 패션 디자이너’ 클리셰를 뒤엎을 수도 있겠죠. 완전히 흐트러진 모습을 보게 될지도 몰라요.”

그가 웃었다.

AI 이야기가 나오자, 그의 얼굴은 훨씬 생기가 돌았다.

“루카와 함께 <아티피셜>이라는 영화를 막 끝냈어요. AI 개척자인 샘 알트먼에 관한 작품입니다.”

AI가 자신의 일을 위협할까 걱정하느냐고 묻자, 그는 단호하게 답했다.

“전혀 두렵지 않아요. 저에겐 그냥 새로운 매체일 뿐입니다. 빠를까요? 네. 작동할까요? 네. 세상을 바꿀까요? 아마도요. 그러니 함께 가거나 아니면 가지 않거나 둘 중 하나죠.”

예술 영역에서 AI의 지배 가능성에 대한 반론 중 하나는, 인간이 결국 인간의 손으로 만든 것을 가장 가치 있게 여긴다는 주장이다. 공예가 다시 중심으로 부상하는 하이패션과 럭셔리 영역에서는 AI가 하이스트리트만큼 큰 역할을 하지는 않을 수도 있다.

 컬렉션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제작 중인 샘플 의상.

컬렉션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제작 중인 샘플 의상.

 컬렉션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제작 중인 샘플 의상.

컬렉션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제작 중인 샘플 의상.

 컬렉션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제작 중인 샘플 의상.

컬렉션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제작 중인 샘플 의상.

“저도 AI가 디자이너의 손을 더 가치 있게 해줄 거라고 생각합니다. 손으로 만든 것은 언제나 희소성을 지니죠. 뇌에서 손으로 이어지는 과정은 매우 복잡하고 쉽지 않죠. 그래서 이런 제품들은 점점 더 가치 있어질 겁니다. 결국 우리는 감정적으로 연결되기를 원하니까요.”

패션은 종종 피상적이라는 비판을 받지만, 가장 영향력 있는 디자이너들은 정치적 담론에도 관여한다. 로에베와 자신의 브랜드에서 앤더슨은 퀴어 크리에이터와 이슈를 적극적으로 지지해 왔다. ‘드링크 유어 밀크’ 캠페인은 배우 조너선 베일리의 ‘더 셰임리스 펀드’를 위한 기금을 모았고, 2020년에는 미국 드래그 아티스트 고(故) 디바인에게 헌정하는 컬렉션과 전시를 열기도 했다.

그의 정치적 입장이 디올에서의 작업에도 드러날 것인지 묻자 페미니즘 메시지를 전면에 내세웠던 마리아 그라치아 키우리와는 달리 앤더슨은 신중했다.

“저는 여전히 다양성과 포용을 전적으로 지지합니다. 하지만 지금의 뉴스 사이클은 그 이야기를 하고 있지 않아요.”

그가 담담하게 말했다.

“그리고 우리는 항상 고객이 누구인지 정확히 알 수 없어요. 그래서 디자이너는 스위스처럼 중립적이어야 합니다.”

그가 가볍게 손짓했다.

“저는 북아일랜드에서 자랐어요. 어느 편도 들지 말라는 교육을 받았습니다. 정치 이야기는 늘 복잡했죠. 저는 제가 싸우고 싶은 것을 제 이름으로 싸웁니다. 디올은 제 것이 아니에요. 글로벌 브랜드이고, 전 세계 고객에게 어필해야 합니다. 공개적으로 정치적 입장을 밝힐 수는 없습니다.”

인터뷰는 정확히 45분으로 제한되어 있었지만, 녹음기가 ‘58:03’을 가리킬 즈음 그의 초조함이 느껴졌다. 손이 얼굴로 더 자주 올라가고, 테이블 아래에서는 다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디올, 자신의 브랜드, 유니클로 협업까지 합쳐 연간 약 18개의 컬렉션을 만드는 사람에게는 당연한 모습일지도 모른다. 나는 스트레스 이야기를 반복하는 대신, 그가 패션계의 또 다른 ‘세련된 해적’ 칼 라거펠트처럼 평생 이 일을 할 생각인지, 아니면 언젠가 배를 항구에 대고 싶어질지 묻는다.

“안나 윈투어가 한 말 중 가장 훌륭한 말은, 자신이 ‘너무 화가 날 때’ 그만두겠다고 한 거예요.”

그가 웃으며 말했다.

“정말 현명한 말이죠. 언젠가는 제가 더 이상 젊지 않다는 사실에 스스로 화가 나는 순간이 올 거라는 걸 알거든요. 이 일은 노인을 위한 게임이 아니에요. 끊임없이 변화해야 하죠. 내가 원하는 수준으로 더 이상 만들 수 없을 때 오는 좌절이 있을 겁니다. 어쩌면 어느 정도의 허영심도 있죠. 너무 공개적인 직업이니까요. 식당에 가서 음식을 입에 넣는 모습조차 사진이 찍힙니다.”

그는 자주 화를 낼까?

“하루 중 제가 화를 내는 유일한 순간은 일이 재미없을 때입니다. 그럴 때 저는 이렇게 생각하죠. ‘내가 왜 이걸 하고 있지?’”

옅은 미소와 짧은 악수, 그리고 다행히도 분노의 기색 하나 없이 앤더슨은 그렇게 또 다른 항해를 향해 떠났다. →

 컬렉션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제작 중인 샘플 의상.

컬렉션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제작 중인 샘플 의상.

Credit

  • EDITOR Teo Van Den Broeke
  • PHOTOGRAPHER Kito Muñoz
  • PHOTO Dior © Charlotte Robin
  • Dior © George Eyres/courtesy of Dior
  • © Willy Maywald/ADAGP/Paris/2026
  • © Charlotte Robin
  • © Getty Images
  • ART DESIGNER 김동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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