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란한 너의 계절에' 채종협 "드라마가 나의 인생에 질문을 던지는 것 같았다"
비밀스러운 기억의 공백과 견고한 보호막을 허물고, 마침내 서로의 찬란한 내면에 가닿는 뜨거운 기록. 인생의 가장 시린 겨울과 타오르는 여름의 한가운데서, 이성경과 채종협이 함께 써 내려간 격정 멜로 드라마 '찬란한 너의 계절에'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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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경) 드레스 셀프 포트레이트. (채종협) 카디건 렉토. 셔츠 사카이.
정말 오랜만에 만나는 멜로다운 멜로, <찬란한 너의 계절에>라는 작품으로 두 배우가 만났어요. 처음 작품을 제안받았을 때, 유독 마음을 건드린 지점이 있었나요?
채종협(이하 ‘채’) 저는 제목이 주는 힘에 매료됐어요. <찬란한 너의 계절에>라는 문장을 처음 딱 마주했을 때, 그게 단순히 예쁜 제목이 아니라 하나의 질문처럼 느껴졌거든요. ‘내 인생은 지금 어떤 계절을 지나고 있을까’라는 문장이 마치 이 드라마의 로그라인처럼 제게 말을 걸었어요.
‘계절’이라는 은유가 종협 씨에게는 단순한 배경 이상의 의미였군요.
채 특히 인생의 특정한 시기를 뜻하는 ‘계절’과 ‘찬란하다’라는 형용사가 한 문장에 나란히 놓여 있는 그 느낌이 참 좋았어요. 누구나 찬란하고 싶은 욕망이 있잖아요. 하지만 그 찬란함이 겨울 끝에 올지, 아니면 한여름의 절정에 올지는 사람마다 다르겠죠. 그런 중의적인 느낌들이 대본을 읽는 내내 저를 설레게 했습니다.
이성경(이하 ‘이’) 저는 제 안에 있는 ‘드라마적인 갈증’을 해소해 줄 수 있는 작품이라는 점에서 되게 반가웠어요. 이를테면 멜로 드라마는 시청자들이 이미 결말을 다 알고 보잖아요. 캐스팅만 봐도 ‘결국 저 둘이 이어지겠네’ 하고 짐작하게 되지요. 그래서인지 중간에 어떤 시련이 와도 위기나 불안이 잘 안 느껴질 때가 많아요. 긴장감이 떨어지는 거죠. 그런데 이 작품은 달라요. 서사가 정말 촘촘해요. 그냥 단순히 남녀가 만나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가 아니라, 두 사람이 왜 서로여야만 하는지를 아주 밑바닥부터 쌓아 올려요. 시청자들이 두 사람을 진심으로 응원하게 만드는 힘이 있어요.
긴장을 유도하려고 작가님들이 ‘삼각관계’라는 장치를 쓰잖아요.
이 정말 촘촘한 서사 구조와 예측 불가능한 사건이 아니면 멜로 장르에서 긴장감을 느끼게 하기 어려운 경우가 있죠. <찬란한 너의 계절에>는 그 전형성을 살짝 비껴가요. ‘이건 좀 다르다’ 하는 느낌을 확실히 주거든요. 아주 오래전부터 쌓여 온 이야기들이 현재까지 긴밀하게 이어지고 있고, 그 실타래가 계속 엉키면서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가죠. 비밀이 하나씩 풀릴 때마다 인물들의 관계가 재정의되는데, 그게 이 드라마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생각해요.
계절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볼게요. 드라마의 주제처럼, 두 분은 지금 본인의 인생이 어떤 계절에 머물러 있다고 느끼시나요?
채 저는 지금 겨울에 가까운 것 같아요. 겨울은 만물이 잠시 멈춘 것 같지만 사실 땅 밑에서는 봄을 준비하는 치열한 시기잖아요. 저에게도 지금이 그런 시기인 것 같아요. 차분하게 내실을 다지며 다음 계절을 기다리는, 겨울을 지나고 있다는 감각이 있습니다.
겉모습은 너무 청량한 여름의 이미지라 겨울이라는 대답이 의외네요.
이 종협 씨는 미소가 너무 밝아서 그래요. 보고 있으면 햇살 같은 느낌이 들거든요.
그런데 그냥 겨울은 아니고 봄이 오기 직전의 겨울이군요.
채 (웃음) 개인적으로 겨울이라는 계절 자체를 좋아하기도 합니다. 차가운 공기 속에서 느껴지는 정적이 저랑 잘 맞는 것 같아요.
이 저는 지금 여름을 지나고 있어요. 사실 최근에 몸 컨디션이 많이 좋지 않았거든요. 마음은 정말 잘하고 싶은 의욕으로 가득한데, 몸이 따라주지 않으니까 그 사이에서 계속 충돌이 생기더라고요. 그게 마치 습도가 높아서 숨 쉬기조차 힘든 뙤약볕 아래의 여름처럼 느껴졌어요. 땀 흘리며 억지로 한 발자국씩 내딛는 느낌이랄까요. 그래도 ‘이 뜨거운 여름을 잘 견디면 분명히 선선하고 수확할 게 많은 가을이 오겠지’라는 믿음으로 버티고 있습니다.
이번 작품에서는 두 분의 직업 설정도 흥미로웠어요. 애니메이터와 디자이너, 둘 다 예술적인 감각이 필요한 흔치 않은 직업이죠.
채 제가 연기한 ‘찬’이 애니메이터예요. 현실에서 느끼는 미묘한 감정이나 상황들을 그림이라는 매개체로 풀어내는 사람이죠. 그런 세계관 자체가 저에게는 되게 신기했고 재미있었어요. 사실 드라마 안에서 직업적인 모습이 기술적으로 아주 많이 나오지는 않아요. 하지만 찬이가 세상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는지, 왜 그림을 그리는지를 이해하는 게 연기하는 데 큰 뿌리가 됐어요.
반면 ‘란’의 직업인 디자이너는 모델 출신인 성경 씨에게는 매우 익숙하죠.
이 옷이 정말 중요했어요. 사실 제가 그동안 의사(<낭만닥터 김사부>)나 체대생(<역도요정 김복주>)처럼 직업 특성상 꾸미기 어려운 역할들을 꽤 오래 했잖아요. 그래서 이번에는 정말 오랜만에 제대로 옷을 입고 꾸미는 캐릭터를 만난 셈이죠. 팬분들께도 매회 새로운 룩을 보여드리는 게 일종의 선물 같은 느낌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렇다고 너무 화려하게만 입으려 하진 않았어요. 너무 과한 명품 위주보다는 자기 옷장에서 무심하게 꺼내 입은 듯하지만 감각이 묻어나는 ‘현실적인 룩’을 보여주려 신경 썼어요. 유복한 환경에 옷을 워낙 사랑하는 캐릭터라 비싼 가방을 들어도, 옷이 매일 바뀌어도 서사적으로 완벽하게 설명이 돼요. 아주 좋은 집에 살고 스타일도 매번 화려해서, 연기하면서 대리 만족도 많이 했어요.(웃음)
재킷 렉토. 스웨터 MSGM. 네크리스 톰 우드.
기억의 공백이나 감춰진 비밀 같은 미스터리한 서사가 이야기를 끌고 가는 아주 강력한 힘이 되죠. 그런 비밀을 미리 알고 연기하는 것과 모르고 연기하는 게 크게 다를 것 같아요.
이 저는 연기할 때 과거에 있었던 모든 일은 무조건 알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주의예요. 설령 그 장면이 회상으로 나오지 않더라도, 지금 이 순간 상대의 눈을 보며 연기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함께 보낸 이전의 시간들을 제 안에 품고 있어야 하거든요. 화면에 직접 나오지 않는 두 사람의 소소한 역사까지도 감독님과 작가님께 계속 물어보며 채워 넣었어요. 란과 찬이 어떤 상처를 공유하고 있는지 알아야 지금의 떨림이 완성되니까요.
과거 서사가 두 가지 시점으로 나뉘어 전개되다 보니 배우 입장에서도 정리가 필요했겠네요.
이 시점이 교차하는 구조라 헷갈리기 쉬운데, 저는 그런 부분을 아주 집요하게 파고드는 편이에요. 모르는 게 생기면 감독님께 바로 질문하고, 작가님의 의도를 정확히 파악해서 넘어가요. 적당히 타협하고 넘어가는 법이 거의 없었던 것 같아요.
채 저도 과거 서사는 완벽하게 인지하고 가야 한다는 점에 동의해요. 하지만 ‘미래’의 일에 대해서는 조금 결이 달라요. 저는 미래의 서사에 대해서는 일부러 여지를 좀 두고 연기하는 편이에요. “이런 일이 생길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두는 거죠. 만약 배우가 결말이나 미래의 전개를 한 방향으로만 딱 단정 짓고 연기하면, 나중에 이야기가 예상을 빗나갈 때 연기에 마찰이 생길 수 있거든요. 드라마는 영화처럼 모든 콘티가 완성된 상태로 시작하는 게 아니니까, 그 라이브한 느낌을 살리려면 미래에 대해선 유연한 태도가 필요하더라고요.
가끔 어떤 감독님들은 결말을 배우에게 끝까지 비밀로 부치기도 한다면서요? 그래야 더 날 것의 연기가 나온다고 믿어서요.
이 저희도 사실 최종 결말은 아직 몰라요. 작가님이 어떻게 마무리를 지으실지 저희 역시 무척 궁금해하며 촬영하고 있습니다.
모델 출신인 두 배우를 실물로 보니까 확실히 느껴지는 아우라나 위압감이 남달라요. 지금도 쇼에 서는 모델들은 워킹에서부터 특유의 에너지가 있죠. 한 화면에 잡히는 것만으로도 비주얼적으로는 이미 멜로가 완성된 느낌이랄까요. 촬영 현장에서 서로의 연기를 보며 ‘이 장면은 상대방 덕분에 완성됐다’라고 느낀 순간이 있었나요?
이 저는 매번 그렇게 느꼈어요. 저희는 촬영이 끝나면 서로 “네가 더 잘했다”라며 추켜세워주기 바쁘거든요. 사실 이번 작품에서 종협 씨가 맡은 찬이는 란이보다 훨씬 더 섬세하게 감정을 표현해줘야 하는 역할이거든요. 그런데 종협 씨가 그걸 너무 과하지 않게, 아주 적절한 온도로 표현해 줘요. 제가 종협 씨의 연기를 편하게 받아낼 수 있게 판을 깔아주는 느낌이랄까요? 파트너로서 정말 고마운 지점이죠.
채 성경 누나야말로 찬이가 굳이 힘을 주지 않아도 되게끔 리액션을 정말 잘 해줘요. 란이가 잘 받아주니까 제가 더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거죠. 저희는 서로가 서로를 살려주는 구조라고 생각해요. 촬영이 끝나고 나면 저도 스태프들에게 늘 말해요. 성경 씨 덕분에 이번 신이 살았다고요.
성경 씨는 전작들에서 자주 보여준 발랄한 이미지와는 확실히 다른 결을 보여줬어요.
이 전작들을 보면 텐션이 높고 감정을 밖으로 터뜨리는 역할을 많이 했다면, 이번 란이는 감정을 안으로 머금는 순간이 훨씬 많아요. 그런데 희한하게도 이런 연기가 저에게는 더 편안하게 다가오더라고요. 굳이 크게 표현하지 않아도, 란의 내면을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전달될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겼거든요.
(이성경) 롱 코트, 부츠 모두 돌체앤가바나. (채종협) 재킷, 셔츠, 팬츠, 타이 모두 아미. 슈즈 메종 마르지엘라. 네크리스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Credit
- PHOTOGRAPHER 목정욱
- STYLIST 엠에스지서울(채종협)
- 정다미(이성경)
- HAIR 안홍문(채종협)
- 이혜영(이성경)
- MAKEUP 김현주(채종협)
- 강예원(이성경)
- ASSISTANT 박예림
- 김민호
- ART DESIGNER 최지훈
MONTHLY CELE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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