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그 이름이 곧 하나의 장르였던 남자 '오지 오스본'을 기리며

거대한 나무가 쓰러졌다. '쿵' 하고.

프로필 by 박세회 2025.08.28

한 사람의 이름이 곧 하나의 장르인, 숲의 무수한 나무 가운데서도 가장 높이 우뚝 솟은 거목이 가끔 존재한다. 헤비메탈에서는 ‘어둠의 왕자’ 오지 오스본이 그런 인물이었다. 오스본이 프런트맨을 맡았던 밴드 블랙 사바스는 1970년 2월 13일에 데뷔 앨범을 냈다. 13일의 금요일에 맞춘 날짜였다. 느리고 불길하며 음산한 곡에 공포영화 줄거리 같은 가사를 얹은 타이틀곡 ‘Black Sabbath’가 없었다면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무서운’ 메탈이 없었을지도 모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블랙 사바스는 헤비메탈이라는 장르 자체를 정의하는 음반들을 줄줄이 발표했고, 최초의 헤비메탈 밴드, 모든 메탈의 뿌리로 칭송받고 있다.

사실 오스본은 블랙 사바스의 메인 송라이터는 아니었다. 그 역할은 헤비메탈의 대부라 불리는 기타리스트 토니 아이오미의 몫이었고, 오스본은 기타 음을 그대로 따라 부르곤 했다. 가사를 많이 쓰지도 않았다. 작사는 베이스트 기저 버틀러가 주로 담당했다. 하지만 오스본의 목소리와 존재감만큼은 압도적이었다. 그와 헤어진 블랙 사바스는 불세출의 보컬리스트 로니 제임스 디오를 영입해 명반 ‘Heaven and Hell’을 만들었다. 당시 기타리스트 토니 아이오미는 디오와 처음 작업하며 “헉, 보컬이 기타랑 다른 멜로디를 부르네?”라며 놀랐다고 한다. 그런데 그들이 만든 엄청난 결과물은 정말 끝내주는 앨범이었는데도 왠지 블랙 사바스 같지 않았다. 디오 이후 다른 싱어들도 블랙 사바스의 프런트맨 자리를 거쳐갔지만, 결국 블랙 사바스에 가장 잘 어울렸던 목소리는 오지 오스본의 목에서 나왔다는 이야기다. (개인적인 의견 또는 감상입니다. 2010년에 우리 곁을 떠나신 디오 선생님이시여, 부디 편히 쉬십시오. 블랙 사바스의 모든 전-현 멤버들에게 무한한 리스펙트를 보냅니다.)

블랙 사바스는 1970년대 중반부터 알코올과 마약을 조금 지나치게 즐겼다. 3집의 ‘Sweet Leaf’는 마리화나, 4집의 ‘Snowblind’는 코카인에 관한 곡이다. 오스본 역시 예외는 아니었고, 1979년 블랙 사바스에서 해고된 뒤 솔로 활동을 시작하고, 자신의 밴드를 구성하면서도 술과 코카인을 놓지 못했다. 전설이 된 기타리스트 랜디 로즈를 오디션 본 사실조차 제대로 기억하지 못했다. 그러나 일이 잘되려고 그랬는지 혹은 로즈의 연주가 워낙 뛰어나서 그 술기운조차 꿰뚫었는지, 오스본은 로즈를 발탁해 엄청난 명반으로 꼽히는 솔로 1집과 2집을 함께 만들었다. 안타깝게도 로즈가 비행기 사고로 요절하기 전까지.

여담이지만, 이 원고를 준비하며 이래저래 찾아보다가 로즈가 오스본 밴드 멤버 시절, 후에 오스본의 아내가 될 섀런(당시 섀런은 밴드 매니저였고, 오스본은 첫 번째 아내와 결혼한 상태였다.)과 동침한 적이 있다는 ‘썰’도 알게 되었다. 음주를 썩 즐기지 않았고 클래식 기타를 동경했던 모범생 음악 천재 이미지의 로즈가 여친 몰래 매니저와 관계를 가졌는지, 사실 별로 알고 싶지 않았지만, 이미 알아버린 이상 모두와 함께 고통을 나누고자 굳이 여기에 밝혀둔다.

1990년대에 나는 오스본의 두 커리어를 동시에 따라가는 게 마냥 좋았다. 중학생 때 학교 근처의 대형 서점 서울문고(지금의 코엑스몰 반디앤루니스에 해당)에서 5000원짜리 블랙 사바스 악보를 사서 베이스를 익혔다. 달달 외울 정도로 보던 프레디 머큐리 추모 공연 영상을 통해 토니 아이오미가 기타 치는 모습을 처음 접한 것도 그 무렵이었다. 용돈이 모이는 대로 오스본의 1980~1990년대 앨범을 CD로 샀다. 친구들과 오지 오스본 밴드의 역대 기타리스트 중엔 누가 최고인지를 두고, 랜디 로즈냐 제이크 E. 리냐 잭 와일드냐 입씨름을 해가며 그의 음반들을 열심히 들었다. 나는 잭 와일드의 타이트하고 야생마 같은 연주를 좋아했고, 2002년 오스본 첫 내한 공연에서 직접 들을 수 있어 황홀했다. 당시의 베이시스트 마이크 트루히요를 2017년 메탈리카 내한 공연에서 다시 만나니 어찌나 반갑던지. 그 공연에서 오프닝을 맡았던 일본 밴드 베이비메탈이 올해 부산국제록페스티벌의 헤드라이너를 맡게 되었다고 한다. 메탈리카부터 베이비메탈까지, 모두가 넓게 보면 블랙 사바스와 오스본의 자손이다.

1994년의 블랙 사바스 트리뷰트 앨범 <Nativity in Black>에 실린 후배 메탈 뮤지션들의 코멘트를 보면 그들이 어떤 존재였는지 알 수 있다. 롭 좀비(화이트 좀비)는 이렇게 말했다. “블랙 사바스가 모든 것을 시작했다는 사실, 사람들이 지금 연주하는 거의 모든 것을 블랙 사바스가 이미 했다는 사실을 누구나 알고 있다. 사상 최고의 리프들은 그들이 썼다. 전부 다.” 마티 프리드먼(당시 메가데스)은 이렇게 말했다. “내가 기타리스트, 뮤지션, 록계 사람이 되어가던 시절, 어떤 음악이 나오든 간에 나와 친구들은 ‘헤비함’의 정도를 블랙 사바스를 기준으로 가늠했다. 물론 블랙 사바스보다 헤비한 음악은 있을 수가 없었다.” 마이크 보딘(페이스 노 모어)은 이렇게 말했다. “음반이 정말로 닳아버릴 때까지 들은 유일한 밴드가 블랙 사바스다.” 피터 스틸(타입 오 네거티브)는 이렇게 말했다. “모든 메탈, 하드코어, 스래시, 고스 음악은 블랙 사바스가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제1의 고스 밴드다.”

섀런 오스본이 기획해 1996년부터 2018년까지 거의 매년 열린 헤비메탈 페스티벌 오즈페스트(Ozzfest)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내로라하는 헤비메탈과 하드록 밴드들이 수십 팀씩 출연했던 오즈페스트는 메탈 팬들에겐 꿈같은 축제였다. 구미권과 일본 등지에서만 열린 탓에 대부분의 한국 팬들에겐 정말로 그저 꿈에 그쳤다는 것이 안타깝지만, 헤비메탈계에서 오스본이 갖는 위상을 잘 보여주는 대규모 행사였다.

1948년생인 오스본은 2025년 7월 5일 공연 ‘Back to the Beginning’을 마지막으로 무대에서 은퇴하기로 한다. 건강 문제였다. 블랙 사바스의 오리지널 라인업이 자신의 고향 영국 버밍엄에서 최후의 공연을 가졌고, 수많은 후배 메탈 뮤지션들이 모여 과거 오즈페스트를 방불케 하는 화려한 출연진을 구성했다.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의 톰 모렐로가 음악감독이었다. 2019년에 파킨슨병 진단을 받은 오스본은 더 이상 무대에 서 있을 수가 없어 검은색 왕좌에 앉아서 노래했다. 장장 10시간에 걸쳐 열린 공연은 대성황을 이뤘다. 그리고 불과 17일 뒤 오스본은 영원히 눈을 감았다.

1980년대 초 한밤중에 랜디 로즈의 사망 소식을 듣고 도저히 믿을 수가 없어 확인하려고 AFKN 방송국 앞으로 달려가 문을 열 때까지 밤을 새웠다는 한 음악평론가의 일화를 기억한다. 내가 1994년에 PC 통신 게시판에서 커트 코베인의 사망 소식을 접했던 순간도 떠오른다. 2025년, 오스본이 떠났다는 건 트위터를 보고 알게 되었다. 세월은 흐르고 부고를 접하는 방식도 변한다. 변함없는 건 슬픔과 애도, 그리고 무뎌지긴 하되 사라지지는 않을 마음의 아픔. 하지만 그보다도 더 오래갈 것은 결국 그들이 남긴 음악이리라.

‘숲 속에서 큰 나무가 쓰러졌어. 근데 아무도 그 소리를 못 들었어. 그럼 나무가 정말로 쓰러진 걸까?’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는…… 정말 큰 나무였다. 거대한 나무였던 오지 오스본이 쓰러졌고, 세상 모두가 그 소리를 들었다. 나무가, 정말로 쓰러졌다. 1948년에 태어나 지구를 뒤흔들고 2025년에 우리를 떠나신 분, 오지 오스본.

이제 난 이 글을 저장하고, 랩톱을 닫고 베이스를 꺼내서 당신이 불렀던 곡들을 연주하고 노래할 겁니다. 1994년에 그랬듯이요. 그땐 전 앰프가 없었는데, 이젠 싸구려 앰프를 켜고 볼륨을 살짝 올려볼까요. 세상 아무도 그 소리를 못 듣겠지만 저는 즐거울 거예요. 층간소음으로 항의가 들어오지 않게 조심할게요. 세상 아무도 못 듣는데 왜 층간에선 들릴까? 암튼, 오지, 안녕. 고맙습니다. 당신이 없었던 내 인생은 상상할 수가 없네요.


이원열은 번역가 겸 뮤지션이다. <헝거 게임> 시리즈 등을 옮겼고 ‘원 트릭 포니스’와 ‘줄리아 하트’ ‘코스모스’ ‘라이너스의 담요’ 등의 밴드에서 활동했다.

Credit

  • EDITOR 박세회
  • WRITER 이원열
  • ILLUSTRATOR MYCDAYS
  • ART DESIGNER 주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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