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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민은 출연료 없이 참여한 '얼굴'이 새로운 모델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part 2

영화 <얼굴>을 쓰고 연출한 연상호는 이 영화의 작업 방식이 그 어느 때보다 즐거웠다고 말했다. 그리고 나는 그 영화를 고른 박정민의 눈을 믿었다.

프로필 by 박세회 2025.08.25
(박정민) 재킷, 셔츠, 타이 모두 디올 맨. (연상호) 재킷, 니트 톱 모두 프라다.

(박정민) 재킷, 셔츠, 타이 모두 디올 맨. (연상호) 재킷, 니트 톱 모두 프라다.

그래도 영상화하면서 많은 것이 바뀌었을 것 같은데요.

전 오히려 원작을 워낙 좋아해서 애매하게 바뀌지 않은 게 좋았어요. 연기적인 부분이나 장치들로 충분히 디벨롭시키면 되니까요.

박정민 배우가 정말 의견을 많이 냈어요. 실은 영화를 보면 만화에서보다 훨씬 살아 있는 신들이 많아요. 예를 들면 임영규가 백주상(임성재 분)과 같이 있는 장면들을 보면, 저는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몰랐는데 자기네들끼리 순식간에 만들어내더라고요.

아잇. 감독님! 그건 우리 욕 먹이는 거잖아요.(웃음)

아냐 아냐. 저는 사실 아예 연기에 대해서는 얘기를 안 해요. 거의 스케줄러 같은 입장으로 연출을 하지요. 근데 보니까 다들 박정민 배우의 의도대로 연기를 하고 있는 것 같더라고.(웃음) 그래서 제가 생각했지요. ‘아… 박정민 배우가 배우들을 따로 모아놓고 미리 다 얘기를 했구나’라고요.

아니라니까요.(웃음) 오해하시겠어요. 배우들이 다들 나름대로 머릿속에 연기를 그리면서 설계를 하잖아요. 상대 배우의 연기에 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나름의 액션도 하고 리액션도 하거든요. 그렇게 한두 테이크를 주고받다 보면 상대 배우가 준비해온 방향으로 제가 넘어가는 때도 있고, 제 방향으로 상대 배우가 넘어오는 때도 있고 그렇게 중간에서 만나는 거예요. 사전에 얘기 없었어요. 리허설 하면서 자연스럽게 서로의 연기가 만나는 거죠. 예를 들면 장례식장에서 박명신 선배(임동환의 이모 역할) 연기가 그랬어요.

그 장면 정말 좋았어요. 임동환의 죽은 엄마의 언니, 그러니까 동환의 이모 역할을 박명신 선배가 맡았는데 정말 (사람의 감정을) 잘 긁으시더라고요.

평소에도 제가 워낙 좋아하는 선배님이신데, 그렇게 재밌는 연기를 준비해 오시면 상대하는 제 입장에선 별로 애쓸 게 없어요. 그냥 그 연기에 맞춰 따라가주기만 하면 되거든요.

박명신 배우라니, 저도 기대되네요. 작품 외적인 얘기도 좀 해볼까요? 작품도 작품이지만, 펀딩도 제작 방식도 무척 특이하다고 들었어요.

특이해요. <얼굴>은 애초에 접근 방식 자체가 다른 작품이에요. 필름 메이커들끼리 정말 최소한의 제작비를 들였고, 배우를 포함한 모든 스태프가 각자의 품삯을 다 일당으로 받았어요. 주요 기여자들에게는 지분을 나눠줬지요. 정민 배우 경우는 제일 많은 회차를 촬영해서 출연료가 그리 적지 않았을 텐데, 안 받겠다고 하더라고요. 투자자가 따로 있는 게 아니다 보니 필름 메이커들끼리만 의논하고 얘기해서 결론을 내면 됐지요. 누구한테 보고를 하는 과정이 없었어요. 예산을 생각하다 보니 대부분 경기권 안에서 찍었어요. 이동 거리를 줄여야 하니까요. 남양주에서도 자주 촬영했죠. 남양주에 가면 참 신기한 동네가 하나 있어요. <반도>도 거기서 찍었고, <지옥>도 거기서 찍었죠. 시가지에 시대상이나 지역성을 줄 때는 주로 마감재로 색을 내거든요. 예를 들면 타일이나 붉은 벽돌 같은 걸로요. 그런데 그 동네는 대부분의 건물들이 마감이 시멘트로 되어 있어서 꾸미기가 쉬워요. <방법:재차의>도 거기서 찍었고 이번에 <얼굴>의 시장 골목도 거기서 찍었어요.

약간 공산주의적인 접근 방식인데, 오히려 더 합리적이라는 생각도 들어요. 투자를 지나치게 많이 받고, 목적 없이 덩치를 키우는 작품들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거든요.

일단 찍는 과정이 엄청 재밌었어요. 이거에 맛들일까 봐 걱정이에요.

재킷, 톱, 슈즈 모두 보테가 베네타. 팬츠 아미.

재킷, 톱, 슈즈 모두 보테가 베네타. 팬츠 아미.

지단이 동네 조기 축구에 공 차러 왔다고 해야 할까요? 스태프도 배우도 전부 제도권에서 톱에 계신 분들이니까요.

그래서 더 재밌었나? 키 스태프들이 사실은 조수들이 좀 많잖아요. 그런데 저희는 예산 때문에 인원이 제한될 수밖에 없으니까 미술감독님도 소품 나르고, 소품 실장님은 바라시(청소)를 직접 하고 그랬어요. 근데 촬영감독님들도 간단하게 작업하는 길을 택하지 않고 또 달리 레일 다 깔고 조명감독님들도 조명 천 다 치고 그랬어요. 표상우 감독님이 A캠을 맡고 B캠은 매 촬영 때마다 스케줄 되는 다섯 분이 객원처럼 돌아가며 찍어주셨는데, 이분들이 또 엄청나신 분들이거든요.

정말 유명한 오디오감독인 강봉성 기사님이 조수도 없이 혼자 오셔서 붐 마이크 들고 타스캠을 메고 계시더라고요. 그 녹음감독님이 제 데뷔작인 <파수꾼> 기사님이셨거든요. 생경하다기보다는 옛날에 뵈었던 그 느낌이 살아나서 기분이 묘했어요. 감독님이 그동안 쌓아온 덕이 있어서 가능했던 일이었어요. 지단이 동네에서 축구 좀 하겠다고 레알 마드리드 선수들한테 전화를 돌린 셈이죠.

어쩌면 <얼굴>의 제작 방식이 새로운 모델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이번에 촬영이 너무 즐거워서, 이 영화가 성공하면 또 할 것 같아요.

많이는 하지 마시고요. 가끔씩 하셔요. 가끔씩. 감독님도 가족이 있는 사람인데….(웃음)

정말 낭만적인 시도를 한 거네요. 예전에 한국 영화가 부흥기를 거칠 때 이런 영화들이 정말 많았죠.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온갖 극장에서 아트 영화를 상영하고, 다들 영화 동아리에 들어가서 소니의 VX2000으로 영화를 찍고 다녔죠.

제가 딱 그 시절에 영화를 시작했거든요. 그때 당시에 ‘10만원 영화 페스티벌’이라는 게 있었는데, 제가 거기 출신이에요. 김종관 감독도 거기 출신이고요.


화보를 촬영하는 스태프가 연상호 감독의 개인 촬영 준비가 끝났다는 신호를 보냈다.


감독님 개인 촬영하기 전에 마지막 질문 하나만 할게요. 전작들을 쭉 보면 ‘아버지’라는 단어와 ‘신’이라는 단어가 떠올라요. 감독님께 아버지와 신은 무엇인가요?

아버지에 대해서는 생각에 대한 정리를 많이 했어요. 아버지는 인간입니다. 어릴 때는 잘 몰랐어요. 관심이 없었거든요. 아버지는 아버지라고 생각을 하지 인간이라고는 생각을 안 해요. 제가 아들로 아버지와 겪었던 문제들을 생각해보면 대부분 아버지를 인간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서 일어난 것들이었죠. 제가 아버지가 되고 보니, 아들이든 딸이든 자식들이 아버지를 왜 그렇게 대상화하는지도 알겠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저희 애들한테 항상 아버지가 인간이라는 점을 단단히 주지시킵니다. .

막 화내는 거 아녜요?(웃음)

화도 내지.(웃음) 무엇보다 저는 애들이 만약 네 살이면 네 살 때의 제 사진을 항상 보여줬어요. ‘이게 누구 같냐’ ‘이게 아빠다’ ‘나도 너였다’라는 메시지죠.

가스라이팅 아녜요? ‘의지하지 마!’.

오해하지 말라는 거지. 왜냐하면 애들은 아버지를 너무 신화화하는 경우가 있거든. 또 인간은 신을 생각할 때는 인간과 관계를 지어서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요. 신의 존재를 인정하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과의 관계성을 먼저 생각한다는 거죠. 그런데 인간과 관계를 맺으려면 신은 인간적이어야 해요. 아버지와 자식의 관계를 생각해보면, 아들은 아버지를 ‘아빠’라는 관계로 생각하지 연상호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래서 둘째한테 늘 ‘아빠 이름 뭐야’라고 물어보고 연상호라고 가르쳐줘요.

아버지는 신화화하고 신은 아버지화하는군요.

꼭 아버지만은 아니고 부모의 문제이기도 하지요. 아이들은 자기가 확실하게 믿을 수 있는 존재가 필요하잖아요. 그런데 아이가 크면 찾지 않지요. 신과 인간과의 관계도 비슷한 것 같아요.


재킷 프라다. 셔츠 에디터 소장품.

재킷 프라다. 셔츠 에디터 소장품.

연상호 감독이 개인 촬영을 위해 인터뷰룸을 나갔다.


감독님 얘기는 잔뜩 들었으니 <얼굴>과 같은 새로운 시도들에 대한 배우님 생각이 궁금해요. 어떻게 보면 완전히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는 모델 같아 보이기도 하고요.

확실히 몸집이 가벼우니까 새로운 시도를 하는 데는 거리낌이 없는 형태죠. 그런데 저도 헷갈려요. 과연 영화로서 예술을 한다고 할 때 그 ‘예술’의 영역이 어디에 있는가를 생각하게 되는 거죠. 미술에 있는 건가, 촬영에 있는 건가. 사실 감독이 원하는 예술적인 장면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정말 많은 돈이 들어가고, 그 가격은 점점 더 비싸지고 있거든요. 어떤 예술적 영감들은 돈이 없으면 구현할 수 없는 거죠. 그런데 저는 영화가 갖고 있는 가장 아티스틱한 지점이 영화가 담고 있는 문학성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영화는 서사적 예술의 측면이 아주 강하죠.

바로 그 지점이 우리 영화인 <얼굴>이 가진 장점이기도 해요. 이 영화의 출발점과 이 영화가 마지막까지 가지고 있는 메시지들이 오히려 이 시대의 영화가 가질 수 있는 예술적인 지점들이라는 생각이죠. 영화를 찍으면서 그런 지점들을 만날 때 기분이 좋았어요.

저 역시 최근 영화들은 서사가 약해졌다는 생각을 종종 해요.

그런 흐름도 있죠. 아까 이 영화가 제작과 펀딩 측면에서 새로운 모델이 될 수 있다고 얘기했는데, 서사적인 예술로서의 영화라는 점에서도 오히려 지금 시대에서 하나의 대안이 될 수도 있을 것 같고 어떤 하나의 모델링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들어요. 너무 재밌는 <범죄도시> 같은 영화들이 한편에 있고, 다른 쪽에서는 높아진 관객 수준에 맞게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영화를 계속 공급하면 극장에 사람들이 좀 더 많아지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어요.

아까 왜 VX2000이 유행했던 시대에 대해 얘기를 했지요. 그 시대엔 영화가 정말 다양했던 것 같아요. 극단적인 상업주의 영화부터 아트 필름까지 다양하게 스크린에 걸려 있었죠.

그리고 그것들이 동시에 다 주목을 받았잖아요. 저 역시 그때, 고등학생 시절에 극장에 다니면서 영화감독의 꿈을 키웠거든요. 비디오 가게에도 정말 다양한 영화들이 포진되어 있었죠. 지금의 공급망처럼 등급이 나뉘어 있다거나 순위가 매겨져 있지 않았어요. 물론 대여 순위를 붙여놓은 데도 있긴 했지만, 대부분은 나열된 비디오테이프를 한참 살피며 영화를 골랐죠. 요새는 채널은 다양하지만 좀 쏠려 있다고 생각해요.

서사 얘기를 하니까, 아까 연상호 감독님이 장난으로 ‘출판계의 권력자’라고 한 말이 떠오르네요. 배우님이 언급한 이후로 성해나 작가의 <혼모노>가 아주 난립니다. 지금 거의 5주 넘게 1위인 것 같은데요.

(웃음) 남 좋은 일 해가지고. 근데 아마 10주가 넘었을 거예요.

작가님이 연락은 안 했나요?

저희 다음 책이 해나 작가님이랑 하는 책이에요.

아까 잠깐 <얼굴> 서사에 대해 얘기했지요. 연상호 감독과도 잠깐 얘기했는데, 인물들이 자칫 상징성이 너무 두드러져서 딱딱해 보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감독님이랑 이 작품에 대해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확 꽂힌 말이 있어요. “이 영화는 고도 성장을 바라보던 대한민국이 무엇을 버리고 갔는가에 대한 이야기다.” 그 워딩이 너무 좋았거든요. 근데 배우로서의 저는 그 이야기를 듣는다고 해서 그 말을 신경 쓰면서 연기하지 않아요. 그건 메시지일 뿐이고, 저희는 또 저희 나름대로 어떻게 연기해야 영화가 재밌을지를 고민하죠. 제가 맡은 인물이 대한민국을 상징한다고 해서 그걸 염두에 두면 접근 방식이 너무 거대해지거든요.

생각해보니 좀 멍청한 질문이었는데, 너무 멋진 답이네요.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필모그래피를 쭉 보다가 정말 깜짝 놀랐어요. 단독 배우로서 이렇게 기억에 남는 캐릭터가 많은 사람은 잘 못 본 것 같아요. <파수꾼>의 베키,<동주>의 송몽규, <그것만이 내 세상>의 진태, <변산>의 학수, <사바하>의 정나한, <타짜:원아이드잭>의 도일출,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의 유이… 그냥 다 너무 생생한 캐릭터만 있어요.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요?

(웃음) 저는 잘 모르겠어요. 저는 그냥 시키는 대로만 하는 거라서요.

시키는 대로 안 해서 그런 거 아니고요?

다 시키는 대로 한 거예요.

게다가 <언프레임드> 프로젝트의 ‘반장 선거’ 진짜 좋아했어요.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는지 궁금해요.

어우, 감사합니다. 부끄럽습니다. 그런데 제가 뭘 잘한다기보다는 사실 뭘 하면 안 되는지를 몰라서 그런 것 같아요. 출판할 때도, 연출할 때도 옆에서 ‘그렇게 하면 안 돼’라는 말을 참 많이 들었어요. 그런데 뭐 망해도 제가 망하는 거니까 상관없을 것 같아서 한번 해보고 망하면 깨달으려고 그랬죠.

어쩌면 뭔가를 보는 눈이 좋은 게 아닐까요? 필모그래피가 저렇게 화려한 캐릭터로 채워져 있는 이유도, 임성재 배우를 캐스팅에 추천한 이유도 다 보는 눈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성재는 제가 <순정>이라는 영화의 조연이었을 때 조연의 친구로 나오는 3명의 단역 중 한 명이었는데, 다들 역할이 적다 보니 같이 대기하는 시간이 많았어요. 대화를 참 많이 했는데, 그때 그 친구가 참 웃기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그렇게 헤어지고 아무것도 모른 채 지내다가 제가 캐스팅된 이준익 감독님의 <변산>에 딱 하나 비는 역할에 성재를 추천했어요. 이름도 전화번호도 모르는 상태에서 <순정>을 돌려 보면서 찾아가지고 수소문을 했지요. 걔가 이렇게 승승장구하면서 지금 <서초동>까지 올 줄은 몰랐어요.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에서 두 사람이 같이 나온 장면도 명장면이죠. 쇼츠 조회수가 엄청나더군요.

그건 정말 걔가 잘해서 그런 거예요. 그 신을 홍경표 촬영감독님께서 찍으셨는데, 리허설을 보자마자 저한테 “쟤 누구야?”라고 물어보시더라고요. 보는 눈을 얘기하자면, 제가 캐릭터 보는 눈은 좀 있는 것 같아요. 특히 유이가 그랬어요. 트랜스젠더인 그 캐릭터가 정말 많은 거절을 당하고 저한테 온 거거든요. 그런데 저는 이렇게 생각했어요. ‘이거 왜 안 하지? 개꿀인데’라고요.(웃음) 가끔씩 그런 눈들이 좀 발동하나 봐요.

이번 작품을 확신하게 되네요.

잘되면 좋겠죠. 그런데 전 이 영화의 성공은 관객수에 달려 있지 않다고 생각해요. 관객분들이 곱씹어볼 영화라고 여겨준다면, 그걸로 성공인 거죠.

재킷, 톱 모두 보테가 베네타.

재킷, 톱 모두 보테가 베네타.

Credit

  • FEATURE EDITOR 박세회
  • FASHION EDITOR 박민진
  • PHOTOGRAPHER 채대한
  • STYLIST 이혜영
  • HAIR 박은지
  • MAKEUP 이혜진
  • ASSISTANT 이원경
  • ART DESIGNER 주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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