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드코스트 마라톤, 황금의 해변을 달려야 하는 이유
수 많은 러너들이 퍼스널 베스트(PB)를 세우고 간다는 바로 그 마라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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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드코스트 마라톤의 대부분은 해안가의 평지를 달린다.
황금빛 바인딩
나는 내가 뭔가 살아 있는 것을 밟은 줄 알았다. 발길을 내딛자 모래에서 ‘꽥꽥’ 하는 소리가 났다. “골드코스트에 처음 오는 사람들은 그 소리 때문에 엄청 놀라곤 하지. 모래가 워낙 곱고 둥글게 갈려 있다 보니 나는 소리야. 건조한 여름일수록 소리가 더 크게 나.” 호주 골드코스트시뿐만 아니라 브리즈번 권역을 넘어 서호주 전역에서 가장 유명한 바닷가인 ‘서퍼스 파라다이스’의 모래밭에 누워 있던 내 옆의 중년 남자가 말했다. 그 부드러운 모래를 밟는 게 너무도 기분이 좋아서 한 시간쯤을 걸었다. 하얀 모래가 깔린 해변은 발아래로 계속됐고, 눈앞으로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모래사장의 폭도 50~80m 정도로 자로 잰 것처럼 일정했다. 퀸즐랜드주에 속한 인구 64만의 도시 골드코스트의 동쪽에는 이런 고운 모래로 가득 찬 해변이 70km가량 이어진다. 하늘에서 보면 더욱 대단하다. 여행의 셋째 날, 나는 레이디엘리엇 에코 리조트로 가기 위해 골드코스트 공항에서 새벽 6시 45분에 출발하는 에어밴에 몸을 실었다. 비행기의 캡틴인 찰리가 나를 코파일럿 자리에 앉혀줬다. “사진 찍을 때 조종간에 손을 대는 건 괜찮지만, 그걸 잡고 움직이면 우리 모두 죽는 거야”라는 경고와 함께. 레이디엘리엇으로 가는 동안 골드코스트의 경관을 하늘에서 내려다볼 수 있었다. 바다인지 육지인지 알 수 없을 만큼 얕은 바다, 한적하게 떠다니는 프라이빗 보트들, 강에 잠긴 산호의 띠들 그리고 그 바깥쪽으로 대륙을 보호하듯 바인딩된 하얀 모래들. 그건 우주적이라고도 해도 좋을 만한 경관이었다. 뭔가 이상했다. 높은 건물들의 외벽이 그림처럼 너무도 하얗고 매끄러웠다. “그만큼 먼지가 없다는 뜻일 거야.” 찰리가 말했다. 골드코스트에선 대기가 너무도 맑아서 내리는 빗물이 말라도 자국이 잘 생기지 않는다. 실제로 그곳에 머무는 동안 한나절 정도 비가 쏟아졌는데, 길거리에 주차된 차들이 오히려 깨끗해졌다. 그 맑은 공기가 모든 광경을 우주적으로 만든 요인이었다.

하늘에서 내려다본 레이디엘리엇 아일랜드의 전경. 오전에 입도해 오후에 출도하는 정기 항공편이 있다.
그레이트 배리어 리프
청정함을 따지자면 호주 전역에서도 특히 퀸즐랜드주 일대가 그렇다. 세계 최대의 산호 지대인 그레이트 배리어 리프, 세계에서 가장 큰 모래섬인 크가리섬(구: 프레이저섬), 람사르 협약에 따라 보호받는 5개의 습지 등 1000개가 넘는 자연보호구역이 이 거대한 주에 속해 있다. 퀸즐랜드주의 가장 큰 자원은 자연이고, 이 자연을 보러 오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관광업과 서비스업이 이 주의 주된 산업이다. 그 땅을 더럽힐 이유는 전혀 없고 깨끗하게 보존해야 할 동기만 넘친다. 그날 내가 경비행기를 타고 향한 레이디엘리엇 아일랜드 역시 이런 보호구역 가운데 하나다. 이 섬에 대해 언급하기 전에 그레이트 배리어 리프에 대해 잠시 얘기해야 한다. 산호초는 말미잘처럼 생긴 ‘산호 폴립’이라는 작은 생물의 군집이다. 산호의 표면을 수십 배로 확대해 보면 몇 밀리미터의 폴립들이 그 발을 산호에 혹은 바위에 단단하게 고정하고 하늘하늘 손을 흔들고 있다. 산호 폴립이 영양분을 얻는 주된 방법은 해류에 떠다니는 단세포 광합성 미세조류인 주산셀러(algae zooxanthellae)와의 공생이다. 산호 폴립은 이 미세 해조류를 먹고 석회질을 배설해 ‘산호초’를 만들고, 미세조류들은 산호초의 복잡한 구조 안에서 다른 포식자들을 회피하며 번식한다. 좀 더 쉽게 얘기하면, 산호란 결국 산호 폴립이 짓고 산호 폴립과 미세 해조류가 함께 살고 있는 ‘살아 있는 집’이라고 할 수 있겠다. 어떤 폴립 종들은 나뭇가지처럼 생긴 산호를 만들고 어떤 폴립들은 빵처럼 또는 거대한 꽃처럼 생긴 산호를 만드는데, 이런 단일 산호들이 무작위로 연결되어 호주 대륙의 북동쪽 면을 따라 해안에서 160km쯤 떨어진 곳에 거대한 방벽을 만들고 있다. 그것이 바로 ‘그레이트 배리어 리프’고 이는 인간을 포함한 생물이 만든 모든 것 중 지구상에 있는 가장 큰 단일 구조물이다. 호주 동쪽 코르디예라산맥과 평행하게 남북으로 뻗은 이 거대한 방벽의 남쪽 경계면에 있는 섬이 바로 ‘레이디엘리엇 아일랜드’다.
레이디엘리엇 아일랜드
하늘에서 레이디엘리엇섬을 내려다보면 관목으로 가득한 섬 가운데에 폭이 약 80m쯤 되어 보이는 녹지가 섬의 끝에서 끝까지 이어진다. 바리캉으로 남자 중학생의 머리통에 낸 바리캉 고속도로처럼 보이는 이곳이 바로 레이디엘리엇섬의 활주로다. 아스팔트가 아닌 잡초가 깔린 땅에 착륙하는 경험은 원시적인 모험심을 자극한다. 레이디엘리엇 아일랜드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많지 않다. 오전 8시 45분에 도착한 비행기는 오후 2시 30분에 떠나야 하기 때문이다. 한편 그곳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너무도 많다. 3m가 넘는다는 만타가오리도 봐야 하고, 2m가 넘는다는 바다거북도 봐야 하고, 혹등고래가 물을 뿜거나 운이 좋으면 점프를 하는 모습도 봐야 한다. 정부 소유의 섬인 이 섬을 통째로 임대해 작은 스노클링 왕국을 만든 관광사업자 피터 개시와 그의 팀들은우리의 욕망을 정확히 읽고 있다. 가이드(이자 스노클링 초고수인) 아피아(그리스식 이름이라고 한다)는 카페테리아에서 아침 식사를 마친 우리에게 웨트 슈트를 입히더니 투명한 유리 바닥이 설치된 작은 보트로 이끌었다. 배를 타고 돌아다니며 약 30분간 물고기와 가오리들이 유영하는 모습을 유리 바닥을 통해 관찰한 후 입수! 그레이트 배리어 리프의 산호들을 눈앞에서 보는 것은 다시 한번 우주적이다. 산호 방벽에 속한 비교적 얕은 바다지만 20m 정도의 깊은 바다는 짙은 푸른색으로 신비한 빛을 내뿜고, 거대한 산호들은 마치 서로가 다신경으로 이어져 있는 하나의 생명체처럼 바다의 경관을 지배한다. 두 시간여 동안 스노클링을 하며 수중 생물들을 여한 없이, 정말 아무런 여한이 남지 않을 만큼 관찰했다. 스노클링을 마치고 육지로 돌아가는 우리에게 마치 인사라도 하듯 수면 위로 날아올랐던 거대한 만타가오리의 인사만은 잊지 못할 것이다.
황금 해변에서 펼쳐지는 마라톤
그러나 놀랍게도 러너들에게는 이 모든 아름다움들이 부차적인 즐거움이다. 당신이 만약 러너라면, 그리고 최고 기록을 세워보고 싶다면 반드시 한여름의 골드코스트를 찾길 바란다. 7월 첫 주 주말에 열리는 골드코스트 마라톤은 기록을 갱신할 수 있는 완벽한 조건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일단 날씨다. 7월 초, 북반구에서 여름이 한창일 때 남반구의 골드코스트는 겨울이다. 앞서도 얘기했듯이 최고기온이 17℃밖에 되지 않는 호주 겨울의 아침 기온은 이론적으로 상급 마라토너가 최상의 기록을 낼 수 있는 6~8℃다. 게다가 코스 전체가 거의 평지다. 내가 뛰었던 하프 마라톤의 경우 획득 고저도 차가 불과 62m밖에 되지 않았다. 약 21km를 뛰는 데 획득 고도가 62m라는 건 그냥 다 평지라는 얘기다. 또 다른 이점은 시차다. 한국과 경도가 비슷해 시차가 불과 1시간밖에 나지 않는다. 실제로 하프 마라톤에 출전했을 때 정말 기이한 느낌을 받았다. 내 하프 마라톤 예상 기록은2시간 혹은 2시간 10분 안쪽이었다. 예상 평균 페이스는 1km에 5분 40초. 그래서 출발 그룹도 C그룹(2시간~2시간 10분 기록 예상 참가자)을 배정받았다. 그러나 막상 뛰기 시작하자 5분 30초 페이스로 뛰는데 이상하리만큼 심박수가 오르지 않았다. 5km 지점까지 심박수가 138을 넘지 않았다. 달리기를 해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장거리도 보통 160 후반대까지는 심박을 올려야 달릴 수 있다. 그래서 조금씩 빠르게 달리며 심박을 160 정도로 맞췄더니 페이스가 4분 40초까지 올라갔다. “아마 뛰기에 적정한 날씨 덕일 수도 있고, 처음 신었다는 아식스 메타스피드 엣지 도쿄 덕일 수도 있고… 근데 하여튼 그 모든 게 다 맞아서 그런 걸 거예요.” 함께 달린 러닝 커뮤니티 겸 러닝 코칭 플랫폼 런콥의 김형식 부장이 말했다. 최종 기록은 1시간 44분 53초. 1km당 페이스는 4분 57초가 나왔는데, 그건 내 10km 최고 페이스보다 살짝 느린 기록이다. 실제로 이 대회에 참가한 사람의 60% 정도가 자신의 퍼스널 베스트를 세운다는 통계가 있을 정도다.
마라톤과 산호 그 밖의 시간들
마라톤과 그레이트 배리어만이 골드코스트의 매력은 아니다. 인천에서 브리즈번으로 가는 직항 중 가장 합리적인 항공사는 젯스타항공이다. 특히 가격적인 면에서 그렇다. 목요일 저녁 비행기로 출발해 금요일 오전에 브리즈번에 도착한 뒤 곧바로 골드코스트로 향해 골드코스트 마라톤 엑스포에서 배번표를 받으면 하프 마라톤 참가자는 다음 날인 토요일, 풀코스 마라톤 참가자는 그다음 날인 일요일 경기에 참가할 수 있다. 한국으로 돌아가는 가장 가까운 젯스타 비행기가 있는 날은 화요일이다. 토요일 경기에 참가한 나는 화요일까지라면 시간이 넉넉할 줄 알았지만 그렇지 않았다. 일단 경기를 마치고도 전혀 쉬지 않아도 좋을 만큼 컨디션이 좋았다. 아침에 21km를 뛰고 공짜 트램(경기 참가자에겐 트램이 공짜다)을 타고 돌아오니 내가 묵었던 ‘VOCA 골드코스트 by IHG’ 호텔의 조식 뷔페가 아직 펼쳐져 있었다. 아침을 먹고, 긴 목욕을 하고, 같은 호텔에 묵은 한국인 참가자들과 서퍼스 파라다이스 해변에서 점심을 먹으며 맥주를 마시고, 태닝을 하고(겨울에도 태닝이 가능할 정도로 따듯하다) 해수욕을 하며 놀고, 스테이크를 먹었다. 일요일에는 오전 11시까지 열리는 HOTA(Home of the Arts, 이하 ‘호타’)에서 열리는 파머스 앤 아티잔 마켓으로 향했다. 서퍼스 파라다이스에서도 네랑강 서쪽 번달 지역에 있는 골드코스트 지역의 현대미술관인 HOTA에는 이른 아침부터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전날 하프 마라톤에 참가한 이들(메달을 목에 걸고 다니는 경우가 종종 있다)과 호타 시어터에서 열리는 <반지의 제왕> 뮤지컬 공연을 보려는 사람들, 아름다운 인공 구조물과 자연이 어우러진 ‘홈 오브 더 아츠 호수’의 천변에 앉아 휴일을 즐기려는 사람들이 파머스 마켓에서 각자의 먹거리를 쇼핑하고 있었다. 직선거리로 100m는 족히 넘는 호타 파머스 마켓의 입구에서 아이스 롱 블랙을 사 들고 홀짝거리고, 튀르키예 디저트인 바클라바를 먹고, 아트 갤러리에서 때마침 전시 중인 호주 국립박물관의 소장전인 <디 아트 오브 뮤직 포스터스> 전시를 관람했다. 완벽했던 날씨와 더없이 풍요로웠던 그날의 분위기, 마지막 날 딱 하루만 더 골드코스트를 즐기고 싶었던 간절함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는 잘 모르겠다. →
Credit
- PHOTO 호주 퀸즐랜드 주 관광청/ 골드코스트 마라톤
- ART DESIGNER 최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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