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성공을 의심하는 당신에게

당신은 아마도 이 작품이 철저하게 실패하리라 예상했을 것이다.

프로필 by 박세회 2025.07.25

나는 이게 성공할 거란 생각은 손톱만큼도 없었다. 지금 세상을 휩쓸고 있는 <케이팝 데몬 헌터스> 이야기다. 먼저 국적부터 제대로 챙기고 이야기를 하자.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한국 콘텐츠가 아니다. 소니 픽처스 애니메이션이 제작한 할리우드 콘텐츠다. 한국계 스태프가 꽤 참여했다. 감독도 한국계다. 매기 강이다. 프로덕션 디자인에도 한국계 스태프가 많이 참여했다. 성우는 당연히 한국인들이다. 그렇다면 한국 콘텐츠 아니냐고? 독자 여러분에게 질문을 하나 드리겠다. 2023년 개봉해 오스카 후보에 오른 멜로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는 어느 나라 영화인가? 2020년 개봉해 배우 윤여정에게 오스카 여우조연상을 안긴 <미나리>는 어느 나라 영화인가? 답변은 간단하다. 미국 영화다.

얼마 전 <패스트 라이브즈>는 뉴욕 타임스 선정 21세기 최고의 영화 리스트에 올랐다. 86위다. <반지의 제왕>보다 순위가 높다. 미국인들이 보기엔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한국인 중에서 <패스트 라이브즈>를 시대적인 걸작의 반열에 놓는 사람을 아직 단 한 명도 만나지 못했다. 앞으로도 만나기는 힘들 것이다. 한국인의 눈에 <패스트 라이브즈>는 딱히 새로울 게 없다. 한국인들은 농담으로나 하는 ‘전생’ 이야기를 너무나도 새로운 개념인 것처럼 시침 뚝 떼고 이야기를 풀어낸다. 미국인들은 마지막 장면에서 그렇게 울었다던데, 나는 ‘뭐 이런 이야기를 하려고 이렇게까지 폼을 잡나’ 싶었다. <미나리>의 정서도 사실 한국인에게는 조금 낯선 부분들이 있다. <미나리>는 한국 영화보다는 요즘 가장 힙한 미국 영화사 A24의 전형적인 예술영화 형식에 더 가깝다.

한국인과 한국계는 다르다. <패스트 라이브즈> 감독 셀린 송은 열두 살에 캐나다로 이민을 갔다. <미나리> 감독 정이삭은 두 살에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그들은 한국인의 신체적 DNA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예술적 DNA는 어디까지나 북미의 것이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매기 강 감독은 ‘강영은’으로 한국에서 태어나 다섯 살에 캐나다로 이민을 갔다. 물론 그들은 부모의 고향인 한국에 대해 끊임없이 공부를 해왔을 것이다. 공부로 만들 수 있는 것과 경험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은 다르다. 우리는 북미 케이팝 팬들이 케이팝을 얼마나 뒤틀린 형태로 소비하고 있는지 이미 소셜미디어를 통해 충분히 알고 있다. 요즘 나는 쇼츠에 등장하는 북미 케이팝 팬들이 “Oppa!”라고 말하는 순간 그냥 좀 살기가 싫어진다. 한국계가 만든 케이팝 애니메이션이라는 것도 거기서 더 나아가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니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실패했어야 옳다. 실패해야 마땅했다.

게다가 소니 픽처스 애니메이션 부서는 할리우드에서 애니메이션을 가장 못 만드는 회사다. 디즈니 픽사, 드림웍스, 블루스카이 스튜디오와는 달리 딱히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만한 IP를 창조한 적이 없다. 유명한 작품은 <하늘에서 음식이 떨어진다면>과 <서프업>이다. 무슨 영화인지 기억나시는 분? 그나마 최근 소니 픽처스 애니메이션은 소니가 꿋꿋하게 저작권을 내놓지 않고 있는 ‘스파이더맨’을 이용한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 시리즈로 홈런을 날리긴 했다. 그거야 스파이더맨이라는 IP 자체가 워낙 훌륭해서다. 소니는 심지어 <케이팝 데몬 헌터스>를 극장에 걸 생각도 없었다. 극장에 걸어서 수익이 날 콘텐츠가 아니라고 확신한 것이다. 배급을 맡은 넷플릭스도 딱히 이게 성공하리란 생각은 없었던 것 같다. 홍보도 하지 않았다. <오징어 게임 시즌 3>에 모든 홍보비를 올인했다.

소니 픽처스의 예상은 틀렸다. 넷플릭스의 예상도 틀렸다. 내 예상도 틀렸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2025년을 상징하는 콘텐츠가 됐다. OST는 스포티파이에서 진짜 케이팝 그룹인 BTS와 블랙핑크의 기록도 넘어섰다. 소니는 당연히 속편 제작에 들어갔다. 넷플릭스는 2편을 1편보다 훨씬 비싼 가격에 구입해야만 할 것이다. 아니, 이 정도면 넷플릭스로만 공개하는 게 아니라 극장 개봉도 노려볼 만하다. 블랙핑크를 모티브로 삼은 그룹 ‘헌터릭스’와 온갖 남돌 클리셰를 모조리 집어넣은 그룹 ‘사자보이즈’는 한국 케이팝 산업이 그렇게 기를 쓰고 애썼으나 여전히 완벽한 성공에는 다다르지 못한 ‘버추얼 그룹’을 한순간에 완성해버렸다. 사실 나는 이 글을 쓰며 사자보이즈의 ‘소다 팝’을 흥얼거리고 있다. 나는 뉴진스 이후 어떤 아이돌 그룹 노래도 흥얼거릴 정도로 외워본 적이 없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성공 비결이 뭐냐고? 많은 매체가 여러 성공 비결을 제시하는 글을 거의 매일 내놓고 있다. 부질없는 짓이다. 성공 비결은 하나다. 잘 만들었기 때문이다. 온갖 의심을 다 끌어안고 보기 시작한 나는 한 30분 만에 굴복했다. 나는 쉽게 굴복하는 사람이 아니다. 하지만 쉽게 굴복했다. 한국에 대해서 완벽하게 알지 못할 한국계 캐나다인이 연출하고 소니 픽처스 애니메이션이 제작한, 한국을 배경으로 한 케이팝 애니메이션이 응당 가졌어야 할 민망함이 없었다. 주인공 남녀 캐릭터가 만나는 순간 멜로망스 노래가 나오자 나는 무릎을 꿇고 싶을 지경이었다. 물론 여기에는 일종의 대상화가 존재한다. 미국인의 시선으로 본 한국 문화의 대상화다. 대상화가 나쁜 것인가? 그렇지 않다. 이건 애니메이션이다. 애니메이션은 현실을 단순하게 ‘스타일라이즈’하는 매체다. 모든 것은 조금 더 과장되고 조금 더 대상화된다. 그래야 애니메이션을 만들 수 있다. 등산복 입은 아줌마 캐릭터들이 너무 우스꽝스럽지 않냐고? 여러분. 한국인인 우리도 등산복 입은 아줌마는 좀 우습다고 생각한다. 톱 아이돌이 무대 직전 김밥과 컵라면을 먹는 건 너무 어색하지 않냐고? 그들이 뭘 먹는지 우리가 어찌 알겠는가. 김밥과 컵라면이 전 세계 케이팝 팬들이 생각하는 가장 한국적인 음식이라면, 애니메이션 아이돌 캐릭터들이 그걸 좀 먹어서 나쁠 것도 없다.

자, 이제부터 나는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한국 애니메이션이 아니기 때문에 성공했다고 주장할 생각이다. 이 애니메이션은 한국인의 눈으로 만든 것이 아니다. 한국인들의 의견을 참고한 한국계 미국인 감독과 미국 스태프들이 만든 할리우드 애니메이션이다. 그들 눈에 멋있어 보이는 것들을 그들의 방식으로 캐릭터화함으로써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전 세계적인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 우리는 외국인 관광객이 찍은 서울 사진을 보며 가끔 놀란다. 우리에게는 지나치게 익숙해 딱히 아름다워 보이지 않는 것들이 아름답게 담겨 있기 때문이다. 한국인인 우리가 흉내 내 찍어봐야 그 정서는 나오질 않는다. <블랙 팬서>에 등장하는 자갈치 시장을 우리가 무슨 수로 따라 하겠는가.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서울은 서울이기도 하고 서울이 아니기도 하다. 어차피 케이팝이 그런 장르다. 2025년의 케이팝은 한국 노래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가장 한국적인 것은 이제 존재하지도 않는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가장 중요한 캐릭터를 한번 떠올려보시라. 호랑이 말이다. 호랑이라고는 하지만 어딜 봐도 전설 속 해태다. 제작진은 한국의 민화를 바탕으로 이 캐릭터를 창조했을 것이다. 모두가 호랑이 캐릭터 상품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캐릭터 인기 덕분에 국립중앙박물관 해태 굿즈가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는 소식도 있다. 비슷하게 생긴 거라도 사려는 사람들 덕분이다. 할리우드가, 할리우드 애니메이션이 제일 잘하는 게 바로 이거다. 매력적인 캐릭터를 만드는 것이다.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영원히 사람들이 지갑을 열게 할 캐릭터를 만드는 것이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 호랑이 캐릭터는 한국적이지만 결코 한국인이 만들 수 없었을 캐릭터다. 가장 한국적인 소재를 가장 할리우드적인 방식으로 창조하자 영원불멸의 IP가 탄생했다.

사실 우리는 근심해야 옳다. 한국은 케이컬처의 폭발 지점에 이르러서도 여전히 영원불멸의 IP를 만드는 데는 실패했다. 한국 영화와 드라마는 매력적이지만 수명이 짧다. <오징어 게임>이 예외인 것은 창의적인 프로덕션 디자인과 ‘사회적 낙오자들이 426억원의 돈을 차지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서바이벌 게임을 벌인다’는 ‘하이 콘셉트’ 덕분이다. 넷플릭스가 데이비드 핀처 감독을 내세워 미국판을 제작하기로 결정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애석하게도 다른 콘텐츠들은 지속적인 IP로서의 생명력이 부족하다. 한동안 한국 문화 콘텐츠에 밀려 있던 일본 콘텐츠는 사정이 훨씬 낫다. 그들은 애니메이션과 게임을 중심으로 거의 지난 100년간 쌓아둔, 세계 어딜 가도 알아볼 법한 IP들을 갖고 있다. 고지라는 계속 포효할 것이다. <원피스>는 계속 항해할 것이다. 넷플릭스는 <유유백서> 실사 시리즈도 제작 중이다. <나루토>와 <기동전사 건담> 역시 할리우드가 실사화를 추진하고 있다. 한국은 없다. 그건 미래가 없다는 소리다. 지금 이 시점에 누군가는 <아기공룡 둘리>의 새로운 애니메이션 시리즈라도 추진해야 마땅하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케이컬처가 낳은 최고의 IP지만 한국의 재산은 아니다. 자산은 아니다. 유산은 아니다. 그렇다고 너무 낙담할 필요는 없다. 할리우드가 우리에게 최고의 샘플을 던졌다. 케이를 어떤 방식으로 세계에 팔아먹을 것인지 우리보다 더 훌륭하게 제시한 샘플이다. 이제 우리는 역으로 흉내 내면 된다. AI 시대이니 애니메이션 제작비는 점점 줄어들 것이다. 지나치게 많은 출연료를 요구하는 배우도 필요 없다. CJ와 롯데와 쇼박스는 애니메이션 부서를 어서 출범시켜야 한다. SM, JYP, YG랑 손을 잡으시라. 농담이 아니다. 이건 정말 진심으로 고하는 제언이다. 내일 시작해도 늦다.


김도훈은 글을 쓰는 사람이다. <씨네21> <GEEK>과 <허프포스트>에서 일했고 에세이 <우리 이제 낭만을 이야기합시다>를 썼다.

Credit

  • EDITOR 박세회
  • WRITER 김도훈
  • ILLUSTRATOR MYCDAYS
  • ART DESIGNER 주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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