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돔 페리뇽이 말하는 창작의 영원한 여정

빈티지만 생산하는 단 하나의 샴페인 하우스 돔 페리뇽이 7명의 크리에이터를 모아 전개하는 새로운 창작의 여정에 대하여.

프로필 by 박세회 2025.07.02
테이트 모던의 ‘더 탱크’ 전시홀에서 열린 돔 페리뇽 레벨라시옹 2025 아티스틱 쇼케이스의 현장.

테이트 모던의 ‘더 탱크’ 전시홀에서 열린 돔 페리뇽 레벨라시옹 2025 아티스틱 쇼케이스의 현장.

틸다가 샹파뉴에서 운 까닭은?

지난 4월의 어느 날 틸다 스윈턴은 남편과 함께 샹파뉴를 찾아 ‘돔 페리뇽 빈티지 2008’과 ‘돔 페리뇽 2008 플레니튜드 2’를 시음했다. 돔 페리뇽에서 샴페인 창조의 모든 것을 책임지는 ‘셰프 드 카브’(혹은 셀러마스터) 뱅상 샤프롱은 그날을 회상하며 이렇게 말했다. “틸다와 그녀의 남편은 눈물을 흘렸어요. 그 시간이 예술적으로 그리고 감정적으로 깊이 와닿는 경험이었기 때문이죠.” 이 얘기를 들은 당신은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샴페인을 마시고 운다고? 조금 과장된 감정은 아닐까? 그러나 단언컨대, 아니다. 누군가는 울 수 있고, 나도 몇 번이나 격한 감정에 싸인 적이 있다. 그러나 그건 샴페인이, 더 정확하게는 돔 페리뇽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틸다가 이해하기에 느낄 수 있는 감정이기도 하다.

돔 페리뇽은 매해 메종이 운영하는 900헥타르, 여의도 면적의 약 3배에 달하는 수백 개의 밭에서 수확한 포도를 각각의 품종과 구획으로 나눠 양조해 스틸 와인을 만든다. 같은 지역이라도 밭에 따라 품종에 따라, 또 같은 밭이라도 플롯의 경사면인지 평지인지에 따라 그 맛과 향이 완전히 다르기 때문. 이렇게 분류한 ‘그해’의 스틸 와인들만을 섞어 먼 미래에 빈티지 샴페인으로 완성될 일종의 ‘블렌디드 와인’, 즉 ‘아상블라주’(assemblage)를 완성한다. 그러나 샴페인의 매력 포인트인 탄산과 이스트의 풍미를 더하기 위해서는 또 다른 과정이 필요하다. 아상블라주에 효모와 설탕이 섞인 ‘리큐르 드 티라주’를 첨가한 뒤 병입하는 2차 발효 과정이 그것이다. 티라주를 거치면 샴페인의 병 안에서 효모가 당을 분해하며 알코올과 이산화탄소를 생성한다. 2차 발효는 크라운 캡으로 막아둔 병 안에서 일어나기 때문에 달아날 곳이 없는 이산화탄소가 와인에 녹아들며 샴페인의 탄산을 만들고, 병 안의 당분을 다 먹은 효모는 수많은 화학작용을 일으킨 뒤 자가 분해되며 와인에 녹아 샴페인이 그 특유의 브리오슈와 빵 반죽에서 나는 이스트의 향을 품게 한다. 돔 페리뇽 빈티지는 적게는 7년 길게는 10년을 숙성한다. 와인과 효모가 가진 포텐셜을 최대한으로 끌어내기 위해서다. 수십 차례의 테이스팅을 거쳐 와인의 숙성이 첫 번째 절정기에 다다르면 ‘디고르주망’으로 효모 찌거기를 빼낸 뒤 출시한다. 돔 페리뇽 빈티지 2008은 이런 복잡한 과정을 거쳐 2019년에야 출시됐다.

샴페인에 학위를 수여할 수 있다면 돔 페리뇽의 빈티지는 ‘포닥’, 즉 박사후 과정 정도에 있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그런데 ‘돔 페리뇽 플레니튜드 2’는 이보다 훨씬 오랜 시간을 거친다. 돔 페리뇽은 빈티지를 출시할 때, 모든 병을 다 출시하지 않고 그 일부를 남긴다. 와인이 더 긴 시간을 숙성하며 두 번째 절정기에 달하는 때를 기다리기 위해서다. 와인과 효모가 가진 화학작용의 나선이 두 번째 절정기에 달하는 순간, 2008년 빈티지의 경우 첫 번째 절정기에서도 6년이나 더 지난 뒤인 2025년, 올해의 레벨라시옹에서 ‘돔 페리뇽 2008 플레니튜드 2’가 출시됐다. 그러니 두 와인은 같은 아상블라주로 만든 전혀 다른 두 개의 와인인 셈이다. 2025년의 시점에서 볼 때 돔 페리뇽 빈티지 2008은 효모가 들어 있는 상태로 약 10년을 숙성한 뒤 효모를 제거하고 6년을 병에서 에이징한 와인이고, 돔 페리뇽 2008 플레니튜드 2는 17년 동안 효모가 들어 있는 상태로 숙성한 와인이다. 아주 거칠게 비유하자면, 같은 유전자를 지닌 일란성쌍둥이 둘이 서로 다른 집에 입양되어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란 뒤 만난 상황과 비슷하다. “마치 하나의 와인이 두 개의 삶을 산 것과도 같아요.” 돔 페리뇽의 셰프드 카브 뱅상 샤프롱의 말이다.

그런데 정말 그렇게 큰 차이가 있을까? 앞서 얘기했던 돔 페리뇽 빈티지 2008은 2019년에 출시된 뒤 틸다 스윈턴이 시음한 2025년까지 약 6년 동안 이 ‘에이징’(aging) 과정을 거쳤다. 이 과정은 생명체로 따지면 노화 과정과도 비슷한데, 곱게 늙은 사람은 중년에도 여전히 아름답듯이 적절한 습도와 온도에서 잘 관리한 샴페인은 세월을 끌어안은 채 색다른 매력을 뽐낸다. 에이징을 거치면서 상큼한 과실의 향들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아주 천천히 조금씩 사라지지만, 다른 여러 화학적 요소들이 산화되며 개성 넘치는 멋진 풍미를 만들어낸다. ‘매추레이션’은 효모(yeast)와 와인 안의 여러 화합물질들이 활발하게 상호 작용하며 역동적으로 발전하는 과정이다. 효모를 병에서 빼내지 않고 계속 숙성한 ‘돔 페리뇽 2008 플레니튜드 2’의 경우는 생기마저 그대로 머금은 냉동인간에 가깝다. 마치 자외선과 직사광선에 단 한 번도 노출되지 않고 도서관에서 책을 읽으며 깊어진 사람처럼 활기찬 생명력으로 가득하면서도, 효모의 자가분해에서 유래한 매우 복합적인 풍미를 지닌다. 세상의 모든 예술 작품 중 가장 직접적으로 인간의 감각과 직관에 호소하는 형태인 와인을 감상하는 데는 설득의 과정이 그리 필요하지 않다. 마시는 순간 우리는 하나의 와인이 두 개의 인생을 살며 빚어낸 서로 다른 서사를 즉각적으로 이해할 수 있고, 이는 꽤나 지적이고 감각적인 체험이라 마치 ‘에피파니’를 겪은 듯한 충격에 빠진다. 틸다가 운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돔 페리뇽의 새로운 크리에이티브 챕터 ‘창작은 끝없는 여정(Creation is an Eternal Journey)’을 함께하는 7명 중 하나인 틸다 스윈턴의 모습. ©Collier Schorr

돔 페리뇽의 새로운 크리에이티브 챕터 ‘창작은 끝없는 여정(Creation is an Eternal Journey)’을 함께하는 7명 중 하나인 틸다 스윈턴의 모습. ©Collier Schorr

새로운 창작의 챕터를 열다

그런데 이쯤에서 새로운 의문이 들 법도 하다. 틸다 스윈턴은 왜 샹파뉴를 찾아 돔 페리뇽을 시음했을까? 그걸 설명하려면 지난 5월의 어느 밤에 대해 설명해야 한다. 우리는 그날 테이트 모던의 ‘더 탱크’ 전시홀에서 DJ 피 위(DJ Pee .Wee a.k.a 앤더슨 팩 Anderson .Paak)의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틸다 스윈턴을 감상하고 있었다. 틸다가 샹파뉴에서 먼저 테이스팅 했던 ‘돔 페리뇽 2008 플레니튜드 2’를 대중에 공개하면서, 돔 페리뇽이 새로운 크리에이티브 챕터(New Creative Chapter) 캠페인의 시작을 알리는 대대적인 파티를 열었기 때문이다. 돔 페리뇽은 매년 ‘돔 페리뇽 소사이어티’에 속한 셰프와 소믈리에, 여러 나라의 아티스트와 크리에이터 그리고 저널리스트들을 전 세계에서 한자리에 불러 모아 그해에 출시하는 샴페인을 처음으로 테이스팅하는 행사 ‘레벨라시옹’(Révélations)을 대대적으로 개최한다.

2023년에는 8세기 중반 간무 천황이 교토의 건립을 명했다고 전해지는 교토의 사원 쇼군즈카 세이류덴에서 이 행사가 열렸고, 2024년에는 세계적인 건축가이자 현대 카탈루냐 건축의 심장인 리카르도 보필의 숨결이 깃든 바르셀로나 ‘라 파브리카’에서 열렸다. 그러나 올해 런던과 영국을 넘어 세계 현대미술의 심장인 테이트 모던으로 우리를 불러 모은 ‘돔 페리뇽 2008 플레니튜드 2’의 레벨라시옹은 다른 해와는 무척 달랐다. 단순히 새로운 빈티지의 와인을 공개하는 자리가 아니라 창작자들과의 교류를 전방위적으로 확대하는 새로운 크리에이티브의 챕터 ‘창작은 끝없는 여정(Creation is an Eternal Journey)’ 캠페인의 시작을 전시와 파티 형태로 알리는 자리였기 때문이다. 마치 아서왕과 원탁의 기사처럼 돔 페리뇽의 창작 여정에 초대된 아티스트는 모두 7명이었다. 미국의 배우이자 작가이며 감독인 조에 크라비츠(Zoë Kravitz), 북아일랜드의 미쉐린 3스타 셰프 클레어 스미스(Clare Smyth), 영국을 대표하는 배우이자 아티스트 틸다 스윈턴(Tilda Swinton), 스웨덴의 무용수이자 안무가인 알렉산더 에크만(Alexander Ekman), 일본의 현대미술가 무라카미 다카시(Murakami Takashi), 미국의 아티스트이자 뮤직 프로듀서인 앤더슨 팩(Anderson .Paak), 미국의 뮤지션이자 배우이며 라디오 진행자인 이기 팝(Iggy Pop)이 그 엄청난 이름들이다.

이들이 주인공이 된 ‘창작은 끝없는 여정’ 캠페인을 알리기 위한 전시는 크게 3개의 섹션으로 나뉘었는데, ‘과거’ 섹션에서는 돔 페리뇽과 문화 아이콘들 간의 오랜 인연을 조명했다. 예를 들면 메릴린 먼로가 당대 최고의 사진가 버트 스턴과 촬영하던 중 돔 페리뇽을 마신 이야기, 로버트 메이플소프가 폴라로이드로 기록한 돔 페리뇽 빈티지 1968의 사진 등이 전시되어 있다. ‘현재’에서는 이번 캠페인에 참여한 7인의 크리에이터들이 펼쳐 보이는 창조의 세계를 직접 체험할 수 있었다. 피사체의 내면을 깊이 탐구해 이미지를 완성해내는 접근 방식으로 유명한 사진작가 콜리어 쇼어가 촬영한 7명의 크리에이터와 셰프 드 카브 뱅상 샤프롱의 ‘창작의 초상’이 전시됐다. 또한 작가이자 감독인 카밀 서머스-발리(Camille Summers-Valli)가 던진 “창작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7명의 크리에이터들의 답변이 하나의 필름으로 완성되어 눈길을 끌었다. ‘미래’ 공간에선 셀러 마스터 뱅상 샤프롱(Vincent Chaperon)이 주도한 창작 여정, ‘프레 아상블라주(Pré-Assemblages) 2024’의 세계를 엿볼 수 있었다. 일반적으로 샴페인은 피노 누아, 샤르도네, 피노 뫼니에, 3개의 포도 품종을 블렌딩하지만, 돔 페리뇽은 피노 누아와 샤르도네만을 섞는 것이 그 특징이다. 뱅상 샤프롱은 2024년 메종의 주요 밭들에서 감각한 피노 누아와 샤르도네의 특징을 그림과 글로 표현했고, 이를 전시했다. 뱅상 샤프롱은 전시 설명에서 “2024년은 나를 공중의 외줄에 올려두었다. 내가 살려면 앞으로 나아가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었다…(중략)…나는 마치 마법에 걸린 것처럼 잃어버린 시간으로 영원히 사라진 것의 본질을 다시 발견했다”라며 “아상블라주 작업을 하면서 언어를 그림으로 보충하는 게 필수라고 생각했다”라고 말했다. 말로는 표현하기 힘든 감각의 세계를 다루는 셰프 드 카브의 창작의 고통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전시를 감상하면서 자연스럽게 이어진 파티의 열기 속에 흥이 고조되었고, 적절한 타이밍에 클레어 스미스의 완벽한 음식이 서브됐다. “클레어 스미스는 이날을 위해 완전히 새로운 레시피를 창조했어요. ‘과거’ ‘현재’ ‘미래’라는 전시 콘셉트에 맞춰 고전적인 재료들을 재창조한 가리비 요리나 소고기 요리를 ‘과거’의 메뉴로 냈고, 봄 제철 채소로 진화와 철학적 성찰을 담아낸 ‘현재’의 메뉴 그리고 미래 식량으로 각광받는 버섯을 주제로 한 ‘미래’ 메뉴를 선보였어요.” 뱅상 샤프롱이 말했다.


돔 페리뇽의 셰프 드 카브 뱅상 샤프롱. ©Collier Schorr

돔 페리뇽의 셰프 드 카브 뱅상 샤프롱. ©Collier Schorr

진심의 순간

본격적인 디너 파티는 틸다 스윈턴의 자작시 낭송으로 시작됐다. 그녀는 “혼돈과 친구가 되어라. 모든 것이 흔들리도록. 인간의 허약함을 용서하고, 다시 주어지는 기회를 옹호하라”는 내용의 시를 읽었고, 잠시 후 DJ 피 위(a.k.a. 앤더슨 팩)가 등장해 음악을 틀기 시작하자, 실제로 파란색 드레스를 입은 채 신나게 춤을 추며 혼돈과 친구가 되기 시작했다. 앤더슨 팩은 두 시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자신의 히트송(특히 ‘Leave the Door Open’은 엄청난 환호를 받았다)과 다른 뮤지션들의 파티 넘버를 쉴 새 없이 플레이했고, 스웨덴의 안무가 알렉산더 에크먼은 아예 디제잉 부스 앞을 점령한 채 그날 처음 만난 듯한 파티 참석자들과 함께 커플 댄스를 추며 스테이지를 휩쓸었다. 솔직히 패션 매거진 에디터로서 수많은 파티에 가봤지만, 셀럽들이 이렇게까지 진심으로 노는 광경을 본 건 처음이었다. “우리는 이번 캠페인에서 단순히 ‘얼굴’ 역할을 하는 사람을 찾지 않았어요. 돔 페리뇽과 연결고리가 있는 사람, 브랜드를 이해하는 사람, 자신의 예술 속에서 진실한 것을 표현하는 사람 그리고 우리가 직접 만나고 싶은 사람을 선정했죠.” 돔 페리뇽의 매니징 디렉터 자크 지라코가 말했다. 다음 날 만난 뱅상(뱅상 역시 파티에서 멋지게 춤을 추며 즐겼다)은 전날 있었던 전시와 파티를 회상하며 이렇게 말했다. “클레어 스미스의 음식, 앤더슨 팩의 음악, 틸다 스윈턴이 우리와 함께 춤을 추며 즐겼던 파티의 시간은 그동안 자크와 그의 팀이 함께 구축해온 돔 페리뇽 커뮤니티 구축 작업의 결과물이었다고 생각해요. 이런 연결은 단순한 이벤트가 아니라, 앞으로도 더 많은 창조적 결실을 낳을 수 있는 토대가 될 거라고 믿어요. 더 진정성 있고, 더 깊이 있는 표현이 가능해질 겁니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 나자 돔 페리뇽이 꿈꾸고 있는 돔 페리뇽 소사이어티의 미래가 어떤 모습인지 더욱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한편, 마지막으로 ‘돔 페리뇽 빈티지 2008’이 역사적인 빈티지라는 점을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겠다. 돔 페리뇽에서 1990년부터 2018년까지 28년 동안 레거시를 만들어오던 전 셰프 드 카브 리샤 지오프로이 (Richard Geoffroy)가 현재의 셰프 드 카브 뱅상 샤프롱에게 자리를 넘겨주던 바로 그해에 탄생한 빈티지가 ‘돔 페리뇽 빈티지 2008’이다. 2018년 6월에 셰프 드 카브의 승계를 기념하는 ‘돔 페리뇽 2008 셰프 드 카브 레거시 에디션’을 먼저 발표했고, 이어 2019년 1월에 ‘돔 페리뇽 빈티지 2008’을 출시했다. 이 빈티지는 돔 페리뇽 빈티지의 최상급 중 하나로 꼽히며, 특히 ‘돔 페리뇽 2008 셰프 드 카브 레거시 에디션’은 그해의 와인 5위에 올랐을 정도로 압도적인 퍼포먼스를 자랑했다. 뱅상 샤프롱은 취재진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제게 가장 큰 도전은 전임자의 바통을 넘겨받는 것이었어요. 제겐 두 가지 중요한 역할이 있어요. 하나는 과거의 유산과 비전을 완전히 이해하는 것, 다른 하나는 현재 팀과 함께 새로운 와인을 창조하는 것이죠. 그래서 저희는 매일같이 작업하고, 회의하고, 와인을 만들면서 돔 페리뇽의 시작과 그 본질을 끊임없이 되새깁니다.” 그의 말을 들으니 ‘창작은 끝없는 여정’이라는 캠페인의 주제 의식이 이 유산의 지속적인 진화를 응원하는 메시지로 다가왔다. 이번에 선정된 7명의 크리에이터들은 아마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응원단이 될 것이다.





DJ 피 위(a.k.a 앤더슨 팩)가 돔 페리뇽 레벨라시옹 2025의 애프터 파티에서 음악을 틀고 있다. 그날의 엄청난 열기가 사진 안에 다 담기지 못한 것이 아쉽다.

DJ 피 위(a.k.a 앤더슨 팩)가 돔 페리뇽 레벨라시옹 2025의 애프터 파티에서 음악을 틀고 있다. 그날의 엄청난 열기가 사진 안에 다 담기지 못한 것이 아쉽다.

Best out of Oxnard

파티를 시작하기 전 돔 페리뇽과 함께하는 7명의 크리에이터 중 한 명인 앤더슨 팩을 만났다. 앤더슨 팩은 자신의 테루아인 옥스나드에 대해 얘기했다.


콜리어 쇼어의 사진에서 정말 멋지게 나왔어요. 당신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활달하고 개구진 모습 뒤에 이런 우아하고 섬세한 면모가 감춰져 있었군요.

사진이 정말 우아하고, 부드럽고, 성숙한 느낌으로 나왔어요. 사람들이 그 사진에서 저를 그냥 ‘앤더슨’ 그 자체로 봐줄 수 있다는 점이 정말 멋진 것 같아요. 제가 워낙 평소엔 선글라스, 모자, 가발 등 여러 가지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잖아요. 그런데 이번에는 그런 걸 다 벗어버리고, 진짜 제 모습을 보여줬어요.

7명의 크리에이터가 만들어내는 독특한 하모니가 있어요. 정말 복합적이고 강렬하지요.

돔 페리뇽이 이렇게 재능 있는 크리에이터들을 모았다는 점이 멋지고, 그들과 함께할 수 있어 자랑스러워요.

복합미의 요체는 결국 디테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앤더슨 팩은 디테일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뮤지션으로 유명하죠.

디테일은 결국 예술을 사랑하고, 그 역사를 최대한 많이 배우는 데서 시작되는 것 같아요. 저는 음악적으로 풍부한 환경에서 자랐어요. 어머니 덕분에 소울, 재즈, 힙합, 펑크, 록 등 라이브 악기가 생동감 넘치게 담긴 음악을 다양하게 접했죠. 그때 들은 음악들이 제 앨범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죠. 저는 다양한 장르를 탐험하고, 여러 뮤지션, 연주자, 프로듀서와 협업하는 걸 좋아해요. 팬들과 함께 여행하는 듯한 느낌을 주고 싶어요. 팬들이 지루해하지 않고, ‘이번엔 또 어떤 새로운 시도를 할까?’ 기대하게 하고 싶거든요. 스튜디오도 바꿔보고, 녹음 방식도 달리하며, 새로운 곳에서 녹음하거나 다양한 음식, 대화, 사람들을 경험하면서 영감을 얻어요. 사실 지금까지 진행한 앨범과 프로젝트의 수를 셀 수 없을 정도예요. ‘앤더슨 팩’뿐 아니라 실크 소닉, 노워리스(NxWorries), DJ 피 위 그리고 제 밴드 프리 내셔널스(Free Nationals)까지 정말 많은 걸 했어요. 이 모든 경험이 제게 계속 자극을 주는데, 때론 일부러 불편한 상황에 스스로를 밀어넣기도 해요. 그런 경험들이 앨범 작업에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와인을 얘기할 때 우리는 구조감이라는 표현을 종종 쓰죠. 음악으로 따지면 리듬과 템포가 구조라고나 할까요? 구조는 음악에서 얼마나 중요한가요?

기본이 부족하면 음악도 깊이가 없고 흔들려요. 기반이 튼튼할수록 작곡가, 아티스트로서도 더 강해지는 거고요. 이건 연습, 배움, 그리고 인생의 경험을 통해서만 쌓을 수 있어요. 시간이 걸리죠. 제 음악의 기본은 드럼과 리듬에서 시작돼요. 아시다시피 드럼은 제 첫 악기거든요. 곡을 쓸 때도 드러머의 시각으로 리듬부터 생각하고, 거기서 곡의 기초와 뼈대를 세워요. 드러머는 보통 무대 전면에 나서지 않으니까 오히려 자유로워요. 그래서 위트 있고, 유쾌하며, 남들과 다르게 표현할 수 있죠. 이런 요소들이 제 음악의 구조와 기반이 됩니다.

와인을 평가할 때 보통은 풍미의 강도, 복합성, 밸런스, 여운 등 네 가지 요소를 봅니다. 앤더슨이 음악을 평가하는 요소를 꼽는다면요?

제겐 비트, 리듬, 그루브가 첫 번째 요소예요. 심지어 드럼이 없는 곡이라도, 제가 하고자 하는 음악에는 그루브나 리듬이 반드시 필요하죠. 두 번째는 메시지예요. 우리가 전하고 싶은 이야기, 사람들이 느끼길 바라는 감정, 그리고 궁극적으로 하고자 하는 말이죠. ‘Leave the Door Open’과 같은 곡이든, 경찰 폭력에 관한 곡이든, (연인들 간의) 관계에 관한 이야기든, 제가 송라이터로서 하는 모든 작업은 그루브 위에서 메시지를 뒷받침해야 해요. 그리고 전체적인 사운드 퀄리티, 즉 믹스가 정말 중요하죠. 아무리 (좋은 요소가 많이 담긴) 좋은 곡이라도 볼륨이 너무 작거나, 너무 크거나, 소리가 찌그러지거나, 보컬이 묻히거나, 드럼만 튀거나, 베이스가 안 들리면 안 되거든요. 그게 디테일이죠. 음악을 잘 모르는 사람도 그런 디테일을 다 느껴요. 가끔은 곡을 비주얼적인 요소로 생각하기도 해요. 사람들이 어떻게 곡을 받아들이고, 경험하길 바라는지를 고려할 때 비주얼도 중요하죠. 이 곡에 어울리는 춤은 뭘까, 어떤 옷을 입어야 할까, 즉 이 노래의 ‘스타일’은 뭘지를 생각해요.

정말 멋진 답변이네요. 앤더슨 팩이라는 천재 뮤지션의 테루아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나요?

테루아요? 전 바닷가 근처 작은 동네에서 태어나고 자랐어요. 대도시와는 좀 떨어진 곳이었죠. 전 야망이 컸어요. 어려서는 늘 뉴욕이나 엘에이 혹은 서울 같은 큰 도시에서 태어났어야 했다고 생각했고, 늘 ‘여길 벗어나 좀 더 화려한 세상으로 가야겠다’는 꿈을 꿨죠. 그러나 엘에이에 처음 갔을 때 주변 사람 모두 너무 잘하고, 재능이 넘치고, 제가 배울 게 많다는 걸 느꼈어요.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들과는 다른 저만의 시각이 저를 특별하게 만든다는 걸 알게 됐어요. 다만 그건 단순하게 ‘어디서 왔는지’의 문제가 아녜요. 그보다 중요한 건 얼마나 진솔한 자세로 창작하느냐죠. 그게 당신의 테루아예요. 의도가 순수해야 해요. 진정성을 잃거나 돈을 보고 뭔가를 만들면 안 되죠. 힘들거나, 불안하거나, 질투, 고통, 후회, 상처로 괴로워할 때도, 아티스트로서 그 감정들을 음악에 솔직하게 담아야 해요. 그래야 누군가에게 영감을 주고, 도움이 될 수 있으니까요. 그게 아티스트의 본질이죠. 억지로 트렌드를 따라가거나, 돈만 보고 뭔가를 하면 안 돼요. 그런 건 오래가지도 않고 사람들이 다 알아채요. 진짜가 아니면 싸구려처럼 느껴지거든요. ‘예전 그 맛이 아닌데?’라는 생각이 들죠. 제 뿌리, 가족, 고향, 이 모든 것이 저를 이루는 요소예요. 나이가 들수록 고향과 멀어졌지만, 그 모든 걸 항상 제 안에 간직하고 있어요.

완벽하네요. 역시 옥스나드(앤더슨의 고향)에서 나온 최고의 아티스트입니다. 제목으로 좋은데요?

‘Best out of Oxnard’. 마음에 드네요.


Credit

  • EDITOR 박세회
  • PHOTO 엠에이치샴페인즈앤드와인즈코리아
  • ART DESIGNER 주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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