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코미디언들이 슬픔을 말하는 이유

우리는 모두 슬픔을 말하고 들어야 한다.

프로필 by 박세회 2025.07.06

미국 매사추세츠 출신의 스탠드업 코미디언 마이크 버비글리아의 아빠 빈센트 버비글리아는 신경과 전문의로 무뚝뚝하고 화가 많았다. 이를테면, 열쇠를 잃어버리면 “빌어먹을 키가 어디 갔냐고!”라며 온 가족에게 화를 내는 식이었다. 어린 시절 마이크는 아빠가 화를 낼 때마다 그 화를 누그러뜨리기 위해 허둥지둥 뭔가를 해야 했다. 재빠르게 열쇠를 찾아 가져다준다든지 그게 힘들면 열심히 찾는 시늉이라도 했다. 1978년생인 버비글리아는 이제 40대 후반에 접어들었고, 넷플릭스 스페셜을 4개나 발표한 유명 코미디언이 되었다. 그는 최근에 공개된 자신의 코미디 쇼 <잘 사는 법>(The Good Life)에서 이렇게 얘기한다. “우리 아빠는 1년 전쯤 뇌졸중에 걸렸는데, 뇌졸중은 정말 상상도 못 할 만큼 최악의 질병이에요. 그렇지만 솔직히 까놓고 얘기하면, 뇌줄중이 아버지를 좀 진정시켜줬어요.”, “‘빌어먹을 열쇠가 어디 갔냐고!’ 소리치는 것보다는 (어눌하게) ‘열쇠 좀’이라고 말하는 편이 더 상냥하잖아요.”

이 말을 듣는 순간 바로 웃을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뉴욕 타임스>에 실린 칼럼 ‘내가 힘들었던 사건으로 코미디를 만들어내는 이유. 우리 아빠의 뇌졸중처럼’에서 버비글리아는 이 농담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이 다크한 농담을 하던 어느 날, 관객들이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를 모르는 듯했어요. 아마 관객들은 이렇게 생각했겠죠. ‘병든 아빠를 두고 하는 저 녀석의 농담에 우리가 웃어도 될까?’라고요.” 그래서 마이크는 애드리브로 한 마디를 덧붙였다. “오늘 하는 대부분의 농담은 여러분을 위한 거지만, 몇몇은 제 자신을 위한 거예요.” 그가 이렇게 말하고 나자 관객들은 긴장을 풀고 웃기 시작했다.

한국 코미디 쇼에는 절대 올릴 수 없을 만큼 가혹한 말들이 난무하는 ‘센 언니 오빠’들의 전장인 미국 스탠드업 코미디 업계에서도 가장 센 언니라면, 세라 실버먼을 다섯 손가락 안에 꼽을 수 있을 것이다. 그녀의 수많은 펀치 라인 중에서도 최고로 꼽히는 라인은 이것이다. “전 의사한테 강간을 당했어요. 근데 다들 아시겠지만, 유대인 여자한테 그건 너무 달콤씁쓸한 일이었죠.” 미국의 인종차별적 스테레오타입 중에는 ‘모든 유대인 여자는 의사나 변호사와 결혼하기를 원한다’는 편견이 있다. 그런 편견을 ‘달콤씁쓸’하게 비꼰 세라 실버먼이 실은 성폭력 피해자라는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녀가 처음으로 본 남자의 성기는 고향인 뉴햄프셔에서 그녀가 웨이트리스로 일하던 가게 매니저의 것이다. 그가 할 말이 있다며 자신의 사무실로 세라를 불러냈을 때, 세라는 열여덟 살이었고, 그가 성기를 꺼내 자위하는 모습을 보고 겁에 질려 뛰쳐나간 뒤 그녀는 몇 년 동안 그 사건에 대해 입 밖에도 내지 않았다.

지난 5월에 공개된 세라 실버먼의 넷플릭스 스페셜 <사후 토크>는 9일 간격으로 세상을 떠난 그녀의 부모 이야기로 가득 차 있다. 이를테면 이런 사랑스러운 에피소드들이다. 실버먼의 아빠 도널드와 새엄마 재니스는 어느 날 재니스의 검사 결과를 듣기 위해 병원을 찾았다. 검사를 할 때부터 그리 좋은 결과가 아닐 거라는 것 정도는 모두가 알고 있는 상태였다. 결과는 췌장암 4기였다. 재니스는 실버먼의 네 자매에게 의사의 정확한 진단을 들려주기 위해 진단 결과를 듣는 장면을 녹음했다. 그리고 녹음에는 아빠 도널드가 의사의 진단을 듣고 보인 반응이 담겨 있었다. 의사가 “재니스 당신은 췌장암 4기…”까지 말한 순간 도널드는 장장 3초짜리 방귀를 뀌더니 이렇게 외쳤다. “이제 난 혼자야!”라고. 이어 “난 과부야(widow)”라고도 외쳤다고 한다. 그렇다. 살아 있는 아내를 옆에 두고 이제 난 혼자라고 말했다는 점에 비하면 ‘홀아비(widower)’라고 말하지 않았다는 점은 작은 웃음 포인트일 뿐이다.

그러나 세라가 사랑하는 아빠 도널드에게는 다른 어둠이 있었다. 말년의 도널드는 4명의 딸에게 자상하고 유머러스하고 귀여운 아빠였지만, 태생적으로 슬픔과 분노를 마음 깊숙한 곳에 가진 사람이었다. <롤링 스톤스> 매거진과의 인터뷰에서 세라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 할아버지는 어린 아빠를 개 패듯이 무자비하게 때렸어요.” 도널드는 이후에도 기독교 학교에 보내져서 유일한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학교 폭력을 당하며 성장했다. 그가 정상일 수는 없었다. 세라의 친엄마인 베스 앤과 결혼해 가정을 꾸렸지만, 아내의 예술적인 면을 깎아내리고 모욕해 그녀가 우울증에 걸리게 했고, 끊임없이 바람을 피웠다. 어린 세라에게 집은 안정적인 곳이 아니었다. 그녀는 열다섯 살 때까지 침대를 적셨으며, 열여섯 살 때는 하루에 자낙스 16알을 먹을 정도로 불안장애를 겪었다. 도널드는 이혼 뒤 재혼을 한 뒤에야 안정을 찾았고, 그제서야 세라 그리고 그녀의 자매들과 친해졌다. 나이가 들어서였을 수도, 인생의 경제적 풍요를 찾아서였을 수도 있을 것이다. 세라는 이렇게 말했다. “(아빠는) 저를 신체적으로 학대하진 않았지만, 억제할 수 없는 분노를 내면에 품고 있었죠. 그리고 (나이가 들어서는) 그걸 벗어던졌어요. 나이, 깨달음 그리고 졸로푸트(우울증 약)가 그에게는 최고의 조합이었죠.”

슬픔은 남을 웃기기 위한 가장 큰 동기다. 특히 내가 이겨낸 슬픔은 그렇다. 그녀는 <사후 토크>로 작년부터 올해까지 최고 마흔 번(내가 카운팅한 바로는 그렇다)을 공연했다. 약 일주일 사이에 세상을 떠난 부모의 이야기를 누군지도 모르는 수백 수천 사람들을 앞에 두고 무대에서 나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우연한 곳에서 그 대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지난 4월의 어느 날 세라는 자신이 진행하는 팟캐스트에서 한 통의 메시지를 받았다. “안녕하세요, 세라. 저는 아만다 녹스라고 해요. 저는 비극, 아니 비극을 둘러싼 희극에 대해 물어보고 싶어요. 저도 비극적인 일을 겪었어요. 억울하게 유죄 판결을 받고, 투옥도 되고 온갖 일을 겪었죠. 제가 그 비극을 극복한 방법은 그 일을 농담거리로 삼는 거였어요.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제가 겪은 비극을 감히 웃음거리로 만든다는 이유로 저를 사이코패스 취급을 하더군요.” 아만다 녹스는 지난 2007년 이탈리아의 페루자에서 함께 거주하던 영국인 여자 룸메이트를 살해한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고 복역하던 중 2015년 대법원까지 가는 상고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고 풀려난 인물이다. 당시 범행 동기가 ‘룸메이트가 집단 섹스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알려지며 전 세계 매스컴을 흔든 바 있다. 넷플릭스에 아만다 녹스 이름의 다큐멘터리가 있을 정도다. 그녀가 답했다. “코미디는 릴리프 밸브예요.” 릴리프 밸브는 과도한 압력이 걸리는 수도관 등을 적당한 압력으로 조절하기 위해 설치하는 밸브를 말한다. 아마 코미디가 없었다면, 무대에 설 수 없었다면, 그녀는 무너져 내렸을 것이다.

신형철은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에서 “어떤 책이 누군가를 위로할 수 있으려면 그 작품이 그 누군가에 대한 정확한 인식을 담고 있어야 한다”며 “나를 이해하지 못한 사람이 나를 위로할 수는 없다”고 말한다. 이 말은 위안을 위한 코미디에도 얼추 적용된다. 어떤 코미디가 누군가를 위로할 수 있으려면 그 코미디는 그 누군가에 대한 정확한 인식을 담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어떤 코미디는 관객을 위로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종종 코미디언 자신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희극인이 자신을 위로하기 위한 코미디를 만들기 위해서는 자신에 대한 혹은 자신의 슬픔의 연원이 되는 존재에 대한 정확한 인식에 가닿아야 한다. 자신에 대한 인식은 뇌졸중으로 죽어가는 내 아버지에 대한 인식, 또 그 아버지에 대한 나의 감정에 대한 인식, 엄마를 학대하고 어린 딸에게 분노를 표출한 아버지에 대한 인식, 또 그 아버지에 대한 자신의 감정에 대한 정확한 인식을 포함한다. 어린 시절 난폭하던 아버지의 모습과 그로 인한 자신의 상처들을 다 다시 꺼내 보며 다시 인식해야 세라 실버먼이나 마이크 버비글리아가 하는 코미디에 가닿을 수 있고, 내게 그 과정은 마치 거대한 슬픔을 겪은 뒤 삶의 목적을 찾기 위해 고행하는 수행자처럼 보인다. 세라는 스탠드업 코미디 쇼 <사후 토크>를 2024년 9월부터 마흔 번이나 무대에 올렸다. 마이크는 지난 10월부터 뉴욕에서만 여섯 번의 공연을 올렸다. 아마 곧 뉴욕을 벗어나 전미나 월드 투어를 시작할 것이다. 코미디는 슬픔을 이겨내는 도구이며, 종종 슬픔을 이겨내는 과정이다. 진화 심리학에서는 웃음의 기원을 ‘거짓 경보 이론’으로 설명한다. 위험이나 위협으로 인식될 수 있는 새로운 상황이나 사건이 실제로 그렇지 않다는 것을 확인했을 때 우리는 웃는다. 마이크 버비글리아의 아버지 뇌졸중 농담을 ‘사회적으로 위험한 농담’으로 인지한 관객들은 웃지 못하다가 마이크가 ‘나를 위한 농담’이라고 말하자 웃기 시작한다. 거짓 경보였다는 것을 인식하자 긴장이 사라지며 자연스레 웃음이 터진 것이다. 슬픔과 분노는 종종 우리를 잠식할 것처럼 보이지만, 우리는 대부분을, 마이크 아버지의 뇌졸중마저 이겨낸다. 우리는 대부분의 슬픔과 분노를 웃어낼 수 있다. 그게 코미디의 미학이다. 마이크는 말한다. “공연을 하면서 결국 저는 제가 가진 이 툴을 사람들과 나누고 있어요. ‘자 여기 이걸 써봐’라고 말하고 있는 셈이죠.” 한국에선 코미디가 사라졌다. 그리고 도구에는 때가 있다. 인식의 과정이 꽤나 오래 걸리기 때문이다. 사건의 본질 혹은 인물의 본성에 대해 제대로 인식한 뒤에야 코미디는 만들어진다. 지난 몇 년을 생각해보면, 어쩌면 지금이 우리가 코미디라는 도구를 다시 적극 활용해야 할 시점인지도 모르겠다.


박세회는 <에스콰이어> 코리아의 피처 디렉터다. 먹고 마시고 노는 사람들을 사랑한다. 다이닝, 와인, 위스키, 아트 및 문화 전반을 다루며, 2019년 소설부문 중앙신인문학상을 수상했고, 와인 전문가 시험인 WSET Level 3를 패스했다.

Credit

  • EDITOR 박세회
  • WRITER 박세회
  • ILLUSTRATOR MYCDAYS
  • ART DESIGNER 주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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