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미국을 상징하는 슈퍼 히어로는 누구인가

전통적 슈퍼맨의 선한 모습에서 지금의 미국을 연상할 수 있을까?

프로필 by 박세회 2025.07.05

슈퍼히어로 영화는 망했다. 일단 선언부터 하고 시작하자. 나도 안다. 마블과 DC 팬 독자 여러분은 울분을 토하고 싶을 것이다. 토하시라. 화가 나면 화를 뱉어야 오래 산다. 그렇다고 현실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슈퍼히어로 장르는 끝났다. 올해 마블이 쇄신을 해보겠다며 내놓은 두 편의 야심 찬 프로젝트는 전 세계 박스오피스에서 죽을 쒔다. <캡틴 아메리카 : 브레이브 뉴 월드>는 주인공을 흑인 배우로 교체하고 미국 대통령을 악당으로 만드는 정치적으로 올바른 내러티브로 새로운 세대 관객을 흡수하려 했다. 정치적으로 올바르게 재미없었다. 차세대 어벤져스라며 ‘슈퍼히어로 장르의 A24 영화’라는 점을 마케팅 포인트로 내세운 <썬더볼츠>는 그냥 잊혔다. 재미있는 시도였다만 관객들은 딱히 관심이 없었다.

이유는 뭐 많다. 평론가마다 다들 비슷한 이야기를 할 것이다. 챗지피티도 비슷한 이야기를 할 것이다. 2019년 <엔드게임> 이후 마블 유니버스는 엔드를 맞이했다. 마블은 그걸 몰랐다. 슈퍼스타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크리스 에반스, 스칼렛 요한슨이 떠났을 때도 그들은 걱정하지 않았다. 마블은 캐릭터발이지 배우발은 아니라고 확신했던 것이다. 그럴 리가 있나. 여전히 우리는 슈퍼스타가 필요하다. 영화는 코믹스가 아니다. 아이언맨, 원조 캡틴 아메리카, 블랙 위도우가 떠나자 구심점도 사라졌다. 너무 많은 영화와 드라마를 쏟아내자 열성팬들도 피로감을 호소하기 시작했다. <데드풀 & 울버린>은 성공하지 않았냐고? 마블은 데드풀과 엑스맨 캐릭터들을 새로운 주자로 세계관에 끼워 넣고 싶어 하는 것 같은데, 무리다. 그 영화는 마블 세계관과 관계없이 R등급 코미디 영화라 성공한 것이다. 엑스맨도 30년째다. 지겹다. 마블은 얼마 전 신작 <판타스틱 4> 특별 시사회를 미국에서 열었다. 평가는 엉망이었다. 이것 역시 세 번째 리부트다. 지겹다.

정리하자면 과잉 공급으로 인한 피로감, 주요 캐릭터 상실로 인한 팬들과의 유대감 증발, 과잉 제작으로 인한 퀄리티 저하 등이 문제다. 내가 보기엔 그보다 더 큰 문제가 있다. 시대정신의 종말이다. 마블 유니버스가 시작된 2010년 전후의 세계는 큰 걱정이 없었다. 미국 대통령으로 버락 오바마가 당선됐다. 푸틴은 조용했고, 시진핑은 이제 막 당권을 잡았다. 유럽은 중동 이민자들을 대거 받아들이며 대륙적 휴머니즘을 과시했다. 2025년쯤에는 모두가 행복해질 것 같았다. 이래서 시대는 미리 예측해서는 곤란하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이스라엘과 하마스는 최후의 전쟁을 시작했다. 미국은 트럼프 시대가 열렸다 닫히더니 더 세게 열렸다. 유럽은 이민자를 쫓아내야 우리가 산다는 극우 정치인들이 대중적인 지지를 얻고 정권도 차지했다. 한국은? 2024년에 계엄이 선포될 거라는 건 전두환도 몰랐을 것이다. 이게 마블 영화의 추락과 무슨 상관이 있냐고?

상관이 있다. 영화는 영화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영화는 언제나 시대정신을 담아내는 그릇이었다. 2010년대의 우리는 슈퍼히어로를 받아들였다. 마블 유니버스는 실제 세계와 달랐지만 관객들은 두 세계를 별 고민 없이 연결해서 즐길 수 있었다. 세계 전쟁과 극우의 시대가 시작되자 즐거움은 사라졌다. 마블 유니버스는 아무리 거대한 악당이 등장하더라도 매우 낭만적이고 긍정적인 세계다. 어쨌든 히어로들이 나타나 모든 것을 해결해줄 것이라는 기대가 있다. 진짜 전쟁의 시대가 열리자 마블 유니버스는 그냥 유치해졌다. 러시아 미사일이 쏟아지는 키이우에 토르는 나타나지 않았다. 이스라엘 미사일이 쏟아지는 가자지구에 아이언맨은 없었다. 트럼프를 막을 캡틴 아메리카도 없다. 세상이 불타고 있는데 현실에는 히어로가 없다. 이런 시대에 히어로 장르를 예전처럼 낙관적으로 즐기는 건 가능한 일이 아니다. 즐기려 애써봐야 우리 무의식 속 현실감각이 도파민 생성을 막아 세울 것이다.

그래도 통할 법한 히어로는 있다. 그게 마블의 히어로가 아니라는 게 마블로서는 비극이다. DC의 히어로는 상대적으로 이 시대에 적절하다. 일단 배트맨이 있다. 팀 버튼, 크리스토퍼 놀런에 이어 맷 리브스가 재창조한 <더 배트맨>도 성공을 이어가고 있다. 안 그래도 어둡던 선배 배트맨들보다 심지어 더 어두워졌다. 어두운 히어로는 비극의 시대에 어울린다. 잭 스나이더가 지휘하던 DC 유니버스도 놀랄 만큼 어두웠다. 그가 창조한 헨리 카빌의 슈퍼맨과 벤 애플렉의 배트맨도 침침하기 짝이 없었다. 문제는 마블 유니버스에 대항하겠다며 만든 <저스티스 리그>의 실패다. 오로지 잭 스나이더 탓이다. 이 양반은 근사한 것처럼 보이는 허술하고 허망한 영화를 만드는 데 재능이 있다. 잭 스나이더 팬들은 크리스토퍼 놀런 팬만큼이나 강성으로 유명하지만, 뭐 욕먹어도 상관없다. 잭 스나이더는 영화를 못 만든다. DC가 쫓아낸 이유가 다 있는 것이다.

대신 DC는 유니버스의 리부트를 선언했다. 놀랍게도 마블에서 그나마 실패 없이 이어온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시리즈의 제임스 건을 데려왔다. 제임스 건으로서는 손해 볼 것이 없다. 가라앉는 배에서는 빨리 빠져나오는 자가 승자다. 문제는 DC가 이미 먼저 가라앉은 배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도박을 해야 한다. 큰 도박을 해야 한다. 제임스 건과 DC는 슈퍼맨을 다시 만들기로 했다. 미친 짓이다. 1978년 개봉한 크리스토퍼 리브의 <슈퍼맨> 이후 벌써 세 번째 리부트다. 브라이언 싱어는 리브의 슈퍼맨에게 바치는 오마주 같은 <슈퍼맨 리턴즈>(2008)를 만들었고, 크게 실패했다. 그렇게까지 순진하고 순결하고 우아한 슈퍼맨은 2008년의 관객들에게는 지나치게 구식이었다. DC는 잭 스나이더와 함께 배트맨처럼 어두운 슈퍼맨을 만들었다. 헨리 카빌의 슈퍼맨은 슈퍼맨 역사상 처음으로 누군가를 죽인다. 아니, 악당을 죽이기 위해 도시 하나를 박살 내며 대학살을 벌였다. 모던한 접근이었지만 그건 아무래도 슈퍼맨은 아니다. 잭 스나이더 팬들의 열광과는 달리 <맨 오브 스틸>(2013)의 흥행 성적도 상당히 애매했다. 근본적으로 그건 슈퍼맨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슈퍼맨은 1938년 대공황 시기에 등장해 미국적 낙관주의의 상징이 됐다. 그는 악당과 싸우는 히어로도 아니다. 그가 주로 하는 일은 매일매일 성실하게 사고와 재난으로부터 보통 사람들을 돕는 것이다. 정의로움과 선량함과 희망의 히어로다. 다시 말하자면, 현대적인 히어로는 아니다. 본질적으로 그럴 수가 없다. 그래서 슈퍼맨 리부트가 계속 실패만 거듭한 것이다. 너무 착하고 너무 센 히어로로 무슨 현대적 블록버스터를 만들 수 있겠는가 말이다. 놀랍게도 제임스 건은 그냥 정공법으로 밀어붙이기로 결정한 모양이다. 그는 “궁극적인 착한 남자”로서의 슈퍼맨을 다시 재현했다며 “친절과 선함이 주제”라고 말했다. 이른 테스트 시사회에 참석한 미국 평론가들에 따르면 새 <슈퍼맨>은 뚜렷한 줄거리가 있기보다는 슈퍼맨이 여러 미션을 격파하는 일종의 옴니버스 영화에 가깝다고 한다. 그렇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가 바로 그런 영화였다. DC 유니버스를 되살리기 위해 그린 랜턴을 포함한 여러 DC 히어로들도 조연으로 가담한다. 아기자기하고 복작복작한 영화일 것이다.

나는 사실 불안하다. 제임스 건은 재미있는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다. 액션만큼 농담도 잘하는 사람이다. 낙관적인 히어로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다. 그런데 우리에게 농담을 잘하는 낙관적인 히어로가 필요한가? 이미 말했듯이 마블 유니버스가 추락한 이유는 진짜 전쟁의 시대에 관객들이 더는 가상의 히어로를 원하지 않는 탓이다. 아무리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돌아온다고 해도 아이언맨은 다시 만들 수가 없다. 다들 알다시피 아이언맨의 모델은 일론 머스크였다. 2000년대 중반의 일론 머스크는 괴짜 천재였다. 2025년의 일론 머스크는 정신 나간 정치적 빌런이다. 그래서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새 <어벤져스>에서 악당인 둠스데이를 연기한다. 처음 소식을 들었을 땐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치트키인가 싶었다. 좀 더 생각해보니 완벽한 캐스팅이다. 지난 시대 최고의 히어로가 최강의 빌런이 되어 돌아오는 것이다. 시대에도 맞고 이치에도 맞다.

예고편을 보면 알겠지만 새 <슈퍼맨>의 화면에는 어떠한 그늘도 없다. 모든 것이 코믹스처럼 밝고 쨍하다. 그러나 지금 미국을 상징하는 슈퍼맨은 슈퍼맨이 아니다. 슈퍼히어로 장르를 잔인하고 잔혹하게 비튼 아마존 프라임 <더 보이즈>의 총체적 빌런 홈랜더다. 슈퍼맨이 옛 미국이라면 홈랜더는 지금의 미국이다. 트럼프 시대의 미국이다. 극우 시대의 미국이다. 트럼프 시대의 미국은 나아지지 않을 것이다. 며칠 전 트럼프는 이민자 추방 반대 시위가 벌어지고 있는 LA에 방위군 2000명을 투입시켰다. <캡틴 아메리카 : 시빌 워>는 지금 LA의 진짜 시빌 워에 비하면 내전이라고 할 수도 없다. 영화는 안온한 세계일 뿐이다. 누구도 진짜로 다치거나 죽지 않는다. 2025년 세계의 전쟁과 내전과 내란과 학살을 뉴스로 지켜보는 우리는 역사상 가장 낙관적인 슈퍼맨에게 아무런 근심 없이 열광할 수 있을까? 혹은 그런 세계에 치를 떠는 우리는 오히려 지나치게 낙관적인 히어로의 꿈을 극장에서나마 꾸고 싶을까? DC 유니버스는 다시 열릴까 아니면 완전히 닫힐까. 새 슈퍼맨의 어깨는 정말이지 무겁다.


김도훈은 글을 쓰는 사람이다. <씨네21> <GEEK>과 <허프포스트>에서 일했고 에세이 <우리 이제 낭만을 이야기합시다>를 썼다.

Credit

  • EDITOR 박세회
  • WRITER 김도훈
  • ILLUSTRATOR MYCDAYS
  • ART DESIGNER 주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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