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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만에 개관한 서울시립 사진미술관, 그곳에서 무엇을 볼 수 있을까?

국내 최초의 공공 사진 미술관, 서울시립 사진미술관이 문을 열었다. 서울 도심에서 떨어져 있어 큰마음을 먹고 찾아가야 하다 보니 자연히 하나의 질문이 떠오른다. “거기서 우리는 무엇을 얻을 수 있는가?”

프로필 by 오성윤 2025.06.25
오주영 작가의 ‘기계 감상 시스템’ 공간에 제시된 서울시립 사진미술관의 소장품 이미지. ‘기계 감상 시스템’은 AI 기술을 통한 사진 복원의 가능성과 과정을 다룬다.

오주영 작가의 ‘기계 감상 시스템’ 공간에 제시된 서울시립 사진미술관의 소장품 이미지. ‘기계 감상 시스템’은 AI 기술을 통한 사진 복원의 가능성과 과정을 다룬다.

서울시립 사진미술관에서 처음 본 전시는 <스토리지 스토리 Storage Story>였다. 여섯 명의 동시대 작가가 사진이라는 매체를 매개로 서울시립 사진미술관의 설립 과정을 재해석한 개관특별전. 굳이 ‘사진이라는 매체를 매개로’ 같은 부자연스럽고 긴 표현을 욱여넣은 데에는 이유가 있다. 해당 전시에서 만난 것들에 ‘사진 작업’이라고 뭉뚱그려 전달하기 아쉬운 측면이 있었기 때문이다. 시설 건립 과정을 촬영한 사진과 카탈로그에서 수집한 이미지를 뒤섞어 재배치한 서동신 작가나 빈 건축물 사진에 자연 풍경을 합성한 원성원 작가의 작업을 지나, 건립 과정의 기록 사진 데이터베이스를 토대로 실크스크린 인쇄물, 3D 영상, 조각 작품을 만들어 내놓은 정지현 작가, 사진미술관의 소장품 이미지들을 배열해 AI가 재해석하도록 하는 참여형 작품을 제시한 오주영 작가의 작업까지 거치고 나자 자연히 머릿속에 그런 표현이 남기도 했고 말이다. ‘사진이라는 매체를 매개로 한 폭넓은 작업들’.

그곳에서 처음 본 전시가 <스토리지 스토리 Storage Story>였던 이유는 기자간담회에서 받은 프레스 키트 맨 앞장에 초록색 스티커가 붙어 있었기 때문이다. 노란색 스티커를 받은 기자들은 또 하나의 개관 특별전인 <광채光彩: 시작의 순간들>을 먼저 감상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광채光彩: 시작의 순간들>은 서울시립 사진미술관의 소장품과 사진사(史) 연구 활동에 연원을 둔 전시다. 2015년 처음 출범한 서울시립 사진미술관은 개관 이전 10년 동안에도 2만여 점의 소장품을 축적하며 연구를 이어왔고, 그 아카이브에서 20세기 작가 다섯을 꼽아 소개하고자 했다는 것이다. 조선인 최초로 개인전을 열었던 사진가 정해창부터 리얼리즘 사진의 거두인 이형록과 임석제, 한국 추상 사진의 선구자 조현두, 국내 1세대 여성 사진작가 박영숙까지. 과연 순서에 따라 돌아보는 것만으로도 ‘한국에서 사진이 예술로 자리 잡아온 여정을 살펴본다’는 취지가 저절로 수긍이 가는 구성이었다.

카탈로그에서 수집한 사진과 서울시립 사진미술관 준비 과정에서 촬영한 사진을 재조합한 서동신 작가의 작품 ‘필요에 따라 맞춰지는’.

카탈로그에서 수집한 사진과 서울시립 사진미술관 준비 과정에서 촬영한 사진을 재조합한 서동신 작가의 작품 ‘필요에 따라 맞춰지는’.

서울시립 사진미술관의 외관. 조리개가 열리는 순간과 사진의 기본 단위인 픽셀을 모티브로 했다.

서울시립 사진미술관의 외관. 조리개가 열리는 순간과 사진의 기본 단위인 픽셀을 모티브로 했다.

개인적으로 흥미로웠던 점은 미술관 동선상으로도 <스토리지 스토리 Storage Story>가 <광채光彩: 시작의 순간들>보다 먼저 제시된다는 것이다. 전자는 1층 로비와 2층에서, 후자는 3층에서 열리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공간적 특성이다. 국제 설계 공모에서 당선된 믈라덴 야드리치 건축가와 윤근주 건축가는 정육면체가 회전하며 뒤틀리고 있는 듯한 형태의 건물을 만들었고, 이 외관을 살려 2층은 전형적 ‘화이트 큐브’에 가까운 3층과 달리 벽과 바닥에 경사가 드러나는 비정형 공간으로 조성되었다. 그리고 기획된 두 개의 개관전 중 <스토리지 스토리 Storage Story>가 해당 공간에 더 적합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 외의 다른 의도는? 없다. 없는 것 같았다. 한정희 관장은 2층과 3층 사이의 어떤 선후 관계나 감상의 영향도 의도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다양한 갈래로 펼쳐진 사진 매체의 가능성, 동시대의 감각들을 두루 둘러본 후에 ‘1세기 전 한국 사진 예술의 태동기’가 눈에 잘 안 들어오지 않을까” 하는 좀 더 직접적인 질문에는 “꼭 그렇지는 않다”는 답을 돌려주기도 했다. “3층에서 유독 오래 머무시는 분도 많거든요. 사람들 반응이 생각보다 정말 각양각색이에요. 저희에게도 아주 흥미로운 지점이 많아서 조만간 관람객 설문을 꼭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고요.”

개관전이 두 개인 것은 물론 서울시립 사진미술관이 품은 방향성을 전달하려는 의도다. 우선 눈여겨봐야 할 건 서울시립 사진미술관이 ‘미술관’이라는 점이다. 공식 명칭에 ‘Museum’이 들어가긴 하지만(Photography Seoul Museum of Art), 한정희 관장은 “’뮤지엄 오브 히스토리’도 ‘뮤지엄 오브 사이언스’도 아닌 ‘뮤지엄 오브 아트’라는 부분”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기본적으로 사진을 예술적 매체라는 관점에서 바라보는 공간이라는 것. 다만 그 예술적 매체의 어떤 측면에 주목할 것인가에 따라 공간의 성격이 천차만별로 달라지는 것도 사실이라고 했다. “일단은 사진이라는 매체가 등장하면서 현대예술이 크게 바뀌었다는 부분을 볼 수 있겠죠. 그 자체로 예술 작품의 성격을 갖고 있기도 하고 표현 매체로서의 성격도 있어서 지금까지도 서로의 영역을 넘나들고 있잖아요. 사진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아티스트들의 작업을 소개해야 하는 부분이 있고, 사진이라는 매체에서 일종의 돌파구를 찾아 작품 세계를 만든 분들의 작업도 함께 선보여야 한다는 생각도 있죠.” 그리고 또 하나 중요한 부분은 이 공간이 공립 시설이라는 점이라고 했다. 특정 분야가 펼쳐진 지평 안에서 ‘공공성’을 중심으로 볼 때 시급한 활동이 따로 있기 때문이다. <광채光彩: 시작의 순간들>은 그런 역할 측면에 좀 더 맞닿아 있다. “국내에는 이미 고은사진미술관이나 뮤지엄한미 같은 훌륭한 사립 사진미술관들이 있잖아요. 하지만 분명 저희 시설이 공립으로서 갖게 될 강점이 있다고 생각해요. 공적 체제와 공적 인력을 활용해 공공성이 있는 사업을 좀 더 긴 호흡으로 진행할 수 있으니까요. 저는 140년의 한국 사진사를 연구하고, 정립하고, 체계화하는 측면에 그 힘을 좀 더 들여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고요.” 기자간담회 날 질의응답 시간 때 나온 질문 중에 <광채光彩: 시작의 순간들>의 작가 선정 기준에 대한 것이 있었다. 영향력이나 중요성을 기준으로 봤을 때 이해가 잘 가지 않는다는, 거의 질책에 가까운 어조가 실려 있었는데, 그에 대한 답변은 간단히 축약해 이런 내용이었다. “국내 근현대 사진사에서 좀 더 조명되거나 다른 방향에서 파악할 필요가 있지만 그런 시도가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았던 작가들을 선정했습니다.”

다큐멘터리 포토그래피와 구술 채집을 통해 서울시립 사진미술관이 자리 잡은 창동을 탐구한 주용성 작가의 작업.

다큐멘터리 포토그래피와 구술 채집을 통해 서울시립 사진미술관이 자리 잡은 창동을 탐구한 주용성 작가의 작업.

권지연 조경가와의 협업으로 조성된 원성원 작가의 작업 전시 공간.

권지연 조경가와의 협업으로 조성된 원성원 작가의 작업 전시 공간.

서울시립 사진미술관의 방향성이 중요한 이유는 개관 전부터 지금까지 이 공간을 둘러싼 굉장히 다양한 견해와 우려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미 일상 곳곳에 사진이 산재한 시대라는 점을 상기하면 아주 깐깐하고 학제적인 울타리를 세워야만 ‘사진미술관’이라는 공간의 존재 의의가 생길 것 같고, 모든 미술관이 SNS를 위한 공간이 되어가는 시대라는 점을 상기하면 사진을 주요 매체로 하는 미술관은 자칫 ‘힙’한 방향으로 빠져들기 너무 쉬운 시설인 것 같다. 지난 2021년 열린 서울시립 사진미술관 건립 세미나 <(불)완전한 미술관>에서 사진 비평가이자 보스토크 프레스 대표인 김현호는 ‘사진미술관이 만나게 될 관객들은 대단히 다양하고 강력한 욕망과 나름의 창작관을 가진 일종의 아마추어 예술가일 것’이라는 사실을 중요한 지점으로 짚기도 했다. “사진미술관은 필연적으로 대부분의 사진 영역을 배제하고 아주 일부만을 선택하게 될 겁니다. 그러나 그 과정이 평화롭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을 저는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제도의 점령을 꿈꾸고 현재의 제도를 미워하는 이들이 이곳에는 가득하기 때문이죠.” 쉽게 말해, 운영 내내 무엇이 미술로서의 사진이고 무엇이 그에 속하지 않는 사진인가에 대한 학계, 작업자, 일반 대중의 다양한 의혹과 질타를 견뎌야 할 수밖에 없는 시설이라는 뜻이다. 한정희 관장도 그게 걱정이라고 했다. 정확히는 ‘매일 걱정한다’는 표현을 썼다. “미술관에서 일하다 보면 걱정이야 늘 하지만, 특히 이 공간은 ‘모두를 위한 곳’이라고 법령에도 나와 있는 곳이잖아요. 아까 말씀드렸듯이 정말 각양각색의 다양한 관심사를 가진 분들이 찾아주시는데 각자 다른 이유로 실망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사진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고 좀 더 이해하고자 했던 분들은 ‘자기들만 아는 이야기를 한다’고 느끼고, 또 사진에 대한 좀 더 심화된 이야기를 기대했던 분들은 ‘너무 얕다’라고 느낄 수도 있겠죠. 제가 계속 ‘밸런스’를 강조하는 이유예요. 그래서 10년 주기로 장기적 계획을 세우는 거고요. 굳건하게 자리 잡기까지 적어도 5년, 7년 동안은 시행착오도 거치고 혼도 나고 때로 칭찬도 받으면서 외줄타기 하듯이 갈 수밖에 없다고 봐요.” 서울시립 사진미술관의 관장을 맡기 전 디뮤지엄과 대림미술관 부관장을 거친 그녀는 인터뷰 중간에 푸념처럼, “알면 알수록 어려운 매체가 사진인 것 같다”는 감상을 내놓기도 했다.

앞서 말했듯 서울시립 사진미술관 개관에는 10년이라는 세월이 걸렸다. 그리고 공공 사진미술관의 필요성에 대한 사진예술계의 목소리는 그보다 훨씬 오래되었다. 미술의 다양한 분과 중에서도 유독 사진계에서 이런 공간이 필요하다고 주장해온 이유 역시 사진이라는 매체의 모호한 경계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사진은 예술의 역사에서 아주 늦게 등장한 매체이며, 그 발전 과정 내내 끊임없이 예술 분야로의 편입 가능성에 대한 의심을 받아왔다. 일상에서의 커뮤니케이션 매체로서도 폭발적 성장을 했던 2000년대 초반에는 특히나 그 발달 양상을 연구하고 다양한 논의를 만들어내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느꼈을 테다. 매체 환경이 워낙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이다 보니 지금에 와서는 첫 공립 사진 전문 미술관이 개관했다는 소식에서 일종의 시차를 느낄 사람도 있겠으나, 아무튼 그건 직접 방문해보기 전까지의 감상일 확률이 높다. 적어도 개관특별전은 신선한 영감으로 가득하니까 말이다. 사진을 온갖 매체로 확장하고 조경가와 협업해 공간을 꾸미며 AI 기술과의 접점까지 마련해둔 <스토리지 스토리 Storage Story>는 물론이고, 흑백사진 작품들을 흑백의 간명한 공간에 구성한 <광채光彩: 시작의 순간들>도 마찬가지다. 취재차 총 세 번이나 방문하고도 그 비결이 무엇인지 명확히 설명하기는 어렵다. ‘소장품을 기반으로 연구를 지속해 시대별 작가와 작품들을 조명하고, 그 결과를 세미나, 출판, 전시로 시민들과 공유하며 그 반응에서 얻은 인사이트를 반영한다’는 선순환 구조가 그저 이상향이 아니라 서울시립 사진미술관이 실제로 믿는 작동 기제일 수도 있겠다는 사실을 가늠할 뿐. 3층에 자꾸만 오래 머물게 되는 이유는 물론 작품들 자체가 가진 힘도 있겠으나, 아무리 생각해도 배치나 구성, 설명 어느 하나 상투적으로 하지 않으려 고민한 듯한 성심을 빼놓고는 말하기 어려워 보이기 때문이다.

다섯 작가를 통해 한국 사진 예술의 태동을 돌아보는 <광채光彩: 시작의 순간들> 전시 전경.

다섯 작가를 통해 한국 사진 예술의 태동을 돌아보는 <광채光彩: 시작의 순간들> 전시 전경.

Credit

  • EDITOR 오성윤
  • PHOTOGRAPHER 박현성
  • ART DESIGNER 주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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