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세대의 '자선'과 '기부'는 완전히 새로운 문화가 될 전망이다
오늘날의 ‘슈퍼 리치’는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도 젊다. 자선 활동 방식도 ‘밀레니얼’ 세대의 특성을 반영하며 변화하고 있다. 이들은 특정한 의제에 대해 선별적으로 기부를 하며, 기부가 이루어진 이후의 과정까지 함께 참여하고자 한다. 그러나 과연 이러한 변화가 젊은 세대의 자선 활동에 대한 냉소적인 시각까지 바꿔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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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수백만, 혹은 수십억 달러를 기부하려는 사람들의 시대가 온다. 향후 몇십 년은 자선 활동의 호황기가 될 것이다. 지금이 ‘더 기빙 플레지(The Giving Pledge)’와 ‘파운더스 플레지(Founders’ Pledge)’의 시대이기 때문이다. ‘더 기빙 플레지’는 빌 게이츠와 워런 버핏이 부자들에게 순자산의 최소 절반을 기부하도록 권하는 캠페인이다. ‘파운더스 플레지’는 기업가들이 미래를 내다보고, 사업 매각 시 발생하는 개인 수익의 최소 2%를 기부하겠다고 서약하는 운동이다. 자선 활동의 중심이 지구 북반구에서 중국, 남미, 인도, 중동으로 이동하는 시대라는 점도 중요한 지표다. 엄청난 자산을 가진 백만장자 계급이 점점 늘어나는 시대이기도 하며, 자신의 믿음과 이론에 따라 기부하는 밀레니얼 세대 자산가들의 시대이기도 하다.
게다가 한 추산에 따르면, 향후 10년 동안 세계 약 1만4000명의 개인 초고액 순자산가들이 자녀 세대에 3조9000억 달러를 물려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역대급 액수인데, 심지어 초고액 순자산가들 이외에도 20년 동안 26조 달러를 상속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자선 활동에 사용될 수도 있는 거대한 규모의 자본이 생기게 된다는 뜻이다.
“여러 측면에서 많은 것이 크게 달라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트렌드 분석가 그룹 ‘넥스트 빅 싱(Next Big Thing)’의 윌리엄 하이엄이 설명했다. “이런 변화는 정부 기관들이 사회문제 해결에 지출할 돈이 없거나, 혹은 점점 더 소극적으로 접근하고 있는 세계적인 추세와 완벽하게 맞아떨어지죠. 소비자들 역시 어떤 종류의 단체든 이들이 ‘좋은 일’을 하기를 점점 더 기대하고 있고요. 팬데믹 이후 사람들은 지역사회와 그 주민들이 번창하는 모습을 기대하고 있기도 합니다.”
또한 지금은 자선 활동이 본질적으로 과거의 모델에서 벗어나 더욱 역동적이고 탐구적이며, 의문을 제기하는 새로운 모델로 이동하는 전환점을 맞고 있는 시대다. 과거의 모델이란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반까지 록펠러, 카네기, 밴더빌트 집안이 종교적·도덕적인 중요도가 높거나 긴급한 필요가 있는 일에 후한 기부금을 내던 방식을 말한다. 오늘날에는 조지 소로스나 리드 헤이스팅스 넷플릭스 회장과 같은 투자자들의 기부가 새로운 자선 활동 모델이 됐다. 소로스와 헤이스팅스 모두 2024년 한 해에만 엄청난 규모의 보유 자산 중 20% 이상을 기부했다.
이들은 더욱 전문화되고, 합리적인 방식으로 자선기금을 운영하고자 한다. 우선 어떤 돈을 어떻게, 어떤 이유로 기부하는지 그 사용 과정에 더욱 긴밀히 개입한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이른바 1%(나아가서는 0.001%)라 불리는 기업가들이 단기간에 막대한 ‘뉴 머니’를 벌어들인 결과로 나온 것일 수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들로 인해 자선 활동의 초점이 ‘얼마나 혁신적이고 효과적인가’ 하는 지점으로 이동하기도 했다.
이런 흐름과 관련해 사람들의 사고방식이 ‘효율적 이타주의’로 이동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있다. ‘효율적 이타주의’는 철학자 피터 싱어가 고안한 용어로, 기부금 한 푼 한 푼이 모두 최대 효과를 보도록 하려는 기부 형태다. 쉽게 말해 기부금을 받을 기관들의 기부금 사용 효율성을 엄격하게 비교 평가한 내용을 바탕으로 ‘총이익’이 가장 클 것으로 보이는 프로젝트에 돈을 지원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자선 활동의 성격이 끊임없이 발생하는 즉각적인 문제에 곧바로 대처하는 것이 아니라, 더욱 근본적이고 장기적인 변화를 위해 시스템 차원의 접근법으로 전체 생태계를 만들어가는 방향으로 흐르는 부분도 있다. “자신들의 돈이 해결의 촉매제 역할을 하는 쪽으로 쓰이게 하는 거죠. 실제로 효과가 있는지 없는지 문제 해결 방식을 검증하는 리스크를 부담해서, 민간기금이 더욱 잘 따라오도록 만드는 방식인 거예요.” 예측 전문 기관 ‘퓨처 어젠다(Future Agenda)’ 제임스 알렉산더의 설명이다.
일찍이 마틴 루서 킹 주니어가 말했듯, ‘자선은 치하할 만한 일’이기는 하지만 ‘진정한 연민이란 거지를 양산하는 전체 구조에 개혁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다. 영국 켄트대학교 연구원이자 싱크탱크 ‘자선 활동은 왜 중요한가(Why Philanthropy Matters)’의 설립자 로드리 데이비스는 이렇게 설명한다. “다른 문제들도 있지만, 무엇보다 부의 불평등이 계속해서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는 자선가들이 중립적으로 시스템을 바꾸지 않은 채 실질적인 도움이 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이 때문에 그저 증상을 완화하는 수준의 자선 활동에서 벗어나 정부와 공공 부문이라는 변화의 동력에 기대거나, 혹은 이와 함께 변화를 이끌어내는 방향의 자선 활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마드리드 IE 대학의 정치철학 연구원이자 <관대함의 횡포(The Tyranny of Generosity)>의 저자인 테오도르 레히터만은 근본적인 원인을 논하는 것 외의 다른 모든 방법은 일종의 ‘임시방편적 자선’에 해당한다고 한다. 그는 (그의 저서에 붙은 부제처럼) 이러한 방법이 부자들이 자신들의 개인적 이데올로기를 추구하는 과도한 이점을 누리도록 하며 정치를 부패시킬 위험도 품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는 보다 민주적인 대안을 제시한다. “자선사업가들이 공평한 경기장을 만드는 대항 세력이 되는 겁니다. 이를테면 담배 산업 등에 이해관계를 가진 힘 있는 부자들에게 대항하는 것처럼요. 혹은 이들이 지역사회 기관들을 통해 공동체 내부에서 직접 문제를 찾아 해결할 수 있도록 힘을 실어줄 수도 있겠죠.”
그러나 지속가능성 단체인 ‘미래를 위한 포럼(Forum For The Future)’의 최고 개발 책임자 맷 포스터는 더 어려울 것이 분명한 이런 식의 풀뿌리 접근법은 아직은 ‘큰손 자선사업가’들(1%, 재단, 기관, 기업 등)이 불편해하는 방식이라고 말한다. “(큰손들 중) 자기가 낸 기부금이 어떻게 쓰일지에 관여하는 것을 포기할 사람은 많지 않아요. 기부를 통해 좋은 평판을 얻는다는 이점이 사라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자기 돈을 자기 의도 그대로 쓰는 것에 익숙하기 때문이죠.” 포스터는 또 하나의 이유로 이런 추정을 들었다. “자기 분야에서 큰 성공을 거둔 사람들은 자기가 낸 기부금이 어디로 갈지 자신이 직접 결정하고 싶어 해요. 어쩌면 전 세계에서 벌어지는 큰 문제들을 본인 분야에서 그랬듯 자기가 해결할 수 있다고 믿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죠. 그래서 ‘큰손 독지가’들은 기부금이 어디에 쓰이는지 세세히 알려주는 큰 기관에 기부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가 생각하는 문제점은, 이런 조직들은 전방에서 기민하게 활동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물론 고문을 두고 조언을 받는 자선사업가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기는 하죠. 하지만 ‘자선 활동이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가’에 대한 무수한 생각들이 어느 하나 결론지어지지 않은 채 쏟아져 나오고 있는 상황이라는 건 누구나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몇 가지 분명한 예외 사례도 있다. 아무 조건 없이, 구체적인 사업 선정도 없이 미리 명시적으로 막대한 양의 부를 기부하는 제프 베이조스의 전 부인, 매켄지 스콧이 그 예다. 2024년 초에는 제약기업 바스프(BASF)의 상속인 마를레네 엥겔호른이 오스트리아 시민 중 무작위로 토론단을 선정하여 자신이 낼 기부금의 사용처를 정하겠다고 발표한 일도 있었다.
그러나 레히터만이 지적하듯, 이 방법조차 논쟁의 소지는 있다. 시민 의회가 ‘로또주의’보다 민주스럽다고 할 근거는 무엇일까? “그런 사람들은 지극히 기본적인 것에 집중하는 ‘바닐라 옵션’을 선택할 위험도 있죠. 괴짜 억만장자들이 내린 선택들은 비록 그 속에 단점들이 있다 해도 기존 정설들에 의문을 제기하고 폭을 확장할 가능성이 커요. 물론 그 ‘도전받을 정설’에 자본주의는 포함되지 않겠지만 말이죠.”
자본주의 이야기가 나온 김에, 기업 분야의 자선 활동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대기업들이 내는 기부금이 전체 기부금 규모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상대적으로 적다. 그러나 그럼에도 나름의 의문을 불러일으킨다. 기업의 기부 활동에 회의를 느끼는 사람들은 기업들이 기꺼이 자선 활동을 하려는 것은 그저 기부를 CSR(기업의 사회적 책임) 업무의 일환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여긴다. 이윤 추구 활동보다 약간 나은 정도의 활동일 뿐이라는 것이다. 최고의 인재를 채용하고 회사에 붙잡아두는 일은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 ‘딜로이트(Deloitte)’의 소셜 임팩트 및 모니터링 연구소장 데이나 오도너번은 기업 자선 활동의 첫 번째 물결은 리스크 관리가 목적이었다고 시인한다. “사업에서 핵심적인 부분이었다기보다는 부수적인 활동이었죠. ‘여기 보세요, 우리가 강아지를 구하고 있어요’라는 사인을 보내는 정도였던 거예요.” 그러나 오도너번은 최근 그 의미가 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2023년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95%가 자신이 다니는 회사가 지역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기를 기대한다고 답했다는 것이다. 젊은 사람들은 자신의 고용주에게 기대하는 것들이 다르다. “저는 내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만약 그 설문조사가 딱 10년 전에만 이루어졌어도 그런 응답을 한 비율은 현저하게 낮았을 거라고 봐요. 소비자들 역시 기업과 어떻게 소통할지에 대해 아주 분명한 생각을 갖고 있죠. 요즘 사람들은 기업의 행태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빠르게 조치를 취해요.”
오도너번은 과거에는 자선 활동이 ‘돈을 버는 것과 돈을 기부하는 것이라는 두 개의 강력한 패러다임’ 사이의 까다로운 대결이었다면, 현재의 자선 활동은 억만장자 계급이 여러 자원들(전문 기술 무료 제공 사업, 현물 기부, 공동체 활동 참여)을 활용하는 형태라고 말한다. 대부분의 기업이 여전히 자선 활동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아가는 중이다. 기업들의 공급망, 세금 관리, 고용 관행에는 여전히 다소 윤리가 결여된 경우가 있지만, 아무튼 기부 측면에서의 변화는 뚜렷하다.
이 모든 것을 종합해볼 때, 오늘날의 자선 활동은 엄청난 변화의 가능성을 안고 있지만, 동시에 유동적이며 실험적인 단계에 있다. 특히 팬데믹 이후 그 가능성은 한층 선명해졌지만 아직 뚜렷한 결과물은 보이지 않는다. 어쨌든, 자선 활동을 위한 거대한 규모의 자본이 형성된다고 해서 그게 반드시 자선 활동 목적으로 쓰이리라는 보장은 없으니 말이다.
<미래의 자선 활동(Future Philanthropy)>의 저자 라이언 지나드는 자선 활동의 미래가 세대 간 부의 이전뿐 아니라 가치의 이전에도 달려 있다고 설명한다. 그는 이것이 특히 스스로 쌓은 부는 기부하는 경향이 있는 반면, 물려받은 부는 쌓아두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부자들의 상속으로 기부금이 늘어날 기회가 생겼다고는 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기부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죠. 가족들과 고문들이 일찍부터 상속인들에게 보여주고 가르쳐야 해요. 자신들의 열정을 자선 활동에 반영할 수 있다는 것과 자선 활동을 통해 의미 있는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는 것을요.”
그러나 데이비스의 의견은 다르다. 그는 젊은 세대 상속인들이 애초에 자선 활동이 어떤 평가를 받을 수 있는지 이전 세대보다 훨씬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여성 자선가도 더욱 많아질 겁니다. 여성 자선가들은 사회 정의 문제에 좀 더 초점을 맞추는 등 다른 양상을 띨 것이라고 예측할 수 있는 근거들도 가지고 있고요. 그렇다고 해서 젊은 세대가 자선 활동에 새로운 발상과 열정을 가지고 기존의 구습을 타파하는 모습을 보이리라고 결론 내릴 수도 없어요. 실제로 그럴 거라고 하는 건 너무 손쉬운 확신이죠.”
결국 그 엄청난 액수의 잠재적 부가 정말로 기부금이 될 수 있는지, 또 이 부를 어떻게 활용하는 것이 가장 좋은지에 대한 논쟁은 결론에 다다르지 못했다. 하지만 테오도르 레히터만은 그 모든 것을 무릅쓰고 다가오는 여윳돈의 쓰나미를 가장 잘 활용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세상 사람들은 마음이 넓어요. 하지만 정치 권력과 관련된 자선 활동의 목표와 그 한계에 대해서는 훨씬 더 진지한 고찰이 필요합니다. 문제는 이런 거대한 이슈들은 그에 관해 이미 깊이 고민해본 사람들이 아니라면 사람들을 설득하기 어렵다는 거죠. 기부금을 올바르게 사용하기 위해서는 언론이나 공공기관들이 (매우 혼란스러운 문제 중 하나인 기후변화처럼) 온갖 종류의 복잡한 이슈들을 논의해왔듯 다양한 이슈에 대해 깊게 논의해야 합니다.”

그러니 미국의 고액 기부금의 상당 부분이 여전히 관례적으로, (전 세계적으로 볼 때) 받을 자격이 거의 없는 기관들, 즉 기부자의 모교에 가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왜냐고? 대학들은 오랜 기간에 걸쳐 관계를 활용해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데에 도가 텄으며, 이런 행태는 재정 지원을 받고자 하는 다른 주체들에게 뚜렷한 모범 사례가 되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모교에 기부하는 건 자선가에게 매우 간편한 선택이다.
이런 게으른 선택들이 향후 수십 년 동안 기부를 하려는 사람들에게 어떤 식으로든 교훈을 줄 수 있을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자선 활동은 정부의 지출에 더해 ‘추가적으로 도와주는 착하고 좋은 일’ 같은 게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 곳곳에서 종종 기부금이 부적절하거나 엉뚱한 곳에 지원되는 경우가 눈에 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자선 활동 관련 지식들을 모으고 효과를 높이기 위해 다수의 기관과 협업하는 ‘유럽 자선협회(Philanthropy Europe Association)’의 CEO 델핀 모랄리스는, 자선 활동은 자금 흐름이 완전히 다르며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한 영역이 되었다고 말한다. “정부가 납세자의 돈을 지출하려면 엄격한 절차와 면밀한 조사가 필요하죠. 세계는 지금 몇 가지 심각한 문제에 직면해 있어요. 그러나 자선가들은 정부 기관들과 달리 유연하게 자신들이 가진 자원에 투자할 수 있으며, 그 덕분에 그런 문제들을 꼼꼼하게 다루는 데 고유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거예요.”
자선 활동은 더 자유롭게 혁신적인 방법들을 시도할 수 있다. 대응 속도도 빠르며, 반대로 장기적인 투자도 할 수 있다. 민간 기부금은 정부와 같은 방식으로 쓴다 해도 어차피 정부와 같은 결과를 얻지 못한다. 물론 자선기금에도 책임은 따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정부처럼 대중에 부응할 필요는 없다.
우선순위를 정해야 할 글로벌 위기가 너무나 많은 상황에서, 그에 속하지 않은 문제들이 재정 지원을 받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민간 자선기금은 연구, 예술, 문화 등 정부 기관들의 우선순위에서 밀려났거나, 혹은 정부 예산 사용에 논란을 불러올 여지가 있어 기피되는 다른 의제들을 지원하는 데 쓰일 수 있다. 아직은 교육이나 보건, 최근 들어서는 UN의 ‘지속가능개발’ 관련 의제에 치우쳐 있는 수준이지만 말이다.
<인류애를 위해 치러야 할 대가: 자선 활동은 어쩌다 어긋났으며 어떻게 고쳐야 하는가(The Price of Humanity: How Philanthropy Went Wrong and How to Fix It)>를 쓴 에이미 실러는 그런 영역이 실제로 민간 자선기금의 지원처로 더 적합하다고 주장한다. 피터 싱어는 동의하지 않겠지만, 어쩌면 그 옛날 거액을 기부하고 도서관, 극장, 미술관, 박물관 벽 명판에 가문의 이름을 새겨온 ‘지역사회 기둥들’의 방식이 옳은 건지도 모른다. 하이엄의 말처럼, 이제는 소셜미디어가 그런 식의 과시를 더욱 매력적으로 보이게 한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는 모든 것이 수치로 평가된다. 그러니 자선 활동 역시 데이터로만 평가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자선 활동은 디지털화되면서 지역사회 내 투명성과 신뢰가 높아졌다. (지역사회에서는 한동안 자선 활동이 ‘글로벌 집중화’가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의혹을 사기도 했지만 그런 불확실성은 사라졌다.) 또 AI와 머신러닝의 최적화를 통해 놀라운 효과를 보일 수 있는, 정보 기반 맞춤형 기부 방식도 등장하고 있다.
하지만 기술 문명의 약속은 제쳐두고,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해보자. 근본적인 것이 자선 활동의 미래에도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이를테면 ‘사랑’ 같은 것. 다소 감상적이고 비과학적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에이드리언 사젠트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사젠트는 인디애나대학교 최초의 모금학 교수이자, 자선심리학 분야를 개척하고 있는 ‘지속 가능한 기부 연구소(Institute for Sustainable Giving)’의 책임자다. “기부 동기는 현재 사회과학에서 많이 연구되는 주제 중 하나죠. 하지만 어떤 유형의 사람이 기부를 하고, 그들이 기부를 할 때에는 어떤 정체성을 드러내고, 기부에 관해 그들과 어떻게 소통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논의되지 않고 있어요.”
이 말은 즉 사람들에게 단지 그들이 준 ‘돈’ ‘선물’ 혹은 ‘기부’에만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사랑에 대해, 혹은 그들이 보여준 도덕적 행동에 대해, 또 개인의 안녕 및 대의와 공동체에 대해 유대감을 가져준 것에 대해 감사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사젠트가 벌인 지난 3년간의 연구에 따르면, 이런 소통을 통해 기부금은 두 배 가까이 증가할 수 있다. “모금 분야의 종사자들은 지금까지 필요를 파악하고 기부자를 찾아내는 기술을 쌓아왔어요. 하지만 기부자가 자신이 하는 일을 어떻게 느끼는지에 대해 생각해보자는 발상을 떠올리기란 쉽지 않았죠. 사실 기부는 사람들의 기분을 좋게 하기 때문에, 기부자와 수혜자 단체 모두에게 윈윈인 행위거든요. 우리는 어째서인지 자선 활동(philanthropy)의 그리스어 어원이 ‘인류에 대한 사랑’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잊고 살았던 거예요.”
모랄리스는 자선 분야에 대한 이미지가 반드시 바뀌어야 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러한 접근법이 더더욱 중요해진다고 말한다. 그녀는 ‘미디어를 통해 대중은 기부가 빌 게이츠나 (혹은 적어도 엄청난 돈을 번 소수의 백인 남성들이나)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한다’고 말했다. 어쩌면 이 기사도 같은 함정에 빠질 수 있다. 그래서 짚어야 하는 건,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실제로는 전 세계에서 수백만 명이 정기적으로 기부를 하고 있으니까요.”
슈퍼 리치, 재단, 기관, 기업들의 기부를 모두 합쳐도 일상적인 개인들의 기부에 비하면 확실히 적은 수준이다. 바로 이 글을 읽는 당신이나, 당신 주변 사람들이 낸 돈이다. 많은 사람이 현재 인류애가 큰 위기에 처해 있다고 말하지만, 인류는 여전히 엄청난 대의명분이나 멸종위기의 판다들뿐만 아니라, 전혀 모르는 낯선 사람들을 돕고 싶어 한다.
“자선 활동은 종종 엘리트 계층의 도구로 여겨져요. 하지만 이런 인식은 자선 활동을 잘못 이해한 데서 비롯된 거죠. 수십억 달러를 내놓는 것만이 자선이 아니잖아요.” 지나드는 친구가 달리기를 더 잘하는 걸 돕기 위해 20달러를 기부하거나, 지역 학교에서 봉사활동을 하거나, 풀뿌리 운동을 지원하는 것 그 모든 게 자선 활동이라고 설명했다. “우리는 자선 활동에 대한 논의를 확장하고, 신비를 벗겨 사람들이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야 해요. 자선 활동의 핵심에는 시간, 재능, 재물, 유대감, 말을 통한 나눔이 모두 포함된다고, 누구나 자선가가 될 수 있다고 말이에요.”
Credit
- EDITOR JOSH SIMS
- TRANSLATOR 박수진
- ASSISTANT 송채연
- PHOTO 게티이미지스코리아
- ART DESIGNER 최지훈
CELEBR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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