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미술이 자꾸 미국에서 보이는 까닭은?
지난가을 이후 미국의 주요 미술관과 갤러리에서 한국의 작가나 특정한 시대를 다루는 전시가 최소 7개 이상 동시다발적으로 열렸다. 박재용 프리랜스 큐레이터가 미국에서 직접 듣고 본 이 이야기 속에는 그 놀라운 사정을 설명하기 위한 최소한의 단초들이 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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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라델피아 미술관에서 열린 <Shape of Time: Korean Art after 1989>에 전시된 오재우 작가의 ‘Let’s Do National Gymnastics!’(2011). 싱글 채널 비디오의 스틸 컷으로 한국어 제목은 ‘국민체조~ 시작!’이다. @National Museum of Asian Art, Smithsonian Institution
상상
2023년 가을 1944년생인 성능경 작가가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부채에 불을 붙였고 한바탕 소란이 일었다. 그 연유는 이렇다. 젊은 시절 성능경은 어느 미술상을 받는 자리에서 제사를 지내듯 부채에 축문을 쓰고는 마치 미술상을 받은 자신과 모든 예술가에게 죽음을 고하듯 이를 구구절절 읊더니, 마침내 불을 붙인 적이 있다. 그로부터 반세기가 지난 2023년 가을, 성능경은 당시의 퍼포먼스를 재현하며 다시 한번 부채에 불을 붙였다. 이번에는 한국의 아방가르드 작가들을 살펴보기 위한 전시 <Only the Young: Experimental Art in Korea, 1960s-1970s>가 열린 구겐하임 미술관에서였다.
노년의 작가는 민첩하게 움직였다. 제도와 규율을 거부했던 젊은 시절의 몸부림 같은 퍼포먼스가 구겐하임 미술관이라는 거대 미술 기관에 전시되어 ‘화석화’되는 것을 온몸으로 거부하는 것처럼, 마치 이 순간을 위해 오랫동안 훈련한 듯 빠르고 군더더기 없이 움직였다. 다소 천장이 낮은 구겐하임 미술관 전시장 한편을 가득 메운 관객들 사이에서 탄식이 오갔고, 작가의 돌발 행동을 예상하지 못한 큐레이터는 급히 전시 관리 요원을 부르고 소화기를 찾아 현장을 뛰쳐나갔다. 불이 다른 곳으로 옮겨붙을 새는 없었다. 대나무 살에 한지를 붙여 만든 부채가 검은 재로 변하는 건 한순간이었다. 부채가 너무 빨리 타 없어진 덕분에 심지어 화재경보기도 울리지 않았다. 순식간에 상황이 종료되자 퍼포먼스를 보고 있던 미술관 직원 몇몇은 다리가 풀려 바닥에 주저앉았고, 관객들은 누구 하나 할 것 없이 각자의 휴대전화로 어딘가에 무언가를 올리기 시작했다. 틱톡이든 인스타그램이든 왓에버. 전시의 모든 장면이 영상으로 담겨 전 세계 미술 팬들을 당혹하게 했다. 성능경 작가가 읊는 축문에 등장하는 이름들을 분석하는 유튜브 영상의 조회수가 1000만 뷰를 넘겼다. 도널드 트럼프의 이름이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전술한 건 2023년 11월,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의 전시 <Only the Young: Experimental Art in Korea, 1960s-1970s>의 일환으로 진행된 성능경 작가의 퍼포먼스 현장에서 벌어졌으면 좋겠다고 나 혼자 상상한 것들이다. 오해하지 말기를. 나의 상상은 전혀 실현되지 않았고 도널드 트럼프의 이름이 들어간 축문이 불태워지는 일도 없었다. 실제 현장에서 일어난 사건은 이렇다. 성 작가는 라이터나 성냥 대신 작은 LED 플래시라이트를 오른손에 들었고, 이렇게 말했다. “여기 통역하는 분이 계시면 이렇게 말을 좀 전해주시오. 이 부채에는 원래 불을 붙였어야 하지만, 여기는 구겐하임 미술관이라 그럴 수가 없습니다. 자, 이제 여기 불을 붙였다고 상상하시면 됩니다.” 이 말을 들은 관객들은 다정한 웃음으로 작가를 환대했다. 내 상상대로라면 다정한 웃음의 자리에는 경악과 탄식의 소리가 채워져 있어야 했다. 그 다정함에는 노년을 맞이한 작가를 향한 존경과 존중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반대편에는 권위 넘치는 시상식에서 제사 축문을 읽고 불을 붙였던 그 시절의 아방가르드적 패기를 다시 한번 마주하길 기대했던 사람들의 좌절된 아쉬움도 있었다. 불타는 부채를 흔들며 알 수 없는 언어를 중얼거리는 작가의 모습은 숙련된 미국의 현대미술 관객에게도 충격이었을 것이다.

미국 국립아시아미술관(NMAA)의 현대미술관에서 열린 박찬경 작가의 전시 <Gathering>의 외관. 박찬경은 NMAA가 개관 100주년을 맞아 새롭게 연 현대미술 갤러리의 첫 번째 작가로 선정됐다. @Yoo Yongkuk Courtesy Pace Gallery
H마트의 7층에서 놀라다
맨해튼 코리아타운의 H마트 건물에선 누구도 후원하지 않은 한국 미술 전시가 열렸다. 이번 이야기는 상상이나 백일몽이 아닌,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꼬박 13시간을 날아가 도착한 뉴욕에서의 첫 일정은 맨해튼 32번가 코리아타운의 한 건물 7층에서 열린 한국 미술 전시 오프닝이었다. “서울에서 여기까지 날아와서는 첫 일정이 한국 미술 전시 오프닝 참석이라니, 좀 이상한 거 아닌가요?” 일회용 잔에 든 한국 전통주를 홀짝이며, 뉴욕에서 활동하는 코리안 아메리칸 작가 친구(라기엔 우린 만난 지 몇 분 되지 않은 사이였다)가 사뭇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듣고 보니 과연 그러했다. “저도 처음엔 이럴 생각이 아니었는데요, 막상 뉴욕행 비행편을 끊고서 보니 미국 여기저기서 온통 한국 미술 전시가 열리고 있어 어쩔 도리가 없었어요!” 전시 <사랑>은 좀 특별했다. 개별 작품은 둘째치고, 대다수의 작품이 벽에 걸린 평면 회화 작품으로 이뤄진 전시 자체는 나의 개인적인 취향과는 크게 달랐으나, 공공기금 지원이나 상업 갤러리의 후원 없이 기획자들이 자발적으로 꾸린 전시가 코리아타운 그것도 한국인들의 소울이 집합하는 ‘H마트’ 건물에서 열린다는 것만으로 호기심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H마트’(구 한아름마트)는 한국 식료품을 주로 유통하는 미국의 할인점으로 미국의 한인들이 신라면과 비비고 김치를 사는 곳이다. 재패니즈 브렉퍼스트의 보컬인 코리안-아메리칸 송라이터 미셸 자우너의 저서 <H마트에서 울다> 등을 통해 한국 땅에 사는 한국인들에게도 익숙한 브랜드가 되었다.
이들은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엄청난 일을 꾸민 걸까? 전시할 공간 찾기가 힘들어서, 집을 임시로 비우고는 거기서 전시를 진행하는 ‘아파트 갤러리’가 횡행하는 뉴욕에서 이렇게나 널찍한 공간을 빌리다니! 전시가 성사된 건 한국 미술과 관련된 프로젝트를 진행할 공간을 찾는다는 소식을 들은 공간 소유주가 꽤나 넉넉한 인심을 베풀었기 때문이라는데, 맨해튼 32번가의 건물주가 한국 미술의 부흥기가 도래했음을 감지하기라도 한 걸까? 실제로 전시는 매우 기괴한 양상으로 번졌다. 뉴욕에 사는 코리안 아메리칸 아트 피플과 (한국에서 이주한) ‘트랜스플랜트’ 뉴욕 미술인 그 외의 다양한 ‘멋진 한국인들’을 마주치고 싶어 들른 미국인 관객으로 오프닝은 발 디딜 틈 없이 붐볐다. 그 광경은 미국에서의 한국 미술이 놓인 상황을 보여주는 거대한 시각적 비유처럼 보였다. 서로 함께하는 듯 함께하지 않는 것 같은 한국계 미국인과 미국에서 사는 한국인들, 그리고 이 와중에 한국과 관련된 것이 멋지다고 생각해 무엇이든 접하고 싶어 찾아온 다양한 인종의 미국인들이 한자리에 모여 온통 이상하고 흥분된 열기를 뿜어냈다.

뉴욕 페이스 갤러리 본점에서 열린 <Yoo Youngkuk: Mountain Within> 전시의 설치 전경. @Yoo Yongkuk Courtesy Pace Gallery
한국 미술의 동시다발
아시아계 미국인 큐레이터 C는 의아함을 감추지 못했다. “대체 왜 이렇게 많은 한국 미술 전시가 한 번에 열리는 걸까요? 그건 저도 의문이에요. 조만간 다른 미술관에 가서 전시 후원을 누가 했는지 확인해볼까 합니다.” 미술관 큐레이터인 C는 자신도 한국 작가와 함께 전시를 꾸려 오픈한 바 있다. 그럼에도 이렇게 비슷한 시기에 여러 미술관이 한국 미술 전시를 열 줄은 몰랐다고 했다. 우리는 함께 막연한 추측을 이어갔다. 지금, ‘한국’이 미술관과 박물관 전시의 흥행에 도움이 되는 키워드여서는 아닐까? 미국 미술관들은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중 엄청난 재정 적자로 운영상 어려움을 겪었다. 엔데믹으로 접어든 지금도 팬데믹 이전 관객수와 입장료 수입을 회복한 곳은 많지 않은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팬데믹으로 미뤄뒀던 오프라인 전시를 다시 열기 시작했을 때 어떤 전시부터 먼저 열려고 했을까? 돈을 벌 수 있는 전시가 아니었을까? 경제적인 이유로 자연스럽게 ‘한국’이라는 국적이 붙은 프로젝트에 우선순위를 둔 건 아닐까?
누군가는 국뽕이라며 화를 내겠지만, 실제로 서구에선 요즘 ‘한국’을 붙인 문화상품이나 행사들이 꽤나 성공하고 있다. 물론 ‘K’의 근본은 음악이다. 지난해 가을 런던 빅토리아 앤 앨버트 뮤지엄에서 개막한 <Hallyu! The Korean Wave>는 전시 첫날부터 입장권이 매진되는 등 엄청난 흥행 성적을 거두었다. K팝을 중심으로 한국을 소개한 이 전시는 현지에서 대체로 좋은 평가를 받았다. 영국 신문 <가디언>의 비평가 조너선 존스는 심지어 이 전시를 “눈부신 역사의 리믹스”라고 칭찬했다. 런던 시내에서 전시 로고가 찍힌 에코백을 들고 다니는 게 유행할 정도였다고 하니, ‘한국’과 관련된 전시는 뮤지엄 업계에서 일종의 흥행 보증수표로 여겨지게 된 건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지금 미국의 미술관이나 박물관 입장에서 한국 미술 전시는 전시 내용이 무엇이든 한 번쯤 시도해볼 만한 프로젝트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 건 아닐까?
2023년 가을 미국 전역의 한국 미술 전시를 되돌아보면 누군가가 ‘T.O.T’(Time On Target)로 폭격한 것만 같다. 주요 미술관, 박물관에서 한국 미술과 관련한 전시가 놀라울 만큼 동시에 열렸다.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한국 아방가르드 미술을 다루는 <Only the Young: Experimental Art in Korea, 1960s-1970s>가 9월 초 개막했고, 10월 말에는 좀 더 동시대에 가까운 작품들을 위주로 기획한 필라델피아 미술관의 <The Shape of Time: Korean Art After 1989>와 조선시대 채색화를 다룬 샌디에이고 미술관의 <Korea in Color: A Legacy of Auspicious Images>를 개막했다. 11월 초에는 뉴욕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에서 한반도의 유물과 현대 미술품을 아우르는 <Lineages: Korean Art at the Met>이, 12월 초에는 덴버 박물관에서 분청사기를 다룬 전시 <Perfectly Imperfect: Korean Buncheong Ceramics>가 문을 열었다. 무려 21개의 미술관과 박물관으로 이뤄진 워싱턴의 스미스소니언 인스티튜트는 미국 국립아시아박물관(NMAA) 개관 100주년을 맞아 박찬경 작가의 개인전 <Gathering>을 열었고, 서울에도 지점을 낸 페이스 갤러리의 뉴욕 본사에서는 무려 피카소의 드로잉북 전시와 함께 한국 추상미술의 거장으로 알려진 故 유영국(1916~2002) 작가의 해외 첫 개인전인 <Mountain Within>이 열렸다. 그러니 나와 큐레이터 C씨의 호들갑에는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재팬 소사이어티에서 열린 <Out of Bounds:Japanese Women Artists in Fluxus> 전시의 전경. 백남준의 아내로 우리에게 더 잘 알려진 구보타 시게코, 오노 요코, 사이토 다카코, 시오미 미에코 등 플럭서스 여성 작가들의 작품이 맥락에 맞게 전시되었다. ©Adrianna Glaviano. Courtesy of Japan Society
유영국
또 다른 한 장면. 페이스 갤러리에 2층에 들어서자, 한국에서도 한자리에 놓고 보기 힘들었던 유영국 작가의 아름다운 유화 작품들이 눈앞에 펼쳐졌다. 함께 살아 숨 쉬는 작가들이 만든 동시대 미술이 아닌 것에는 대체로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취향임에도, 뉴욕에서 만난 유영국 작가의 작품들은 좀 달라 보였다. 한국에서 만날 수 있었던 그의 작품들이 주로 무겁고 어두운 색 위주라서 그랬던 것인지, 좀 더 산뜻한 색채 위주로 구성된 것 같은 페이스 갤러리에서의 작품 구성은 지금까지 만나왔던 그의 작품과 사뭇 다른 느낌을 안겨주었다. 전시장에는 스무 점이 안 되는 작품들이 배치되었는데, 신기하게도 작품의 수가 마치 서른 점은 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대체 그 비밀이 무엇일까 너무 궁금한 바람에, 함께 전시를 보던 홍보 담당자 클레어에게 이 전시의 작품 배치는 누가 한 건지 따로 물어보기까지 했다.
한국에 사는 미술 관계자나 미술 애호가라면 적어도 한 번쯤 이름을 들어보았을 유영국 작가지만, 놀랍게도 페이스 갤러리 뉴욕 본점에서의 전시가 한국 밖에서 치르는 첫 개인전이었다. 갤러리 2층에서 열린 이 전시는 한 층 위에서 피카소의 드로잉 수첩 14점을 선보인 전시와 함께 열렸는데, 이는 갤러리 측에서 유영국을 미술사에서 중요한 작가로 포지셔닝하기 위한 노력이라고 볼 수 있으며, 세상을 떠난 대가에 대한 존중의 표시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현지의 반응이 어떤지 살펴보기 위해 꽤 열심히 인터넷을 뒤졌지만, 뉴욕에서 활동하는 비평가나 예술 매체에서는 이 전시에 대해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종종 꽤나 가혹한 곳이 뉴욕의 미술계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 이름만으로도 존경심 비슷한 걸 품었던 유영국 작가가 뜨겁게 환대받지 못 하는 모습을 보며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었다. 실제로 모아놓고 보니 놀랄 만큼 좋은 작품들이었는데도 말이다. 어쩌면 페이스 뉴욕을 자주 오가는 미국인들은 비슷한 작품을 본 적이 있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들이 자주 봐왔거나 이미 소장 중인 20세기 중후반의 평면 추상미술과 크게 다를 것이 없다고 여겼을 수도 있다. 유영국이 그들과 어떻게 다르고 특별한지를 설득해 내는 것이 남겨진 사람들의 몫이다.
당신의 세금
자, 이제 조금 더 불편한 얘기를 할 때다. 미국의 한국 미술은 대체로 우리의 세금을 먹고 자란다. 지금 미국에서 열리는 여러 한국 미술 전시의 후원처를 확인해보겠다던 큐레이터 C는 미국의 미술관이나 박물관에서 전시가 열리기 위해선 의지와 욕망, 돈의 삼박자가 맞아떨어져야 한다고 알려주었다. 우선 큐레이터가 관심을 두는 주제나 작가로 전시를 만들기를 바라는 예술적 의지가 있어야 하고, 이런 의지를 통해 구현되는 전시를 개최함으로써 돋보이고자 하는 미술관이나 박물관의 욕망, 무엇보다 이런 의지와 욕망을 실현시킬 수 있는 ‘건강한 자금 지원 환경’(미국의 경우 이는 대부분 미술관 후원자들이나 외부 기관의 펀딩)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지금 미국에서 열리고 있는 대규모 한국 미술 전시들의 후원자 목록에는 비슷한 이름이 자주 등장한다. 문화체육관광부, 그 산하 기관인 한국국제교류재단과 예술경영지원센터, 그리고 종종 삼성문화재단도 이름을 내민다. 이제 우리의 세금은 일회성 전시에만 쓰이는 것을 넘어 좀 더 장기적으로 한국 미술과 관련한 일을 할 사람들을 고용하는 데도 쓰인다. 2023년부터 임명을 시작한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한국 미술 담당 큐레이터의 채용 역시 한국국제교류재단과 삼성문화재단의 후원을 통해 이뤄졌다. 스미스소니언 국립아시아예술박물관과 클리블랜드미술관에도 한국국제교류재단이 채용 비용을 분담하는 한국 미술 담당 큐레이터가 탄생했다. 그러나 이것을 두고 ‘다 세금으로 벌인 일’이라고 실망할 필요는 없다. 그렇게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국가들이 대다수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미국에서, 이제 한국 미술은 큐레이터의 예술적 의지와 미술 기관의 욕망이 일치하는 영역 안에 자리 잡아가고 있다고 해석하는 편이 맞다. 다만 이런 변화의 극히 일부가 우리의 세금 덕일 뿐이다.
한국 미술은 한국적이기를 조금은 그만두어야 할지 모른다. 필라델피아 미술관에서 열린 <The Shape of Time: Korean Art after 1989>에 대해선 한국에 돌아온 지금도 아직 풀리지 않는 질문이 남아 있다. 이 전시는 왜 굳이 1989년을 한국 미술의 분기점으로 삼았을까. 전시 소개 자료에 따르면, 1989년은 한국 정부가 처음으로 자유로운 해외여행을 허용한 해이자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해다. 이런 시각은 아주 흥미롭다. 이건 분명히 한국인의 시각이라기보다 한국을 외부에서 바라보는 외국인의 시각에 가깝기 때문이다. 한국에 사는 한국인들이 쓴 한국 미술사 서술을 보면, 독재가 끝난 1987년을 미술사의 분기점으로 보는 경우가 있다. 1987년에 독재가 끝났고, 1988년에 서울 올림픽이 열렸으며, 1989년에 해외여행이 자유화되었기에 해당 시기에 수많은 것이 반드시 바뀌었다. 실제로 필라델피아미술관의 한국 미술 전시는 마치 한국어를 잘하는 미국인이 전달하는 한국의 미술사 같은 느낌이었다. 만약 같은 주제나 제목으로 서울에 있는 어느 미술관에서 전시가 열렸다면 분명 작가 선택이나 전시 구성이 조금은 달랐을 것이다.
하지만 평일 오후에 미술관을 가득 채운 필라델피아의 시민들은 하나같이 전시장에 놓인 작품 하나하나를 뚫어져라 감상하는 모습이었다. 그 가운데 한국 현대사를 잘 모르는 것처럼 보이는 어린 한국계 미국인 자녀를 데리고 전시장을 찾은 교민들의 모습도 보였다. 광주 망월동 5.18 묘역에 남겨진 실종자들의 초상 사진을 기록한 노순택 작가의 다큐멘터리 작품 앞에서 아이들이 이 작품이 무엇을 가리키는 것인지 묻자, 이런 대답이 들렸다. “네가 태어나기 전에 한국에서는 무서운 일이 있었어. 영화 <Taxi Driver> 기억나지? 이 사진은 그때 사라진 사람들을 찍은 거란다.” 어색한 한국어로 작품에 대해 묻던 청소년 관객에게 그곳에 전시된 작품들은 한국 미술이기 전에 부모님의 고향인 한국의 현대사였고, 지금까지 몰랐던 새로운 지식이었다. 그게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한국 미술과 한국의 역사는 다른 것이다. 진료는 의사에게 약은 약사에게. 역사는 박물관에서 미술은 미술관에서. 그런 의미에서 어쩌면 이런 관객들에게 먼저 보여주어야 할 것은 ‘한국에 발 딛고 사는 사람들이 보기에 한국적인 것’은 아닐 것이다.

맨해튼 코리아타운의 H마트 건물 7층에서 열린 전시 <사랑>의 오프닝에는 수많은 소위 ‘미국-미국인’들이 찾아왔다. ©KANA
‘한국’적인 것
세계적이라는 것은 결국 보편성의 획득이다. 하나의 문화가 자기가 태어난 곳을 벗어나 좀 더 보편적인 내러티브를 얻고 새로운 관객을 설득하는 순간은 언제나 역설적이다. K팝이 그랬고, K무비, K드라마, K푸드 역시 그랬다. 한국어를 잘 못하는 해외 팬들이 한국에서 온 뒤죽박죽 음악을 즐기기 시작하면서 가요는 ‘K팝’이 되었다. 그들이 부르기 전까지 K팝은 없었다. 마찬가지로 한국에서는 이성애 팬덤을 공략하기 위한 특징으로 여겨지는 깔끔하게 단장한 한국의 보이 그룹이나 걸 그룹의 모습에서 전형적 남성성이나 여성성이 아닌 퀴어적 특성을 발견한 성소수자들이 (창작자가 의도한 바를 떠나) 이 K팝이라는 음악이 더 전 지구적이고 보편적인 음악으로 자리 잡는 데 기여했다는 점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미국(혹은 또 다른 나라)에서 소개되는 한국 미술 역시 좀 더 보편적인 전 지구적 미술사의 일부가 되려면 일종의 ‘K팝 모먼트’의 역설을 겪어야 할지 모른다. 즉 한국 미술이 받아들여지는 순간의 한국 미술은 우리가 생각하는 한국적인 형태가 아닐 것이라는 얘기다. 그리고 그건 어쩌면 더 이상 우리가 한국적이기를 그만둬야 한다는 조언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
일본인 동료가 만든 전시는 이미 일본적이기를 그만두고 있었다. 뉴욕의 미국인 페인터 동료들에게 1960~1970년대 한국 아방가르드 미술 전시를 보러 구겐하임에 간다고 했더니, 일본의 문화원 격인 ‘재팬 소사이어티’에서 열리는 1960~1970년대 일본 아방가르드 전시도 함께 보라고 추천했다. 심지어 그 전시를 기획한 큐레이터의 연락처까지 받았다. 구겐하임의 한국 아방가르드 미술 전시가 다루는 것과 정확하게 같은 시기에, 일본 아방가르드 미술을 다루는 전시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Out of Bounds: Japanese Women Artists in Fluxus>라는 전시는 제목에서부터 그 바운더리를 명확하게 설정하고 있다. 백남준을 비롯한 수십 명의 작가가 활동했던 1960~1970년대 플럭서스 운동에 동참했던 ‘일본인 여성 작가’만을 콕 집어 그들의 작품과 당시 활동에 관련한 아카이브 자료를 선보였다. 이 전시는 정확히는 일본 아방가르드 미술에 관한 것이라기보다 일본이 답답해 뉴욕까지 건너와 플럭서스 운동에 동참한 일본인 여성 작가들에 대한 것이었다. 그러다 보니, 애초에 일본적인 무엇인가를 다루어야 할 부담은 내려놓은 채 이미 세계 미술사에 기입된 플럭서스 운동 안에서 지금까지 따로 다뤄지지 않았던 일본인 여성 작가들의 활동에 집중할 수 있었다.
전시를 기획한 요시토모 미도리 큐레이터에게 대체 얼마나 오래 이 전시를 준비한 거냐고 묻자, 그녀는 겸손한 미소와 함께 이렇게 답했다. “우리는 비교적 짧은 1년 반이라는 시간 동안 이 전시를 준비했습니다. 다행히 재팬 소사이어티에서 멀지 않은 뉴욕현대미술관(MoMA)에 플럭서스 컬렉션이 있어 전시 준비를 더 수월하게 진행할 수 있었죠.” 하지만 재팬 소사이어티 로비에 놓인 미도리 씨의 책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녀는 이미 2005년에 이 전시의 주제와 연결되는 두툼한 연구서를 미국 럿거스대학교 출판부를 통해 발간했다. 그러니 이 전시는 그녀의 머릿속에서 적어도 15년 이상 준비되어왔던 셈이다. 아직은 ‘한국은 이렇답니다!’와 ‘한국에도 이런 게 있(었)답니다’를 벗어나지 못한 한국 미술 전시들을 보며 아쉬움을 감추지 못하던 차, 플럭서스에 동참한 일본 여성 작가들을 그들의 작품과 충실한 아카이브로 담담하게 보여주는 전시를 보고선 다소 얄미움 섞인 부러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필라델피아 미술관 <Shape of Time: Korean Art after 1989>에 전시된 서도호 작가의 작품 ‘Seoul Home/Seoul Home/Kanazawa Home/Beijing Home/Pohang Home/Gwangju Home/Philadelphia Home’(2012~present). @Philadelphia Museum of Art
‘K’적인 것
박찬경 작가는 이름과 국적만 한국인인 아시아인 미술가다. 박찬경의 개인전 <Gathering>은 작가가 미국의 미술 기관에서 여는 첫 대규모 개인전이다. 작가는 워싱턴의 미국 국립아시아미술관(NMAA) 개관 100주년을 맞아 새로 설립된 현대미술 갤러리에서 전시를 선보이는 첫 번째 작가로 선정되었고, 2024년 10월까지 진행되는 이번 전시는 작가가 미국 미술 기관에서 여는 첫 번째 대규모 개인전이다. 전시를 기획한 아시아계 미국인 큐레이터 캐럴 허에게 지난 100년을 마무리하고 다음 100년을 자리매김하는 뜻깊은 자리에 한국 작가를 초대한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묻자, 그녀는 국립아시아박물관의 큐레이터다운 답변을 들려주었다.
“제가 박찬경 작가를 선택한 건 단지 그가 한국인 작가라서가 아닙니다. 그의 작품들은 한국이 겪은 역사도 일부 다루고 있지만, 단지 그것을 넘어서서 아시아라는 더 넓은 지역의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는 생각의 지점을 제공합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지역이나 인종을 넘어 사유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실제로 박찬경의 많은 작품의 이면에는 한국이 겪은 냉전이나 식민지 경험으로 인한 상처나 트라우마가 담겨 있지만, 종종 시각적으로도 아름다운 그의 작품은 방사능으로 인한 재앙이나 전쟁에서 처할 수 있는 한계 상황처럼 반드시 한국의 역사에만 기대지 않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니 미국의 국립아시아박물관에서 전시를 기획하는 큐레이터 입장에서, 박찬경은 한국인 미술가라기보다 아시아인 미술가에 더 가깝게 여겨지는 것이다.
2024년, 메트로폴리탄미술관은 이불 작가에게 공간을 내어준다.
구겐하임미술관의 안전 규정에 걸릴까 불을 붙이지 못한 성능경 작가의 부채, 코리아타운 H마트 7층에서 열린 젊은 한국 미술 전시, 한국에선 자연스레 거장으로 추앙되는 유영국 작가가 미국에서는 예외 없이 이방인 취급을 당하는 상황, 내가 낸 세금으로 운영되는 정부 기금이 미국에서의 한국 미술 전시 지원에 착실히 쓰이는 모습, 한국어 잘하는 미국인이 알려주는 한글 교재 같은 느낌의 필라델피아미술관의 한국 미술 전시, 이미 쌓아놓은 역사가 있어 얄밉게도 일본적인 것에 집착할 필요가 없는 일본 아방가르드 미술 전시, 한국인 작가로서 미술을 만들었지만 아시아인 미술가로 해석된 박찬경 작가의 전시를 관람하며 정신없이 2주를 보내고 서울로 돌아오자, 메트로폴리탄미술관의 보도자료가 날아와 있었다. 2024년 컨템퍼러리 커미션 작가를 발표하는 보도자료였다. 메트로폴리탄미술관의 여러 사이트에 전시될 작품을 의뢰받은 영광스러운 이름 중에 이불의 이름이 보였다. 2024년 가을, 한국인 미술 작가 이불은 메트로폴리탄미술관 전면의 파사드에 놓을 새로운 조각 작품 4점을 선보인다. 이불 작가와 함께 각각 미술관의 정원과 실내 홀에서 조각과 서예 작품을 선보일 다른 두 작가는 코소보 출신 작가 페트릿 할릴라이와 대만 작가 통양쯔로 정해졌다. 이건 미국에서 한국 미술을 앞으로 더 많이 만나게 될 거라는 모종의 신호탄일까, 아니면 한국 미술이 한국적이기만 한 모습을 조금은 그만 보여주기 시작할 계기 가운데 하나가 될까. 두둥! 나는 한국 미술의 미래를 예측할 수 없다. 그러나 이것만은 확실하게 알 수 있다. 대문자 K를 앞에 붙인 음악이나 영화가 한국에서, 한국인이 만든, 한국의 것이라는 틀 밖에서 먼저 받아들여졌던 것처럼 한국 미술 역시 그럴 것이다.
Credit
- EDITOR 박세회
- WRITER 박재용
- PHOTO Colleen Dugan
- ART DESIGNER 김동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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