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리스 챈이 그리는 천년의 세계
자신의 이름을 붙인 월리스 컷으로 하이 주얼리 업계에서 종교적 추앙을 받아온 월리스 챈은 자신이 현미경으로 보던 작은 세계를 건축적 스케일의 조각으로 다시 만들어내고 있다. 천 년이 지나도 변치 않을 영원의 재료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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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작품 'Rebirth'(2026) 앞에 서 있는 월리스 챈의 모습. ©Tian Fangfang
1987년, 월리스 챈은 정밀한 계산과 패싯 커팅, 360도 음각을 결합한 기법을 처음 세상에 선보였다. 투명한 돌 뒷면에 새긴 단 하나의 상에서 신비로운 네 겹의 이미지가 떠오르는 ‘월리스 컷’이다. 자신의 이름을 딴 이 기법은 그를 세계적인 주얼리 아티스트의 반열에 올리기에 충분했다. 보석 세팅 기법과 옥 가공, 특히 티타늄이라는 새로운 소재를 다루는 영역에서 첨단을 이끌던 그는 2021년 <Titans> 이후 조금씩 손바닥 안의 세계를 떠나기 시작했다. 주얼리 세공의 기법들을 거대한 조각에 응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는 지난 5월 산타 마리아 델라 피에타 성당에서 개인전 <Vessels of Other Worlds>를 열었다. 2021년 <Titans> 이래 네 번째로 베네치아를 찾은 그는 성당 중앙에 탄생과 성장, 재생을 상징하는 세 개의 성유 그릇을 놓았다. 그 뒤편 제단에는 삼면화처럼 배치된 세 개의 스크린이 설치됐고, 화면에는 7월 롱뮤지엄에 설치될 초대형 성유 그릇들이 중국의 작업실에서 실시간으로 비춰지고 있었다. 그때 스크린 속에 있던 본체가 7월 18일 상하이의 롱뮤지엄에서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상하이를 찾아 7m, 8m, 10m에 이르는 거대한 성유 그릇들의 본체를 보고 난 뒤 그와 이야기를 나눴다.
베네치아에서 열린 동명의 전시에는 ‘Birth’ ‘Growth’ ‘Rebirth’ 세 작품이 각각 1.02m, 1.38m, 1.46m크기로 제작되어 전시됐다. ©Federico Sutera
INTERVIEW - Wallace Chan
」베네치아에서 열린 <Vessels of Other Worlds> 이후 두 달 만이다. 그곳에서 1.5m 정도였던 세 개의 성유(聖油) 그릇이 롱뮤지엄에서는 7m, 8m, 10m로 커졌다. 새로운 스케일에서 가장 놀라웠던 것은 무엇인가?
나는 만든 사람이다. 치수도 구조도 무게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러나 작품이 관객과 마주했을 때, 스케일이 물리적인 양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스케일은 몸을 둘러싼 공기를 바꾼다. 베네치아에 전시한 세 그릇은 거의 태아와 같았다. 역사와 침묵으로 가득 찬 성당 안에 놓여 있었고, 그 존재감은 보다 내면적이고 은밀했다. 상하이에서는 더 이상 바라보기만 하는 대상이 아니다. 거의 건축에 가까웠다. 이 정도가 되니 작품이 스스로 주변을 자신만의 기후로 만들어내기 시작한다. 가장 마음이 움직였던 것은 사람들이 성유 그릇 앞에서 그토록 조용해진다는 사실이었다. 많은 이들이 걸음을 늦추고, 고개를 들어 올려다보며 고요히 거닐었다. 어떤 사람들은 ‘Growth’(관객이 조각 안으로 들어설 수 있는 작품이다) 안으로 들어갔다가 달라진 얼굴로 나왔다. 마치 작품이 시간과 자아에 대한 감각을 조정해준 것처럼. 놀라웠던 것은 이 스케일에서 작품이 오히려 더 신체적이고 인간적으로 다가왔다는 점이다.
이 프로젝트는 롱뮤지엄의 왕웨이 관장이 당신의 주얼리를 수집하면서부터 5년에 걸쳐 형태를 갖춰온 전시로 알고 있다. 롱뮤지엄이라는 물리적 조건과 왕 관장과의 오랜 관계는 최종 형태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
왕 관장이 내 주얼리를 수집하기 시작한 순간, 그는 가장 내밀한 스케일에서 내 작업 세계로 들어온 셈이다. 아주 작은 한 점 안에도 구조와 빛, 시간과 정신 세계가 담길 수 있다는 것을 그는 이해하고 있었다. 여러 해에 걸쳐 우리의 대화는 몸에서 공간으로, 주얼리에서 조각으로, 수집에서 하나의 여정을 상상하는 일로 확장됐다. 롱뮤지엄은 그 여정에 물리적인 몸을 부여했다. 다만 나는 커다란 미술관 안에 커다란 조각을 덩그러니 놓아두고 싶지 않았다. 공간 자체가 작품의 일부가 되어야 했다. 동선과 다음 작품까지의 거리, 이 모든 요소가 전시의 재료가 됐다.
‘주얼리 작가’에서 ‘조각가’로의 이동은 확장인가, 처음부터 연속된 실천이었나?
연속된 실천이다. 반경이 넓어졌을 뿐이다. 원석을 다루던 시절에도 나는 장식만을 생각하지 않았다. 공간과 빛, 구조와 착시, 시간과 몸을 생각했다. 보석은 손바닥 안에 들어오지만 그 안에는 온전한 세계가 존재한다. 달라진 것은 관객이 들어오는 방식이다. 주얼리에서 만남은 응축돼 있다. 눈이 작품 안으로 들어가고, 몸이 그것을 쥔다. 대형 조각에서는 관계가 바깥으로 열린다. 관객은 주위를 걷고, 아래에 서고, ‘Growth’에서는 작품 안으로 들어간다. 보석 안에 있던 세계가 관객이 걸어 들어갈 수 있을 만큼 커진 것이다.
2001년 승려 생활을 마치고 아무것도 없이 옥상에서 콘크리트 조각을 시작했을 때의 감각은 지금의 이 10m짜리 티타늄 구조물과 어떻게 이어지나?
수도 생활을 마친 뒤 나는 '무(無)'로 돌아갔다. 그것은 일종의 자유이기도 했다. 당시 나는 거칠고 무겁고 원시적인 콘크리트를 다루며, 창작이 완벽한 조건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배웠다. 창작은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무언가를 드러나게 하려는 의지에서 시작된다. 물론 지금은 엔지니어와 팀이 있고 수천 개의 부품과 수년의 계획이 있다. 그러나 10m짜리 티타늄 앞에서도 나는 여전히 무에서 시작하고 있다고 느낀다.
당신은 하이 주얼리 세계에서 티타늄을 가장 활발하게 사용한 아티스트 중 하나다. 티타늄이 다루기 어려운 기술적 이유와, 티타늄을 8년이나 홀로 연구하게 한 동력이 궁금하다.
티타늄은 완고하고 단단하다. 녹는점이 1700℃에 달하고, 굽혀도 원래 형태로 돌아가려는 성질이 대단히 강하다. 그래서 티타늄은 정복하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이해하며 서로의 리듬을 찾아가야 한다. 티타늄과 나의 관계는 탱고에 가깝다. 서로에게 몸을 내어주고, 쫓고 또 쫓긴다. 그 정도의 열을 견디면서 주형(鑄型)이 되어줄 재료를 찾는 일, 거기에 조각을 새기고 특유의 영롱한 발색을 얻어내는 일은 더더욱 어렵다. 그 복잡성과 소요되는 시간을 생각하면 예술에서 티타늄을 좀처럼 쓰지 않는 이유를 충분히 납득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평생 지향한 것은 시간의 시험을 견디는 작품을 만드는 일이었고, 티타늄은 영원에 가장 가까운 재료다. 인체 안에 들어갈 만큼 작아질 수도, 로켓이 되어 우주로 갈 만큼 커질 수도 있다.
‘Growth’에 들어가면 볼 수 있는 거울 내부는 '월리스 컷'을 건축적 스케일로 옮긴 듯하다. 보석 속 착시를 몸이 통과하는 공간으로 확장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나는 1973년 원석 조각가로 출발했고, 내 세계는 그동안 대부분 현미경 아래에서 펼쳐졌다. 이제 나는 현미경 아래에서 본 만화경 같은 세계를 기념비적 크기의 조각으로 옮기고 있다. 그것은 관객이 내 세계로 들어오기를 바라는 문제이기 이전에, 나 자신이 늘 빛과 형태와 착시로 지어진 그 세계 안으로 걸어 들어가고 싶었기 때문이다.
오랜 기간 불교 수행을 거친 예술가가 왜 가톨릭의 성유 도상과 히에로니무스 보스의 <쾌락의 정원>을 겹쳤나?
베네치아의 한 성당에서 돌에 새겨진 세 개의 기름 그릇을 봤고, 그 이미지가 남았다. 곧 그 그릇이 가톨릭만의 이미지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다. 문화와 종교를 가로질러 그릇은 축복과 의례, 변용과 통과에 연결된 형태로 거듭 나타난다. 나는 이 도상을 가져와 나 자신의 믿음 체계를 통해 다시 지어보고 싶었다. 이후 이 아이디어가 탄생과 성장, 재생을 품으며 발전했고, 보스의 환상적 에너지를 흡수했다.
상하이 전시에는 상당한 규모의 하이 주얼리 섹션도 포함돼 있다. 미터 단위의 조각과 몇 센티미터 크기의 브로치를 한 공간에서 대화하게 한 이유는 무엇인가?
큰 스케일로 작업한다는 것이 단지 무언가를 더 크게 만드는 일은 아니다. 기념비적인 것은 여전히 미시적인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나사 하나, 톱니 하나, 작은 곡선 하나, 한 줄기 빛, 모든 디테일이 생명을 품어야 작품은 더 큰 몸이 될 수 있다. 주얼리는 매우 내밀하다. 피부에 닿아 존재하고, 몸과 함께 호흡하며, 사람이 자신의 현존을 느끼는 방식을 바꾼다. 기념비적 조각에서는 몸이 경험의 일부가 된다. 자신의 크기와 호흡, 취약함을 느끼게 된다. 작품 앞에서 아주 작아진 것처럼 느낄지 모르지만 바로 그 때문에 지각은 오히려 커진다. 결국 나는 같은 질문을 다른 차원으로 옮기고 있을 뿐이다. 주얼리에서는 돌 안에 세계를 짓고, 조각에서는 관객의 몸이 그 세계로 들어오게 한다.
아직 만들 것이 많아 회고전이라 부르기를 주저한다고 말했다. 무엇을 더 만들고 싶은가?
방향은 그대로다. 나는 나보다 오래 살아남을 작품을 계속 만든다. 나는 느린 예술에 헌신하는 사람이다. 한 작품에 몇 해, 때로는 10년 이상이 걸리기도 한다. 언젠가 우리 중 누구도 남아 있지 않을 때 이 작품들은 계속 존재할 것이다. 어쩌면 다른 형태의 지적 생명이 던지는 질문에 답하며, 우리가 누구였고 무엇을 믿었는지를 증언하는 존재가 될지도 모른다. 천 년을 견디는 작품을 만드는 데는 큰 비용이 든다. 그러나 정말로 천 년을 견뎌낸다면 그 비용은 하루 커피 한 잔 값보다 적어진다. 내게 정말로 비싼 것은 빠른 예술이다. 시간과 재료와 노동을 소모하고서 10년, 50년 뒤에 사라져버리는 예술 말이다. 내가 어떤 작품에 스스로를 온전히 바친다면 그것은 나를 넘어 멀리 갈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그것들은 진정으로 ‘다른 세계의 그릇’이 된다.
Credit
- PHOTO courtesy of Long Museum and Wallace Chan
- ART DESIGNER 최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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