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영웅'은 어떻게 트랜스미디어 히어로가 되었나
바야흐로 모든 것이 경계를 넘나드는 시대다. 세대의 경계도, 지역의 경계도, 매체의 경제도 넘나드는 트랜스미디어 스타 임영웅의 어떤 면모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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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랜스미디어 시대
2026년 여름, 임영웅은 산골에서 삼겹살을 굽고 있었다. 가마솥 뚜껑을 뒤집어 불판으로 썼고, 텃밭에서 뜯은 상추로 비빔밥을 만들었다. SBS <산골총각 영웅>. 화요 예능 시청률 1위를 3주 연속 지켰고 넷플릭스 국내 TOP 10에 올랐다.
6월 30일 방송분에서 그는 의외의 얘기를 했다. 동료 뮤지션 조째즈에게 ‘모르시나요’ 같은 히트곡을 가진 기분이 어떤지 궁금하다고 말한 것이다. 임영웅은 “지금 팬분들이 제 노래를 좋아해 주시지만, 형처럼 히트곡을 가진 가수가 아니기 때문에 막연하게 형의 기분이 궁금했다”고 덧붙여 모두를 놀라게 했다. 임영웅은 “뻔하지 않게 가야 하는데 계속 같은 것만 하는 것 같더라”고 토로했다. 조째즈는 “정말 놀랐다. 전화 끊고 나서도 좀 멍해지더라. 이런 고민을 한다고? 지금 대한민국 최고의 가수인데, 더 멀리 본다고 느꼈다”고 응수했다.
데뷔 10년 차, 정규 앨범 두 장, 유튜브 구독자 179만, 최근 4년간 공연 81회에 관객 91만 명. 이 정도 성적표를 든 사람이 히트곡이 없다고 말하면 대개는 겸손한 표현으로 읽힌다. 다만 그 말은 어느 정도 사실이다. 임영웅에게 히트곡이란 ‘전 국민이 다 아는 노래’와 같은 뜻이었을 것이다. 적어도 몇 년 전에는 이런 구도가 가능했다. 하지만 2026년 현재, 우리가 알던 ‘전 국민의 히트곡’이란 사실상 존재하기 어렵게 되었다. 음악산업의 구조가 그렇게 변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임영웅의 성공과 영향력은 기존의 국민가수 같은 낡은 개념이 아니라 2026년에 걸맞은 새로운 관점으로 봐야 한다. 미디어학자 헨리 젠킨스는 ‘트랜스미디어’라는 개념을 정의했다. 트랜스미디어는 원래 콘텐츠 산업 용어다. 하나의 세계가 여러 매체에 흩어져 있되 각 매체가 서로를 대체하지 않고 자기 몫을 하는 구조다. 영화만 봐도, 게임만 해도, 만화만 읽어도 각각 완결성을 가진다. 그런데 그 전부를 모아보면 더 큰 무언가가 된다. 세계관과는 조금 다르다. 하나의 IP를 여러 장르와 플랫폼으로 확장하면서 프랜차이즈로 만드는 전략에 가깝다.
트랜스미디어 스타
이러한 트랜스미디어 구조로 임영웅을 보면, 그는 세계관에 따라 다양한 매체에 노출되는 방식이 아니라, 그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활동 영역을 하나씩 넓혀왔다. 자신이 가고자 하는 방향을 찾고, 그걸 할 수 있는 방법을 더하고, 좋은 결과를 보여주기 위해 시간을 들였다. 그게 전략적인 것만은 아닐 것이다. 애초에 그러한 사람이기 때문에 그런 행보를 보여줬을 거라고 본다. 하지만 결과만 놓고 보면 지금 그의 활동 지형은 잘 설계된 트랜스미디어 IP와 크게 구분되지 않는다.
최근 2년의 기록을 보자. 먼저 예능 프로그램이 있다. 2025년 여름 SBS <섬총각 영웅>이 네 차례 방영됐고 매회 화요 예능 시청률 1위였다. 2026년 여름에는 <산골총각 영웅>이 왔다. 6부작 기획이 한 회 늘어 7부작이 됐다. 두 프로그램은 같은 포맷의 다른 시즌이다. 장소를 섬에서 산으로 옮겼을 뿐 구성은 같다. 임영웅이 어딘가로 가서 밥을 짓고, 사람을 부르고, 노래를 한다. 가수가 게스트로 예능에 출연한 것이 아니라 가수의 이름이 프로그램 제목이 된 경우다. ‘00 총각 영웅’은 다음 시즌을 만들 수 있는 틀이기도 하다. 그는 자신의 이름으로 시즌제 프로그램을 만드는 몇 안 되는 스타다.
축구는 더 멀리 갔다. 그는 2021년 아마추어 축구팀 리턴즈FC를 만들었다. 꿈을 이루지 못한 선수들이 모여 다시 그라운드를 뛰자는 취지였고, 그는 구단주 겸 선수로 참여하고 있다. 여기까지는 연예인의 취미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조기축구 규칙이 팀마다 다르다는 문제에 부딪히자 아예 리그를 만들었다. KA리그다.
2024년 8월, JTBC <뭉쳐야 찬다 3>에 리턴즈FC와 함께 출연했고, 같은 해 10월에는 하나은행 자선축구대회에서 기성용이 주장을 맡은 팀과 맞붙었다. 이 경기는 쿠팡플레이로도 중계됐다. 2025년 10월에는 KA리그 여덟 개 팀의 에이스를 모은 연합팀 감독으로 벤치에 앉았는데, 상대편 벤치에는 안정환·이동국·김남일이 있었다. 그의 로망이 실제 팀이 되고, 그 팀이 리그로 발전하고, 방송에도 나갔다. 그가 만든 리그의 경기가 OTT로 중계되기까지 3년이 걸렸다. 하고 싶은 일에 제대로 집중하면서 얻은 결과다.
스크린 쪽은 같은 무대가 몇 번까지 다시 유통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2024년 5월 서울월드컵경기장 공연은 하루 관객 4만7219명의 청중을 기록했다. 그 공연을 촬영한 실황 영상은 같은 해 8월 28일 <임영웅│아임 히어로 더 스타디움>으로 극장에 걸렸다. 공연 실황 영화로는 처음으로 아이맥스와 스크린X에 동시 개봉했고, 관객 35만 명을 넘기며 국내 공연 실황 영화 흥행 1위 기록을 새로 썼다. 2025년 1월 31일에는 넷플릭스에도 올라갔다. 한국·미국·일본·대만·홍콩·마카오 동시 공개였다. 하나의 공연이 공연으로 끝나지 않고 극장 영화로, 글로벌 스트리밍의 프로그램으로 각각 유통된 것이다.
2022년 12월 고척스카이돔 앙코르 공연은 이듬해 3월 <아임 히어로 더 파이널>로 개봉해 25만702명을 모았다. 단순히 공연을 촬영한 게 아니라 카메라 14대를 세워 극장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앵글을 만들었다. 헨리 젠킨스는 각각 다른 미디어가 서로를 잡아먹지 않고 시너지를 낼 수 있을 때 트랜스미디어의 조건이 충족한다고 봤다. 이 기준 그대로 임영웅은 아티스트로서 트랜스미디어 효과를 만들어내고 있다.
모든 것의 실체
모두가 가상을 얘기하고 팬덤이 인스타그램의 팔로워 숫자로 대변되는 시대에 물리적 실체가 가장 뚜렷한 ‘공연’이 그의 모든 활동의 출발점이라는 점이 흥미롭다. 2022년부터 2026년 초까지 81회 공연에 91만 명이 다녀갔다. 2024년 12월부터 2025년 1월까지 고척스카이돔에서 여섯 차례 연 리사이틀에 약 10만6000명, 2025년 10월부터 2026년 2월까지 7개 지역 24회차 전국투어에 25만2000명이 왔다. 이 투어는 24회 전 회차가 매진됐고 그는 골든티켓 어워즈 대상을 받았다. 극장도 예능도 축구도 결국 이 무대에서 출발해 다른 매체로 옮겨간 것들이다.
유튜브는 가장 조용하게 커진 영역이다. 공식 채널 구독자는 179만 명, 올라간 영상은 1000편, 누적 조회수는 수십억 회다. 규모만큼 눈에 띄는 건 이 채널이 음악 활동의 전초기지라는 점이다. 정규 1집 수록곡 ‘보금자리’와 ‘A bientot’은 자체 콘텐츠 <리로드>에서 먼저 소개되었다. 예전에는 방송국에 신곡이 나가기를 기다렸다. 이제는 그보다 먼저 자기 채널에서 음악을 틀고 앨범에 수록한다. 유튜브를 홍보 창구로 쓰는 가수는 많지만 앨범 트랙 선정 단계에까지 채널이 관여하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 임영웅은 곡을 내기 전에 팬들뿐 아니라 일반 대중의 반응을 확인하는 단계를 만들었다.
팬덤도 이 목록에 들어간다. 임영웅이 팬클럽 ‘영웅시대’ 명의로 기부해온 금액은 2026년 6월 기준 누적 25억원을 넘었다. 생일마다 기부가 이어졌고, 그와 별개로 지역 팬 모임들이 각자 성금과 봉사를 이어왔다. 아티스트의 이름이 아니라 팬클럽 이름으로 기부가 집계된다는 점이 이 관계의 성격을 보여준다. 팬덤을 소비자로만 두면 나올 수 없는 형태다.
광고 영역에서 그의 행보는 조금 다르다. 그는 2026년 6월 광고모델 브랜드 평판 1위에 올라 있고, 그가 모델로 나선 상품이 실제 매출로 이어지는 현상에는 ‘히어로노믹스’라는 이름이 붙었다. 그러나 보통의 스타들은 광고를 발판으로 활동을 넓히려는 것과는 달리 임영웅의 경우 광고를 중심에 두지 않는다. 최근 2년간 그가 가장 크게 키운 채널은 예능, 축구, 유튜브였다.
그러니 앞서 ‘히트곡이 없다’며 조째즈에게 한 한탄의 말은 결핍의 고백이라기보다 기준의 문제다. 히트곡, 즉 새롭게 나온 곡이 많은 사람에게 즉각 도달하는 구조는 이제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적어도 2010년대부터 그런 미디어 구조는 깨졌다. 대신 보다 다양한 매체에서 보다 다양한 콘텐츠가 제각기 돌아가며 팬을 만들고 시장을 만든다.
임영웅은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적극적으로 다양한 미디어를 최대한 활용하고 있다. 이를테면 그가 활동하는 축구 팀과 리그는 일종의 미디어다. 이런 활동을 기반으로 그는 다양한 지점의 사람들이 ‘임영웅’이라는 이름을 발견할 수 있게 만든다. <내일은 미스터 트롯> 시절부터 그를 보아온 사람들에게 임영웅은 압도적으로 감동적인 목소리를 지닌 가수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사회인 축구 리그 팬들에게는 몇 년을 공들여 축구단과 아마추어 리그라는 자신의 비전을 실체로 만들어낸 성덕이다. 또 넷플릭스 구독자에게 임영웅은 케이팝 아이돌이나 그래미 어워즈 수상자처럼 글로벌 OTT에 콘서트 필름을 올리는 ‘기록의 가치’를 가진 아티스트다.
임영웅도 그의 소속사도 트랜스미디어 전략을 발표한 적이 없다. 앞서 얘기했듯, 그는 그가 좋아하는 일을 했을 뿐일 것이다. 그에게 ‘임영웅의 세계관’이라는 걸 만들겠다는 야심이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그런 말을 한 적은 없다. 트랜스미디어 스타로의 성장을 위한 로드맵을 발표한 적도 없다. 다만 자신의 이름을 딴 예능에 나가고, 축구가 좋아서 팀과 리그를 만들었고, 공들인 콘서트를 기록으로 남기고 싶어서 여러 대의 카메라를 세웠을 뿐. 어쩌면 매 순간의 판단은 단순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 10년의 선택을 겹쳐놓고 보니 지금 시대가 원하는 스타의 표본이 되었다. 어쩌면 그러한 의도의 부재, 노림수가 드러나지 않는 자연스러움 자체가 트랜스미디어 스타의 조건인지도 모른다.
HERO NUMBERS
임영웅이 만든 숫자들은 음악방송 순위나 앨범 판매 같은 전통적인 가수의 카테고리에 갇혀 있지 않다. 그의 숫자들은 여러 매체에 나뉘어 있다. 임영웅을 알기 위한 특별한 숫자들을 직접 계산해봤다.
72
」FILM
<임영웅│아임 히어로 더 스타디움>의 관객 35만 명이 108분짜리 영화를 보기 위해 스크린 앞에 앉아 있던 시간의 총합은, 연수로 환산하면 72년이다. 한 사람이 쉬지 않고 그 시간을 다 보려면 일흔두 해가 걸린다.
600,702
」FILM
콘서트 실황 영화 두 편의 합산 관객 수는 60만 명이 넘는다. <아임 히어로 더 파이널>(2023.03.01, 카메라 14대로 찍은 고척스카이돔 앙코르 실황)은 25만702명, <임영웅│아임 히어로 더 스타디움>(2024.08.28)은 35만 명으로 집계되었다.
1.79M
」YOUTUBE
유튜브 공식 채널 구독자 수(2026년 7월 23일 기준). 정규 1집 수록곡 ‘보금자리’와 ‘A bientot’은 이 채널의 자체 콘텐츠 <리로드>에서 먼저 소개된 바 있다. 방송 편성표를 거치지 않고 곡이 먼저 나가는 경로가 생긴 것이다.
3.7
」YOUTUBE
2016년 8월 8일 데뷔 싱글 ‘미워요’를 낸 날부터 2026년 8월 8일 데뷔 10주년까지의 날수는 3652일. 이 날수를 유튜브 공식 채널에 쌓인 영상 987편으로 나누면 3.7일이 나온다. 데뷔 이래 사나흘에 한 편꼴로 무언가를 찍어 올렸다는 얘기다.
3.1B
」YOUTUBE
유튜브 공식 채널이 처음 개설된 날은 2011년 12월 2일. 데뷔보다 5년 가까이 이른 시점이다. 그로부터 쌓인 누적 조회수는 31억3661만1890회 (2026년 8월 12일 기준)에 달한다.
11
BROADCASTING
」2년 연속으로 자신의 이름을 딴 예능이 편성되었다. <섬총각 영웅>(2025)은 4부작, 이듬해 <산골총각 영웅>(2026)은 7부작. 총 열한 차례 자신의 이름을 딴 예능이 지상파 텔레비전을 통해 방영됐다. 시즌 2는 당초 6부작 기획이었으나 화제성에 힘입어 한 회 연장됐다.
157K
」ALBUM
정규 1집 <IM HERO>(2022.05.02)의 첫 주 판매량은 110만 장으로 역대 솔로 가수 최고 기록이었다. 종전 기록이던 백현의 <Bambi>보다 약 24만 장 많았다. 이 기간 하루 약 15만7000장이 나간 셈이다. 발매 당일 하루에만 94만 장이 팔렸다.
12
」ALBUM
정규 1집 앨범의 수록곡 수. 트로트 우승자의 첫 정규 앨범이었지만 타이틀곡 ‘다시 만날 수 있을까’는 이적이 쓰고 정재일이 스트링을 얹은 발라드였고, 나머지 트랙에는 록·재즈·힙합이 트로트와 함께 실렸다.
1.51M
」AUDIENCE
무대와 극장에서 그의 공연을 본 사람의 총수. 2022년부터 2026년 초까지 81회 공연에 91만 명이 동원됐다. 여기에 실황 영화 관객 60만 702명을 더해 만 단위로 절삭한 값이다.
24/24
」CONCERT
2025~2026 전국투어 <IM HERO 2>는 7개 지역에서 총 스물네 번의 공연을 열었고, 스물네 번이 모두 매진됐다. 이 티켓 파워로 골든티켓 어워즈 대상을 수상했다. 이 투어의 총 관객은 25만2000명이다.
29K
」SPORTS
리턴즈FC 채널 구독자는 2만 9300명(2026년 8월 기준)으로, FC서울·울산HD·전북현대·대전하나시티즌 네 구단을 제외한 다른 모든 K리그1 구단보다 많다.
45K
」SPORTS
임영웅이 시축한 2023년 4월 8일 서울월드컵경기장 FC서울-대구FC 경기에 입장한 유료 관중은 4만5007명, 관계자 포함 4만7117명이었다. 이는 코로나19 이후 한국 프로스포츠를 통틀어 한 경기 최다 관중이며, 2016년 이후 K리그 최초의 4만 명대 진입이다.
8
」SPORTS
2021년 아마추어 축구팀 리턴즈FC를 만든 뒤, 기존 K6·K7 대회에서는 조기축구식 재교체가 허용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KA리그를 직접 창설했다. 이 리그에서 지금 활동 중인 팀은 총 8개다. 임영웅은 2025년 10월 이 8개 팀의 에이스를 모은 연합팀을 이끌고 JTBC <뭉쳐야 찬다4>에 출연하며 감독 데뷔전을 치렀다. 상대 벤치에는 안정환·이동국·김남일이 앉아 있었다.
19.6
」DRAMA
임영웅이 참여한 첫 드라마 OST ‘사랑은 늘 도망가’의 멜론 누적 스트리밍은 10억 회(2026년 7월 6일 기준). 대한민국 인구(2026년 7월 5109만 명)로 나누면 대략 국민 한 사람이 스무 번쯤 들었다는 계산이 나온다. 2026년을 사는 사람 중에 이 곡이 이문세 원곡이라는 걸 아는 사람은 이제 그리 많지 않다.
951K
」AWARDS
2024년 아시아 아티스트 어워즈 인기상 득표 수. 95만1052표는 이 어워즈 전체 투표수의 51.4%로, 나머지 후보 전원의 표를 합친 것보다 많았다. 임영웅은 이 상을 5년 연속으로 받았다.
2.5B
」DONATION
임영웅과 소속사가 팬클럽 ‘영웅시대’의 명의로 기부해온 누적액(2026년 6월 기준)은 25억원이다. 2026년 임영웅의 생일에도 같은 방식으로 고려대의료원에 2억원을 전달했다.
HERO HISTORY
연표를 시간순으로 보면 전형적인 성공한 스타의 커리어다. 그런데 관점을 바꿔 영역을 기준으로 보면 완전히 다른 것이 보인다. 임영웅을 다시 읽어야 할 이유다.
임영웅의 역사로 그를 다시 설명해보자. 2016년부터 2020년까지 임영웅은 두 개의 영역에 집중했다. 싱글을 내고, 오디션 프로그램에 나갔다. 이 시기의 그를 설명하는 데는 음반과 방송, 두 단어면 충분했다.
2021년부터 2023년 사이에 판이 갈라졌다. 2021년 10월 첫 드라마 OST ‘사랑은 늘 도망가’를 냈고, 2022년 5월 정규 1집 <IM HERO>로 초동 110만 장을 팔며 역대 솔로 가수 기록을 세웠다. 트로트 우승자의 첫 정규 앨범에 발라드와 록과 재즈가 함께 실려 있었다. 2023년 3월에는 콘서트 실황이 극장에 걸렸다. 그리고 이 흐름과 아무 상관 없는 일이 하나 더 있었다. 2021년에 만든 아마추어 축구팀 리턴즈FC다. 당시 사람들은 성공한 스타의 취미 정도로 봤다. 하지만 여기서부터가 시작이었다.
2024년부터 2025년까지 활동 반경은 가장 빠르게 늘어났다. 2024년 5월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약 10만 명과 만난 공연은 그해 8월 극장용 영화가 됐고, 이듬해 1월 31일에는 넷플릭스를 통해 한국·미국·일본·대만·홍콩·마카오에 동시 공개됐다. 같은 시기 축구팀은 리그가 됐다. 2024년 8월 JTBC 예능에 출연했고, 10월 12일 대전월드컵경기장 자선경기는 쿠팡플레이가 단독 중계했으며, 2025년 10월에는 감독석에 앉았다. 2025년 늦여름에는 <섬총각 영웅>이, 이듬해 여름에는 <산골총각 영웅>이 방영됐다.
게스트로 예능에 나가는 건 미디어가 스타를 활용하는 방식이다. 자기 이름을 단 프로그램을 시즌제로 만드는 것은 스타가 미디어를 활용하는 방식이다. 둘은 완전히 다르다. 이 시간을 거치며 임영웅은 미디어의 편성에 기대지 않고 스스로 영향력을 확장하는 존재가 되었다.
지금 그의 활동은 음반·무대·스크린·OTT·방송·스포츠 여러 영역에서 동시에 돌아간다. 중요한 것은 새 영역이 생길 때마다 앞의 영역이 줄어들지 않았다는 점이다. 2022년부터 2026년 초까지 81회 공연에 91만 명이 왔고, 그러는 동안 극장과 넷플릭스에도 그가 걸려 있었다. 그를 만나는 경로가 늘어난 것이다.
이 모든 날짜를 하나에 놓고 보면 밀도가 달라진다. 2024년 5월부터 2026년 8월까지 27개월 동안 그는 스타디움 공연을 열고, 그 실황을 극장에 걸고, 넷플릭스로 내보내고, 자신이 호스트인 예능을 두 시즌 찍고, 정규 2집을 내고, 24회 전 회차가 매진된 투어를 돌고, 축구 감독으로 데뷔했다.
임영웅을 ‘오디션 프로그램으로 성공한 트로트 가수’가 아니라 다른 종류의 스타로 보게 되는 이유는, 그가 매 순간 실제로 행동하면서 궤적을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계속할 수 있는 일을 했고, 그것이 자리를 잡은 뒤에야 다음 매체로 옮겼다. 축구팀은 3년을 운영한 뒤에야 첫 방송에 나갔다. 물론 임영웅에게도 화제성과 흥행은 중요할 것이다. 다만 순서가 반대였다. 콘텐츠가 될 것을 먼저 기획한 것이 아니라, 해오던 일이 나중에 콘텐츠가 됐다. 그래서 그의 행동이 그를 설명한다. 자신의 관심과 동기를 따라 여러 매체를 오가는 사이, 그는 어느 매체에도 속하지 않은 채 스스로 하나의 채널이 됐다.
Credit
- EDITOR 박세회
- WRITER 차우진
- PHOTO 물고기뮤직
- ART DESIGNER 주정화
MONTHLY CELE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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