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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이란 무엇인가?

영화 속 괴물을 어떻게, 무엇으로 만들어야 할지에 대한 한 영화 평론가의 의미 있는 훈수.

프로필 by 박세회 2026.09.01

괴물을 뭘로 만들 것인가? 사실 답은 하나다. 컴퓨터 그래픽(이하 ‘CG’)이다. 물론 우리는 알고 있다. CG는 아직 완벽하지 않다. 소품이나 모형, 폭발이나 화염, 특수분장이나 특수효과 등등, 뭔가 손으로 만들어낸 프랙티컬 특수효과를 CG와 함께 사용하는 것이 여전히 가장 완벽한 방법이다. 이런 이야기를 시작하면 1990년대 이후 태어난 세대는 갸우뚱거릴지도 모른다. 세상 모든 걸 다 CG로 만드는 데다 곧 AI 시대가 오는데 뭔 프랙티컬 타령이냐는 것이다. 스포티파이로 음악 듣는 시대에 바이닐 타령하는 영포티라며 욕을 먹을 가능성이 크다.

크리스토퍼 놀런 앞에서는 다들 말이 좀 달라진다. 놀런은 이상한 감독이다. 그는 CG를 싫어한다. 거의 혐오하는 것 같다. 이 정도면 결벽증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가 CG를 쓰지 않는 건 아니다. 적절한 장면에서 CG를 쓴다. 드러나게 쓰지 않는다. 놀런은 이미 프랙티컬 특수효과로 만든 장면을 보완하거나 화면에 찍힌 뭔가를 지우기 위해 CG를 쓴다. 그에게 CG는 왼손이다. 왼손은 거들 뿐이다. 나도 놀런의 방식을 좋아한다. CG는 완벽하지 않을뿐더러 종종 영화를 망친다. 예가 있으면 들이밀어 보라고?

마블의 황제 루소 형제가 만든 액션영화 <그레이 맨>(2022)을 떠올려보시라. 마블 영화는 CG 없이는 아예 만들 수 없는 영화들이다. 마블은 작은 세트도 거의 짓지 않는다. 배우들은 거의 언제나 초록색 천으로 둘러싼 타이츠를 입고 초록색으로 칠한 세트에 서 있다. 마블 영화의 모든 것은 가짜다. 괜찮다. 마블 세계관 자체가 가짜다. <그레이맨>은 아니다. 이건 지금 현재를 배경으로 한 액션영화다. 가짜처럼 보여서는 안 된다. 루소 형제는 그럴 생각이 없거나 그걸 잘 모른다. 그들은 마블 영화를 만드는 방식으로 <그레이맨>을 만들었다. 마지막 장면에서 라이언 고슬링은 유럽 도시 한가운데서 폭발하며 달리는 트램 위를 달린다. 누가 봐도 CG다. 슈퍼히어로가 아니라면 그런 액션은 해낼 수가 없다. 영화는 거기서 현실적 액션영화가 아닌 판타지의 영역으로 들어간다.

이런 시기가 올 거라는 걸 모두가 예상했다. 나는 <다이하드 4.0>(2007)에서 브루스 윌리스가 수직이착륙기 F-35B에 매달려 싸우는 장면을 보며 중얼거렸다. “에헤이, 조졌다.” 누가 봐도 CG다. 우리가 존 매클레인의 액션에서까지 CG를 봐야 하나? <다이하드> 시리즈의 가장 큰 매력은 ‘죽도록 고생하는’ 존 매클레인이다. 그는 실제로 어딘가에 매달리고, 진짜 폭발에 날아가고, 진짜 차를 타고 달리는 남자다. 진짜 남자. 리얼 맨. 그를 F-35B 위에 매달고 흔드는 순간, 남자는 사라졌다. CG로 된 그 장면에는 가짜 맨이 있었다. <다이하드> 시리즈의 몸과 몸이 부딪히는 통증의 화력이 사라졌다. 물론 잘 찍은 장면이었다. 2007년으로서는 최적의 방식으로 돈 많이 들여서 찍은 장면이었다. 그러면 뭐하나. 그래 봐야 CG다. 물론 그놈의 시리즈를 훌륭한 3부작으로 완성시켜 놓고 또 속편들을 찍어낸 할리우드가 죄인이다. 브루스 윌리스는 돈이 필요했을 따름이다.

생각해보시라. <쥬라기 공원>이 진짜로 무서웠던 건 언제가 마지막인가? 내가 보기에 스티븐 스필버그가 만든 첫 두 편을 제외하면 공룡은 그렇게 무서웠던 적이 없다. 왜냐고? 이것 역시 CG가 죄인이다. 첫 <쥬라기 공원>(1993)은 CG만으로 완성된 영화가 아니다. 공룡이 인간과 직접 부딪히는 많은 장면은 영화 인형술의 대가 스탠 윈스턴이 만든 애니매트로닉스 모형을 썼다. 당시 CG는 영화사에서 거의 사용된 적이 없던 기술이다. <쥬라기 공원> 2년 전인 1991년 작 <터미네이터 2: 심판의 날>에서 제임스 캐머런이 CG로 만든 T-1000을 공개하자 세상이 바뀌기 시작했다. 프랙티컬 특수효과로는 할 수 없는 것들을 할 수 있는 기술이 등장한 것이다. 스필버그는 <쥬라기 공원>에 이를 도입했다.

스필버그는 아주 똑똑한 감독이다. 그는 1980년대 내내 프랙티컬 특수효과를 진화시킨 주인공이다. 특수효과를 잔뜩 도입한 장르 블록버스터라는 걸 거의 홀로 만들어낸 천재다. 갓 고안된 CG는 한계가 있는 기술이었다. 그래서 그는 <쥬라기 공원>을 ‘프랙티컬 특수효과로 만든 뒤 CG의 도움을 받은 영화’로 만들어냈다. 완벽했다. 문제는 이후다. 할리우드는 지나치게 빠른 속도로 프랙티컬 특수효과를 버렸다. 할 수 있는 건 다 CG로 만들기 시작했다. 이젠 바다로 나가서 배를 띄워 촬영하는 영화는 거의 없다. 우리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로 보는 대부분의 바다는 진짜 바다가 아니다. 20년 후 우리는 이순신 장군이 가짜 바다 위에서 싸우다 전사하는 걸 거의 3시간짜리 3편의 영화로 보게 됐다.

놀런은 그럴 생각이 없다. 그는 CG가 아직도 완벽하지 않다는 사실을 잘 아는 감독이다. 나는 그게 좋았다. <테넷>(2020)까지 좋았다. <오펜하이머>(2023)를 보다가 나는 뭔가 좀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여러분은 <오펜하이머>를 보기 전 뭘 가장 기대했나? 나는 원폭 실험 장면을 기대했다. 아니, 그걸 가지고 홍보를 그렇게 해대지 않았다면 나도 그 장면 하나 기대하며 극장에 들어가진 않았을 것이다. 외신부터 자꾸 ‘원폭 실험 장면을 실제로 찍었다’고 난리를 쳐대는데 그걸 기대하지 않을 도리는 없었다. 그리고 그 장면이 등장하는 순간, 나는 숨을 죽였다. 한숨이 나왔다. 예술영화적으로 아름답기만 한 장면이었다. 원폭의 파괴력이 느껴지지 않으니 오펜하이머의 속죄도 파괴력이 좀 적었다. 그냥 CG로 버섯구름을 만들었어도 누구도 ‘놀런답지 않다’고 놀리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는 이미 유튜브로 실제 원폭 실험 장면들을 본 적이 있다. 심지어 실제 장면인데도 CG 같다. 그냥 CG로 만들었어도 실제 장면 같았을 것이다. 그걸 굳이 홍보에 이용한 마케팅팀을 원망했다.

<오디세이> 개봉 전, 모두가 난리를 쳤다. 호메로스의 원작에는 많은 괴물이 등장한다. 눈이 하나뿐인 거대한 키클롭스, 거인 식인족 라이스트뤼고네스, 노래로 유혹하는 세이렌, 바닷속으로 배를 끌고 가는 카리브디스, 절벽에서 사람들을 채가는 스킬라 등. 크리처물 팬들에게 <오디세이>는 필연적 기대를 불러일으키는 영화였다. 농담이 소셜미디어를 채웠다. 사람들은 대체 그 많은 괴물을 CG 결벽증 환자 놀런이 어떻게 찍을 것인가를 상상해댔다. 진짜 괴물을 소환할 수도 있다는 농담이 나왔다. ‘지구 평면설’도 믿는 사람이 이렇게 많은 시대에, 소셜미디어의 몇몇은 그 농담을 정말로 믿었을 것이 틀림없다. 나는 놀런 팬인 동시에 오랜 크리처물 마니아다. 놀런은 분명 거대한 애니매트로닉스 모형을 이용해 괴물을 만들 것이다. 거기에 아주 약간의 CG를 더할 것이다. 분명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스펙터클이 나올 것이다.

정작 <오디세이>를 보면서 힘이 좀 빠졌다. 놀런은 정말로 실제 크기의 키클롭스 모형을 만들었다. 그렇게 만들어 놓으니 어떻게 해봐도 인간 배우와 함께 있을 때 질감이 다르게 느껴지는 CG 괴물과는 확연한 차이가 있다. 그림은 완벽하다. 동시에 문제가 있다. 키클롭스는 키가 정말 큰 괴물이다. 아파트 10층 정도 높이는 될 것이다. 이 정도로 거대한 애니매트로닉스 모형은 움직임에 한계가 있다. 그렇게 거대한 모형을 실제로 움직이게 만드는 건 쉽지 않다. 놀런이 그걸 해결하는 방식 역시 놀런답다. 편집이다. 문제는 편집으로만 해결하기에는 그 움직임을 충분히 박진감 넘치게 표현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나는 놀런이 그 장면에서 CG를 좀 더 본격적으로 써도 괜찮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CG는 완벽하지 않지만, 돈을 무지하게 많이 투자하면 ‘거의 완벽한 CG’라는 것을 뽑아낼 수 있다. 제임스 캐머런이 그걸 제일 잘한다. 그는 길쭉한 스머프가 나오는 완벽한 가상의 세계에 발목이 잡혀 20년간 재능을 낭비하고 있을 뿐이다.

다른 괴물은 거의 나오지 않는다. 놀런은 거인족 라이스트뤼고네스 장면은 더 실제적 혹은 실체적으로 찍었다. 키 2m 넘는 배우들에게 얼굴이 보이지 않는 갑옷을 입혔다. 주연배우 대신 키가 150cm에 불과한 스턴트 대역을 활용했다. 덩치 차이를 이용한 현실적인 방법이라 너무 현실적이었지만, 그리 압도적인 위협이 느껴지지 않는 게 문제다. 세이렌과 카리브디스는 나오지도 않는다. 절벽 괴물 스킬라 장면에서 놀런은 유일하게 CG를 드러나게 쓴다. 아주 짧게 쓴다. 거의 느껴지지도 않을 정도로 짧게 쓴다. 놀런은 이렇게까지나 CG를 싫어한다. 더 써도 됐다. 물론 <오디세이>는 대단한 ‘시네마’라 이 불평에 아주 크게 동의하는 독자는 드물 수도 있다. 놀런 영화를 욕하면 놀랄 만큼 많은 욕을 먹는다. 그러나 이제는 때가 된 것 같다. 놀런 역시 CG와 약간의 타협을 할 시기가 왔다.

이런 소리를 하면 나홍진의 <호프>를 들이미는 독자들이 있을 것이다. 분명히 계실 것이다. CG가 후져서 볼 수가 없었다는 독자들의 불평이 이미 들리는 것 같다. 여기서 또 욕먹을 소리를 해야겠다. 나는 <호프>의 CG가 그렇게 나빴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뭐라고? 지금 이런 소리를 하는 주제에 위에서 주절거린 놀런에 대한 소리를 믿어야 하냐고? 잠깐만 화를 삭여주시길 부탁드린다. CG는 나빴다. 후반부에서 마이클 패스벤더와 알리시아 비칸데르가 모션, 페이셜 캡처로 촬영한 외계인들이 등장할 때마다 나도 좀 웃었다. 후반부는 사실 일종의 스페이스 오페라 코미디다. 장르는 갑자기 전환한다. 확장한다. 나홍진은 어떤 설명도 제대로 하지 않고 그냥 영화를 닫아버린다. 나는 그게 의도한 코미디라고 확신한다. 관객들이 갑작스러운 장르의 전환과 확장에 어이가 좀 나갔을 뿐이다.

중요한 건 이거다. 나는 <호프>의 중요 액션 장면들이 정말로 무서웠다. 특히 초반부 한 시간 동네 액션 장면이 그렇다. 처녀귀신을 닮은, 설정집에 따르면 주방 보조인 외계인 괴물이 읍내 사람들을 처절하게 학살하며 주인공들과 싸우는 장면에서 나는 몇 번이나 자리에서 튀어 올랐다. 무서웠다. 정말로 공포가 느껴졌다. 나는 이런 장면을 최근 할리우드 영화에서도 본 적이 없다. 여러분은 CG 괴물이 등장하는 영화가 무서웠던 게 마지막으로 언제인가? <에일리언: 로물루스>(2026)의 에일리언이 무서웠나? 그 영화가 주는 호러영화로서의 공포는 프랙티컬 특수효과를 쓴 1979년 리들리 스콧의 <에일리언>과 1986년 제임스 캐머런의 <에일리언 2>에 조금도 미치지 못한다.

<에일리언: 로물루스>도 무서웠다고? 특히 인간과 접합해 태어난 클라이맥스의 에일리언은 정말 공포스러웠다고? 나는 여기서 <에일리언: 로물루스>를 잠깐 칭찬할 생각이다. 그 장면은 키가 231cm인 농구선수 로베르트 보브로츠키가 괴물로 분장하고 연기한 것이다. 이 영화 제작진도 알았다. 실제로 만든 괴물이 더 무섭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가장 중요한 장면에서는 프랙티컬 특수효과를 쓴 것이다. 나는 그 장면만 좋았다. 아니 그렇다면 <호프>는 왜 칭찬하냐고? 나홍진은 첫 한 시간에서 장인다운 해결책을 쓴다. 괴물을 최소한으로만 등장시키는 것이다. <쥬라기 공원>에서 스필버그가 활용한 방식이기도 하다. 그 영화의 러닝타임은 127분이다. 공룡이 화면에 등장하는 장면은 15분이다. CG로 만든 공룡 등장 시간은 딱 6분이다.

진짜 무서운 것은 많이 보여줘서는 안 된다. CG로 만든 무서운 것은 적게 보여줘야 한다. 이것이 스필버그가 시작부터 제시한 정답이다. CG 기술이 발전하기 시작하자 모두가 지나치게 대담해졌다. 돈을 들여서 만든 것이니 더 많이 보여줘야 한다고 확신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우리가 지난 20년간, 전혀 무섭지도 않은 괴물이 지나치게 많은 장면에 등장하는 공포도 감흥도 없는 할리우드 장르영화들을 보아온 것이다. <7광구>(2011) 이후 이 장르가 한국에서는 숨이 죽은 것이 오히려 다행인 일이다. 나홍진은 그런 함정에 빠지지 않는다. 액션 장면에서 그는 인간 배우에게 집중한다. 그들이 지나치게 강력하고 존재를 알 수 없는 괴물들과 싸우는 공포 자체에 집중한다. 나는 <호프>를 보면서, 특히 첫 한 시간을 보면서 <쥬라기 공원> 이후 CG로 만든 크리처가 처음으로 무섭게 느껴지는 영화라는 사실에 감탄했다. 할리우드를 따라가지 못하는 CG를 전면에 드러나게 보여줄 수 없기 때문에 설계한 장면일 것이다. 그게 오히려 장점이 됐다. 1993년, CG 기술이 완벽하지 않다는 걸 잘 알고 있던 스필버그도 같은 방식으로 액션 장면들을 설계했다.

그래서 지금 <오디세이>를 까고 <호프>를 찬양하는 무엄한 글을 쓰고 있는 거냐고? 아니다. 나는 두 영화 모두 올해의 걸작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걸작은 깔 지점이 있고, 까이는 걸 방어할 지점도 있는 법이다. 나는 놀런의 키클롭스가 CG로 만든 나홍진의 주방 보조 외계인처럼 날뛰는 장면을 상상하고 있다. 정말 화끈하게 무시무시했을 것이다. 동시에 나는, 지금보다 더 많은 돈을 쓸 수 있는 나홍진이 주방 보조 외계인이 등장하는 몇몇 장면을 위해 모형을 만들어 정적인 장면에 좀 더 자주 등장하게 썼다면 어땠을지를 상상해본다. 둘 다 조금 더 완벽해졌을 것이다. 결국 돈이 문제다. 돈이 너무 많으면 쓸 수 있는 것을 안 쓰고, 돈이 지나치게 적으면 써야 하는 것을 쓰지 못해 숨겨야 한다. 모두가 놀런이 될 수는 없다. 모두가 약간은 나홍진이 될 수도 있다. 결국 문제는 CG가 아니다. 그걸 빚어내는 인간이다. 아주 모범적인 결론이 나오고야 말았다. 어쩔 수가 없다.


김도훈은 글을 쓰는 사람이다. <씨네21> <GEEK>과 <허프포스트>에서 일했고, 에세이 <우리 이제 낭만을 이야기합시다>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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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EDITOR 박세회
  • WRITER 김도훈
  • ILLUSTRATOR MYCDAYS
  • ART DESIGNER 주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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